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에이크 인터뷰 사진제공=헤드에이크. ©Postcompany 영단어는 인터뷰이의 어감, 의도를 살리기 위해 살리되 ( )를 하여 순화된 우리말을 표기. 보기편한 글말을 위해 어순 및 조사, 접속사를 수정하였습니다. 주석은 답변 하단에 표기합니다. *2012년 웹진 키치포레스트를 통해 공개한 인터뷰입니다.인터뷰 김경현 김지철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해주시겠어요?저는 질문 잡지 편집장 정지원이고요. 아까 세계 최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질문 잡지’라는 건 세계최초가 맞는 것 같아요. (웃음). 삼 년째 (헤드에이크를) 해오고 있는데 여전히 늘 처음 만드는 것처럼 고민이 많은 편집장입니다. 그래서 사실 조언을 해드리기보다는 저희가 맨땅에 헤딩 해왔던 많은 것들을 다른 분들이 최대한 안 하실수 있도록 솔직하게 경험한 걸 이야기해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헤드에이크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헤드에이크는 제목처럼 ‘정말 골치 아픈 질문을 피하지 말고 던지자.’를 모토로 출발했어요. 2009년 11월에 첫 잡지가 나왔고요. 그 당시에 제 친구들이랑 동료들 모두 졸업을 앞둔 사면초가 생들이었는데 원래부터 잡지를 만들고 싶어 했었죠. ‘우리가 뭘 만들면 좋을까? 뭐가 진정성 있을까?‘ 하다가 '우리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자.' 그리고 저희에게는 닥쳐있던 삶의 선택들이 강요당하는 게 많았는데 그걸 정말 우리가 택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자문해 보고 싶었어요. (그 당시) 저희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졸업 후 뭐할까?' 같은. 그래서 첫 번째 헤드에이크를 '졸업 후 뭐하세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보니 20대들이 많이 고민하는 질문들을 저희 잡지가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요.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질문을, 다른 독립잡지들도 많고 그곳에서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창간을 한 이유가 있나요?사실 처음엔 다른 독립잡지에 들어가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도 어느 정도 우리가 (지금은 독립잡지라고 정확히 명명하거나 소규모 출판물이 홍대나 그 인근에 많이 있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던 거죠. 그렇게 했으면 차라리 조금 더 쉬웠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창작을 하다보면 마음이 딱 맞는 동료끼리는 일을 진행하기가 굉장히 수월한데 서로 다른 가치관이 대립하다보면 일이 더디게 진행되잖아요. 그걸 좀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확실히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저희는 저희가 잡지를 내기로 했어요. 그러면 왜 잡지였어요? 다른 매체들도 많았을 텐데. 하필이면 잡지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저희 잡지가 2009년에 나오기는 했는데 사실 생각은 2007년부터 했어요. 그리고 2008년까지 같이 만든 멤버들과 ‘뭐 만들까?’라는 생각을 수다로만 떨었어요. 그러다 '이러다간 우리 졸업하고 아무것도 안되겠다' 싶어서 모든 걸 빠르게 결정하기 시작한 게 2008년 겨울 즈음이었던 것 같고요. 각기 다른 관심사가 있었어요. 보통은 많은 잡지 제작자. 흔히 홍대나 아트 씬에 있으신 분들은 아트스쿨에 있든지 아니면 디자인이랄지 한발 걸친 전공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사실 저희는 그런 전공과는 조금 무관했었고 다 다른 과, 다른 장르들을 좋아했는데 그래도 예술이나 문화에 관심 많았다는 것이 있었고요. 그러면 우리가 같이 협업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사실 저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두 번 친구들이랑 찍고 보니까 '아, 이건 할 짓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잡지는 좀 더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저는 했었고. 또 친구들이 다들 각자 정기 구독하는 잡지가 한권씩은 있었어요. 그게 좀 놀라웠어요. 요즘 시대에 누가 잡지를 정기구독해요. 그런데 정기구독 하는 것이 우리 팀원들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을 것 같아요. 잡지라는 매체를 좋아했어요. 웹진도 요즘에는 많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왜 오프라인이었을까요? 헤드에이크는?한, 백 번째 듣는 질문인 것 같아요. 가장 첫 번째는 일단 저희는 진짜 종이책을 좋아했고요. 다들 시대착오적이었어요. 좋게 말하면 아날로그적인 거고.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잡지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걸 택했고. 온라인 매체에 대해서는 다들 문외한이었고 지금도 문외한이라서 자꾸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고. 두 번째,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의 강점을 어떻게 부각하기 위해서. ‘웹진 왜 안하냐?’는 말은 처음부터 들었던 질문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고민을 했는데 ‘왜 우리가 웹진이 싫을까?’를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저희가 탐색했던 웹진들은 약간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사실 종이책을 낼 때에는 오탈자 검색도 다섯 번, 여섯 번은 하고, 여러 명이 하는 활자 매체가 지닌 책임감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런 물질성까지도 저희는 ‘이런 종이... (나무) 베어가면서 만들어도 되니?’라는 자문도 매일 하고. 그런데 웹진 같은 경우는 물론 다들 그 치열함과 책임감이 다르긴 하겠지만 뭔가 ‘우리가 정말 몇 년 동안 고민한 결과물을 보여주기에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읽어주지 않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 당시에는. 그래서 저희는 종이책을 택했습니다. 물론 웹이 더 빠르게 많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사실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접근성 또한 무시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온라인 같은 경우야 우연히 링크를 타고 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 주소를 쳐서 오잖아요. 아는 사람이 오죠. 그런데 종이책 같은 경우는 특정 장소에 비치되어 있을 경우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겠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아무튼 종이책이 좋아서 택한 거예요. 로맨스 영화를 보면 우연히 마주쳐서 우산 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모습인 것 같은데(웃음) 감사합니다. 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잖아요. 대부분의 잡지들이나 매체들이 사실 자신들의 생각을 이미 정해놓고 (정지원: 그렇죠, 프로파간다가 있죠.) 답을 받아서 보여주는데 헤드에이크는 주제는 있지만 그 여러 질문들의 답을 받아서 독자들에게 생각을 해보라는 식으로 다가가는 것 같은데 혹시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요.사실 한달 전쯤에 저희 지인이자 멘토나 다름없는 선배가 “헤드에이크는 이제 뭔가 날카롭게 방향성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질문해주시니까 또 저희 잡지가 ‘이런 면으로 읽힐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저희가 방향을 제시 할 만큼 혜안이 있지 않아요. 저희의 장점이라면 한 가지 질문을 택하면 정말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는 것? 굳이 정치적 방향성으로 말할 필요 없이 정말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고 저렇게 대답 할 수도 있는데 그걸 다 하나하나 검토해보는 거죠. 물론 저희 팀이 그걸 다 아우르진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찌됐든 고민을 편견 없이 한다는 것이 일단 저희 잡지의 매력이자 장점인데 혹자들은 “너흰 너무 제시만, 펼쳐주기만 하고 선택하게끔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너희 잡지 내는 목적이 뭐냐. 그래서 애들이 고민하고 거기서 그치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행동을 하길 바란다면 그 행동이 변화를 위한 거라면 너는 지금 더 뭔가 보여주어야 된다. 더 이끌어줘야 돼.” 뭐, 그런 말을 들었었죠. 저는 귀가 상당히 얇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을 땐 또 그래야 되나보다 생각했는데 이 질문을 받으니까 ’아직은 그때가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 그때가 되면 그런 목적을 가지고 헤드에이크를 이끌어갈 생각이 있는 건가요?어...... 그런 목적이... 그런 목적이 아마 지금도 있긴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조지 오웰이 한 말이었나? 이건 불분명하지만 ‘모든 아트 작품이나 미디어는 어쩔 수 없이 다 프로파간다’래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있다는 건 목적이 있겠죠. 그런데 제 목적은 ‘굳이 이 선택을 해야 되지 않아?’라기 보다는 ‘이 고민은 해야 되지 않아?’ 정도의 목적일 텐데 ‘분명히 이 고민은 해야 하지 않아?‘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을 테니까 제 생각에 분명히 뭔가 잠재된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이제 이 방향으로 가자’라고는 아직 저 자신도 몰라서 못하고 있죠. 만약에 그런 선택이 명확해지면 용기를 낼 것 같기는 한데 그때는 헤드에이크로 그 목소리를 낼 것 같지는 않아요. 헤드에이크는 지금 본연의 목적인 ‘질문’을 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것’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예술은 어느 정도 프로파간다' - 조지 오웰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잡지가 가지는 한계가 있을 것 아니에요. (정지원: 그럼요. 너무 많죠.) 그 잡지의 한계에 봉착한 상황들과 어떻게 해결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데 사실 최근에 너무 많은 것들이 일어났었고. 삼년간 축적되었던 시간들을 저도 이제는 다시 되짚고 재평가할 때인 것 같아서 요즘 그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약간 레벨이 있는 것 같아요. 만약에 어떤 매체를 만들고 싶으신 분들에게 말을 하자면 좋은 팀이 비결이고, 잡지가 유지 될 수 있는 힘은 다른 잡지에서도 언급 되었었는데 그 매체의 흔들리지 않는 철학 혹은 모토와 재정적 안정성이래요. 이건 사실 독립잡지 편집장님들이 한 말은 아니었고. 왜냐면 대부분의 독립 잡지나 소규모 출판은 첫 출발 자체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팀이 혹은 잡지가 계속 정말 운영되려면 고려는 해야 대박을 내는, 수익이 나는 잡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팀이 이런 재정적 구조로 굴러 갈 수 있게끔 노력을 하자.‘는 작전이 모든 사람들과 공유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것만 확실하다면 원하는 잡지를 흔들림 없이 일 년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웃음) 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 다음에 목표가 좀 더 크신 분들, 이미 소규모 출판을 통해서 '아, 우리는 센스 있게 만든다.'는 것이 입증 되신 분들은 이제 잡지의 발전보다는 팀의 유지에 힘을 써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함께 했던 팀원들은 그 당시에 분명 최고였을 것이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겠죠? 그런데 이제 그 팀원들과 계속 가치를 공유하면서 같이 시작할 때처럼 열정을 함께 불태우려면 비전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서로 간에 느끼고 있는 문제점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구조여야 되고요. 저와 같은 경우에 2년째까지는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저희가 약 7명이 시작해서 뭐 다들 졸업시즌이었으니까 두 명은 대학원가고 또 두 명은 회사 가고 또 세 명이 올인 했다가 또 한명은 다시 학교로 가고 또 한 명은 지금까지 계속하다가 잠시 쉬고 이런 팀원들이 계속 돌게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저희 팀 같은 경우는 확실히 제가 좀 더 리더로써의 책임감을 많이 지면서 유지하려고 노력했었는데 삼 년째가 되다보니까, 또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젊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택하고 싶은 또 다른 선택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때도 이 작업이 일 순위 일이 되려면 그때부터는 확실히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뭐, 우리 잡지가 많이 팔린다. 혹은 우리 잡지가 내게 이런 프로핏(이익, 수익)을 주는구나. 그런 것들이 있어야 되고 만약에 굳이 모든 팀원들이 이게 일 순위 일이 아니어도 된다면 각자 정말 좋은 취미로 부담 안 가는 취미로 갈 수 있게끔 어깨에 힘을 더 빼야 되고요. 저는 사실 요즘 후자를 많이 권하려고 해요. (웃음) 옛날에는 “무조건 다 쏟아 붓고 택해야 되지 않아요?”라고 했는데 제가 다 쏟아 부으면서 시간을 보내 보니까 (음... 이건 팀원들 기질에 따라 택해야 되는데) 정말 오래 가고 싶다면, 사실 헤드에이크의 목표는 함께 늙어가는 잡지. 그러니까 평생 만들겠다는 거였거든요. 그렇다면 정말 긴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되잖아요. 그럴 때는 조급해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저는 또 팀원들을 붙잡아 두고 싶기도 하고 잘 되고 싶기도 하고 또 이 일만 하고 싶기도 하니까 무리를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또 지치기도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정말 오래 내고 싶은 잡지가 목표라면 모두가 긴 호흡으로 어떻게 오래 갈 건지를 고민해야 되는 것 같아요. 누구 한 명이 부자여서 재정적으로 확 "그래, 우리 인쇄비 이 정도는 십년 갈 수 있어!" 정도를 보장하지 않는 이상 약간 취미, 서브 잡, 세컨 잡 정도로 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즐거울 정도로만.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즐거울 정도로만. 사실 이거 제가 한두 번 낼 때 이미 잡지의 선배격인 ‘싱클레어’ 편집장님이랄지 ‘순진’ 편집장님들한테 들었던 조언이거든요. 그런데 제 기질상 그걸 빨리 깨닫지 못한 거죠. 지금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니까 돈도 중요한데 오래 가려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 같은데... 아닌가? (웃음)그 말도 맞죠. 그 말도 맞고요. 그 다음에 또 ...... 변화도 중요한 것 같아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저 같은 경우 처음에 친구들이 “어, 난 이제 취업 할게. 지원아 잘해"라고 말할 때는 상처받았어요. 하지만 또 그들이 취직해서 도와주기도 하고 또 다들 ‘날 응원해주고 있구나. 아니, 헤드에이크를 응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변화에 제가 적응해야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창기에 같이 했던 멤버들이 영원한 건 아니잖아요. 그러면 새롭게 헤드에이크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도 같이 할 수 있어야 되고 팀원이든 환경이든 계속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이제 그 변화를 좀 잘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헤드에이크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돌아오는 답변들이 여러 가지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는 분명히 ‘원했던 답변’이 있을 거고 ‘원하지 않았던 답변’이 있을 건데 (정지원 : 당연하죠) 그런 걸 어떻게 해결을 해 오셨는지.해결 할 건 사실 없는데. 왜냐하면 돌아오는 답변들의 50%는 예상했던 답변들이에요. 그런데 절반정도는 예상치 못했던 답변들이라서. 저희는 웬만하면 그런 걸 여과 없이 보여주거든요. 그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한다고 그러면 그거야 말로 헤드에이크가 보여주고 싶은 답만 보여주려는 것 같아서 최대한 여과 없이 보내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과 거의 비슷한 답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전 그게 되게 깜짝 놀랐었어요. 저희가 작년에 ‘포스트 피크닉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그때 우리 잡지에 대한 지적 중의 하나는 "너희 잡지는 너무 수도권 중심적이다. 홍대랄지 뭐 이런 애들만 잘 접근 할 수 있고 그 문화만 소개된다. 어떻게든 다른 곳에서 보편성과 다양성을 취하라“고 해서 저희가 직접 엽서를 받으러 다녔거든요.그중의 하나가 (그래봐야 끽 해봤자 서울이긴 했는데) 해방촌. 보성여중, 여고 근처에서. 저희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믹서가 돌아가서 바나나가 갈리는 기계가 있었어요. 바나나 셰이크를 공짜로 주고 대신에 엽서로 고민을 받는 거였는데 거기가 시장 근처라서 정말 다양한 세대가 왔다 갔다 하고 그래서 고민들을 쫙 봤는데 다섯 가지 정도로 카테고리화(범주화) 되겠더라고요. ‘먹는 문제’, ‘어떻게 돈 벌지?’ 혹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가족문제’처럼 보편적인 카테고리 안에 있는데 그래도 결은 다 달라요. 꼬마들 같은 경우는 “엄마가 컴퓨터 못하게 한다.”, “우리 누나는 왜 저럴까.”등 그런 걸 보면서 우리도 너무 뻔하다 생각하고 이미 저런 게 고민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걸 직접 그 사람들이 쓴 엽서로 받아보니까 되게 달라요. 진짜 느낌이 너무 달랐어요. 이 느낌은 뭐 표현 할 수 없어서 진짜 엽서를 통째로 실었었는데 그런 면들은 저희가 예상 했던 답변이든 안했던 답변이든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요. 보편적인 답변인데 약간씩 ‘색깔이 다르다’는 말인가요?네, 뭔 예를 들으면 좋을까. 음... 대부분 우리 또래. 20대 중후반이라고 할게요. 그 20대 중후반일 경우에는 대부분이 취업이 고민이잖아요. 제일 고민일 텐데 그 질문에 대해서 쓰는 표현방식이 다르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어떤 이가 “이번에는 꼭 붙어야 되는데 너무 걱정 되요.” 이 정도라면. 어떤 사람은 “나는 면접에만 가면 면접관 눈을 볼 수가 없어요. 그게 너무 고민이에요.” 더 디테일 할 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정말 아주 막 합리적으로 “이 회사 가면 150만원 받고 이 회사가면 130만원 받는데 진짜 둘 다 안 내켜요.” 뭐 이런 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들이 다 너무 달라서 그게 저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질문이지만 각기 다르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잡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건데 ‘헤드에이크’라는 잡지를 인터뷰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몇 가지 물어 본 것이 있는데 '인쇄는 어떻게 하냐.'는 뜬금없는 질문이 있었거든요. (웃음) 인쇄는 어떻게 하세요?이게 무슨 질문이죠? 인쇄 전체의 프로세스를 묻는 건지 아니면 (사실 돈만 있으면 맡기면 다 되는 거니까) 돈을 어떻게 구하냐는 걸 묻는 건지. 돈은 다음 질문에서 하도록 하고 이번에는 프로세스를 이야기 해주세요.어, 프로세스요. (웃음) 어떻게 말해야 되나?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지?아, 우리 잡지가 어떻게 책으로 나오고 있나. 그렇게 말하자면 이건 영화 식으로 말하자면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있죠. 기획. ‘질문 뭐 할 거냐.’ 저흰 거의 요즘 두 달에 한 번씩 나오고 있는데 거의 삼사 주를 질문 카피 정하는데 다 쏟아요. 키워드만 정해졌는데도 막 뭐 되게 달라요. 다들 생각이. 그리고 모두가 만장일치가 되어야 그 질문 하거든요. 그래서 그 만장일치 될 때까지 기다리느라고 한 삼주 넘게 걸리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그 질문에 걸맞은 콘텐츠 기획인데 그건 의외로 좀 빨리 되요. 왜냐하면 저희가 모든 답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는 사실 대신 만나러 다니는 거라서 그 콘텐츠 기획 때 제일 중요한건 아마 인터뷰인 것 같아요. 우리가 고민한 질문에 누가 답을 줄 것인가. 그리고 그 외의 것은 요즘은 수월한 것이 헤드에이크는 정기기고자들이 있거든요. 저희가 꼭 글을 달라고 부탁드리는 라이터(작가)들이 있어서 그분들께 질문을 알려드리죠. 그리고 그분들이 대신 고민해서 써주니까 사실 큰 문제없고 (웃음) 그래도 매번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무슨 프로젝트를 해야지 대중들이 재미있다고 할까?’ 그런 걸 고민하고 그렇게 하고 나면 한 이주 삼주 정도는 콘텐츠 생산이 되고 하고 나면 디자인에 들어가죠. 디자이너는 사실 저희랑 질문 할 때부터 함께해요. 디자이너도 메인 멤버라서. 그래서 그렇게 디자인을 2,3주 동안 하는 것 같아요. 늘 제가 촉박하게 시간 준다고 되게 뭐라고 하는데 할 수 없어요. (웃음) 이번에는 두 달에 한 번씩 내기로 약속한 거라서. 제가 맨날 욕먹죠. 그냥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냥 재촉해요.그러고 나면 가제본을 해요. 사실 이걸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저희 잡지가 첫 인쇄가 1000부 되는데 인쇄기에 들어간 그 순간 끝이거든요. 빼도 박도 못해요. 그래서 그전에 가제본을 한번 해보죠. 한... 두세 번 해봐야 되는데 이번에도 사실 한번만 했다가 지금 약간 수정해야 될 것이 생겨서 마음이 안 좋아요. (웃음) 다 제 탓입니다. 그래서 그런 여유를 두면 좋은 것 같고요. 인쇄소에서는 저희는 운이 좋아서 첫 호를 낼 때부터 저희를 후원해주는 인쇄소 팀이 있어요. 그래서 저렴한 인쇄비로 그분들이 알아서 다 해주시고. 그렇게 되면 정말 끝이네요. 인쇄기 들어가고 인쇄 나오고 나서 2,3일 뒤에는 건조시키고 제단하고 제본 되서 나오는 데는 뭐 3,4일 밖에 안 걸리니까 그러면 그 다음 단계, 배포는 어떻게 하세요?배포는 지금 정말 헤드에이크가 안정되어 있어서 쉬운데, 지금 배포되고 있는 곳들이 있어요. 대부분의 소규모 출판들이 배포되고 있는 상상마당, 교보. 어...... 저희는 교보문고에도 사실 첫 호부터 넣었고요. 땡스북스, 유어마인드, 프롬더북스, 더북스, 가가린, 이음책방. 이런 곳들이 있네요. 저희는 카페 같은 데도 들어가 있고요. 테이크아웃드로잉, 행복커피, 이런 데는 사실 지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서점들은 웬만하면 출판물들이 공이 많이 들어간걸 알기 때문에 대부분 다 입점을 허락해주세요. 교보 같은 경우는 어떻게...?교보... 그런 데서 팔리려면 상업지를 하겠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려는 공문서들이 있어요. 첫째가 사업자등록증. 둘째가 정기간행물 등록증 이런 건 다 사업장이 등록되어있는 구청에 가면 할 수 있고요. 제가 알기로 두 개다 기간이 4주를 넘지 않아요. 부지런하기만 하면 빨리빨리 처리 되요. 그리고 교보에 가죠. “저희가 책을 냈는데 봐주세요.” 그 후에 MD님이랑 계약을 맺죠. MD님이 허락을 해주면 그때 입점이 되는 거고 심플해요. 단, 이게 되게 심플한데 다 사람만나서 해야 되고 공문서 쓰고 막 이래야 되고 그래서 다들 귀찮아하는 일이죠. 그리고 사실 교보문고는 전국의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그만큼 대중에게 약속해버리는 거라서 사실 저는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그건 팀이 안정되고 매체가 안정되고 택해도 되는 옵션인 것 같아요. 책임감이.예, 책임감이. 사람들이 기다리잖아요. 아까 인쇄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잠깐) 인터뷰 선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인터뷰 선정, 섭외, 진행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사실 섭외는 우리 팀이 편파적으로 하는 거 같아요. 편파적?대부분은 질문에 걸맞게 좀...... 그러니까 자기들이 인터뷰 하고 싶은 사람 하려고 해요. (웃음) 한마디로 자기 취향인 사람을 하고 싶어 해서 늘 고민을 많이 해요. 옛날에는 진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람 인터뷰를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그래도 대중이 관심 가질 사람을 꼭 포함 시키자'가 저희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고 이왕이면 유명한 사람해서 잘 팔리면 좋겠다. 그 고민을 사실 제일 많이 하죠. 이를테면 김수현이랄지 이런. 인맥을 총동원해서 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죠. 김수현은 농담이었고요. 아무튼 그런 급으로 대중이 관심 갖는 인터뷰이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인터뷰 섭외가 힘들었던 사람은 있었어요?인터뷰 섭외가 가장 힘들었던 사람이요? 이건 좀 생각해봐야겠네요. 아, 네. 이번호가 제일 힘들었어요. 이번호의 인터뷰이들이. 이번에 나올네, 이미 책이 나와서 곧 5일 뒤쯤엔 배포가 되는데 저희가 윈디시티의 김반장님 인터뷰를 했거든요. 제가 2년 전부터 김반장님 인터뷰 해보라고 누구한테 번호를 받았어요. 사실 제가 소심해가지고 막 대차게 “인터뷰 해주십쇼!” 못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팀원이 유명한 사람 하라고 압박이 많아서 했죠. 일주일이 지나도 답변이 없는 거예요. ‘아, 물 건너갔구나...’ 생각하고 다른 사람 막 물색하는데 정말 찾기 힘들었어요. 근데 딱 2주 뒤인가 답변이 오신 거예요. 자기가 너무 늦게 확인 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셔서 되게 간을 졸이면서 인터뷰를 했었고, 그 다음에 또 섭외가 힘들었던 분은 섭외라기보다 시간내기가 힘들었던 김중혁 작가님? 제가 사실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라서 되게 아껴두고 있었거든요. 차지량 작가님이 소개시켜주셔서 그분도 번호를 알고 있었는데 너무 떨려서 섭외를 못하겠는 거예요. 팬심에?정말 팬심으로. 문자를 보냈죠. 사실 제가 보내기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한다기에 했는데 너무 유쾌하게 답이 오신 거예요. 무슨 질문을 할 거냐고. 그래서 무슨 질문 할 거라고 하니까 자기가 곧 책이 나오기 때문에 조금 어렵겠다고 해서 사실 두 달 기다렸다가 지난 몇 주 전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사실 녹취하면서 너무 잡지에 실고 싶지 않더라고요. 왜냐면 나만 간직하고 싶은 거예요 (웃음) 그래서 안 실었어요. 이번호에 안 실고 다음호에 지면을 더 많이 할애해서 실으려고요. 그때는 섭외라기보다는 작가님 일정이 바빠서였고 인터뷰도 너무 어려웠어요. 너무 작가님 책을 다 읽어서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버린 바람에 횡설수설하고 심지어 계속 재채기가 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그런 것이 힘들었고 가장 어려웠던 인터뷰는 김사과 작가님 인터뷰할 때. 어떤 점이?너무 날카로우셔서 자꾸 저에게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해야 되는데. 이를테면 "지원씨, 이런 잡지 왜 내요?"랄지 (웃음) 정말 할 말이 없더라고요. 물론 오늘과 비슷한 답변을 한 것 같은데 아마 작가님이 그 질문을 가장 먼저 저에게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맨날 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오늘은 좀 수월하게 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러 갈 때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가는 거랑 아예 모르는 사람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잖아요. 어떤 준비를 하고 나가시는지.아까 왜 김중혁 작가님 제가 제일 좋아한다고 그랬잖아요. 정말 그건 팬심이 너무 지나쳐서 힘들었던 인터뷰인데 대부분의 모르는 인터뷰이 만나러 갈 때에도 공부를 많이 하고 가요. 그 사람이 대부분은 아티스트니까 그 사람이 앨범을 냈으면 앨범을 듣고 간다던지 아무튼 기존의 인터뷰는 다 보고 가요. 저희 팀원들이 다 그래요. 그리고 저희는 질문도 일주일 전부터 미리 짜거든요. 다른 인터뷰와 달라야지 의미 있으니까. 준비는 많이 하고 가는데 또 막상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 흐름을 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흐름.왜냐면 또 짜 놓은 데로만 질문을 하는 건 사실 서신으로도 할 수 있거든요. 그 짜놓은 질문을 하는 건 너무 긴장하거나, 꼭 해야 할 질문들만 딱 정해놓고 나머지는 순간순간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잡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지만 돈도 중요하다. 말씀하셨는데 그 돈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웃음)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야지 제가 오늘 인터뷰 하는 것이 다른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되잖아요. (정지원 : 그럼요) 정지원 편집장님은 돈을 어떻게 버십니까? (웃음)저는 늘 당당하게 말하는데, 제 개인의 삶에서 저는 아르바이트를 해요. 초창기에 헤드에이크를 할 때는 카페에서 매니저를 했었고, 그런데 그때 그건 알바라고 생각 안하고 정말 메인 잡으로 생각했었어요. 헤드에이크 작업실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일 년을 버티었고요. 그 다음에 지금은 많이 현실적으로 된지라 과외를 하죠. 이건 제 개인의 삶을 위해서. 단, 제가 버는 돈의 많은 부분이 헤드에이크에 들어가는데 제 개인은 그렇게 유지를 하고. 헤드에이크만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사실 4호부터 인쇄비를 지원받았어요. 4호는 텀블벅에서도 받았고요. 후원의 밤 행사도 열었고요. 그 다음 제가 정식으로 사업제안서를 써서 제가 생각하는 많은 발행인 후보들에게 열부 정도를 보냈고 세 분이 승낙하셨어요. ‘내가 헤드에이크를 지원해주겠다.’ 그분들 중에 두 분은 사업가였고 그래서 헤드에이크의 투자가치를 보셨고 한분은 제 은사님이자 저희 프로젝트의 가치를 좀 더 보시고 “나는 경영을 맡아 줄만큼 돈을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고 단, 인쇄비는 대주겠다. 대신에 너희가 지금 해오던 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정식 계약서도 썼지요. ‘저는 4회를 지원받겠다. 그리고 2백만 원 이하로 지원을 해 달라. 단, 수익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갚아나가겠다.’ 했는데 선생님은 그런 걸 중요시 생각하지는 않으신 것 같지만 아무튼, 곧 5일 뒤에 배포될 그 잡지가 바로 선생님이 지원해주시는 마지막 호였고 이제는 정말 헤드에이크의 살길을 찾아야죠.아무튼 저는 인쇄비만큼은 다 외부 돈을 끌어 쓴 거죠. 사실 0호부터 1호, 2호까지도. 0호는 팀원들 돈도 들어갔었는데 또 친구들 돈도 빌리고. 그걸 갚은 건 3호부터인데 그때부터 자립이 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광고도 받고요. 그래서 ‘인쇄비만큼은, 우리의 순수제작비 만큼은 우리 돈 들이지 말자’가 모토였고 또 팀원들 돈 쓰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게 최소한 리더의 양심이어서 그랬었고. 그리고 사실 회의비가 많이 들어요. 작업실 얻는 팀들은 아마 카페에서 회의하는 비용만 장난 아닐걸요. 모두가 다 자기 시간 들여서 즐겁게 하는 동호회 수준이라면 각자 더치페이해도 되는데 각자 뭔가 의기투합했고 누군가 책임 많이 지는 리더가 있을 때에는 회의비나 제작비는 좀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저희는 운 좋게도 잡지 판매비가 그런 걸 충당할 정도는 확실히 됐었어요. 지금도 역시 그렇고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저희가 이곳저곳에서 작업실을 얻어서 썼었거든요. 지금은 작업실을 따로 얻었는데 비싼 작업실이 아니지만 그거 유지하기도 꽤 힘들긴 힘들죠. 그런데 아무튼 아직은 유지 될 수 있다는 것. 이제 이다음 차원은 같이 올인 했으면 월급이 나오면 사실 정말 좋잖아요. 그런데 아직 월급 나올 정도는 아니에요. 제가 큰 판매액이 들어오고 그럴 때는 n/1을 한다든지 주고 하는데 그게 규칙적으로 나올 수 있지 못해서 약간 우리 열정이 식어가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작업실 입주를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효율은 얼마나 나아졌나요?네, 저는 그런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누군가와 같이 쓰는 것도 상관이 없다면, 월세 40, 회의비 30. 월 70정도가 벌리는 팀이 아니라면 눈치 그런 거 상관없이 공짜로 쓸 수 있는 작업실 어디든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고. 왜냐하면 공간이 있으면 자료를 아카이빙 할 수도 있고 힘이 모여요. 그리고 회의비도 약간 절약이 되고요. 보통 대부분이 카페를 갈 텐데 한 번 회의 때 5명이 모인다고 쳐요. 그러면 5명의 커피 값이 2만 5천원이에요. 분명히 2만 5천원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말이죠. 그런 걸 따져보았을 때 작업실은 좋은 것 같고. 하지만 저희 팀은 또 밖에 나가서 돈 또 쓰더라고요. (웃음) 이건 뭐 사실 제 탓이에요. 제가 밖에서 커피마시는 걸 좋아하고 또 지금은 너무 더워서 에어컨 있는 데서 회의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생각해서 하는데 그래도 확실히 많이 절약 된 것 같아요. 잡지 디자인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디자인 할 때 편집장님도 참여를 하고 계신 건가요?저는 안 참여하는 것 같지만 디자이너가 무슨 결정을 내릴 때에 저한테 동의를 구하니까 어느 정도는 권한이 있는 것 같고요. 저희는 지금까지 저희 잡지 디자인을 한 사람이 세 명인가 네 명이었는데 꾸준히 계속 해오는 디자이너가 있어요. 민영이라고. 그 친구 덕분에 ‘헤드에이크는 이런 CI를 가졌구나? 이렇게 보일 수 있지 않은가’ 싶고 그걸 노력을 많이 했었어요. 원래 저희 팀이 첫 호를 낼 때 (첫 호에 대한 논란이 굉장히 많은데) 저희가 좋은 외국 잡지들을 엄청 많이 사서 봤었거든요. 하지만 디자인 공부를 정식으로 한 사람은 없어서 이런 인쇄매체를 낼 때 고려해야 될 것들을 책으로는 알았지 몸으로 아는 지식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좋은 건 다 베꼈어요. 솔직히. 그래서 완전 중구남방처럼 보이고 또 어떤 분들은 재미있다고 하는데 디자인을 좀 아시는 분들은 '아, 헤드에이크는 첫 호에 그 좌충우돌 한 것이 많이 정리되어 가고 있다.', '업그레이드되어 가고 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헤드에이크만의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저는 사실 우리 디자인이 비효율이라고 인쇄소에서 많이 지적을 받아요. ‘너네 버리는 종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좀 바꿔라.’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저희 판형이 가로 150에 세로 250이에요. 이게 곧 저희가 처음 택한 디자인 선택이었는데 약간 길쭉한.네, 뭔가 다른 잡지들 보다 샤프해 보였으면 좋겠고 또 핸디 했으면 좋겠고, 핸드백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이걸 했어요. 게다가 이 판형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디자이너가 있었어요. ‘스기우라 고헤이すぎうらこうへい’ 라는 일본의 유명한 선생님의 책에서 는 이게 황금비라고. (웃음) 그래서 택했었고 그걸 택했을 때는 더 많은 것이 고려되었어야 했는데 지금 그걸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서... 아직 그 장점을 십분 활용은 못한 것 같은데 아무튼 종이 낭비가 심하데요. 그리고 처음 헤드에이크를 디자인 하고 싶어 했던 디자이너들은 모두가 다 판형을 늘려달라고 저에게 요구했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 호는 실제로 판형을 늘려주었죠. 다시 되돌아 왔지만. 스기우라 고헤이(杉浦 康平, すぎうら こうへい、1932년 9월 8일 ~ )는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에도 시대를 비롯해 일본의 중세, 근대의 도안이나 아시아 각지의 도상 등을 연구하고 그것에 영향 받은 그래픽 디자인 작품들로 유명하다. 잡지 디자인 쪽으로의 작업도 많아 지금까지 2000권 이상의 표지를 작업했다. 판형을 늘려달라고 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그게 헤드에이크의 양날 검인데요. 헤드에이크는 사실 텍스트가 많잖아요. 텍스트가 많은 잡지에는 이 판형이 적합할 수도 있지만 잡지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각이미지가 많이 활용 되어야 읽기도 쉽고 장점이 부각 되는데 많은 디자이너들은 이런 잡지를 시각언어로 접근하니까 ‘조금 더 큼직하게’ 혹은 ‘좀 더 독자들이 확 와 닿게 확 끌 수 있게’ 그런 걸 고민하고 ‘지면이 너무 작다.’, ‘자기네들의 상상력을 더 펼치지 못하게 한다.’, ‘덜 수월하다.’ 뭐 이런 말을 하지요. 그런데 이제 저는 한번 판형 늘리고 난 뒤로는 다시는 그 요구 조건은 안 들어줘요. (웃음) 이번 해까지는 무조건 판형 바꾸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죠. 바꾸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합리적인 이유는 사실 못 대겠어요. 제가 디자인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고. 단, 처음 이걸 택했을 때의 장점을 아직 살릴 수 있는 노력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아무튼 이 판형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여전히 있고 제가 봤을 때는 아직도 헤드에이크는 텍스트가 많아서 충분한 것 같거든요. 그리고 이 판형으로 많이 각인이 되었어요. 아직도 우리 판형이 다른 잡지들과 놓여있을 때 헤드에이크가 눈에 뜨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아직 그 장점을 더 살렸으면 좋겠다.’라고 설득을 하죠. 인터뷰도 막바지로 가고 있습니다. 헤드에이크는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어요?독자층 확보를 위해서 매번 노력하는데. 어떤 걸 말씀 드려야 할까. 저희는 사실 처음부터 우리가 독립잡지로 불릴 줄 모르고 한 거거든요. ‘그냥 잡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규모의 면도 있고 한정된 독자층도 있다 보니까 ‘독립잡지’, 그 중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는 팀.’ 뭐 그렇게 인정받는 것 같은데 저희 잡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중잡지가 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잡지를 읽는다.'여서 콘텐츠를 기획 할 때 그걸 고려하죠.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사로잡힐까.’ 사실 ‘졸업 후 뭐하세요?’는 제일 촌스러워 보이긴 해도 제일 많은 독자들이 보고 이미 절판이 되었거든요. 물론 3년에 걸쳐서 절판 된 거지만. (웃음) 시간이 흘러도 이게 고민인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저희는 그런 류의 질문을 택하려고 있고요. 두 번째는 옛날부터 편향된 문화만 보여준다는 지적이 있었으니까 대중이 관심 가질 수 있는 그런 걸 좀 하자. 대중성 확보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다른 부분은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긴 한데 페이스북이랄지, 트위터를 통해서 좀 더 많이 접근을 할 수 있게끔 하자고 노력하는데. 하아, 책 만들기도 너무 바빠서 이걸 아직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이게 저희의 숙제에요. ‘숙제 - 온라인 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담당자를 한 명 두면 되지 않나요?기존의 멤버들이 여러 번 맡아보았어요. 그런데 저희 팀 특성상 온라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곧 뽑으려고요. 온라인에 관심 있고 헤드에이크도 관심 있는 사람을 뽑아서 맡길 생각입니다. 잡지를 만들다 보면 개인적인 성향이 헤드에이크라는 잡지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고, 편집장이 다른 잡지에서 받은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두 가지를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사실 최근에 깨달았는데 저는 헤드에이크가 내 친구들이랑 만든 잡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헤드에이크가 내 얼굴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줄 몰랐어요. 저 자신도 새롭게 알게 된 거였어요. 내 자신이 많이 투영되는 결과물이겠구나. 물론 당연히 투영되죠. 제가 많은 열정을 쏟았으니까. 그런데 저는 최대한 저를 안 넣으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런데 뭐 사실 잠재적으로 들어갔겠죠. 질문 선정이나 인터뷰이 선정 등등등.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 요즘 더 책임을 느끼게 되었어요. 이게 내 또 다른 얼굴이구나. 제가 영향 받은 거는 너무 많은데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제가 좋아했던 잡지들의 계보가 있는데요. (웃음) 이런 걸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제가 정기구독 해왔던 ‘월간 바둑’,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 잡지들은 정말 그 장르에 요지부동 1위에요. 하나는 완벽한 장르, 취미 잡지고 하나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다큐멘터리 잡지잖아요. 이 둘은 제가 너무 사랑하고 나도 이런 스페시픽(명확한, 특정한)한 분야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은 늘 있으나 그게 안 되고 있고요. 제가 어리잖아요? (웃음) 그리고 저는 그런 잡지들을 좋아했었으니까. 우리 헤드에이크도 전문지가 되면 좋겠다는 열망도 있고요. 나머지 문화지도 저는 많이 봤었어요. 저는 읽는 거는 거의 다 읽었는데 언급할만한 건 좀 모르겠고 그나마 디자인 잡지들은 정말 멋있는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특히 외국 거. 또 한국도 그래픽 편집장님은 너무 존경스러워요. 팀도 되게 소규모로 알고 있는데 늘 전문분야의 정보를 아카이빙(저장, 관리)해서 보여주시잖아요. 그 시스템이 저는 멋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머지도 되게 재밌던데, 요즘은 ‘지콜론g:’이 되게 재미있는 것 같고. 처음에 헤드에이크를 했을 때랑 지금. 분명, 하는 이유와 하고 싶은 이유, 해야 되는 이유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처음에는 정말 즐거워서 했고요. 그런데 즐거움만으로 이렇게 돌아올 수없는 강을 막 건널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처음부터 교보에 내고 이랬는데 (그전에 이 일이 이러한 책임과 부담을 줄지 모르고 한 거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시도 할 수 있었던 건, 분명 우리가 할 이야기가 의미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우리가 당연히 정답 줄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질문 잡지 한 거였고. 단, 우리 고민을 같이 공유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했는데 그런 열정이 1년 정도를 버티게 한 것 같고요. 2년차는... 그거 뭐라고 그러지 2집 내는 징크스들 있잖아요? 서포모어 징크스.네, 잡지로는 2년차라고 할 때는 오기가 좀 필요해요. (웃음) ‘어? 왜 대박이 안 나지?’ 이런 생각도 하고 ‘그래 누가 이기자 해보자.’ 이런 오기로 2년은 버티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구체적이지 않은 비전을 어떻게 구체화할까를 고민 했던 것 같고. 지금 3년째 되었을 때는 정말 (웃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요즘은 사실 그런 생각해요. 이 작업이 여전히 의미 있고 여전히 고민을 같이 해주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이 잡지가 더 오래 가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잡지가 오래가려면 해야 하는 고민들은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우리 팀이 어떻게 오래 갈 수 있을까.’ 세 번째는 ‘계속 발전하는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여러 가지 고민들을 지금도 하고 있어서 제가 약간 정리가 안 되는데 3년째부터는 확실히 그런 구체적인 로드맵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20대 초반에 뛰어들었던 일이 이제는 정말 20대 후반이 되어가고 있고 나이에 따라서 갖게 되는 일의 기쁨도 다르단 말이에요. 보여져야하는 성과도 있고. 그래서 이 일을 장인정신으로만 가지고 가야할지 아니면 남들이 평가해주는 수익이랄지 혹은 독자층이랄지, 그런 걸로도 인정받으려고 저는 노력하고 있는데. 이 시기를 빨리 앞당겨서 빨리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사실 큰데 ’아, 또 내가 능력 안 되는데 조급해서 힘 빠지나?‘ 그런 딜레마에 빠져있어요. 결국에는 잘 만들고 많이 봐주게끔 노력을 해야 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지치지 않을까.‘ 그게 지금 제일 큰 고민이에요. 과연 지치지 않고 잡지 매체를 전업으로 할 수 있을까요?음...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솔직히. 솔직히?대신에 뭔가 잡지와 시너지(상승효과)가 되는 다른 걸 함께 해야겠죠. 사실 저희 팀은 내일 캠프에서 10대들에게 잡지 만드는 걸 가르치러가요. 그런 서브적으로(부분적으로) 우리 잡지와 연계되는 다른 것. 그거는 저희가 강사료를 받고 가거든요. 잡지만으로는 사실, 많은 기존의 대중잡지들이 솔직히 광고 수익 혹은 다 적자. 정기구독자가 아예 없는 잡지들도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잡지만으로 먹고 살겠다.’보다는 좀 더 재정적 안정성을 위한 다른 사업들도 고민을 같이 해야지 되는 것 같아요. 만약에 팀원이 풍부하다면 그래 잡지 잘 내는, 대중잡지 보면 왜 애드벌타이징 매니저(광고 매니저), 에디팅 매니저(편집매니저) 이렇게 분업이 되어 있잖아요. 잡지 잘 만들려고 노력하는 부서 따로 경영할 수 있는 부서 따로 이렇게 되면 진짜 환상적일 것 같은데 대부분의 독립 잡지나 소규모 잡지들은 다 멀티 플레이니까 그런 잡지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서브적인(보조적인) 사업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헤드에이크는 그걸 계속 고민하고 있고요. 그러면 앞으로 헤드에이크를 통해서 어떤 것을 인정받고 싶은지?만약에 되게 근사한 인정 있잖아요. ‘어디에서 인터뷰했어요.’ 혹은 ‘헤드에이크 잘 팔린데.’ 이런 걸로는 이미 제가 생각한 인정 기준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헤드에이크는 정말 운이 좋게도 소규모 출판이 붐업(활성화) 될 때 너무 (시기를) 잘 타서 인터뷰도 많이 했고 지금도 20대라는 핫 키워드를 가지고 있어서 자꾸 회자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인터뷰는 1회성이에요. 그건 그냥 기성세대들이 써먹는 콘텐츠 중에 하나라서 그 인정은 사실 저는 별로 좋은 기준이라 생각하지 않고. 단, 저는 진짜 10년 뒤쯤에 '아, 이 잡지가 한 세대의 고민을 진짜 진지하게 다뤘었다.', '이 잡지를 다시 한 번 보면 그 당시의 1980년대 생들이 20대 때 했던 고민은 쫙 볼 수 있어.' 이런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큰 바람이고 ‘동시대의 내 친구들, 또래들이 같이 고민해서 좋았다.’ 혹은 ‘조금 위로가 되었다.’ 아니면 더 나아가서 ‘나는 선택을 내렸다.’ 이런 리뷰들을 아주 가끔씩 받고 있는데 그런 힘을 더 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오롯이 읽는 분들이 느끼시는 만큼이 저희가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을 드릴 건데요. 헤드에이크 편집장이 저희 청취자들 및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한 가지.어우 어려워, 어려워. 그냥 되게 심플한(간단한) 질문인데 헤드에이크가 되게 다루고 싶었는데 저희 능력 밖이라서 못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그냥 퍼뜩 떠오른 건 '요즘 어떤 음악 들으세요?'에요. 이건 되게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제가 청취자 분들의 색깔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뭐 이런 팟캐스트랄지 이런 걸 듣는다면 음악을 좋아할 것 같고. 저는 요즘 뭘 들을지가 되게 고민이에요. 왜냐하면 한동안 특정한 이유로 음악을 안 들었었는데 요즘은 들리는 게 음악이고 틀면 늘 아이돌 음악이 나오고. 그런데 정말 저 음악들이 좋아서 듣는 걸까라는 생각이 저는 많이 들거든요. 물론 좋고 중독성이 있는데 정말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아는지, 어떤 음악 듣는지’가 되게 궁금해요. 취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재밌네요. 마지막으로 헤드에이크 편집장 정지원에게 '헤드에이크'란?헤드에이크란? (웃음) 정말 헤드에이크에요. 제 삶의 두통의 거의 90%는 헤드에이크 때문이에요. 이건 즐거운 두통인데. 헤드에이크는 질문 잡지잖아요. 또 (말이) 길어지려고 해서 걱정인데 저는 사실 요즘 질문이 되게 줄고 있어요. 저 자신은. 그런데 이게 줄어드는 이유가 해결이 되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 어차피 인생에 답이 없다.' (웃음) 뭐 이런, 뭔가 굉장히 긴 호흡으로 질문을 고민해야 되는데 ’내가 너무 이 짧은 순환, 2개월 안에 이 고민을 해결하려고 하나?‘ ’이 고민을 하려고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진짜 두통이에요. 헤드에이크가 제 인생의 두통이죠. 진짜. 왜냐면 잘해내고 싶은 일인데 솔직히 내가 잘 해내고 있는지 확신도 없고 정말 ’이걸 멈춰야지 내 두통이 사라지는가?‘라는 고민을 사실 해요 요즘. 알겠습니다.하지만 계속 나올 거니까요. (웃음) 정기구독은 꼭 하셔야 되요. 네, 정기구독 꼭 해주시고요. 저희가 준비한 질문과 인터뷰는 여기서 끝입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어보면서 아까 잡지를 통해서 어떤 것을 인정받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를 담고 싶어 하고 시대의 질문을 담아서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그런 인정받으시길 바라고 여러분 정기구독 꼭 해주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 인터뷰+편집: 김경현 / 인터뷰+녹취 김지철 / 자료 제공 / 헤드에이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