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UNCLE 인터뷰 *2011년 웹진 더힐을 통해 공개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김경현 김지철 현승인 첫 번째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해볼게요. 이번에 주제가 홍대의 문화에 대해서, 역사도 그렇고 정체성, 나아가야 할 방향, 거창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심오할 건 없는데, 그쪽으로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얘기하다가, 일렉씬이라던가, 클럽문화에 대해서는 가장, DJ엉클님께서 이 분야에 대해서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회의중에 이런얘기가 나와서 어떻게 하면 컨텍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했었는데 길가다 어떻게 마주쳐가지고바깥에 일을 보다 늦긴 늦었는데 미안하구요, 일 보다 보니까 오늘 일이 좀 많아 가지고... 우리는 계획적으로 사는 것도 있지만 갑자기 생기는 일이 많아요. Q: 80년대 중반부터 음악을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홍대에 자리를 잡게 되셨는지. 음악 돌체? 영등포에 상아탑 그런 음악 다방쪽에서 DJ를 시작하셨다고 저희는 들었습니다.A: 2011년 이 시점에서 지금 내가 얘기할 수 있는건 클럽이잖아요. 홍대... 음... 어떻게 보면 클럽의 어떤.. 음... 지금으로 얘기한다면 일렉씬이구요. 사실 나는 DJ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대한민국 DJ 어떻게 보면 1세대에요. 물론 위에 선배들도 계세요. 물론 지금은 현역이 전혀 아니지만. 그러니깐 1세대라는건 뭐냐면요, 대한민국에서 DJ란 직업 내지는 사람들한테 인식이 되어지는 어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모든걸 다 거쳐 왔다는거예요. 아까 뭐 얘기했던 그런 부분들, 음악다방, 디스코텍, 나이트클럽, 또 그냥 클럽, 지금에와서도 그냥 클럽(?) 이 모든 것들을 다 거쳐왔기 때문에 DJ로서..여러가지 분야의 DJ가 있지만 음악 장르를 따졌을때.. 그것들을 다 해왔어요. 맨 처음은 80년대가 아니라 70년대에요. 80년대라는건 홍대가, 홍대를 기본으로 본 다면 80년대가 맞는거지만은 사실은 70년대가 되구요, 나이든 얘기는 안하겠지만 70년대 거의 말에 미군부대...지금은 미군부대라는게 많이 축소가 됐죠? 철수도 했고... 그 당시에는 사실 미군부대가 전국 각지에 작고 큰 게 많이 있었어요. 대전 지역에 가면 장동리(?)라는 데가 있었는데, 캠프 에임스(?)에서 DJ를 시작한거예요. 미군부대 안은 아니에요. 미군부대 안은 물론 한국인 헬퍼들이 있긴 있지만은.. 부대안에 클럽도 있거든요? 그 때 클럽이라는건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은 바 더하기 디스코텍? 이런형식이 되는거죠. 어.. 그래서 밖은 아니고 외곽있잖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지촌. 동두천을 가도 동두천 부대가, 미군부대가 있는거고, 그 주변에 미군이나 그 외 군속들을 상대로하는 영업. 그런쪽에서 영업을 시작하게 된거예요. 70년대 말이거든요? 그리고 어...좀 하다가 바로 군대 들어갔구요, 현역을? 현역을 또 제대하고 나오자마자 사회에 뛰어들었는데 한 달 봉급 받고 더 이상은 못하겠더라구요. 체질상 음악과 이런 분위기와 이런 것에 굉장히.. 관심이라기보다 무작정 좋아했던거죠. 그 나이에는 특별한 뜻이 쉽지 않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은. 그러니까 정말 음악이 좋아서, 다른거 다 필요없고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다시 하게됐어요. 사회생활 내 경험은 딱 한 달이거든요? 뭐 물론 DJ도 사회인이긴 하지만은... 다시 뛰어든게 그 당시에는 디스코텍이란 개념이 내가 처음 음악다방 시작할 때는 그렇게 있지 않았어요. 음악다방이 먼저고, 종로쪽에 몇 군데? 그 담에 지금 알고있는 그런 내용대로 영등포의 상아탑, 대학, 돌체.. 이 세 군데가 서울에선 굉장히 유명한, 음악다방. 다시 말하면, 클럽이 없던 상태다 보니깐 대한민국 서울 시내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들이에요. 그리고 명동에도 한 두 세개가 있죠. 명동에 몇 군데, 종로에 몇 군데, 영등포에 몇 군데. 이게 서울로 본다면요, 좀 유명한 음악다방이 모여있는 동네에요. Q: 전국적으로 가장 대표할 수 있을만한 다방이라는거죠?A: 사실 지방에서는 모르겠는데 지방도 더러 몇 개씩은 있는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음악을 대중들한테 혹은 불특정 다수들한테 음악을 들려주는 매개체가 음악다방이었거든요. 지금이야 뭐 카페도 있고, 클럽이 있고, 바가 있고, 카페가 있는것처럼. Q: 그렇게 영등포나 명동쪽에 음악다방쪽을 하시다가 언제, 어떤 계기로 홍대에 자리잡으셨는지?A: 아. 그 때부터 홍대까지는 기간이 있죠? 약 한 4년정도가 되는데, 음악다방에서 일을하다보니까 그 당시에 유행하던 어떤 붐이 있었어요. 뭐냐면, 말 그대로 디스코텍이죠? 그 당시엔 통행금지도 있었어요. 12시까지만 모든 영업이 가능하고 12시가 되면 귀가해야되고 영업이 종료가 됐었죠. 근데 클럽은 셔터문은 내려놓고 영업은 됐어요. 그거까지 말리진 않았거든요 관에서? 그 대신 새벽 4시가 되면 다시 문을 열었죠. 내부에서만 영업이 가능했던거예요. 근데 이제 거기를 음악다방에서 끝나고 나면 10시 반, 11시. 그러면 때에 따라서 음악을 좋아하니까 클럽이란데가 있고...클럽이라고 표현할게요. 클럽이란데가 있다. 사람들이 밴드나, 거의 밴드위주였죠 처음에는. 밴드위주의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노는 데가 있다. 우리도 한 번 놀러가보자. 해서 가게된거죠. 갔는데, 솔직히 내가 음악다방에서 일을 할 때도, 돌체라는데가 왜 유명하냐면요? 돌체는 소울하고 펑키가 많이 나왔어요. 흑인음악들. 그 담에 상아탑이라는 데는 프로그레시브 락이 나왔었어요. 그 담에 대학다방도 그런것들을 다 버무린 음악들이 나왔구요. 그래도 특징이 있다는게 돌체다방은 흑인음악인 소울, 펑키, 리듬 앤 블루스라고도 얘기하죠? 나중에 다 구분이 됐지만. 그런 류의 음악들 위주로 틀었기 때문에 흑인음악이라는 게 리듬감이 있잖아요. 비트가 있고, 락하고는 틀려서,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리듬을 좋아하게 됐고, 그러니까 약간의 소울이다 하면 댄스를 좋아한다기 보다 그런 음악이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클럽을 가보니깐 어? 이거 또 새로운 거를 느끼게 된거죠. 그 때부터 DJ가 하게 시작 됐어요. 우리나라에 디스코텍이 시작되면서 어떻게 보면 그런 클럽을 가보면 밴드 한 타임, DJ 한 타임, 밴드 한 번, DJ 한 번 이런 식으로 운영이 많이 된거죠. 그래서 영등포쪽에도 그런게 있었어요. 그걸 구경을 갔다가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까 음, 어느 쪽 클럽이 더 음악적으로나 아니면 분위기가 영등포쪽은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역적으로 좀 낙후된 데 아니에요. 좀 더 좋은 지역에 가서 음악을 들어보고 싶었던거죠. 그래서 가게 된 게 종로 1가에 지금은 없어졌죠? 완벽하게 없어졌는데, 낙지골목이란 데가 있었어요. 옛날에 있었거든요. 지금은 지나가다 보니까 건물 들어서서 완벽하게 사라졌더라구요. 해장국집도 몰려있고, 유명한 무교동 낙지 있구요, 그 담에 아주 허름한 호텔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분위기 있는 스타더스트 호텔이라고 있었어요. 거기에 크리스탈이라는 클럽이 있었죠. 거길 놀러 갔는데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을 한거죠. 왜냐면 다른 클럽하고 구분이 되는 부분이 밴드도 한국 밴드가 아니라 말레이시아, 필리핀 밴드. 그 때가 80년대 중반, 중반도 안됐죠? 거의 초반과 중반 사인데 82년? 3년? 그러니까 밴드도 한국 밴드가 아니라 외국인 밴드, DJ도 영국 DJ와 홍콩 DJ. 그걸 보고 어우.. 정말 여긴 독특하다. 근데 DJ 음악도 다른거예요. 뭐냐면 한국 DJ들은 지금은 구경할 수 없지마는 스탠드 마이크 붙잡고 DJ가 아나운서처럼 떠들어요. 그리고 음악은 믹스를 지금은 믹스라는거에 대해서 좀 알죠? 음악과 음악을 연결해서 하나의 음악처럼 만들어 나가는거잖아요. 그 때는 그게 없었어요. 한국 DJ들은. 근데 거기 가니까 음악을 그렇게 틀더라구요. DJ는 멘트 안하고 음악 두 개만 연결하고. 아 저런 음악을 배워야겠다. 그래서 전 좀 집념이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들어갔죠. 음악 배우고 싶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게 84년 정도 되지 않았나. Q: 그럼 한국에서 투 턴 테이블을 처음으로 시작한게...A: 아 그렇죠. 투 턴 테이블에... 물론 다 투 턴 테이블이지만 두 곡을 믹스하는 클럽은 거기가 유일하게 처음이에요. 외국인 밴드도 처음이고, 외국인 DJ도 거기밖에 없었고. 거기서 일을 약 2년 정도 했어요. 하다가 거기를 그만두고 넘어온게 서기호텔(?13:12) 지금도 있죠? 그 밑에 지금 나이트클럽이 생겼는데, 그 자리가 옛날에 ZZQ, 제트, 제트, 큐라고 해서 좀 유명한 클럽이었어요. 요 근래 세시봉으로 나와서 유명해진 윤형주씨 있죠? 그 사람이 옛날엔 그냥 가수했다가 바로 지난 무렵에 DJ라고 해서 우리처럼 전문 DJ는 아니지만 윤형주란 이름으로 타이틀을 건거죠? 근데 시선들은 다 일본사람이었어요. 내셔널쪽에서 음향시스템, 조명시스템, 아니면 안의 분위기 이런것들이 고급 카페보다 더 좋았었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국은 서울은 한국은 클럽이다, 나이트클럽이다 하면 사실 분위기 빤히 알죠? 웨이터 있고 뭐 양주에다가 안주 있고 뭐 이런식인데 거기만 유일하게 어 ZZQ 거기만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았어요. 그 당시에 5천원을 받았어요. 그 담에 들어가면 캔맥주 하나 주고 아니면 음료수를 주고 그리고 혼자 앉든 둘이 앉든 1인용 조그만한 안주 뭐라고 할까? 마른안주 조금? 그런식으로 줬었어요. 그러니까 좀 독특하죠. 멤버십 클럽처럼, 옛날에는 멥버십 클럽이 있었어요. 이태원에도 있었고, 그런데 그런 형식의 클럽이 됐는데 하여튼 그런 분위기도 좋았지만 어.. 사운드시스템, 조명시스템들이 일반 한국 클럽들 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어 여기도 또 새로운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해서 일을 하게 된 게 아마 86년정도 된거같아요. 88년 올림픽 때 내가 정확하게 거기서 일을 하던 기억이 나니까 86년 될 거예요. 그 때부터 내가 11년 정도를 거기에 있었거든요. Q: 그럼 거의 한 90년대까지는A: 90년대 거의 중반전까지 있었죠. Q: 이 때 당시가 그러면 아직 홍대에 음악적인 명소로 자리를 잡기 전이잖아요.A: 제 얘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홍대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어떤 발전이, 그러니까 옛날에는 어땠고, 지금은 자료가 아무것도 없죠. 물론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홍대가 이렇게 된 과정을 아무도 모르잖아요. 정확하게 얘기를 해드릴게요. 어, 그러니까 ZZQ에서 일을 하면서 가까운 지역이 이제 홍대 지역이죠. 홍대와 홍대 앞 지역, 이 지역에 나와 본들 카페 4~5개? 술 뭐 지금도 좋아하지 않지만, 술 마실 수 있는데가 그 정도? 뭐 그 정도가 전부였었어요. 식당은 그 당시에 내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게 전부였는데 여기 코코니라는 나이트클럽 하나 생겼죠? 거품 건너편에 로슨이라고 있죠. 로슨이라고 고급스러운 편의점 같은 곳 있어요. 거기가 내가 처음 시작한 레코드 샵이에요. 그 자리가. 시티 비트 레코드라고. 그게 92년. 시티비트레코드를 92년에 오픈했었어요. 그 때 내 취지는 뭐였냐면, 서교호텔에서 일하고 있을 땐 데, 잘 모를거예요. 그 때는 LP를 팔았어요. LP를 팔면 LP에 비닐이 밀봉이 돼서 나온다구요. 쉽게 말해서 냄새를 맡아보지 못하면, 그러니까 들어보지 못하면 모르겠고, 그럼 주인한테 물어보는 거죠. 이거 새로 나왔는데, 좋아요? 파는 사람 입장에선 뭐라고 그러겠어요?(좋다고 하죠.) 좋아요. 아, 그래. 가지고 가요. 뜯어서 들어보면 쓸 데 없어요.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열 번, 이십 번, 백 번, 이 백번 반복되다 보니까 레코드...음반을 파는 사람이 음악을 모른다? 이건 너무 불합리하다? 그런 생각에 좋아, 음악이라면 누구보다 못지않게 많은 지식만 가지고 되는건 아니에요. 음악에 대한 감성, DJ를 오래했기 때문에 그 당시만 해도, 거의 DJ를 10년 가까이 하고 있던 상황이죠? 음악이라면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그게 DJ 아니에요? 그런 것들 자신 있어. 정말 음악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음반 가게를 해야돼. 그 생각에 시티 비트를 만들게 된거죠. 그게 92년. (그러니까 ZZQ에서 일하면서 시티비트를?) 네, 맞아요. 두 가지, 투 잡을 했죠. 낮부터 저녁까지는 시티 비트 레코드를 운영을 했고, 밤에는 ZZQ에서 DJ 활동을 했었고. 그 담에.. 그렇게 하다보니까 동네에서 시티 비트 자료가 여기 나한테 다 있을텐데, 그 레코드 샵이 일반 레코드 샵이 아니에요. 형광등 켜놓고 우중충한데가 아니라, 거의 카페처럼 꾸며놨거든요. 그래서 처음 사람들이 손님이 오셨어요. 근데 이게 레코드 샵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해서 들어오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쇼윈도 쪽에 소니TV 25인치를 놓고 뮤직비디오를 틀어준게 우리 가게에요. 92년도에 근데 그런데 없거든요. 그런데 없었거든요. 근데 그 뮤직비디오가 뭐냐? 사람들이 얘기만 들어봤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뮤직비디오를 제가 외국 다니면서 가지고 와서 틀어주면요? 거짓말처럼 가게 앞에 사람들이 한 50명은 서서 봐요. (예전에 없었으니까요?) 아, 그러면서 여기가 레코드 가게구나. 인식이 되면서. 하지만 물론 일반 손님들이 찾는 가요나 팝이나 모든 것들도 다양하게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있지만, 저는 음악을 어떻게 팔았냐면, 들려주고 팔았어요. 그러니깐 손님하고 1:1로 상대를 하는거죠. 김건모 주세요. 하면 김건모 주면 그만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요. 뭐 그 때도 많았었죠. 클럽활동을 하면서 DJ활동을 하면서 인맥을.. 꼭 친해서가 아니라, 알 수 있는 사람들. 더군다나, 내가 음반을 판다고 하면, 신뢰성은 좀 있지 않았나. 막연한 거지만. 찾아와서 뭐 음반을 권해달라고 하면 권해주고, 그 때 남들은 그 당시에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장사가 안되는 거 같은데 어떻게 먹고 살았어? 이런 얘기를 해요, 농담식으로. 장사가 안되긴요. 가요 파는것처럼 팔았으면 돈도 안되겠지만, 어떻게 파냐면요? 백만원어치 주세요. 500장 주세요. 100장 주세요. 왜냐면 방송국 라이브라든지, 강남의 유명한 바, 카페, 술집, 그 담에 음반을 만드는 프로듀서, 곡을 쓰는 작곡자, 모든 사람들이 저희 가게로 왔었어요. 그 사람들이 뭐 어쩌다 한 번씩 오는 거잖아요. 와가지고, 손님은 없죠. 하지만 그 사람들이 혼자서 하루 값 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사로 따지면 그렇게 된거죠. 그 당시에 대한민국에 댄스 음악, 가요 댄스 음악이 굉장히 유행했거든요? 다 DJ고 동료고 후배들이 다 프로듀싱 했었어요. 어떻게 했느냐? 소스는 다 나한테 와서 찾아요. 그리고 그 홍대 옆에 나중에 유명해졌지만, 카페들이 있었어요. 그 카페들에서 또 나한테 와가지고 우리가게로 와서 우리는 독특한 음악을 좋아한다. 권해달라. CD. 그 당시에는 CD가 많이 유행했을 때인데, 뒤집어 놓고 보면 트랙 리스트가 있죠? 그걸 다 체크 해줬어요. 2번 좋고, 5번 좋고 이런식으로. 그 음악을 그 주인이 틀어 본... 그러니까 왜 그 가게가 같이 떴냐면 동반 상승이 된거죠. 왜냐면, 체크를 해준걸 틀어보니까 손님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이거 뭐에요? 이것 좀 녹음해 주시면 안되요? 그러니까 그런 음악 때문에 사람들이 더 모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게 홍대에서 한 세 군데가 됐었어요.(그런카페가요?) 네, 그런 카페가. 그러니까 저한테 음악을 공급받는 카페가 세 개인데, 이 세 개가 나중에 경쟁이 생긴거죠. 똑같은 음악을 틀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깐 A란 주인이 왔을 때는, B에서 안가져간 걸로 주세요. 이렇게 나오는거죠. 그러니까 장사 얘기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나도 좋은 음악 공급을 하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세 개가 세 배가 되는거죠. 똑같은 음악을 같이 틀겠다는 취지가 아니었단 말이에요.(그 카페가 구체적으로?) 지금도 여기 주차장 길에 보면 오떼르라고 있어요. 근데 그게 그 때는 이런식이 아니라 목조건물로 해서 좀 예쁜, 가정집을 개조한 분위기 있는 카페였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건물로 바뀌었더라구요. 오떼르하고 똑같은 이름이 있는데, 골목에 오떼르하고 거의 비슷한 가게가 있구요, 그 나머지 하나가 그 당시에 유명했던, 발전소에요. 발전소도 그 당시에 음악을 제가 많이 도와줬죠. 발전소의 사장, 영업 사장, DJ 셋이 와서 나한테 그런 얘기 했었어요. 최근에 외국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줘라. 그래서 그런걸 권해줬구요, 그 당시에 그 사람들이 와서 하는 얘기는 하루에 장사는 좀 어때요? 그 때만에도 동네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으니까. 나가면 대부분 아는 사람 만나는거고, 그런 아기자기한 동네였었거든요. 장사 어떠냐고 물어보면 몇 주에 한 박스, 하루에 한 박스 팔기 힘들어요. 그런 데 였거든요? 그런 음반들을 똑같은 형식으로 제공하다보니까 그것도 먹혔던 모양이에요 더구나 왜 먹혔냐면요, 그 당시는 90년대 초·중반 해외 여행하는거 규제가 많이 풀렸을 시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행으로 해외를 나간다는건 생각하기 힘든 시기였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짧은 기간에 굉장히 많이 변한거예요. 그 때 뭐 외국으로 나갔던 유학생, 교포, 외국에서 공부를 하다 온 프리렌서들, 어떤일이든간에 외국에서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가요, 댄스만 나오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가 발전소밖에 없어요. 자연스럽게 발전소에 모여들기 시작한거죠. 또 그런 사람들은 인맥이 두툼하고, 빠르잖아요. 전화 한 통하면 바로 올 수 있는거니까. 그러니까 크지 않은 가게에 모였던거죠. (발전소 같은 경우에는 그 자리에 수지큐라는 LP 바가 들어섰더라구요) 그게 짧지 않았어요, 아니 길지 않았어요. 왜냐면, 내가 이렇게 붐을 일으켜서 장사가 잘됐던 시기는 2년을 못넘겼을 때에요. (발전소가요?) 네, 왜냐면 락 카페, 그 때는 락 카페라고 불렀거든요. 락 카페가 원래 정상적인 영업은 아니죠. 유흥 허가를 받아서 주류를 파는 곳이 아니어서 일반 영업을 가지고 하는 데 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댄스를 했으니까 불법이 되는거죠. 아마 그 당시에 적발이 돼서 영업 정지를 먹고 나서 그냥 바로.. 그 당시에 생긴게 MI에요. 제가 만들었던. MI를 만든 이유도 뭐냐면 그거 였던 것처럼. 발전소도 음악적으로 도움을 줬죠. 장사를 잘 시켜줬다는 얘기는 못하겠지마는 음악적인 도움을 줬는데, 구경을 못가봤었어요. 오라고는 하죠. 놀러오세요 해서 한 번 갔어요. 저도 그 당시에 그 때쯤이면 제가 서교 호텔을 그만뒀을 때에요. 시티 비트 레코드만 열심히 하고 있을 때인데 그러니까 94년 정도 되겠죠? 내가 MI 시작이 95년이거든요? 발전소를 가게됐죠. 갔는데 저 역시 전직이 DJ이고 바로 얼마전까지 현역이었던 사람이 사람이 그렇게 많고 그 유명한 발전소가 어떤 곳인가 나도 궁금증을 가지고 들어간거죠. DJ가 하는 음악적인 형태, 테크닉, 사운드 시스템 모든 것들이 정말 좀 토할것 같았어요. DJ는 의자에 앉아서 형태에 상관없이 장르에 상관없이 한 곡 한 곡 그냥 틀어놔요, 음악다방처럼. 손님들은 높은 무대에 올라가서 쉽게 표현하자면, 빠른 노래 나오면 빠르게 춤추고, 느린곡이 나오면 느린 춤을 췄단 말이에요. 그리고 뭐 락이 나왔다가 테크노가 나왔다가 펑키가 나왔다가 모던락이 나왔다가 그러니까 DJ가 그냥 그런 음악들을 플레이, 진행을 하면 사람들은 그냥 그 음악에 맞춰서 놀았을뿐이에요. 근데 이게 락 카페다? 유명하다? 아, 이건 아니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게 뭐냐? 좋은 사운드 시스템 내가 알고 있고, 음악이라면 누구보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음악을 제공을 했지만, 제공자는 저 아니에요. 100명한테 전달했지만 저는 100개를 다 가지고 있는거 아니에요. 그럼 이것들을 다 합수를 해 또 새로운 내 음악이 또 있어? 이런 생각에 MI를 만들게 된거죠. 정말 이런 사람들한테, 이 발전소가 이 발전소를 좋아하는 이 사람들한테 깨우치자. 어떤 사운드 시스템으로 어떤 음악을 어떻게 들려주느냐가 이 사람들한테 중요한데 이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이런 생각에 MI를 만들게 된거죠. 이 때가 95년. 근데 MI가 생길 때만 해도 그 당시에는 불법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가 클럽이라고 얘기를 못했죠. 락 카페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런것들이 홍대 지역에 있기는 발전소 포함해서 완전한 락 카페도 있었어요. 여기 용빠라고 하나 있는데, 지금 이름이 바뀌었더라고요 '아마'인가? 바이더웨이 바로 옆건물 지하가 있어요. 거기도 옛날에 유명한 락 카페였어요. 아이비라고 해서. 거기는 완전히 가요 트는 뭐죠? 그 나이트 클럽하고 비슷한 거였어요. 그러니까 그런 형태의 것들이 몇 개가 있기는 있었는데 그런거 빼고도 여전히 밥먹을 곳 몇 집, 커피숍 몇 집, 락 카페 합쳐서 7~8집 그게 전부였었거든요. 그게 95년도 상황이에요. Q: MI가 일렉클럽에 시초라고?A: 말 그대로 제가 모토를 그렇게 잡은거죠. 그러니까 발전소에 행해진 그런 음악들을 흡수를 일단 한거죠. 그런 류의 음악 더하기 지금은 일렉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테크노라고 했었어요. 테크노에 대한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들을 들려주죠. 그 생각으로 MI를 만든거죠. Q: 일렉쪽에는 좀 더 이맘 때 쯤 이면 이제 홍대가 음악적으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갈 시기, 태동기이기도 하고 이러다가 2000년대 안돼서 이 때 쯤 인가요? 아니, 그 전인가요? 오렌지족이 많이 와서...A: 아니, 그 때 쯤이에요. 발전소.. 음.. 좀 떠있는 상태에서 우리 시티 비트도 그런 데 가서 음악을 듣고 이런 음악 왜 사냐? 시티 비트 가라. 그러니까 상호작용을 한거죠. 그래서 많이 왔었던 게 맞구요, 그렇다고 홍대에 오렌지족이 왔다고 해서 MI를 만들기 전이면 4~5개인데, 발전소 빼고 나머지는 클럽다운 클럽은 없었어요. 많이 왔던건 사실이에요. 시티 비트도 왔었고, 이 동네에 모여든 어떤 자동차의 차종만 봐도 강남에서 넘어온게 느껴졌었거든요. 하지만 뭐 이 동네에 춤을 추러 왔다고는 할 수 없죠. 그러니까 홍대라는 지역, 가로수 길이 뜨기 시작한거죠. 그게 뭐에요. 좋다고 하기 때문에 강남 사람들 원래 심리있죠? 유행 따라 가는거. 남이 가면 나도 가야되고 까만 옷이 유행이라고 하면 나도 까만 옷을 입어야 되는거예요. 그러니까 홍대 지역이 가로수 길이 나중에 떠서 좋아졌죠? 홍대도 그런 경우죠. 홍대가 참 분위기 있고 갈만한 데가 있고 그 당시에는 오히려 강남이 더 없었어요.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빼면 거의 없었죠. 그러니까 이 지역에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있다 보니까 다른 지역보다 좀 많이 왔죠. 지금도 물론 많지만 카페 수나 락카페 수나 여기를 따라 올 수 없었죠. 작지만.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던건 사실이구요. Q: 오렌지족이 오고 신문, 방송사 미디어에서 거기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그런 글들이 많았는데..A: 항상 따라오죠. 비판은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고 또 아무리 좋아도 부정적인 면이나 그런 문제점은 항상 있기 마련이죠. 홍대도 지금도 마찬가지죠. 얼마전에도 그런 얘기도 나왔었지마는 근데 솔직히 나도 여기 홍대 생활 오래하면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다 겪었거든요. 방송국 사람들 다 만나봤지마는 내 의도가 아니에요. Q: 그래서 그 때 당시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진 계기가 아니었나A: 근데 그 부정적인게 결국은 긍정 다음에 부정이 오죠? 다시 긍정이 와요. 왜냐면 아무리 부정적인것을 부각을 시킨다고 해도 일반 사람들은 오히려 그게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홍대 클럽에 마약이 돈다? 아는 사람은 오, 무서워 할 수도 있겠지마는 모르는 사람은 와가지고 마약 주세요 그래요.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죠. 홍대가면 마약을 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무서워, 법에 걸려. 이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기 가면 이상한걸 팔아,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부정 다음에는 긍정이 올 수 밖에 없어요. Q: 그 담에 일렉씬이 자리 잡고 또 그 때 당시 테크노가 전국적으로 히트를 했잖아요?A: 그 때 방송에도 많이 나왔죠. 그것도. 왜냐면 지금 얘기했던 오렌지족, 당연히 놀러왔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지만 과장되고 왜곡되서 부정적인 측면 끄집어냈잖아요. 기자들이 하는 일이 그런 것이니까. 그리고 테크노에 대한 것도 부정적인 건 나중에 나왔지만 그것도 긍정적으로 받아...뭐 도리도리 춤이다, 테크노 춤이다 해서 그것이 홍대에서 어떻게 보면 시작이 내가 시킨거죠. MI에서. 그런데 그게 전국적으로 나이트클럽에 DJ까지 나도 어떻게 출신은 같은 출신들 아니에요. 나는 홍대에 와서 MI를 만들고 이런 음악을 하고 있지만 내 후배, 동료들은 아직도 나이트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홍대에서 내 클럽을 가지고 이런음악을 한다니깐 걔들이 다 구경 내지는 배우러 온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기는 가요 틀고 팝 틀다가 보니까 여기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새롭고 느낌이 좋은 음악을 트니까 우리도 가자 해서 전국적으로 붐이 일어난 거예요. Q: 그래서 그 때부터 붐이 일고 꾸준히 이제 일렉쪽을 DJ를 하고 계신거죠?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면 이건 굉장히 앞 선 질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거는 힙합쪽에서도 질문을 드렸던건데, 과연 한국에 일렉씬이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한다고, 존재하고 있는건가요?A: 힙합쪽하고 인터뷰를 해봤다니까 하는 얘기지만, 사실 클럽에 기본적인게 뭐에요? 쉽게 얘기할게요. 음악 듣고 술 마시고 즐기는 곳이에요. 그러면 그걸 놓고 본다면은 음악은 딱 두 가지에요. 아니면 세 가지가 될 수 있어요. 하나는 지금 말한 일렉, 일렉트로. 사실 지금은 일렉이란 말은 애매하긴 한데, 편하게 얘기하니까 일렉이라고 그러는 거죠. 사실 일렉이라는건 일렉 안에는 많은 장르들이 있거든요? 오히려 테크노가 맞는 장르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테크닉적인, 컴퓨터와 사람이 연주하지 않은 컴퓨터 음악 그 전체를 보면 테크노라 봐야 되는 거거든요. 일렉은 그 아래 하나의 장르일 뿐이었었어요.(Q: 하부 장르요?) 근데 그게 어떻게 부각이 항상 그랬어요. 테크노가 전체를 아울렀잖아요. 그 담에 트랜스라고 해서 한동안 나갔었구요, 요즘엔 뭐 그러니까 그렇게 장르가 나눠지는데, 일렉도 그 하나의 장르일 뿐인데 전세계적으로 추세가 일렉이라는 게 뭐냐면, 특별한, 들어보면 그냥 느낄 수 있지만 말로는 애매하거든요. 일렉적인 요소가 있어요. 베이스 라인이라든지 킥, 드럼 비트가 조금은 더 전자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사운드를 쓰는게 일렉이에요. 그런데 그게 우연히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어요. 단순하면서 굉장히 사운드가 전자적인 냄새가 더 풍기는 거. 그게 일렉이에요. 물론 들어보면서, 들려주면서 얘기하면 더 정확하게, 말로는 애매한데. 클럽이라는 게 세 개로 나눌 수 있다는 게 지금 말하면 어차피 같이 가야죠. 일렉과 힙합과 맞는 락이될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내가 옛날부터 하는 얘기지만 대부분 옛날에 테크노가 유행했을 때 사람들이, 기자들이 어떻게 물어봤냐면 질문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이런 음악, 이런 클럽들이 얼마나 오래갈까요? 할 때까진 간다. 한 동안은 얘기가 돌아가지만 옛날에는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여가, 아니면 문화 아니면 유흥이 옛날에는 없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대한민국에 수 천 개의 나이트클럽과 이태원에만 해도 수 백 개였었거든요. 그러니까 주말 되면 모이는 데가 그런 데에요. 저희 역시 밤에 일을 하지만 주말 되면 일 끝나고 놀러 가면 그 당시에는 그랬지만 모든 게 많이, 세월이 많이 바뀌었죠. 시대가 바뀌었죠. 그러니까 주말 되면 겨울에는 스키장 간다, 여름에는 나간다. 또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보니까 야외를 나간다, 시외를 간다, 여행을 간다 이렇게 놀아서 그렇지 옛날에는 주말에는 100% 나이트클럽 그게 다에요. 그러니까 일렉이란 이런 장르가 정말 존재한다라고 얘기를 했죠?(Q: 씬이라는게요)그렇죠. 디스코텍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건 아니잖아요?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인거 아니에요? 그런데 외국도 디스코텍이 있기 이전에 잘 모르겠지만 생각을 한 번 해보자구요. 외국 영화를 보고 간접적으로 자료들을 보다보면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즐기는 건 그 옛날부터 있던거잖아요. 이게 시대가 바뀌면서 그걸 제공하는 형태와 소스가 바뀐 거잖아요. 그러니까 있다고 보는거죠. 힙합도 무시 못하는거고, 다만 이게 대한민국 상황이에요. 일렉이 유행한다더라 하면, 힙합이 유행한다더라 하면 일렉이 좋고 이렇거든요?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어디까지나 같이 가는거예요. 외국 가면요 저는 뭐 사실 유럽 본거지나 미국을 많이 가본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소스들이 연결이 되어있잖아요. 그런 커넥션 때문에 다 알 수 있는데, 혹 이렇게 홍대에 MP랑 이런 클럽처럼 NB란 그런 클럽처럼이 아니라 바 형식에 어떤 그런 굉장히 그 쉬운 얘기로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장사가 잘 되는 곳들은 바 형식이 더 많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좀 독특하게 대형 클럽들이 잘 되고 있긴 하지마는 그 세 가지는 있다고도 보고 항상 긍정할 수 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힙합으로 완전히 갈 수도 없어요. Q: 그러면 이제 MI를 그러니까 몇 년도까지 하셨죠?A: 지금도 있어요. 이름이 바뀌었죠. 비아로 바뀌었죠. 지금도 있어요. MI란 이름은 비아가 한 3~4년 됐으니까 한 2008년 7년, 8년 정도까지 MI 이름을 썼거든요? 한 13년 한거죠. 한 14년 정도? Q: MI와 그 때 당시에 클럽을 운영하셨던...A: MI가 시작하면서, 시작하기 바로 전에 발전소가 영업정지를 먹었어요. 발전소가 닫혀있는 상황에서 MI가 오픈할 때는 좀 위험한 게 홍대 클럽이 많지 않고 나쁜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꾼들이 많이 모여들었어요. 그게 문제가 됐었거든요. 거기가 문제가 됐었거든요. 그래서 오래 못가고 문을 닫게 된거죠. 그랬을 때 윗동네죠. 놀이터 있는 쪽에 가며는 명월관도 있었고 마트마타도 있었고 NB가 막 시작됐어요. 그 담에 사브도 있었고 풍어도 있었고 조커레드도 있었고 뭐 이정도. 그러니까 홍대 클럽 데이 유래를 또 제가 만들었어요. 지금 뭐 타투에서 만들었다 내가 만들었다 서로 얘기하는데 천만의 말씀. 거짓말 할 것도 없죠. 왜냐면, 제가 왜 만들었냐면요 말 그대로 그거죠. 테크노 음악을 살리자. 이 테크노 음악 몇 개 안되는 클럽 이 홍대 지역에 그 당시에 5개 정도 됐었죠. 지금 말하는 일렉클럽이. 이런 음악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클럽이 모여서 뭔가 재밌는 를 만들어보자.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든 게 클럽 데이에요. 그래서 그 때 조커레드, 208, 마트마타, 명월관, MI 5 개가 모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명월관이 1회 클럽 데이가 하려고 하는 날, 자기 개인 파티가 있다고 해서 그럼 너희는 빠져라. 그래서 4개가 된거예요. 그 4개를 나머지 3군데는 문을 닫고 가장 큰 곳에 모여서 파티를 하자. 그게 208이죠. 그래서 1회 클럽 데이가 2001년도인가? 그 때 시작이 된거죠. Q: 저희가 이전에 인터뷰한 걸로는 그 때는 인사동쪽에서 운동하던 사람이 있었다고.A: 000 얘기하는거 같은데, 그게 아까 말한 협회에요. 그 사람이 와서 어떻게 만들었다 그래요? Q: 자세히는 저희도 못들었지만 그 분한테 들은게 아니니까A: 그 사람들은 홍대를 모르는 사람들이죠. Q: 그러니까 홍대는 연고 없다. 갑자기 와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추진력 있게 해서A: 우리가 클럽 데이 진행 하고 있는데 홍대 클럽들이 경찰이 자꾸 받아대니까 시민운동 하는 사람이 보호해주겠다고 이런게 참 좋은 문화다, 나도 이런 문화를 좋아한다. 내가 좀 나서주겠다 하고 온 사람들이에요. Q: 그럼 같이 1회부터 준비했던 사람이에요?A: 인터뷰를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헷갈릴거예요. 내 얘기 듣고 내일 또 누구 얘기 들으면 또 달라요. 아 그리고 지난번에 홍대 클럽 DJ중에 하나가 자살을 했죠. 그 것 때문에도 누가 인터뷰를 왔었는데, 그것도 이미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한테 얘기를 듣고 왔어요. 아 처음에는 그 건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데서 들어보니까 다른 데서 들어보니까 뭐요? 그 친구가 얘기한 것 중에 이런 클럽을 대관을 해서 파티를 하면 업주가 20만원, 30만원 밖에 안준다더라. 그렇게 얘기를 들었다고 그런 것 때문에 비관을 했다 이런 식으로 유도를 하더라구요. 야구선수가 다 똑같이 받아요? 내가 그랬어요. DJ도 사회인이고 직장인이고 프로인데 그 친구가 20만원 받았다면 20만원짜리인거죠. 여기 DJ는 한 달에 400 받는 사람도 있고 500 받는 사람도 있고 외국 DJ는 1억도 받아요. 탑 DJ는. 그럼 그 사람들은 뭐고 이 사람들은 뭐에요? 능력이 안되니까 그 것 밖에 안되니까 근데 그런 얘기만 듣고 그렇게 쓰면 안되죠.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위험한 얘기 많다니까요. Q: 그럼 클럽 데이로 시작하...클럽 데이 1회가 그런 식으로 시작되고 M2도 그 때 조직이 됐나요?A: 아니죠. 클럽 데이 1회가 2001년 아니에요. M2가 2004년에 오픈했으니까. Q: 그러니까 클럽데이 같은 경우에는, 그 시민운동 하던 사람들도 오고A: 그 사람들도 나중에 지금 홍대 상상마당 유재현씨라고 알 거예요 아마. 들어본 이름일지 모르겠는데, 그 친구가 원래 홍대에서 우리랑 같이 홍대 토박이들이죠. 근데 그 친구가 000이에요. (Q: 1회 때 또 같이?) 아니죠. 1회 때는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 클럽계 애들이랑 했어요. 그랬더니 다른 클럽에서 너희들 클럽 데인가 뭔가 하니까 다 그 쪽으로 놀러가고 손님이 없어. 우리 그 날 그러니까 장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거의 꽁쳤다. 그럼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거죠. 아 사실 테크노를 위주로 그걸 하고 싶었는데 대부분 다른 업주들한테 그런 반발이 있다. 뭐 좋은 건 아니다. 아 그렇다면 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나중에 NB도 들어온거예요. 처음에 4개, 4개로 일을 시작했고 2회 때가 아마 2~3개 더 들어왔어요. 차곡차곡 더 늘어난거죠. 하나씩. Q: 그 때 클럽 데이도 지금은 폐지가 됐지만 얼마를 15000원 이렇게 내며는 모든 그 4개의 클럽을 모두 갈 수 있었던 건가요?A: 1회만 하나의 클럽에 모여서 그냥 같이 즐겼고 그 다음부터는 다니게 했어요. Q: 그 때도 그럼 한 달에 한 번씩A: 한 달에 한 번이죠. Q: 그러다가 이제 얼마전에 클럽 데이가 잠정 폐지가 됐는데, 정확히 무슨 이유로 폐지가 됐다고 생각하시는지?A: 거꾸로 물어볼게요. 다른 데서 뭐라 그래요? Q: 저희는 아직은 클럽 쪽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처음 하는 거거든요. 클럽 부분 그러니까 바 같은, LP바 같은 경우에는 괜찮지만 댄스 클럽 위주로는 처음 하는 것이라서 이게 클럽 데이에 대한 얘기는 아직...A; 라이브 쪽, 클럽 데이가 이제 사실은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은 댄스 클럽이라고 얘기를 하구요 밖에 쪽에서 아까 말한 시민운동 하는 곳에서 라이브 클럽 쪽은 또 라이브 클럽이라고 얘기를 해요. 댄스 클럽, 라이브 클럽. 클럽이라는 건 저것도 클럽이고 이것도 클럽인건 맞아요. 하지만 물론 구분하기 위해서 지어낼 순 있지만 댄스 클럽이라는 그 어감 자체가 그렇게, 약간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거거든요. 라이브 쪽은 좀 고급스러워 보이고 댄스 클럽은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그렇게.. 그렇지만 그렇게 구분하는 것 좀 없게 얘기를 해야죠. 댄스 클럽이 계속 클럽 데이를 해오다가 어느 날 그 시민운동 하시는 그 클럽 데이 협회가 있죠. 그 협회에 총장님으로 계시는 분인데 문화적으로 너무 아무것도 볼 게 없고 관에서 너무 안 좋게 인식이 되기 때문에 라이브 클럽, 그 라이브 하는 쪽 클럽하고 다 합쳐야 된다. 그런 취지로 합병에 대해서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더라고요.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왜냐면 댄스 클럽도 위험에 항상 처해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게 어떤 방패막이가 되고 같이 문화로써 커나갈 수가 있다면 그게 더 좋겠다. 안전하겠다. 뭐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해서 같이 합병이 돼서 같이 클럽 데이를 운영하는 것이 낫겠다. 내가 알기로는 한 2년 됐거든요. 이제 그러다 보니깐 그러니깐 문제는 사실 합병할 때부터 있었어요. 사실 댄스 클럽 쪽에서는 마지 못 해 한거죠. 왜냐면 난 그렇게 생각해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이쪽 클럽 운영이라는 것도 마찬가진데 손님이 없고 수입이 없으면 돈벌이가 안되면 운영하기 힘들어요. 그러면 홍대 클럽 데이 해서 댄스 클럽에서 우린 n분의 1로 나누거든요? 열 개면 열 개 십분의 일로 나누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거 가지고 한 달을 또 버티는 사람도 있어요. 안 되는 클럽도 있기 때문에.. 그런데 쉽게 말해서 열 개가 더 들어온다면 20개가 나눠 갖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라이브 클럽에서 많이 와서 배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천 명이 오던게 천 백 명이 와서 20개로 나눠지면 다른 클럽에선 당연히 불만이라기 보단 안타까운 얘기죠. 그래서 이제 처음 시작할 때도 라이브 클럽은 대 환영을 했었고 우리 댄스쪽 클럽들은 불만이 있지만 문화라니까, 어떤 방어막이 된다고 하니까 또 때에 따라선 그럼으로써 힘이 생기니까 이런 취지에서 같이 가게 된 거죠. 그런데 2년을 같이 하다보니깐 뭐 문제점이야 많겠죠. 각자 생각하는 문제점도 있고 그냥 이렇게 표출이 되는 문제점도 있는데 내가 봤을 때는 아마 라이브 쪽에서도 그렇게 얘기할 거예요. 아 뭐 돈 나눠 갖기 싫어서 그렇다. 근데 그러진 않고요, 얼마 전에 클럽 데이 마지막 기사 써가지고 악플이 많이, 내 입장에선 악플이죠. 악플이 많이 올라 온 것도 그 기자하고 나 한바탕 했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의도로 썼든 나쁜 의도로 썼든 결과는 이러니까. 그런 것 때문에 얘기하는 건데 그 기사 내용 중에 대형 클럽이 소형 클럽한테 불만이 많다. 왜? 대형 클럽은 정말 힘들게 팔고 소형 클럽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한 장 파는 데도 있어요. 티켓을 한 장 파는데도 있고 M2 같은 경우에는 천 장을 넘게 팔아요. 그런데 다 합쳐서 똑같이 나눠가니까 대형 클럽에서 불만을 얘기하는 거죠. 그걸 기사로 썼더라고요. 클럽 데이가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래서 바로 전화했죠. 누가 그랬냐? 홍대에 대형 클럽이라면 M2와 큐보와 NB다.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냐면 클럽 데이 안에서 NB 사장이 그렇게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M2, 큐보 그럼 나머지는 M2, 큐보다. M2, 큐보 내가 맡고 있다. 나 안했다. 그럼 누가 한거냐? 말해라. 라이브 클럽에서 그랬대. 그건 자기네들 판단인거지. 생각이고 판단이죠. 나눠지니까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아쉽고 서운하니까 그렇게 얘기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 내가 그랬죠. 내가 기자한테. 아니, 대형 클럽에서 그 소형 클럽 팔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이 팔아서 힘들게 팔아서 나눠주면 그게 불만이라면 어떻게 십 년을 했냐. 내가 바보야? 내가 그랬지. 십 년 동안이나 울며 겨자 먹기로 하다가 이제 와서 내가 이걸 버렸다고요? 십 년 전부터 불만이 있을 수는 있는 거죠. 클럽 데이 취지가 뭐에요? 어차피 취지는 이걸 하나의 축제로 보고 파티로 보고 동네의 어떤 재밌는, 재미거리로 봤을 때 같이 모여서 하루 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 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다른 것에 여러 가지가 있는 거죠. 뭐 클럽 데이 포스터가 나오는데 라이브 쪽은 뮤지션들이 쫙 나와 있는데 우리 댄스 클럽이라고 하는 데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도 뭔가를 하는데. DJ도 있는데. 협회에서 어떤 그런 작용을 잘 못 하는 거죠. 그 담에 다시 말해서 이런 폐단은 있어요. 아까 얘기 했죠? 한 장 파는 가게도 있다고. 이 사람들 어떻게 판단해야 해요? 능력이 없으니까? 한 장 팔아도 똑같이 나눠 주는데 뭐 하러 다 팔아? 이런 생각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게을러지는 거죠. 나태해 지는 거고. Q: 결국에는 그런 요소들이 씬을, 여러 가지를 저해하는 요소가 된거죠?A: 그러니까 안 되는 집은 M2 생겨서 손님 다 끌어갔어. 자기들 잘 하면 안와요. 크다고 무조건 와요? 그게 아니에요. 특징이 없잖아요. 특징이. 그냥 음악을 했던 사람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클럽을 만든 사람은 굉장히 달라요. 이렇게 말하면 믿을지 안 믿을지 어떻게 와 닿을지 모르겠지만 돈을 벌려고 큰 걸 만든 게 아니라 MI 사람 막 미어터질 때 화장실이 1층에 있었어요. 클럽은 지하고 40평이에요. 이 방 한 4개만 하죠. 거기에 막 300명, 400명이 왔다고요. 움직이지도 못해요. 화장실은 1층에 있어요. 지하에서 춤을 추고 놀고 술을 먹고 놀다가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1층으로 올라가야 되요. 1층에 가면 화장실은 커요? 여자 화장실 칸 두 개, 그것도 고장 나면 하나. 남자 화장실 소변기 두 개 이게 붙어있어요. 남자가 이렇게 서있으면 여자가 뒤로 이렇게 지나가야 되요. 어깨를 스치고. 그래서 그 때 어떻게 생각했냐면 조금만 돈 더 모아서 화장실 제대로 된 거 하나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던 거고 또 한 가지는 이런 사람을 놓고 이런 음악을 하면 안 돼. 더 큰 데서 음악을 해야 돼. 솔직히 그런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오게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자?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던 난 그거 아니에요. 씬을 크게 만들고 싶은 거죠. Q: 그런 취지에서 M2도 그런 취지에서 생겨났고 클럽 데이도 그런 취지에서 생겨났는데 그렇다면 클럽 데이가 사실 지금 인터넷이나 여러 가지의 의견을 보면 그 기사도 영향을 줬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많이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N분의 1로 나누는 게 싫어서 그러면 근본적으로 어떤 원인이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서 클럽 데이가 없어졌다고...?A: 밸런스가 안 맞구요, 잘되는 클럽 그러니까 많이 파는 클럽과 물론 N분의 1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연관될 수 있겠지만 밸런스가 안 맞죠. 노력을 안 하는 거죠. 분명히 나중에 쓸 수 있으면 쓰세요. 한 장 파는 가게가지고 어떻게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대형 클럽이 1200, 1300 장을 팔고 싸움 나면 그거 말리고 사람들한테 치이고 그러는데 한 장 파는 사람은 그 사람은 뭐했겠어요? 그냥 앉아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건 해보지 않으면 남의 얘기하니까 쉽죠. 아우 주기 싫어서 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죠. 그 다음에 밸런스가 안 맞다는 건 제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라이브 클럽 위주의 포스터와 홍보를 하고 댄스 클럽은 아무것도 안했다는 거죠. 주객이 전도 된거죠. 클럽 데이는 댄스 클럽이 7년을 넘게 해온 거예요. 그런데 문화적인 측면에서 라이브 클럽하고 합병을 하자고 해서 했는데 결국은 댄스 클럽은 아무것도 아니고 라이브 클럽만 부각이 되는 거예요. 그게 싫어서가 아니에요. 같이는 가야죠. 그게 언밸런스라 이거죠. (Q: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어긋난거죠. 그 다음에 협회에서 신경을 안 썼어요. 아까 외부에서 오신 분 1년 넘게 업주 모임도 한 번 안했어요. 이 사람도 핑계를 댈 거예요. 왜 안했냐고 물어본다면 업주들하고 머리 아프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큰 소리 치고 정말 황제로 군림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업주들도 거기에 너무 이제 뭐라고 할까 지쳤다고 해야 되나 아님 화가 났다고 해야 되나. 당신네들 나 잘 쓰면 약이고 못 쓰면 독이야 이런 말까지 들었었어요. 내가 속으로 그랬어요. 이 사람 저 북한에 보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말은 내가 몇 가지했지마는 이거 외에도 서로 간에 불만은 다 있을 수밖에 없어요. (Q: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요?) 분명히 N분의 1.. 나 때문에 안했다고 하는 건 아까 내가 정답이에요. 쉬면 어떻게 버텨요? 그러니까 라이브 클럽하고 모이기 이전에도 7년 8년을 해왔죠? 그 때도 잘 파는 집과 못 파는 집은 차이 엄청 났었어요. 그걸 어떻게 참았냐구요. 근데 거짓말처럼 한 장 파는 클럽은 댄스 클럽이에요. 라이브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런 말이 나온 사람일수록 라이브 쪽 사람이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 개인적으로 이런 것도 있어요. 댄스 클럽 사람은 말 그대로 댄스 하러 와요. 라이브 쪽 사람들은 너무 편하게 있고 음악을 들으러 와요. 이 사람들 하고 섞여 버리니까 너무 엉망이 되는 거예요. 나 혼자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어요. 아 클럽 데이 좀 안했으면 좋겠다. 츄리닝 입고 오고, 우리 원래 츄리닝 입장이 안되거든요? 근데 그 날은 어쩔 수 없어요. 츄리닝 입고 오고 등산복 입은 아줌마, 아저씨. 아줌마, 아저씨 와도 되요. 하지만 정말 클럽을 즐기기 위해서 꾸미고 오는 거하고 등산복차림에 배낭까지 메고 라이브 클럽 갔다가 와요. 그거 어떻게 표현합니까? 그러니까 한 달에 한 번 하는 축제기 때문에 정말 안했으면 좋겠지만 한다 하고 십 년을 한 거 아니에요. Q: 점점 클럽 데이가 그런대로 커지면, 어떻게 보면 커진 거라고 볼 수 있겠지마는 커질수록 정체성에 더 혼란이 와 버렸던 거네요?A: 더 커진 건 아니에요. 이게 약 5년 정도는 항상 거기에 머물러 있었어요. 그러니까 라이브 클럽 합병된 게 커졌다면 커진 거지마는 그러니까 뭐 클럽 데이 날 모여드는 머리 수? 그걸로 본다면 계속 커지진 않구요. 어느 시기에 머물러 있고 때에 따라선 사회적인 사건이나 영향에 따라서 주춤할 때도 있고요, 계절 따라 그럴 수도 있고 또 뭐 이제 대학가다 보니까 대학 학생들의 어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그런 약간의 기복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계속 발전됐다고 볼 순 없고요 오히려 사실 어느 기점으로 해서 계속 퇴보가 됐다고 봐야 되요. 그러니까 이 그만 둔 시점이 최고치가 아니에요. 최고치는 이미 몇 년 전에 지났고요, 그 후 부터는 계속 눈에 띄지 않게 하강을 한거죠. 더 이상은 이렇게 하다가는 클럽 데이고 클럽이고 홍대고 모든 어떤 개념이나 룰이나 그런 인식이 다 깨질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작용을 했다고 봐야 되요.(더 이상은 안 되겠다?) Q: 다시 이제 테크노 얘기로 돌아가면 최근에 뭐 월드 DJ 페스티발이라든가 서울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발, 글로벌 게더링 이런 테크노 음악을 주로 듣는 공연이 되게 많이 일어났고 클럽씬이 어떻게 보면 커지고 있다. 많이 보편화 되고 있다. 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 어떤 자부심이라든가 그런 게...A: 지금 대한민국 전체는 다 모르겠어요. 거의 대도시에 있는 몇몇 클럽 서울 이 지역과 강남 지역, 오너 생각을 해보자고요. 말 그대로 사장님 생각을 해보자고요. 진짜 음악을 알고 난 지금도 토요일 날 음악을 틀고 있는 사람인데 진짜 오너 사장님들이라는 사람들이 클럽을 문화적이거나 솔직히 문화적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문화적이거나 음악적이거나 정말 어떤 큰 뜻을 가지거나 좋은 뜻을 가지거나 이런 걸 가지고 클럽을 오픈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그리고 글로벌 게더링이다 뭐 월드 DJ 페스티벌이다 이 쪽 했던 사람들 누구에요? 아까 얘기했던 유재현씨가 월드 DJ 페스티벌하고 그 다음에 뷰 레코드에서 물론 뭐 DJ 동생이 있어요. 포함된 회사에서 뭔가 좀 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했었고 목적은요 사회가 어떤 분야에 나눠지면서 그 분야는 근본적인 목적은 뭐 자본주의 사회니까 다 마찬가지지만 상업적인걸 위주로 다 영리를 목적으로 띄고 있는 거예요. 꼭 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클럽만 문화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정말 클럽을 끌고 가는 오너로서의 생각을 얘기해주고 싶은 거거든요? 왜냐면 업주들은 모여서 얘기해보면 전 별로 얘기 많이 안해요. 왜냐면 나하고 생각이 달라요. 그리고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강남의 클럽들 하나씩 넘어지면 또 생기죠? 왜 생기는 줄 알아요? 가보니까 손님이 많거든요. 어, 이거 돈 좀 되겠다 하면서 또 만들어요. 그런데 강남은 50%가 게스트에요. 그거라도 없으면 바로 무너지니까 테이블에 정말 몰려온 사람들 앉혀서 양주 주면서 붙잡아 가면서 그게 강남이고요 M2는 원래 저는 MI때부터 그랬어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스텝들하고 고생하면서 모든 클럽의 운영이나 진행을 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공짜로 즐겨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유명한 연예인들 강남 가면은 정말 특급 대우를 받고 사장이 나와서 대접하는 연예인들 옛날에 MI 오면요, 얄짤없어요. 입장료 다 받았어요. 딱 한 명만 안 받았어요. 클론의 준엽이. 걔는 워낙 짬쟁이라서 웃음으로 때우고 들어오는 거고 원래도 다 돈 냈고. 유명한 연예인이요? 대통령 딸이요? 다 돈내고 들어와요. 그러니까 돈에 미쳐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돈 벌려고 하는 거 정말 아니에요. 값어치라는 건 거기서 만들어 지는 거예요. 지금도 M2는 게스트? 천 명 와봐야 15명? 10명? Q: 그럼 요새 많이 늘어가고 있는 페스티벌이나 공연 위주들이 하나의 씬이 넓혀졌다기 보다는 그나마 시류에 맞춰서 돈이 되니까 생겼다고 생각하세요?A: 내 생각에는 그래요. 물론 그런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람들한테 인터뷰를 하면 나야말로 좋은 뜻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좋은 뜻도 있어요. 왜냐면 글로벌 게더링 같은 거 두 번 했죠? 두 번 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이익을... 첫 번째는 손해를 보고 두 번째 지난 번에 했을 때는 손해는 안봤지만 이익은 별로 없었다. 근데 내년엔 좋아질거다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그게 솔직히 말하면 이게 뭐냐면요 자기 돈으로 하면 이게 정말 좋은 뜻이에요. 다 스폰서 돈으로 하잖아요. 물론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에요. 클럽 씬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내 돈으로 정말 이 돈이 다 없어지고 정말 내가 깡통을 차더라도 내 뜻을 위해서 한다 이건 정말 좋은 뜻이 될 수 있는거죠. 하지만 스폰서, 자기 앉아서 말만 몇 마디 떠들면 돈 들어오는 그런 걸 가지고 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운영을 하는거죠. 강남 클럽도 다 그거잖아요. 누가 만들게, 붙어 그러면은 너 얼마, 너 2억, 너 3억, 너 5억 좋아. 뭐 이렇게 해서 하나 만들어 내잖아요. 강남은 근데 클럽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그래요. 강남은 구조가 절반은 부자 절반은 그 부자 등 밀어주면서 먹는 사람. Q: 그런 문화들은, 그런 진정성 없는 문화들은 사라지게...A: 네, 그럴 거예요. 홍대도 이미 하나 둘 그렇게 되고 있고요, 그러니까 너무 고집스러워도 안되는게 이번에 조커레드가 문 닫았죠? 가게 팔았거든요? 그 친구도 고생 많이 했어요. 그 친구가 MI에서도 음악을 틀었던 DJ인데 결국 조커레드로 넘어가서 자기 거를 만들었는데 나처럼 내 가게를 만들자 해서 조커레드를 만들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가 혼자서 그 가게에 손님도 없는데 정말 손님 없었어요. 그 때 잠시, 처음 조커 만들었을 때 빼놓고는 손님이 없었는데 주말에 열 명, 이십 명 가지고 영업을 했거든요. 클럽 데이가 버티게 해준거죠. 근데 거기도 아마 18년? 19년? 그렇게 됐을 거예요. 근데 그렇게까지 오래 버티고 해왔다는 거 정말 마음속으로 울고 박수 치죠. 근데 그것도 문제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뭔가를 하기 위해서 손님이 없어도 좋고 난 내 음악 하면 돼. 들어주려면 들어주고 말려면 말아. 이것도 너무 아집스럽잖아요. 이것도 문화라고 볼 순 없죠. Q: 그럼 다시 MI라든가 클럽 데이 영향도 있고 홍대 문화가 어느 정도의 브랜드를 가지게 되면서 상권이 많이 발달하게 됐잖아요. 그리고나서 이 문화 말고도 화장품이라든가 네고 문화 자본들이 홍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원래 홍대 문화를 형성했던 터주대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외곽으로 쫓겨나거나 오히려 원래 문화를 형성했던 사람들이 뒷전이 되는 양상이 지금 보여 지는 것 같아요.A: 그 어떤 측면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어떤 측면에서 어떤 질문을 가지고 그 답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진취적이에요. 그러니까 어, 나도 뭔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거든요? 지금 질문을 했던 그 사람들 터주대감 내지는 오랫동안 여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 나도 그 사람이지만 나하고는 생각이 달라요. 사실 그 사람들이 지금도 먹고 살만 하고 좋은 일이 많다면 절대 그런 얘기 안 해요. 자기가 힘들어지니까 여기는 좀 이상해졌고 상업화 됐고 너무 퇴폐해졌고 이렇게 얘기하지만 어느 지역이든지 안 변할 수 있어요? 변해요. 내가 변하고 싶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변하도록 만들고 참 답답한 얘기가 홍대 문화 얘기가 나오면 항상 이 사람들 얘기가 나오거든요. 우리가 말하는 비주류인데 내가 물론 이 자리에서 이 상태에서 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미안한 얘기에요. 그럼 이 사람들도 자기가 홍대의 터주대감이에요. 옛날부터 뭔가를 했던 사람이에요. 홍대의 변화에 맞게 자신의 처신도 할 수 있는거예요. 물론 그게 야비한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홍대 문화가 조금 더 상업화 됐다고 해서 더 상업화 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럼 이렇게 상업화 되는 부분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접목을 시킬건지 노력해보지 않았어요. 그냥 외부 사람들이 밀려왔고 자기는 밀려났다는 것만 가지고 저 나쁜 놈들 지금 돈 버는 놈들은 다 공산주의 얘기한다면은 뭐고 뭐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건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재개발 되서 거기 헐리고 아파트 들어서는 데에요. 그럼 그 사람들 거기 들어가서 살잖아요. 그것도 하나의 형식이 될 수 있는 거거든요. 자기가 있던 데가 날로 발전하고 이런 가게도 들어오고 저런 문화도 들어와. 내 문화가 있어. 어떻게 접목을 시켜. 여기서 내가 어떻게 커? 이거 잘해야 되는거 아니에요? 잘해야 되요. Q: 그러면 이제 홍대에 대해서 주체성이나 정체성 그런 것들이 확실히...A: 그런 것들까지 다뤄야하는 그런 문화적인 측면에서 클럽을 볼 수 없는 것도 사실 있어요. 사실은 내가 봐도 때에 따라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전부 애들. 방학 때는 애들이 많아요. 방학이 끝나고 3월이 되면 정말 거짓말처럼 물이 바뀌어요. 학생들이 슬슬 빠지면서 일반인들이. 일반인도 그걸 알아요. 단골 손님들 내지는 M2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방학 때 가면 애들밖에 없어. 이걸 안단 말이에요. 참 그러니까 그런 상태에서 음악을 하고 영업을 하고 진행을 하다 보면 때에 따라서는 과연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였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건데 그런데 사실은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렇게 되버리는 것도 있어요. 열심히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좋아서 달라 붙는거죠. 그걸 떨쳐요? 떨쳐내요 우리도. 때에 따라서 주말 되면 술이 많이 취한 사람, 복장이 뭐 츄리닝 바지에다가 뭐, 츄리닝 복장으로 오는 사람 안되고 술 너무 취한 사람 안 되고 나이가 너무 많아도 좋지만 복장이 뭐, 공무원 같은 복장 이거 안되고 추려내는 게 그것도 하나의 정말 내가 돈만 좋고 사람 많은 게 좋고 많으면 많을수록 다다익선 이쪽으로 간다며는 다 받아 들여야죠. 하지만 가릴 건 가리죠.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 달려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거고요 이제 와서는 내가 그래도 문화라고 얘기는 못해요. 하지만 이것도 문화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문화라고 얘기 못해요. 아니, 외국에도 마찬가지에요. 음악 좋고 분위기 좋고 뭔가 좋아서 유명한 DJ가 어떤 음악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거. 그거 많이 모였다고 문화가 아니고 상업적이다 퇴폐적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건 아니죠. 그럼 삼성도 퇴폐적이죠. 너무 잘하고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사람들이 거기 가서 일하고 싶어 하고 많은 물건, 제품도 생산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고 그럼 그거 퇴폐적이죠. 분리해서 볼 필요는 없어요. 사회와 이런 문화적인 거는 어차피 같은 맥락이거든요. Q: 이거는 번외 질문으로 가볍게 드리는 질문인데 클럽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화이고 많이 오잖아요. 그럼 혹시 이제 나이 차이도 슬슬 많이 벌어지게 되고 격세지감 같은거 혹시 느끼는 거 없으세요?A: 우리 직원들한테 다 모아놓고 가끔은 얘기를 해요. 거의 터치를 안 하는데 매니저도 있고 관리하는 동생들도 있으니까 바로 지난 연말엔가? 덕담을 하려고 다들 모여 있는데 내가 혼자 한 숨을 쉬었어요. 왜요? 막 이러더라고요. 그게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보고 있으니까 내가 MI 할 때만 해도 다들 손님들이나 일하는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나 별칭이 엉클 아니면 아저씨 아니면 형 아니면 오빠 아니면 뭐 이렇게 불렀는데 지금은 진짜 아들 같고 딸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야단을 치고 싶어도 못치죠. 난 그 얘기를 그대로 한거예요. 이제는 너희들이 솔직히 너희들도 나보다 어린 아빠 있을걸? 조사해보니까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격세지감 맞아요. 하지만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내 욕심에 토요일 날 한 타임을 한다? 그건 아니고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DJ에 대한 능력이 있다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나는 먼저 판단해요. 후배들이나 동생들이 다 고생을 하면서 디제잉을 하고 있는데 내 판단으로 봤을 때는 부족한 면들이 있어요. 무게감도 없고. M2가 최근에 오랜만에 놀러온 친구가 하는 얘긴데 와보니깐 음악이 장난 아니네요. 왜? 어떻게 알고 있는데? 아니 거의 나이트 음악이 나온다고 해서요. 직접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바깥에서는 그렇게 들릴 거예요. 뭐 맛도 갔고 물도 갔고 음악도 수준이 아니고 하지만 솔직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원래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더럽게 자존심이 세거든요? 자기가 못한다고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아 하죠. 안하고 싶어 하는데 그런 말은 사실 디제이 하나 바뀔 때마다 얘기했어요. 싸이 이제 M2 싸이 들어가다 보면 DJ 하나 안 되겠다 싶어서 보내놓으면 보면 걔를 좋아하는 몇몇 애들이 글을 올려요. 이제 M2는 맛이 갔다. 이런 식으로. 누군지 다 알아요. 누군지 다 아는 게 아니라 누구 파인지 다 알아요. 그 정도 이제 모를 나이는 아닌데, 그래 그렇다면 나를 포함해서 한 번 보여줄게 라는 오기도 생기는 거구요. 지금도 나랑 친한 동생들은 형이 메인 타임 하세요 해요. 메인 타임은 앞으로 더 오래할 너희들이 해라. 내가 너희들을 보조 해줄게, 보좌 해줄게. 정말 좋게 얘기하면 느끼죠. 홍대에서 정말 얘기했던 그 스토리대로 한다면은 25년을 떠나지 않고 살았어요. 집들도 대부분 이 지역에서 왔다갔다 했었으니까 집과 일과 일은 곧 홍대였지만 이것들을 25년 동안 해왔다면은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 뭐 마찬가지 일이긴 한데 사실은 저는 가게만 했던거는 아니에요. 나중에 저도 격세지감 중에 하나는 뭐냐면 깨닫지 못했던 걸 동생이 깨닫게 해줬는데 후배가 형이 홍대 만드셨죠? 어?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전체를 만들진 못했지만 분명히 바닥은 만들었어요. 시티 비트 레코드를 만들면서 음악적인 요소를 심어줬고요 MI를 만들면서 이런 류의 새로운 음악을 틀어주는 진짜 외국 같은 클럽을 시작을 했었구요. 솔직히 홍대 베이스는 클럽이에요. 클럽이 하나 둘 많이 생김으로써 뭐 여기 흔히 볼 수 있는 밥 집, 술집 다 생긴거죠. 그 다음에 MI를 만들었고 이 공간은 안 돼. 홍대에 분명히 대형은 하나 필요해. 다음에 어느 곳에 뭐가 생겨도 홍대를 이길 수 없는 분명히 홍대에 대표적인 뭔가 필요해. 그래서 M2 만든거죠. 그리고 DJ로서도 맨 처음에 음반 내봤구요, 그걸 뭐 첫 번째라고, 일빠, 이빠 따진다고 내가 하는 건 아니고 내 생각이 항상 진취적이에요. DJ가 어떤거 잘해야 하는지 아세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지고 사람들도 좋아하게 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FM 방송 들어봐요. 난 지금도 정말 가슴 쳐요. 40년, 50년 전 음악이 지금도 날이면 날마다 나오거든요. 새로운 음악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아니면 가요, 아니면 팝. 대한민국이 그래요. 모든 것이 굉장히 좋아졌고 나아졌고 굉장한 발전이 있는데 음악은 정말 후진국이에요. Q: 클럽에서 이제 디제잉 하실 때요,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는 클러버들이 있잖아요. 그들이랑 클러빙 하는 사람들이랑 DJ하는 입장이랑 동질감 좀 느끼시는지?A: 이질감도 느끼죠. 왜냐면 그건 이질감을 느끼겠다 하면 바로 느껴요. 쟨 완전히 애들이다, 난 너무 어른이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매개체가 있죠. 음악이에요. 음악은 MI 때나 지금이나 내가 생각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그 생각은 약간 변했어요. MI때는 어떤 음악을 가지고 어떻게 플레이해야 그 때 그 사람들이 좋아했다는 내 생각이 있고 판단이 있는거구요, 지금은 또 어떤 음악을 가지고 어떻게 틀어야지만 또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가를 내가 판단하는거죠. 그래서 지금도 그게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에요. 지금 후배들이나 동생들은 그런 생각을 못하고 그냥 음악을 틀어요. 그 다음에 아직까지 클러버들하고 음악적인 얘기를 거의 해본적이 없어요. 다만 홀에 한 번 관리 차원 차 내려가면 음악 안하는 날 토요일 빼고 나머지 날 한 번 씩 내려가면 내가 DJ 부스에 서있는 걸 알고 사람들이 인사도 하고 나쁜 얘기는 안하죠. 당연히 놀러왔는데. 그리고 사람들 기분 나쁘게 할 음악은 나는 안해요. 옛날에 MI 때는 깊숙한 음악, 어려운 음악, 난해한 음악을 틀면 멋있는 줄 알았어요. 근데 지금 여기 와서 느낀거는 거긴 소형이고, 여긴 대형이죠? 대형에 꽉 차있는 손님을 길게 끌고 가려면은 기분이 좋은 음악을 틀어줘야되요. 그 사이 사이에 분명히 어두운 음악은 들어가야되요. 왜냐면 그건 잠깐 쉬게해 주는 거거든요. 이건 뭐 전문적인 얘기라서 잘 못알아 듣겠지만 쉬게 해주면서 데리고 가야 오래가는 거란 말이에요. 동질감, 이질감 다 느껴요. 동질감 그건 내가 만들구요, 이질감도 내가 느끼는 그 땐 느껴서 나도 못해요. 하지만 그건 될 수 있으면 안 느끼려고 하는거구요. 그런데 그 때 MI 손님이나 지금 M2 손님이나 충분히 내가 요리할 수 있어요. 우리가 음악 틀 때 라디오 방송 DJ처럼 음악에 대한 설명이 없잖아요. 음악과 음악을 연결해 줄 뿐인데, 말로 하면 쉽겠죠. 하지만 멘트가 없이 음악만연결하다 보면 음악이 하나의 매개체가 돼서 사람들한테 연결시켜주거든요?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에요. 처음 놀러온 사람은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두 번, 세 번, 열 번 오면요 소리가 시끄럽다, 듣기 좋다, 가슴을 때리고 감동스럽게 온다, 음악이 기분 좋다, 기분 나쁘다, 너무 지루하다 다 느낀다구요. 그러니까 그런 손님을 상대로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는 거는 사명감이기도 하고요 손님을 읽어야죠. 오늘은 수요일인데 아주 애들이 많구나. 애들에 맞는 음악이 나가야죠. 왜냐면 그 사람들도 DJ가 해야 될 의무 중에 하나가 돈을 내고 들어온 손님이에요. 지금 그냥 밖에 있다가 추워서 들어온 손님이 아니란 말이에요. 돈을 내고 들어온 손님인데 그 사람들한테 충분한 제공을 못해준다? 그건 자격 없는거죠. Q: DJ만이 가지고 있는 철학 같은 것도 같은건가요?A: 근데 안에 있어요. 이 얘기를 다 못하지만은 그 철학이라는 거 난 중심은 없어요. 바뀔 수 있어요. 왜냐면 그건 시대에 따라서 음악에 따라서 유행에 따라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내 중심은 없어요. 항상 바뀌는 건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 큰 흐름은 바뀌어요. 근데 DJ들이 대부분 좀 답답한 부분이.. 물론 철학이 있으면 좋아요. 왜냐면 철학이 곧 뜻인데 그 뜻을 가지고 음악을 접근을 하면 더 많은 게 자기한테 더 빨리 오고 이게 손님하고 바로 맞아 떨어지거든요? 아까 얘기했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이함으로써 사람들을 좋아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거 틀어주면 쉬워요. 아무나 해요. 내가 말하는 얘기로 내가DJ 못해도 종아리 몇 대 때려가면서 일주일만 가르치면요 똑같은 음악 틀어요. 그러니까 사람들 좋아하는 음악 다 틀어줄 수 있는 능력은 되게 만들어요. 뭐냐? 새로운 음악을 찾아내야죠. 난 날마다 음악 찾아요. 날마다 음악을 찾아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궁금해서 못견딘단 말이에요. 날마다 몇 백곡씩은 나오거든요? 새로운 음악들이. 날마다 들어가서 오늘 넘으면 안되요. 오늘 나온걸 먼저 들어야죠. 내일은 내일 나온 음악 때문에 오늘 나온 음악이 뒤로 밀리거든요. 쌓이다 보면 지쳐요. 못해요. 날마다 해야지. 오늘 나온 게 누가 있을까? 그 궁금증에 그 재미로 하루를 사는 거거든요. Q: 예전부터 다방 DJ도 그렇고 클럽 DJ도 그렇고 DJ가 틀어주고 싶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과 또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음악, 그리고 사장님이 틀었으면 하는 음악. 이런 음악들이 굉장히 갈릴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예전에 얘기를 들어보면 DJ가 자기가 이런 음악이 좋고 자기가 틀고 싶은데 사장님이나 이런 음악엔 손님이 안 들어온다. 이런 경우가?A: 아,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자제와 절제 해야되죠. 아까 얘기했던 음악적으로 대한민국이 굉장히 후진국이라고 얘기했죠. 클럽 음악도 사실은 저희 클럽 DJ가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건 자랑이에요. 열심히 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여기 M2에서 자주 나오거나 DJ들이 자주 플레이 하거나 좋아하는 것들 외국 차트에 다 있는 것들이에요. 차트에 있다고 좋은게 아니구요. 실례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답을 해줄 수 있냐면 외국의 게스트 DJ들이 와서 파티하죠? 그 DJ 여기 와서 트는 거 하고 우리가 하는 거 하고 거의 50%가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충분히 외국 DJ들 외국의 흐름에 어떤 부분은 앞서 간다고 봐야죠. 이건 찾아내는 거잖아요. DJ는 새로운 음악 찾아내서 플레이하는건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내가 플레이 하는 음악 나도 절제하고 자제해요. 왜냐면 우리 DJ 전체가, 나도 가르치는 건 그거예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클럽도 마찬가지에요. 그렇게 하는 클럽일수록 금방 문 닫아요. 그러니까 DJ는 이런 것도 있죠. 날마다 음악을 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파티 때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DJ 자체가 뭐에요? 직업이잖아요. 음악을 플레이 하고 싶을 거 아니에요. 한 달 내내 준비를 한다구요.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거든요. 기름이? 이거 분산 시켜야 되는데 한 달에 한 번 파티할 때 음악을 틀어요. 에너지가 너무 넘치다 못해 오버를 해요. 그래서 분위기 깨져버려요. 근데 그런 류의 파티들은 DJ 서로간에 조화가 안맞아요. 나 잘났어, 너 잘났어 어떻게 보면 싸움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음악이 너무 강하고 세다보면 음악이 산으로 가버리는 거죠.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어서 못 놀아요. 클럽은 난 항상 내가 주인인 동시에 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걸 파악을 하거든요? DJ 구성, 타임 스케쥴 아니면 DJ 간에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흐름. 넌 신나게 해, 넌 잡아줘. 넌 좀 부드럽게 풀어줘. 이런 것들. 그리고 저는 클럽 음악 25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즈, 클래식 다 들어요. 그런 감성적인 음악을 들어야지만 댄스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음악의 그 선율? 그게 나와요. 어려운 얘긴데 내 감성을 얘기하는 거기 때문에 다 표현 못해요. 그런 음악을 들어야 해요. 하지만 애들 안 들어요. Q: 소위 말하는 턴테이블리즘 그런게?A: 그건 좀 개념이 다르죠. 턴테이블리즘 같은 경우는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턴테이블에 대한 집착력 아니에요? 나도 처음에 그랬었어요. M2 처음에 오픈할 때 턴테이블도 놓고 CD플레이어도 놨었거든요. 반반 이었어요. 나는 이제 LP판을 트는 파트이고, 반은 젊은 친구들은 좀 새로운 거 받아들이는 CD 틀고. 야 창피하지 않아? 조금한 거 이거 하나 가지고 집어넣고 멈춰놓고? 근데 그게 내가 깨진 게 뭐냐면 CD는 나중에 내가 앨범을 만들면서 그걸 배웠지만 CD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어요. 디지털이기 때문에. 사운드 포지를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잡을 수 있어요. LP는 그게 안되요. 근데 나는 그 소프트웨어잖아요. 그 중요성도 중요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뭘로 플레이 하느냐가 아니라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 그게 가장 중요해요. Q: 그런 부분에서는 LP가 가지고 있는 특성도 있지만 DJ만이 할 수 있는 CD로?A: 맞아요. 우리 DJ 좀 머리 큰 DJ 동생, 후배 같은 경우에는 뭐도 되고 그랬는데, 그 친구들도 옛날에 뭐 어쩌고 그러는데 나 '옛날에' 이 얘기 나오면 소름 끼치거든요? 옛날은 옛날이에요. 버려야 되요. Q: 요즘에 LP판, LP플레이어가 아니라 CD로 플레이하는데도 많이 늘었잖아요?A: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이쪽이죠. 지금도 외국에선 LP가 나오긴 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LP 매니아들을 위한 것들이고요, LP서 나오는 잡음 소리가 좋아서라고 하지만 솔직히 잡음 소리를 왜 좋아하는지 난 그게 이해가 안 돼요 내 입장에서. 깨끗하고 맑은 소리를 들으면 정말 더 좋을텐데 왜 잡음 소리를 듣고 좋다고 할까? 그거는 막연한 동경 아니에요? 옛날에 대해서? 자기가 처음게 그걸 좋아했기 때문에 끝까지 좋아하려고 하는 한국 사람들의 그런 보수적인 심리? 그런 것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게 다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나도 지나간 것에 대한 소중함과 나를 가르쳐준 그 것들에 대한 고마움 다 알죠. 그러나 그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얘기지. 그걸 다 버리란 얘기는 아니에요. Q: 다시 DJ 쪽으로 돌아가면 요새 DJ 협회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구요. 트위터에서 얘기가 되고 있는데, 몇몇 DJ들이 DJ 협회를 만들겠다. DJ 협회가 있어야된다. 이런 얘기를A: 난 못 들어봤는데. 전 반대에요. 왜냐면 DJ는 개인적인 역량을 추구하는 직업이에요. DJ끼리 모여서 야 넌 뭐 틀어, 난 뭐 틀면 돼, 이거 좋지 않냐? 이건 자기만의 것을 해쳐요. Q: 근데 그 DJ 협회를 만들겠다는 취지가 현재 DJ들이, 뭐 얼마 전에 자살 사건도 있었지만 정말 DJ들만의 권리와 또 그들의 생존권에 대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A: M2는 아무 이상 없거든요? 매 달 정확한 날에 페이 정확하게 나가구요. 인상요인이 있으면 인상시켜주고 삭감은 절대 없고 여름에 휴가 보내주고 명절에 보너스 주고 난 그래서 모르겠지마는 내가 DJ기 때문에 DJ 잘 챙겨주는 게 아니라 우리는 직원 전체가 칼이에요. 물론 주말이 끼면 그 다음 날 나가지만 절대 그건 없기 때문에 그 내용은 모르겠지만 이면에 아까 얘기했잖아요. 업주들이 20만원 밖에 안줘서 힘들다고 한다더라. 지가 그 것 밖에 안 될 수 있다니까요. 오너가 그 사람을 학대를 하고 인정을 못 해주고 그렇게 했느냐? 아니면 오너가 상대방이 그 것 밖에 안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것 밖에 안해줬느냐 이건 판단해봐야할 문제에요. 불이익을 당한다? 거꾸로 생각하세요. DJ가 이런 경우도 있어요. 저 돈 안받고 일하고 싶은데요? 이런 일도 있어요. 자기가 깎아 먹는 거 아니에요. 사장 입장에선 보세요. 나는 그런 적 없지만 돌아가는 걸 아니까. 옛날에 나이트클럽 때도 마찬가지에요. 뒷박을 친다 그래요. 그건 지금도 있는 용어죠. 저속한 용어로 뒷박 친다고 하죠. 뒷통수 친다고 하잖아요. DJ씬도 마찬가지에요. 왜냐면 나이트클럽 시절에도 메인 DJ가 자기 그룹을 가지고 다녀요. 7~8명씩 모아서 자기 팀이 있어요. 이 클럽에 가서 들어가는 거죠. 우리 팀으로 해서 500만원. 먹혀요. 일 하고 있는데 다음 팀이 와가지고 저희 400이요. 생존에 문제가 되는건요? 대한민국 여건도 생각해야 되죠, 환경도 생각해야 되죠, 클럽이 그렇게 많아요? 많지 않아요. 자기네들 DJ 한다고 다 DJ에요? 나도 DJ이고 배부르단 소리 들을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음악 좋아해서 DJ에 대한 기술을 배우고 나서 클럽에서 음악을 틀 수 있다고 해서 다 DJ는 아니잖아요. 직업을 가져야 DJ 아니에요. 직업을 갖지 못한 그런 친구들이 나는 DJ인데 날 불러주지도 않고 날 무시하고 대우도 없고,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 자살한 친구도 마찬가지에요. 클럽에서 계속 일을 하는 친구가 아니에요. 어쩌다 한 번 씩 파티 했는데 자기가 그랬을 수 있어요. 사장님, 저 오늘 이익금 많이 안 받고 20만원만 받을게요. 그랬을 수 있어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저 돈 안 받고 그냥 타임만 하나 넣어주세요. 이런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이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 그건 알아봐야 되죠. 정말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M2는 절대 그런 일이 없거든요? DJ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 어떤 알바도 정확하게 줘요. 때 되면 올려주고 정확하게 주고 주말 끼면 그 다음 날 주고. 근데 다른 클럽은 더러 그런 얘기 들었어요. 볼륨 같은 데도 거기 DJ 후배가 하나 있는데 창피하게도 그 친구가 몇 개월씩 미루고 헤븐도 마찬가지고. 그것만 가지고 불이익이다 할 수 없는 게 뭐 DJ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못받는 사람 있는걸로 알고 있고요, 그 다음에 바에 있는 직원은 꼭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친구 먼저 챙겨준다는 것도 얘기 들었어요. 내가 M2에 있다고 M2 잘 아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아냐고 하거든요? 클럽 전체에 내가 오래 생활을 했었죠? 클럽 전체에 구성된 사람들이 사장이 동생일 수도 있고 매니저가 동생일 수도 있고 아는 DJ 들이 다 동생들이고 하니까 알 게 모르게 들리는 얘기 간접적으로 전화상으로, 만나서 잠깐 하는 얘기, 누구에 건너뛰어서 들어오는 얘기가 있어서 알고는 있어요. Q: 그것도 하나의 사건이 전부인양 하면 다뤄지면 안된다는 말씀이시죠?A: 쉽게 대답하는 게 나도 다 알고 있으니까 남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듣는 얘기가 있으니까. 물론 그것도 진실인지는 모르죠. 하지만 그럴 것 같다 라는 생각은 맞죠. 볼륨 같은 경우에 몇 개월 일했었고 결국 문제가 돼서 문을 닫았고 이런 것들은 내용을 알죠. Q: M2에 새로운 DJ들 있잖아요. 새로운 DJ를 어떻게 발탁하는지?A: 가능하면 자체적으로 키워요. M2에서 스텝으로 일을 하는 친구가 음악을 하고 싶다 하면은 그런 케이스가 한 3건 있었거든요?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 친구들 무조건 일하는 건 아니죠. 그렇다고 얼굴을 보는 건 아닌데 이 친구가 일을 할 때 음악에 대한 관심도나 음악에, 아, 1차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키는 게 조명이에요. 조명을 볼 수 있다는 건, 조명을 음악에 맞춰 잘 볼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음악을 이해하고 있다고 봐야되고요, 음악의 흐름을 알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조명을 시켜봐요. 기본적으로 조명 잘 하는 친구들은 음악을 가르치죠. 하지만 조명 못 보면 다시 홀로 내려가요. 가능성,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다 열려 있어요. 하지만 한 번 DJ는 이런 게 또 있어요. 사실 거의 날마다 일을 하기 때문에 어떤 날은 사람이 길이 아닌 이상, 어떤 날은 기분이 좀 안 좋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음악 하면 음악 잘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한 번 가지고 볼 순 없지만은 외부에서도 가끔 와요. 오디션까지는 아닌데, 일부러 손님 조금 있는 시간에 넣어주기도 하거든요? 근데 역시 그래요. 잘 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오래 물을 먹은 사람들이 잘 해요. 다 읽어내는 거잖아요. 새로운 DJ가 잘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Q: 요즘엔 학원도 생기고 DJ일을 꾸준히 해서 하는게 아니라 학원에 가서 DJ를 배워서 편입되려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어떻게 생각하세요?A: 실제적으로 온 사람은 없구요, 여기 우리 DJ 중에 제리 엠이라고 있어요. 제리 엠이 개인적으로 개인 지도하고 있거든요? 하민이도 몇 명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 그리고는 이번에 뭐 하나 생겼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별로 실력 있는 친구는 아닌데,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었고, 공식적인 아카데미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개인적인 레슨 정도? 나도 때에 따라선 거꾸로 요청을 하죠. 니가 가르치는 애들 중에서 능력이 되고 감각이 좋은 친구들 한 번 데리고 와봐라. 그러면 아직 자신있게 데려오는 친구가 없는 것 같아요. 취미 생활 정도로 생각을 하면서 dj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으로 시작을 해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아니면 말 그대로 하다 보니까 가능성이 없거든요. 어느 클럽을 가도 기본적으로 다 채워져 있잖아요. 파고들기 쉽지 않으니까. 어떻게 금방 써요? 그건 못해요. 새로운 거 배워와서 경험도 없는 친구를 지금 현재 우리 가게 막내보다 더 잘 한다? 그렇게 판단 못하죠. 그러니까 가능성이 없고 물이 좀 좁죠. Q: 이제 다시 홍대 얘기로 돌아와서요, 현재 홍대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보는데 일각에서는 이제 홍대보다도 다른 쪽에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고 슬슬 이제 물갈이가 되 가지 않나? 하는 의문도 있는데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 같으세요?A: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 부분이죠. 나 역시도 마찬가지죠. 동네 25년 나 역시 내 일만 열심히 해왔는데, 부정적인 측면도 있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내가 좀 보편적으로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도 다 있죠. 음지도 있고, 양지도 있고. 다 있는데, 부정적인 측면. 사실 많죠. 나는 아까 얘기한 딱 그 부분인데, 불특정 다수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모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부분이 있구요. 절대 좋은 일만 있다고 볼 순 없고, 이 동네에 모이는 자체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좋은 일이지만 그 안엔 정말 많은 일들이 있거든요. 부정적인 측면이 오히려 강한 건 맞아요. 여기서 사건 하나 생기면 그걸 전부 매도가 되잖아요. 그게 부정적인 측면이 강해서 그러는거죠. 홍대가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고 앞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바람은 사실 없어요. 조금 지켜봐야죠. 조금 지켜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자유스럽게 흘려가는 걸 봐야죠. 근데 이미 홍대는 카페도 골목에 많이 들어왔잖아요. 나도 깜짝 놀랐는데 지금 가는 길목까지도 많이 들어섰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클럽이 베이스를 잡아서 먹는 집과 술집과 노래방과 이제는 카페까지 다 들어왔단 말이에요. 더 이상 들어올 종목은 없죠. 업종은 없고, 다만 이게 더 어떻게 확산될 것이냐, 또 어떤 새로운 게, 글쎄요,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에 새로운 거라는 건 다 들어와 있다고 봐야되죠. 아이템들이 그렇다면 이 상태에서 사실은 이제는 너무 광범위해져서 홍대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어떤 개인? 단체? 만들기 쉽진 않아요. 이게 쉽지 않은 게, 신촌 보다 더 큰 지역이 되버렸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우리 업주들끼리 그런 얘기도 해봤었거든요? 클럽데이가 주축이 돼서 전체적으로 가보자. 근데 그게 쉽지 않고 각자 이익에 반하는 일만, 그러니까 이익을 바라는 일만 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더라고요. 홍대는 앞으로 더 발전되고 변하겠지만요. 뭐 부정적이다, 긍정적이다 이게 아니라 어차피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 문화적인 측면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뭐 그러한 정보 차원이 아니더라도 관, 구청이나 마포구청 정도에서의 뒷바라지, 도움 이런게 필요하지 않나? 지금 관에서는 너무 무관심하거든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 번씩 때리려고만 하지 사실 안되는 부분은 안되고 되는 부분은 되고 이래선 되고 이래선 안되고 너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해서 자기네들이 조금만, 그러니까 관심은 아니지만 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게 없어요. Q: 거의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A: 개인적으로요? 얼마전에도 누구한텐가 얘기했는데 클럽 생활이 말 그대로 25년이죠. 머 몇 년까지다 이런 건 없어도 다만 이 클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딱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면 . 사람들이 춤을 추지 않더라도 즐거운 공간있죠? 그건 머냐면 소스가 음악이에요.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시티 비트 시절에 이 동네 카페들에 내가 새로운 음악을 제공했듯이 인제는 음악을 더 그때는 시디밖에 없었거든요. 지금은 엠피쓰리를 다운 받을 수 있잖아요. 외국에서도. 그러니까 더 좋은 음악이 더 많더라구요. 이게 너무 아까운 거죠. 음악에 대한 욕심이 또 생긴 거예요. 이 음악들을 어떻게. 이건 우리 클럽에서 못 틀어. 라운지 음악같은. 듣기 편한 음악 들이 전자음악인데. 이러한 음악들을 들려주는 공간, 작은 공간은 싫어요. 이미 좀 대형화에 물들어서 그런지 작은 공간이 아니라 큰 공간이 필요해요.거기서 사람들이 가볍게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과일도 마실 수 있고, 독한 술도 마실 수 있고, 근데 음악은 클럽처럼 빵빵하게 나오는데 옆 사람하고 대화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좋은 소리. 있어요. 저는 알아요. 아직까지 안 써먹을 뿐이지 있어요. 그래서 그때 음악은 뭐냐. 아까 이야기 했던 조금전에 이야기 했던 라운지 히라오 때에 따라선 락도 될 수 있지만 절대 사람들한테 거절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최고의 공간에 이제 말 그대로 최고에요. 최고의 음악을 최고의 공간에서 최고의 시스템으로 들려주겠다는거죠. 그런 공간을 하나 만드는 게 앞으로의 꿈이에요. 근데 거기서는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와인도 마실 수 있다고 했는데 파티도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도 하는. 강남이나 이태원이나 라운지가 많이 생겼다가 없어졌거든요. 왜 그랬냐고 생각해봤을 때 없어요. 열어놓고 작업능력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6개월 1년 때에 따라서 버텨야 되거든요. 잘못 된 단추는 다시 잠그고 해서 . 또 방식도 바꿔 가면서 해봐야 하는데 6개월 버텨보니까 벌써 손해야 바로 문 닫아 버리고 아니면 음악적인 소스 그게 없는 거죠. 저는 분명하게 오랫동안 음악생활을 해오면서 시티 비트부터 시작해서 엠투까지 해오면서 느끼는 건 대한민국에 사람들을 상대로 음악장사는 원래 잘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호기심 진짜 많거든요. 그걸 그러니까 만족시켜 주는 데가 없는 거죠 전 자신 있는 게 그런 공간 만들어서 엉클이란 이름 내걸고 음악 제대로 해놓으면 아마 커피 마시러 줄 서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욕심은 아니에요. 정말 저는 음악 때문에 원래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거죠 근데 그 뜻을 내가 알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게 계산되어 지지 않은 내 삶이긴 하지만은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내 생각대로 다 이루어, 거의 이루어졌어요. 이러면 이럴 것이다. 거의 됐고. 저러면 저럴 것이다. 거의 됐어요. 근데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그 공간이 굉장할 것이다. 이것도 되겠지 라는 생각도 물론 하지만 그건 되겠지 안 되겠지를 떠나서 이제는 내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쫌 가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