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5월 그날은 5월 18일이었다. 마침 오전 일정도 없었다.일정을 짤 때부터 관동대지진 한국인 희생자 추도비를 찾아가 보겠다며 별렀고,계획대로 도쿄 아카사카의 호텔을 나섰다.빈손으로 가긴 뭐해 한인타운이 있는 신오쿠보에 들렀다.한국 마트에서 참이슬과 삼다수를 양손에 들고 잠시 고민했다.유리병보다는 처치가 쉬운 페트병을 골랐다.일본 곳곳 위령비에 유리술병이 쌓여 있어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전철을 타려 걸어가며 숫자가 불어나는 카카오톡을 켜 보니맨 위에 올라와 있는 단톡방 미리보기에 어처구니없는 글귀가 떴다.‘오월 정신은 호남의 산업적 성취와 경제발전으로 완성된다’는 대통령 기념사 일부분이었다.여행 도중에는 이런 것 보고 싶지 않았는데 참 재수도 없다. 스트레스가 올라왔다.특별한 날 중요한 곳에서 그런 소음공해라니.가고자 했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는 도쿄의 유명 관광지 센소지에서 멀지 않은 요코아미쵸 공원에 있다.이 공원은 관동대지진 직후 발생한 대규모 화재로 인해 수많은 이재민이 숨진 곳이다.자연히 한국인,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관동대지진 희생자를 기리는 공간이 됐다.도쿄도 부흥기념관이 이 공원에 있는데, 관동대지진뿐만 아니라1945년 도쿄 대공습의 사망자도 기리고 있다. 보지 말았어야 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나니, 요코아미쵸 공원을 가는 게 어정쩡하다는 기분이 들었다.그곳이 아니라 제노사이드가 벌어진 현장을 가고 싶어졌다. 그게 5월 18일에 걸맞은 곳이라고 생각했다.그런 곳이 있을까..? 분명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전철역 입구로 들어서던 걸음을 멈췄다.한참 인터넷 검색 끝에 찾아냈다. 케이세이전철 오시아게선 야히로 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었다.구글맵에서 ‘간또대진재 조선인순난자 추모의 비’라고 입력하면 나온다.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을 덮친 지진은 10만여 명의 사망자 혹은 실종자를 냈다.공황상태에 빠진 이들의 갈 곳 없는 분노를 부추긴 건 다름아닌 일본 군경이었다.‘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재난을 틈타 조선인이 각지에서 불을 지르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언론사들은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군경에 의한 한국인 살해가 벌어졌고,쇼비니스트들은 자경단까지 조직해 들쑤시고 다녔다. 이때 6천 명이 넘는 한국인이 죽임을 당했다.스미다구 야히로 아라카와강변 옆 주택가에 서 있는 이 추모비는 강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나오는 요츠기바시(Yotsugi Bridge로 구글 검색)에서 죽임을 당한 한국인을 기린다.지진 당시 무너지지 않은 몇 안 되는 다리인 요츠기바시에 수많은 사람이 몰렸고,여기서 군, 경찰과 일반인들이 조선인을 살해했다. 이곳 추도비 비문에는 요코아미쵸 공원 추도비와 달리 학살의 주체를 일본 군대, 경찰,유언비어에 현혹된 민중이라고 명기하고 있다.그렇다고 요코아미쵸 공원 추도비가 의의를 낮춰 볼 것도 없다.매년 9월 1일, 추도하려는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을 겁박하려 극우단체가 맞불집회를 하는 곳이다.추도비 앞에 삼다수와 절을 올렸다. 추도비 옆에서 강둑을 바라보다 강둑 위로 올라갔다.요츠기바시 쪽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꽤 덥던 도쿄의 5월, 답답했던 마음에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들어오는 듯 했다. 글 해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