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공원 #3 - #4 저녁의 공원#3.마트에서 나와 백화점 주변의 공원을 걷기 시작한다. 맨발 걷기가 유행하면서 공원 곳곳에서 신발을 벗고 걷는 중년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풀밭에서 개를 훈련시키는 청년과 조깅을 즐기는 청년에 이어 산책에 나선 젊은 부부가 곁을 지나친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너무나 무관하게 살아가는, 절대로 이어질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이 장소에 모여든다.지난주에 만났던 청년들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온 후 경기도 지역에서 커뮤니티 기획을 하는 지인과 함께 산책과 글쓰기 워크숍(‘다시 나는 새’)을 시작했다. 나 자신이 마주한 고립과 단절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기도 했다. 지난봄부터는 사회적 고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커뮤니티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력 단절과 인생의 이행기의 고민, 고립감 등 중년 여성으로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는 시도가 고립 청년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은둔생활을 반복해온 청년들이나 사회생활을 그나마 유지하는 청년들 모두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심리적인 위축과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 부담스럽고, 소소하게는 또래의 친구들을 어디서 만나야 할지,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고립을 주제로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누군가 하나의 문장을 제시하면 뒤이어 다른 사람이 문장을 이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는 청년들을 고립으로 이끄는 하나의 경로를 알려준다. 이야기는 좁은 원룸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돈을 벌고, 주식을 하고, 사회적인 인정과 성취를 위해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선택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고립은 일상이 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실은 고립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 경쟁이 아닌 다른 관계 방식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야말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선택이다. 그것은 더더욱 두려운 일이다. 그 또한 ‘노오력’해야 하는 일이며, 다른 일처럼‘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사회적인 기준과 요구’라는 가상의 각본에 자신을 최적화시키려는 끝없는 회로는 이렇게 작동한다.워크숍 참여자 중에 누군가 코로나 기간은‘그냥 통째로 텅 빈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그 말에 모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코로나 기간 중에 우편함에 꽂혀있던 우편물이 생각났다. 전단지인가 싶어버리려고 보니 흰 봉투에 뭔가 담겨있었다. 봉투 겉면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안을 열어보니 인쇄된 편지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힘든 상황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글과 함께 주민센터와 구청 사회복지과의 연락처가 남겨져 있었다. 사회적이고 지역적인 통계상 점유하는 ‘어떤’위치를 확인받는 것 같아 잠시 씁쓸하긴 했지만, 사회적인 안전망 속에 편입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강서구가 서울 자치구 중에서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의 비율이 높은 것은 진즉 알고 있었다. 동네와 인근 지역이고 독사고 위험군 밀집 지역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강서구는 코로나 기간(2020년에서 2021년) 동안 서울에서 고독사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지역구 중 하나다. 강서 구한 동네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4건의 고독사가 발생했다. 노인뿐만 아니라 중장년,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강서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발견된 30대 남성의 시신은 백골 상태였다. 비대면과 거리 두기로 인해 이웃 간 왕래도 줄어들면서 이들의 죽음은 더 늦게 발견되었다.#4.코로나 기간 동안 서울시에서 발생한 고독사 관련 보고서를 찾아보았다. 보고서는 사례자 4명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고독사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이었다. 사례자 4명은 모두 다른 자치구에 속했고, 연령대와 병명 역시 모두 달랐다. 보고서는 사례자들의 주거 환경과 주거 형태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다가구가 밀집된 골목 끝 집”, “3층 다가구주택의 입구가 분리된 지하층, 다가구주택의 반지하”,“반지하 입구가 정면과 후면으로 분리되어 있어 1층에 사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 임차인이나 이웃과 접촉이 어려운 공간, 장소적 고립이 먼저 다가왔다. 사례자 중 한 명은 집주인이 평소 신경을 써주는 분이었고, 장례까지 돌봐주었다.보고서가 묘사하는 공간은 충분히 상상 가능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어느 다가구주택이라도 이와 흡사할 것 같았다. 노후한 단독 주택 주변으로 다세대와 다가구주택, 원룸과 오피스텔이 속속 들어선 오래된 동네. 큰 도로를 벗어나면 어디서나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의 내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곳.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1인 가구나 젊은이들이 방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오랜 도시의 주거방식과 집주인의 개성을 보여주는 단독주택, 지형을 간직한 골목의 풍경을 간직한 소필지 주거지는 원룸으로 개조되면서 공간은 경제의 원리로 재편되고, 동네라는 울타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래된 단독 주택 옆에 들어선 바깥 계단을 허용한 다가구주택과 그보다 이후 들어선 주차장을 1층에 둔 필로티 구조의 원룸 건물과 오피스텔. 레고세트로 내놓아도 손색없을 것 같은 한결같은 모양과 구조. 단위 면적당 가장 높은 건물을 쌓아 올려야 하는 용적률 게임과 건축법이 만들어낸 요지부동 ‘복붙’의 평면.집주인이 누구인지, 주변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임대 법칙과 폐쇄된 공간 구조 속에 세입자로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원룸촌’.그곳에 1인 가구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2,30대 청년들과 독거노인들이 등을 대고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인간적인 접촉을 두려워하고, 소외와 노후의 불안에 갇힌 채, 고립된 채.펜데믹이 남긴 것은 ‘격리(quarantine)’라는 단어였다. 비대면 활동과 거리 두기, 사회적인 격리는 서울 전역에서 이뤄졌지만, 가장 심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고독사는 특정 자치구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이날 것의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보고서는 특정한 주거 형태를 문제 삼지만, 문제는 ‘다가구주택’이 아니다. 지역적인 분리와 단절에 따른 공간적 분리와 단절의 문제 아닌가.이미 사회적 관계나 공간 속에서 광범위한 격리 현상은 벌어지고 있었고, 그 변화가 팬데믹을 통해 자리를 잡은 것인지 모른다. 그 기간 동안 모두가 각자의 방에 머물렀고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지 않았지만,‘동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각자의 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빈사 상태로 살아가는지, 그런 칩거가 멍한 트라우마 상태와 얼마나 유사한 지도”.펜데믹의 급격한 확산으로 이동이 제한되고 학교와 박물관, 영화관이 문을 닫아도 시 전체가 봉쇄되자 이탈리아 토스카나 시민들이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 나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연주를 하며 이웃과 소통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보았다. 집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장치이자 외부와 접촉하는 공간으로 ‘발코니’의 의미도 새삼스레 다가왔다. 방과 거리는 연결된다는 공간의 원리를 집 내부에서 환기할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 아닌가. 공간과의 접촉이 ‘원룸’으로만 제한될 때, 서로의 육체적 실존을 마주하지 않을 때 관계와 경험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어울려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몸으로 익혔던 것 같다. 어울려 산다는 것은 좋든 싫든, 서로의 몸을 부비고, 냄새를 맡고,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그것이 함께 살아간다는 ‘신체적 감각’이었고, 개인에 따라 편차는 있겠으나 그런 부대낌을‘인간적인’ 것으로 용인했다. 적절한 거리와 접촉의 기준과 경계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그 기준과 경계를 ‘강제하는’ 사회 문화적 변화에 대해 우린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걷다 보니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있다. 마지막으로 본 하늘은 연청색에서 흐릿한 분홍색으로 변해가는 황혼 녘의 하늘색이었다. 문득 마음속에서 이런 물음이 올라왔다. 경쟁이야말로 또 다른 치열한 부대낌은 아닐까. 경쟁의 밀도는 인간적인 교류와 접촉을 통해 얻는 즐거움마저 압도해버리는 것일까. 불가피한 선택의 일부로 누구나 당연시하는 경쟁 그 자체가 자기 고립의 한 형태는 아닐까. 사회적 고립은 하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타자는 이제 또 다른 사회적인 요구와 압력으로 다가오는 실체이며 끊임없이 나를 몰아세우는 사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서로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제 불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왜 이토록 멀어졌는가.김은산공항 근처 소필지 주거지에 살며 장소에 공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home_and_wande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