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7월 일본 교토에는 조선인 ‘귀 무덤(코 무덤)’이라 불리는 유적지가 있다. 1592년부터 7년 동안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휘하 무장들이 베어 온 조선인의 귀와 코가 묻혀 있는 곳이다. 구글 지도에는 ‘귀 무덤’이라 검색하면 나온다. 원래는 ‘코무덤’이었는데, ‘귀 무덤’이라 명명하는 게 덜 잔인해 보이기 때문에 ‘코 무덤’이 아니라 ‘귀 무덤’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럼 덜 잔인해 보이나..?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묻힌 코와 귀의 수로 세면 2만 명이라는 기록도 있고, 12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2021년엔 히로시마 옆 오카야마현에서 새로 귀 무덤을 정비하고, 일본 전 총리까지 참여하는 진혼제도 열렸다. 아직 정비되지 않은 귀 무덤이 전국에 있을 것이라 한다. 얼마나 많은 원혼이 일본 땅을 떠돌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교토 귀 무덤은 관광지와 가깝다. 교토 관광객이라면 다들 들르는 쿄토가와라마치역 바로 옆에 있는 기온시조 역에서 게이한 본선을 타자. 기요미즈고조 역을 지나시치조 역에서 내리면 된다. 역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다. 역에 내리자마자 교토 미술공예대학, 교토국립박물관이 보인다. 구글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누가 봐도 무덤 같은 큰 봉분이 보인다. 그게 바로 귀 무덤이다. 교토 가와라마치 역에서 20분 정도 만에 도착했다.귀 무덤으로 향하는 큰길의 끝엔 신사 하나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는 도요쿠니 신사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제국주의로 나아가던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격화했고, 그 무렵 이 신사와 함께 귀 무덤을 정비했다고 한다. 귀 무덤엔 아래와 같은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리고 한글로 번역된 안내문의 마지막 문단에는 침략자를 명기하고, 전쟁을 끝낸 건 ‘조선 민중의 끈질긴 저항’이라 썼다.선조는 한양을 비우고 도주해 명의 영토인 요동으로 망명까지 시도했다. 그런 사이 조선 곳곳에서는 관군과 의병이 힘을 합해 전세를 뒤집기 시작했다. 수도를 함락하고 평양성까지 달려갔던 침략자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흔들어 댄 것이다. 지리한 전쟁은 7년이나 이어졌지만, 명나라까지 참전하는 국제전이 된 건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의병의 덕이 컸다. 자신을 지켜낼 힘도 보여주지 않는데 어느 외국군이 나서겠나.저항의 주체가 영웅이 아닌 ‘민중’이 되는 순간, 침략자는 이길 수 없다. 저항하는 민중 모두를 절멸하면 이길 수는 있겠는데, 그 땅에 사는 이들을 절멸하면 침략의 이유가 있나? 민중이 저항의 주체로 나서면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귀 무덤 안내판에 쓰인 마지막 문장이 주는 울림은 컸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교토 한복판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되다니, 누가 썼을까. 감동 그 자체였다.한국, 일본, 그리고 세계 곳곳 어딜 가나 한반도 침략과 억압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누가 나서서 흔적을 지우려 해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흔적이 지워져도, 오늘 이렇게 기록하는 사람도 다시 나타날 것이다. 없애려고 해도 없앨 수 없다. 있던 일을 어떻게 없는 것으로 할 수 있겠나. 지울 수 있고, 사람들 머릿속까지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멍청이들이 불쌍할 뿐이다. 해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