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음향 인터뷰 *2015년 9월 낙원상가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김경현사진 성의석 89년 1월, 갓 군대를 제대한 스물세 살의 청년은 대경 바스컴이라는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SR업체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IMF가 터진 직후, 10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나와 ‘글로벌’한 SR업체를 운영하겠다는 포부로 온누리 음향이 문을 열었다. 98년 4월부터 낙원상가를 지키고 있는 온누리 음향의 정병석 대표님을 만나 한국 SR산업의 역사와 낙원상가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온누리 음향의 시작은 1998년 4월. 89년 1월부터 대경 바스컴에서 처음 일을 하기 시작한 정병석 대표님은 청계천에서 구르마부터 끌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구르마부터 끌었죠. 지금은 세운상가가 반이 나뉘어서 없어졌지만, 세운상가에 반 없어진 그 라인에 대경 바스컴 매장이 있었어요. 대경 바스컴은 지금은 공장까지 가지고 있는 SR쪽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에요. 그 당시에는 젠하이저 등을 수입했었는데 지금은 스피커와 엠프 제작도 하죠. 그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창고에 가서 물건 나르는 일을 심하게 했어요. 지금까지 27년 되었네요.” 그 당시 유망직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전자. 박정희 정권 때부터 쭉 키워온 세운상가의 전자는 유명했다. 어릴 적부터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정병석 대표님은 세운상가에 있던 아주TV학원을 다니면서 전자기기, 음향, 영상기기 자격증을 획득하고 한원에서 소개해준 회사에 입사한다. “그게 대경 바스컴이었죠. 1월 23일. 잊어먹지도 않아요. (웃음) 회사를 들어가서 10년 근무를 하고 나와서 독립을 한 것이 지금 이 온누리 음향이에요.” 하루 세 시간씩 10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된다던가. 한 회사에서 10년을 꾸준히, 성실히 일했기에 지금의 온누리 음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경 바스컴은 수입품 전문 유통회사거든요. 3, 4년간은 짐만 나르고, 일주일에 두 번씩 들어오는 걸 창고에 올리고 내리는 걸 했어요. 3년이 지나니까 영업부로 배치가 되어서 일을 배우고. 그때는 시공을 많이 했어요. 현장시공. 교회시공은 기본이고 운동장, 체육관 시공을 많이 했죠.” 낙원상가에 있던 대경 바스컴 전시 매장에서 3년간 팀장으로 근무했던 정병석 대표님은 낙원상가 257호 한 칸으로 온누리 음향을 시작, 1년 후 현재의 매장을 인수한다. 세운상가와 용산전자랜드, 낙원상가를 모두 경험한 대표님에게 낙원상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낙원상가는 기본이 3,40년이잖아요. 각각의 업주들 간에도 선후배 관계가 돈독하죠. 형제들처럼, 이웃사촌처럼 지내는 것이 낙원상가라면 세운상가나 용산전자랜드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보이는 사람, 아는 사람 인사하고 한 집만 건너면 몰랐죠.” 같은 업종으로 똘똘 뭉친 낙원상가의 특성과 다 같은 음향과 전자 쪽이지만 분야가 반대인 전자랜드와 세운상가의 특성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낙원상가는 낙원상가의 200가구가 다 알아서 도움이 안 되는 집이 하나도 없어요. 다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있는 거예요. 쉬운 이야기로 흔히들 말하듯이 ‘가족 같다고’. 낙원상가는 그런 면이 있어요. 다른 것은 세운상가와 전자랜드는 사람이 계속 바뀌어요. 업주도 바뀌고. 낙원상가는 1년에 한 집이 바뀔까 말까 해요. 많이 바뀌면 한 집에서 두 집.” 처음 낙원상가에 왔을 때만 해도 이상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업주들 간의 유대관계가 돈독하고 낙원상가 200가구를 모르는 사람 없이 모두 알기에. “1년만 근무하면 다 알게 되거든요. 형, 동생하고 지내니까 굉장히 편하고 여기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가기가 쉽지 않죠. 여기가 워낙 좋으니까.” 처음 지었던 이름은 영어로 ‘글로벌 사운드’. 순우리말로 땅, 지구를 온누리라고 하기에, 큰 포부를 지닌 온누리 음향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98년 개인사업으로 시작한 온누리 음향은 2005년 온누리 음향 주식회사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전환했다. 올해는 주식회사로 전환한지 10년이 되는 해. 우리나라의 음향은 어떤 발전을 거듭했을까. 한국의 SR산업과 함께 성장한 온누리 음향 정병석 대표님의 생각은 이러했다.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SR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등장했는데, 그 전에는 전부 번데기 앰프에 콘을 쓰는 방식이었죠.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을 전후로 EV, JBL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완성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알맹이만 들어와서 통을 다 국내에서 만들었어요. 그렇게 판매를 하기 시작했죠.” 지금의 SR시장을 상상할 수 없는 낮은 퀼리티의 시장이었다는 그 당시, 정병석 대표님이 89년도에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전국에 SR을 하는 곳이 열 곳도 되지 않았다. 그 시장이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급속도로 성장한 결과 세계적인 제품들이 모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외국에 있는 퀼리티 높은 SR시스템은 모두 우리나라에 와있다고 보면 되요.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빠른 것 같아요. 음향은 특히나. 음향쪽은 거의 2,30년 전에 SR이 시작해서 15년 만에 전 세계의 모든 SR시스템이 다 들어와서 판매가 되고 있으니까요.” SR산업의 수요는 30년 전에 비해 100배, 1000배 성장했다. 허나 10년 전부터는 한정된 수요에서 공급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SR산업이 30년 정도 된 사업인데 10년 동안 성장기를 거치고 20년 동안은 계속 확장을 한 거죠. 물론 그만큼의 수요는 생기겠지만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확장만큼은 수요층이 따라오지 못하죠. 공급이 넘쳐나고 업체들 간의 경쟁이 심화 되어서 사실은 피보고 살지요.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경쟁이 심해요.” 온누리 음향은 기본적으로 설계, 시공을 하지만 주로 유통을 하는 회사다. 스페인, 중국 등에서 직접 수입을 하고 전국에 있는 약 3~400개의 업체들에 매달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용산, 청계천, 낙원에 직접 와서 몇 군데 보면 속지 않고 확실히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죠. 저는 매장을 운영한 지 17년 되었거든요. 한 번 생기면 없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외부에서 공사하는 업체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거든요. 간단하게 사무실 하나 내놓고 전화 놓고 하다가 일이 없으면 문을 닫는 거니까. 하지만 낙원상가의 매장들은 한 번 생기면 없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왜냐면 내 일거리고 매장이라는 것은 그만큼 오프라인에 손님들이 와서 물건을 사고 그러니까 꾸준히 유지 될 수 있죠.” 17년간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직접 와서 제품도 보고 “이런 매장을 운영할 정도의 실력이면 맡겨도 되겠다.”고 해서 많이 일을 맡긴다는 대표님의 말. 특히 교회 덕분에 우리나라 SR사업이 많은 성장을 이뤘다는 말도 덧붙인다. “한국의 교회들이 대부분 다 컬럼 스피커를 썼는데 전환 시기가 있었어요. SR이 올림픽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부터 근 20년 가까이는 다 교체 작업이었거든요. 기존의 교회들이 신축은 물론이고 긴 나팔이나 컬럼을 쓰던 곳들이 2WAY, 3WAY 스피커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SR사업이 교회를 통해서 일정부분 성장한 거죠.” 온누리 음향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까. 아침부터 바쁜 일상은 모두 똑같을 테지만 낙원상가에서 지나가는 하루가 궁금했다. “설계하고 시공하는 업체는 1년 후, 2년 후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어요. 보통 짧아야 6개월 전에 계약을 하거나 보통 1년 후의 것을 계약하거든요. 유통하는 업체는 그렇지 않아요. 유통은 빨라야 일주일. 한 달 이상을 넘어가는 계획이 없어요. 매일 이루어지는 유통이니까. 어제 했던 일계표를 정리하고 오늘 나가야하는 걸 정리하고 그 정도죠. 우리는 하루 내내 앉아서 영업을 하고 우리가 관리하는 수백 곳의 거래처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물건을 요청하면 바로바로 납품을 해요. 100평에 가까운 창고에 가득 찬 재고는 언제 어떤 물건이 나갈지 모른다. 종류만 해도 수천가지. 항상 물건을 갖고 있어야 시공하는 업체들에게 바로바로 물건을 보내줄 수 있기 때문에 물건이 오늘 필요하다고 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건을 구매해서 보내고 있다. ”이게 유통의 기본이죠. 낙원상가에 있는 매장들은 모두 마찬가지에요. 전체가 다 그렇게 영업을 하죠.“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10년 전쯤 부터는 외국의 퀼리티 높은 스피커들이 다 들어왔다. “우리가 공연장에서 듣는 스피커들은 전부 전 세계적으로 A급만 설치되어 있어요. 우리나라의 공연 환경은 세계 어느 곳보다 좋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귀가 많이 트였죠. 서울의 강남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들을 수 없는 시스템에서 음악이 나와요. 2,30억씩 들여요. 펑션원 같을 걸 나이트에 가져다 놓죠. 상상이 안 되죠. 음악을 듣는 수준이 워낙 높아졌고 또 그런 한국 사람들만의 퀼리티 좋은 걸 원하는 특성 때문에 시스템 교체가 굉장히 빨리 되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낙원상가에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지 않았을까. “별로 없어요. (웃음) 낙원상가에서 기억에 남는 거야 뭐,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이겠죠. 나쁜 기억이 없네요. 나쁜 기억이 있었다면 아마 여기를 떠났겠죠?” 하지만 어떤 일이든 고충도 고민도 함께 따르는 법이다. 앞으로 어떻게 온누리 음향을 운영하실 생각인지 물었는데 정병석 대표님은 의외의 답을 주셨다. “우리 SR산업이 어떻게 될 지는 불투명 하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5년 전부터 시행된 조달 시장의 3자 단가에요. 낙원, 청계천, 용산에서 유통을 하는 사람들의 매출액은 30%가 떨어졌어요. 왜냐면 조달 시장은 나라장터에서 물건을 사게 되어 있으니까. 관공서, 동사무소 모든 사람들은 나라 장터에서 물건을 사요. 청계천, 낙원, 용산에서 마이크 하나도 살 일이 없는 거예요. 그 시장이 완전히 이분화 되어있는 상태에요. 낙원상가의 일반인 고객들이 많이 떨어진 이유에는 나라 장터가 한몫을 하는 겁니다.”“지금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요. 물론 들어오라고 이야기는 하죠.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나라장터에요. 공장 등록도 없이 우리처럼 유통하는 사람들은 못 들어간다는 거죠. 낙원상가 사람들은 100% 못 들어가요. 그런 부분만 개선이 된다면 지금보다 30%. 장담합니다. 1년에 한 번씩 재계약하면서 가격을 계속 낮춘다고 하지만 1년 2년 3년 지나면 제품을 단종 시키고 모델 다른 것으로 바꿔서 다시 높은 가격으로 올리고.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아이템을 관공서에 설치 할 수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싸구려를 가져다가 몇 천만 원씩 주고 하니까 모순을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죠.” 온누리 음향과 정병석 대표님 개인적인 꿈이 궁금해졌다.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온누리 음향은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까. “거창하지는 않고요. 개인의 한 이익만 바라보고 회사운영이 되지는 않거든요. 제 삶의 터전인 낙원상가를 보고 이야기를 하면 지금의 수준은 자체 내에서 자기 회사가 운영이 되어서 자기 직원들이 월급 가져가고 회사 운영하는데 문제가 없으면 지금은 성공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수십 명 딸려 있잖아요. 요즘 직업 나누기 같은 것이 이슈가 되지만, 직장 못 구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고. 회사가 운영이 돼서 많이는 못 주지만 먹고는 살만큼 주고 직원들 월급 제때 챙겨줄 수 있다면 지금 만족한다고 봐야죠. 개인적인 것은 똑같아요. 우리 직원들, 나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이 잘 먹고 살면 되겠다. 따로 개인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낙원상가에 오면 어떤 점이 좋을 까. 낙원상가에서 운영하는 대표님들께 계속하고 있는 질문이다. “어떤 점이 좋다기보다 저는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해요. 우리 온누리가 추구하는 것은 뭐냐 하면 온누리도 물론 먹고 살아야겠지만 시공업자들이나 공사를 하는 사람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물건을 팔아서 적정한 마진을 보길 원하는 것이 저희 시스템이에요. 너무나 잘 알려진 아이템을 우리에게 사다가 그분이 팔 때에 그분도 마진이 없고 우리도 마진이 없으면 둘 다 힘든 것 아니겠어요? 저는 우리도 적정한 마진을 봐야한다고 생각하고 물건을 가져다 파는 사람도 적정한 마진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해요. 그래서 그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고. 다년간 SR사업을 해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퀼리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너무 가격만 비싸고 형편없는 물건을 아예 취급하지 않아요. 또 “가격은 싼데 물건은 좋다?” 이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런 물건은 없으니까.“ “‘싸고 좋은 것은 없어요. 비싸고 안 좋은 것은 있어도.’ 손님들이 그런 마인드를 가져야해요. ‘제품이 가격대비 적정한가를.’ 본인들이 보면 알잖아요. 우리가 냉장고나 TV를 살 때 가서 보고 판단하잖아요. 유통할 때 남는 마진이 10%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걸 깎아서 뭘 먹고 살라는 건지. (웃음) 우리는 아이템을 하나 선정하더라도 퀼리티가 떨어지는 건 안 하는 스타일이고 우리 아이템이 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상급을 팝니다. 어디에 가서 내놓아도 “이런 걸로는 공연 못 합니다.”는 팔지 않아요. 그런 제품을 파는 곳이 있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시스템은 상중 이상 되는 것만 팔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은 거죠. 온누리에서 판매하는 아이템은 보장하는 퀼리티니까 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