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향하는 일 어제는 지인에게 물었다. “문화예술 활동을 왜 하세요?” “그게 꼭 문화와 예술이어야 하나요?” 질문을 받은 이는 도리어 내게 물었다. “예울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나는 질문이 되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머릿속에 있는 온갖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다 거짓말인 것 같아요.”라는 대답을 들었다.근 몇 년 동안 질문과 대답 속에서 내가 하는 일에 근거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려고 했었나, 설명하려고 할수록 거창한 말만 만들어냈다. 다른 이의 이야기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나의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꺼낸 이야기들이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진심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이라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대학 시절 처음 수강한 시 창작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이 있다. ‘바닥에 닿아야 한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던 나는 같은 조 문창과 학생들에게 “마음의 바닥에 닿으라는 말인가요...?”라고 물었다. 문창과 학생들은 설명하기 어려웠는지 내 이야기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불친절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교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프로젝트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면 교수님의 말이 생각난다. ‘바닥에 닿아야 한다.’사람의 마음에 바닥이 있다면 어디일까. 어떤 것이 있을까. 모두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바닥 위에 쌓여버린 것들을 치우고 맨바닥을 들여다보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일 위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하다 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을까.내가 본 문화예술은 바닥을 향하는 일이었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누구든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내가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활동으로 누군가 행복해하기 때문에.’, ‘그래도 이런 것 정도는 우리한테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대답을 떠올린다. 어제 내가 말했던 것 중 ‘누구나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라는 내용만큼은 진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거창한 말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내 바닥에 정답이 있다면 계속 거창한 이야기를 하며 바닥으로 가고 싶다.모두의 바닥이 궁금하다. 마음의 바닥이든, 삶의 이유든, 바닥의 존재를 믿지 않든,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항상 존재했으면 좋겠다. 함께 이야기하며 아래로 향했으면 좋겠다. 가장 솔직한 곳엔 무엇이 있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강서 N개의 서울 네트워크 PM이예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