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뷔.. 강서방화동길 이야기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강아지 산책을 합니다. 방화2동에 사는 저와귀여운 강아지 비밥이의 주 산책지는 롯데몰 앞에 조성되어있는공원인 스카이파크입니다. 주로 공원 중심으로 돌지만, 가끔 더 크게 돌 때가 있어요. 산책한 김에 필요한 물건들을 살 때 말이죠. 그때도 그런 날이었어요. 두루마리 휴지를 사려고 했던가, 주광색 전구를 사려고 했던가.. 아무튼 김포공항 입구 쪽에 위치한 중국집도일처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아래를 봤는데, 무슨 글씨가 써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무슨 글씨인가 봐서 봤더니 ‘←방화동길→’이라고 쓰였있더군요. 아, 공항시장역에서부터 방화사거리까지, 예전에 내가 그렇게 뻔질나게 걸어다녔던 길이름이 방화동길이구나. 이제서야 알았죠. 그러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2000년대 초반만해도 이 길에 정말 차가 많이 다녔는데. 사람도정말 많았는데 말이죠.저의 강아지 비밥이는 방화동길을 싫어합니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비밥이에겐 방화동길의 좁은 보도의 옛날 길이 불편한가봐요. 길을 가다 마주오는 사람을 피해 보도 한 쪽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거겠죠. 그래서 그런지 방화동길만 들어서면 자꾸 다른 길로 가자고 떼를 씁니다. 그런데 사람도 마찬가지인가봐요.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녔던 이 길에는 언제가부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더라고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도 보이고요.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방화동길은 20년전까지만해도 방화동의 가장 핫한(?) 길이었습니다. 이번 <아까뷔.. 강서>는 방화동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방화동길의 버스터미널방화대로(공항중학교에서 신방화역을 지나, 방화터널까지 이어지는 길)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방화동길은 방화동에서 가장 차량이 많이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공항로에서 방화동으로 들어가기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만 했지요. 방화동 사람만이 이 길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1년, 개화동로(김포공항입구 교차로에서 행주대교 나들목까지 잇는 길)가 생기기 전까진 김포 지역에서 서울 방향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화동길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아래의 <사진 2>은 1972년의 방화동 지역을 촬영한 항공사진입니다. 방화지구 택지개발이 아직 진행되지 않았던이 시절의 방화동은 정말 대부분의 땅이 논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항공사진을 사분면으로 나누었을 때, 제3사분면(왼쪽 아래)에 선명하게 보이는 길이 바로 방화동길입니다. 대부분 논밭이었던 시절에도 방화동길 중심으로 많은 건물이 자리에있지요.항공사진을 좀 더 확대해서 보면 (<사진3>), 현재는 존재하지 않은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ㄱ’자의 길은 방화동길과 양천로가 교차하는 지점, 즉 현재의 방화사거리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버스터미널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사진 3>을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 버스 터미널 자리는 방화사거리에 위치한 ‘개화주유소’ 자리에, 과거 버스 차고지는 ‘국민은행’ 자리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지리를 고려했을 때 아마도이 버스터미널은 김포, 고양, 파주와 같은 경기 서부와 서울을 잇는 터미널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이 버스터미널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운영하였고, 정확히 어느 곳을 향하는 버스가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만, 버스 터미널 자리 인근이 1970년대 후반 방화지구택지개발사업의 자리로 선정되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야 택지개발사업이 실행되었으니 아마도 그 사이에 없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공항시장 영광의 시절버스터미널이 있었다는 사실로 방화동 사람 뿐아니라, 외부인들도 방화동길을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이때는 공항시장 일대가 매우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공항시장 일대에 예식장 뿐 아니라 무려 영화관까지 있었죠. <사진4>는 공항시장 인근의 방화동길을 촬영한 1970년대(추정)한 사진입니다.방화동길을 중심으로 왼쪽 끝에 영화관 간판이 있는 것이 보이나요? 이 동네에 오랫동안 살았던 분들과 이야기해보니 50대 이상의 어른들은 대부분 공항시장 인근의 영화관에 대한 추억이 있더라고요. 이 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영화관이 무려 두 개나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폐허에 가까운 공항시장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낯선 광경이죠. 그렇다면 과거에는 공항시장 인근이 왜이리 번화했을까요? 첫 번째는 무엇보다 공항시장이 과거 강서구의 몇 안되는 시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3>에서도 확인할 수있듯이 1970년대는 방화동의 방신시장도 우장산의 송화시장도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시장은공항시장이 유일했죠. 공항시장 자리는 과거 우시장 시절부터 시작하면 비교적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김포공항의 영향이겠지요. 인천국제공항이 생겨나기 전까지만해도김포공항은 민간인 대상의 유일한 국제공항이었습니다. 지금처럼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도 김포공항에는 항공물류 등으로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방화동을 중심으로 인근에 많은 군부대의 영향입니다. 외발산동의 제1공수특전여단, 지금은 이전한 송정역 인근의 17사단 101연대, 김포공항 내의 공군부대, 그리고 김포에 위치한 해병대까지(이들은 방화터미널의 버스를 이용했겠지요). 인근의 수많은 군인들은 외박을 나오거나 휴가를 나오면 모두 공항시장 인근으로 모여들었습니다.방화동길의 유흥주점사람이 모여들면 유흥시설이 많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7~80년대에 가장 핫했던 유흥시설은 바로 방석집이었습니다. 뭔가 수상한한글이름의 간판과 불투명한 테이프로 외부에서 실내를 보이지 않게끔 가려놓고, 맥주/양주/카페라고 붙어있는 술집이죠. 술을 짝으로 마신다고 해서 짝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간판에 맥주/양주라고 써있다고 해서 맥양집이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이런 유흥주점은 보통 일반음식점으로 신고를 하고 영업을 하지만, 불법 성매매를 하기도 하는 집이죠. 지금은 주로 노년층이 찾는 곳이죠..이 어르신들도한 때는 젊었지요..바로 이런 방석집이 방화동길에 즐비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런 곳을 주로 찾았던 사람은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촌부 아니면 군인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를 기억하는 한 동네 어르신은 방화사거리에서 지금의 방화주유소까지는 김포의 해병대의 영역, 방화주유소에서 김포공항 교차로까지는 공수부대의 영역이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시더라고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 바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방 석집의 흔 적은 지금도 남 아있습니다. < 사진5>는2016년에 제가 직접 촬영한 방화동길의 방석집 간판 사진입니다.간판과 자리가 조금씩 이동했지만, 2022년 현재에도 방화동길에는 아직도 이런 방석집이 존재합니다. 대체 이 한적한 동네에 이런유흥시설이 존재하나 싶었는데.. 그게 방화동길의 영광의 흔적 같은 것있던 거죠.길은 장소와 장소를 잇기도 하지만, 이렇게 길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잇기도 합니다. 언제 한 번 여러 사람들이모여서 함께 방화동길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길을 걸으며 각자 가지고 있는 추억들을 공유하면 참 재미있는 시간이 될 듯 합니다.그렇게 다양한 추억들을 모으고 모으다보면 늘 다니던 이 길이 더소중해질지도요. 그러다보면 전 이 길을 싫어하는 우리집 강아지비밥이에게도 큰 소리 칠 수 있겠죠. “니.. 이 길에 무슨 길인지 아나?! 내가 임마 으이? 이 길에서 친구랑 술 한 잔도 하고 으이? 마다 했어!”현승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