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던 강서구 이야기 요즘 내 취미는 러닝이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각종 러닝 앱 중에 내가 쓰는 앱은 바로 ‘런데이’라는 어플이다. 런데이 어플을 사용할 때는 닉네임을 설정해야 하는데, 내가 고민 없이 설정한 닉네임은 바로 ‘강서구 미꾸라지’. 그렇다. 나는 강서구라는 나의 터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는, 무려 24년째 강서구에 살고 있는, 강서구민이다.나는 강서구에서 초, 중, 고를 모두 졸업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집에서 도보 최대 15분을 벗어나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한 마디로 내 인생 절반 이상, 나의 ‘나와바리’는 강서구였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쏘다니던 염창 근린공원, 화곡역 종합학원, 우장산 목동분식, 초중고 동창회만 하면 가던 유흥의 메카(였던) 강서구청, 지금은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함께 허허 벌판에서 오리 진흙구이를 먹었던 20년 전, 그때 그 시절 마곡지구. 내 삶의 기억 속에는 늘 ‘강서구’의 n개의 지역들이 함께 했다. 그렇게 내 삶 곳곳에 스며있는 강서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애정했다.허나, 내가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면서 강서구를 향한 나의 애정에 근심 어린 걱정이 더해갔다. 나는 학부에서 문화예술 계통을 전공하고, 대학로에 있는 극단 기획팀에서 공연 기획자로 근무했다. 문화예술 기획자의 시선에서 문득 나의 고장, 강서구를 새삼스레 돌아봤다. 대학로처럼 강서구에는 극장이 몇 개나 있을까? 타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강서구에 오면 무엇을 자랑할까? 합마르뜨나 경리단길처럼 강서구에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문화 지역이 있을까? 그렇다. 수많은 물음과 대답 끝에 인정할 수밖에 없던 것 중 하나, 강서구는 문화계의 시선에서 보면 사실 문화 발전이 더딘 지역 중 하나였던 것이다.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갑자기 이상한 사명감 같은 걸 느꼈다. 강서구의 문화 발전을 위해, 강서구민들의 문화적 경험 확대에 기여하기 위해 ‘강서구 출신’, ‘강서구 거주’ 기획자인 내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때도 여전히 대학로에 있는 극단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내 안의 사명감을 잠시 잠재우고, 훗날을 도모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누구도 안 하고 있을거야, 라는 위안까지 더해가면서. 그리고 2022년을 끝으로 6년 넘게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이후 말 그대로 놀고, 먹고, 여행하며 재충전을 하던 중, 잊고 있던 나만의 사명이 떠올랐다.“그래, 나 강서구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지!”본격적으로 강서구를 위해 몸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모아야 할지, 모인다면 어디서부터 어떤 기획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영 복잡했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가던 중, 정말 우연하게도 인스타그램에서 강서 N개의 서울과, 강서 소식지 방방을 알게 되었다. 그 두 사이트의 존재에 이어 네이버 카페를 알게 되고, 숱한 활동들을 알게된 날, 머리를 댕, 하고 얻어맞은 듯한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었던 나의 상상 속 일들을 이미 나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나고 감각 있는 분들은 실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탈출하고 내가 개구리 계 1등이라며 자랑스러워 하다가 수백 개의 크고 웅장한 우물을 발견한 기분이 이런 걸까.나는 그날 바로 홀린 듯 강서구 지역문화 예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연속 강좌를 등록했고, 떨리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강좌에 참가했다. MBTI가 E로 시작하지만 제법 낯가리는 성향인 나는, 이미 오랜 네트워크로 단단히, 꾸준히, 묵묵히, 강서의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몸소 뛰고 계신 분들 안에서 조용히 분위기를 살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분들은 모두 그 누구보다 이 낙후된 강서구의 문화예술환경을 살리기 위해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다양한 공간들 안에서, 다양한 장르의 기획자분이 함께 모여 더 나은 강서구 문화를 위해 힘쓰고 고민하고 있었다는 걸, 정말 나만 몰랐던 것이다. 소식지를 알게 되고, 네트워크 카페를 알게 되며, 나 또한 그간 미처 모르고 있던 강서구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문화예술 생태계 환경 조성을 위해 늘 그랬듯 자신들의 일을 해 나가고 있는 수많은 강서구 문화예술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겠지만, 나는 나의 고장, 우리의 고장 강서구의 문화예술의 미래가 긍정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강서구만을 생각하는 소중한 많은 마음들이 있기에. 지금도 다들 행동하고 있기에. 이 소박한 소식지도 그 일을 해 가는데 오래도록 함께 하길 바라며, 나와 같은 샤이독자가 있음을 알리고 싶어 용기 내어 응원을 담은 기고글을 보내본다. 샤이 독자에서 탈출하여, 나 또한 쓸모 있는 강서구 문화예술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길 바래보며, 강서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해 힘쓰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문화와 예술의 정취가 넘치는 강서구가 되는 그날까지 화이팅! 임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