물결 무늬를 삶이라 말하면 여행 유튜버 레리꼬 채널 75화 ‘태국 여행 중 만난 친구 만나러 무계획으로 스위스 가보기’를 보면 물결무늬가 그려진 바닥이 나옵니다. 동행하는 스위스인은 “여기 아래에 강이 있어서 이렇게 물결 표시를 해놓은 거야, 우리 지금 물 위를 걷고 있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개천이지요.우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 도시화와 함께 대부분의 하천을 매립하였습니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던 실개천은 이제 콘크리트로, 아스팔트로 가려진 채 하수도로 쓰입니다. 모든 맨홀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맨홀은 복개천임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남아있던 농수로 모습을 더듬어보게 됩니다.스위스뿐만 아니라 영국 런던에서도 복개천을 표시한 맨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하로 흐르는 강을 표시하기 위해 물의 흐름을 표현한 물결 표시가 새겨진 원형 맨홀을 만들었습니다. 영국 블로거 diamond geezer는 지하로 흐르는 Effra 강의 흔적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는 곳을 유심히 바라본 기록입니다. diamond geezer 블로그https://diamondgeezer.blogspot.com/2016/12/marking-river-effra.html Norwood에서 Brixton을 거쳐 Vauxhall까지 남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잃어버린 강의 대략적인 경로https://www.google.com/maps/d/u/0/viewer?mid=1PNq9P0dWEhbcsJa1ZJ5JGlYwDn0&ll=51.451277847669665%2C-0.07327769287109653&z=13 에프라 강 맨홀 디자인https://www.tom-castle.co.uk/portfolio/p1_effra.html 우리도 맨홀 뚜껑에 디자인을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작은 맨홀 뚜껑 하나가 도시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보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연결하고 압축하는 것에서 오히려 우리는 서정(lyric)과 서사(narrative)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이기도 합니다.화가 강요배 선생의 말에 따르면 ‘추상이란 요체. 요약을 많이 하는 것. 기초적인 인간의 기본은 추상화 과정입니다. 내가 본 것을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은 본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생산적인 문제입니다. 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요약해서 핵심을 만드는 것. 요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추상’입니다.우리는 어떤 것을 ‘추상’과 ‘피상’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요체인 추상과 겉모습인 피상을 이해하려면 그 이면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응축된 것을 풀어내고, 겉으로 드러난 것을 통해 유추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단순하게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태도와 활용하려는 태도를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우리는 무엇 위를 걷고 있을까요. 어쩌면 N개의 서울은, 방방 소식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이야기 나무’라는 주제로 사람들의 소리를 한데 담아 알리려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무가 물결처럼 보이는데, 물결 무늬를 삶이라 말하면 마음을 조금 헤아리시렵니까.‥ 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