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는 또 다른 부산물을 남기고 12월이다. 이맘때쯤이면 올해 나는 뭘 하며 보냈지? 란 생각이 든다. 나는 디자인과 그림, 기획 3가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 몇 년은 디자인 일을 가장 많이 하고 기획과 그림은 일 외의 시간에 한다. 좀 한가하면 ‘그림을 그려볼까?’, ‘이런 걸 좀 해볼까?’ 란 생각이 든다는 뜻이다. 디자인 일은 대체로 클라이언트와 마감이 있어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기획과 그림은 일로 하는 경우가 많이 없고 진짜 하고 싶은 걸 해야만 할 때 나오는 정체성이다. 올해의 가장 좋았던 작업은 예전부터 쭉 하고 싶었던 ‘부산물’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발표한 것이다. 나의 작업이 아카이브 적 성격을 갖는 이유라거나 친환경과 연계되는 이유,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가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왜 내가 이런 걸 했는가 하면 말이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선순위를 가진 디자인 ‘일’이 있고 그 외의 것이 나의 작업이라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다. 이런 성향 때문에 예전엔 내가 하고 싶은 게 없거나 약한 줄 알았다. 아직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외의’ 것이 나에겐 정말 하고 싶은 일이어서 ‘그’ 것이 뭐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좀 더 정확히는 뭐든 괜찮았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의 나의 작업을 묶어 <Leftover_부산물> 프로젝트라 이름 짓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성격과 재료, 이야기 등으로 카테고리 지어 묶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작업하기로 했다. 올해에는 <001. 똑딱이 명함 지갑>과 <008. 패키지 뜯어보기>가 그것이다. 나는 계기가 없으면 생각만하므로 일을 만들거나 프로그램 같은 것에 참여한다. 이번엔 ‘YDP창의예술교육센터’(이하 ‘창터’)에서 하는 ‘시민랩 히읗(ㅎ)’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했다.‘작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라는 전제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가 합쳐진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사실 올해엔 <패키지 뜯어보기>가 주된 프로젝트였다. <똑딱이 명함 지갑>은 <패키지 뜯어보기>를 작업하는 중에 ‘같이 해버려야겠다!’ 싶어 동시에 두 가지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똑딱이 명함 지갑> 프로젝트는 작년에 거의 다 만들어 놓고 발표를 하지 않았다. 혼자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게 올해였나보다.‘똑딱이 명함 지갑’의 탄생과 이야기는 간단하다. 가죽 작업을 하다 보면 가죽이 많이 남기 마련인데 아무리 요령이 좋고 재주가 좋아도 자재를 남기지 않을 수는 없다. 이는 가죽이 비정형으로 생겨서이기도 하고 대량의 작업을 할 때에 재단하기 전에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우며 같은 가죽이라도 시기에 따라 조금씩 색과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한번 살 때 넉넉하게 사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피할을 할 경우 *독고 한 장이 그대로 남는다. 좋은 가죽은 독고도 쓸만해 샘플을 만든다거나 보강재로 쓰기도 하지만 대개 둥글게 말려 몇 년째 쓰임을 기다리는 일이 많다. 특히 나는 자주 가죽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남은 가죽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 다 써버리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기획하게 된 것이 ‘똑딱이 시리즈’들과 소품들이었고, 작년부터 시작해 올해 초까지 ‘똑딱이 명함 지갑’은 지인들에게 나누어 사용성 테스트를 거쳐 출시해도 되는 단계에 왔다. <Leftover_부산물> 프로젝트에서 ‘똑딱이 명함 지갑’을 만들 때 몇 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1. 최소 노동력, 2. 단순한 패턴, 3. 최소 부자재, 4. 작품보단 상품, 이렇게 네 가지이다. 여러 사람이 써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만드는 사람이 부담이 없어야 계속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완성 단계까지 왔지만,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발표할지는 미뤄두고 있던 차에 <패키지 뜯어보기>를 시작했다.<패키지 뜯어보기>를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나는 택배가 싫은데 박스만 봐도 숨이 막힌다. 택배를 뜯으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박스와 완충재를 정리해서 분류하여 버려야 하고, 버리기 싫어 잘 모아두고 있어도 그다지 쓸모가 없다. 물건이나 상품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판매로 이어지기 힘든 이유에 이것도 결정적이다. 그래서 궁극의 패키지는 뭐고 내가 받아도 기분 좋은 패키지는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여러 패키지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나도 딱 알맹이만 받고 싶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알맹이들의 집을 지어주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집 그러니까 자기 자리. ‘택배 박스는 본래의 자기 자리가 아닌 생각에 불편했나?’ 란 생각도 들었다. 적당한 패키지를 찾다 보니 구체적인 ‘알맹이’가 필요했고 그 자리에 ‘똑딱이 명함 지갑’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똑딱이 명함 지갑>은 발표할 계기가 필요하고, <패키지 뜯어보기>는 알맹이가 필요하니 ‘참 잘 되었다!’ 싶었다.그리고 본격적으로 나의 생일 주간을 핑계 삼아 활동을 시작했다. 포스터도 만들고 사람도 모으고 작지만 전시도 했다. 처음 제대로 <Leftover_부산물>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거니까 나의 세 가지 정체성도 녹여봐야겠다 싶어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1. 디자이너 박현주의 <이사각 디자인 2019-2023>, 2. 기획자 박현주의 ‘똑딱이 명함 지갑’ <방문&초대 판매>, 3.콜렉터 박현주의 <우리 집에 00 있는데~!>. 각각 전시, 1:1 만남, 초대 워크숍의 형태로 진행했다. 그리고 바로 시작된 <노을장>을 통해 ‘똑딱이 명함 지갑’을 팔아보기도 했다. 가죽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의 가죽을 기증받아 판매할 수 있는 퀄리티의 ‘똑딱이 명함 지갑’을 만들 수 있었다. 여기까지 진행하니 <패키지 뜯어보기>를 작업했던 프로그램 ‘시민랩 히읗(ㅎ)’ 이 끝났다.11월과 12월에는 그간 ‘시민랩 히읗(ㅎ)’을 통해 진행한 프로젝트들의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기록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1차로 ‘창터’ ‘작은 갤러리’에서 활동의 과정과 결과물을 정직하게 전시했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 활동에서 무엇을 얻고 발전시켰는지, 그래서 결과로 무엇이 나왔는지를 말이다.2차 발표는 ‘창터’의 모든 활동을 발표하는 ‘둥둥제’라는 축제의 일환이었는데 ‘작은 갤러리’의 것을 그대로 전시하기는 싫었다. 프로젝트를 하며 계속 ‘그림이 그리고 싶다~그리고 싶다’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 기회에 ‘그림을 그려야겠다!’ 싶었다.생각보다 많은 작업을 수행한 프로젝트였다. 다른 동료들에게 응원도 받고 발표하는 자리마다 호응도 있어 앞으로의 작업을 어떻게 할지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는 중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 디자인 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원하는 주제와 하고 싶은 표현이 구체화하는 느낌이었다. 그간 ‘언젠가 해야지’ 하고 모아만 두었던 작업을 하나하나 열어 발표하는 느낌도 좋았다. ‘실제로 펼쳐놓으면 이런 모양이 되는구나!’, ‘다음에는 이렇게 해볼까?’ 생각하며 다음에 할 것들이 결정되고 과거에 하려고 했던 것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 합쳐지는 경험도 새로웠다. 자연스럽게 하기 힘든 것은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경험도 좋았다.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생각을 오래 하며 꺼내지도 못할 뻔한 것들이 급한 김에 ‘여기까지만’으로 어쨌든 세상에 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중간중간 너무 바쁠 땐 괜히 한다고 했나란 생각도 들었지만 마치고 나면 ‘하지 않는 것보다 나았다’란 생각이 들었다.결정적으로 덕분에 다음 할 작업도 정했다. <오린 줄 알았는데 기러기> 둥둥제에서 발표한 <프로젝트는 또 다른 부산물을 남기고> 그림 저 구석에 자리하고 있기도 한 아이다. 이 작업도 어떻게 어떤 매체로 무엇을 하게 될지 전혀 계획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지만 할 거다. 어떻게 이 작업이 펼쳐질지 나도 아직은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년엔 좀 더 시간과 공을 들인 나의 그림과 기획을 기대한다.*피할 : 가죽의 두께를 전체적으로 얇게 만들기 위해 가죽의 아랫 면을 도려내는 작업*독고 : 통 가죽을 피할 하고 남은 내피 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