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웹진 더힐을 통해 공개했던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김경현, 현승인날짜 2011년 1월 12일장소 상수역 이리카페 음악적 이야기 보다는 가리온과 힙합이 어떻게 홍대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소위 ‘가리온‘을 힙합 1세대, 한국 힙합의 최전선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입장에서 가리온에게 신촌이나 홍대라는 장소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요?메타 : 저희에게 홍대는 그냥 서식지죠. (웃음) 우리가 먹고사는 실질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실제 활동하는 필드이고요. 예를 들어 저희가 다른 지역이나 다른 무대나 다른 공간에서 활동을 하다가 홍대나 신촌 쪽으로 왔다면 특별한 의미나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가지지 못해요. 예를 들어 나찰이나 제가 지방에서 활동을 하다가 홍대로 ‘입성’ 을 한 후 자리매김을 했다면 홍대에 대한 의미가 특별했겠지만, 저희는 애시 당초 이곳에서부터 생겨난 팀이기 때문에 홍대를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나찰 : 시작한 공간이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것은 맞는데,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하하. 막연하게 ‘여기 싫어‘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봤을 때 홍대가 아닌 다른 문화적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죠. 지방공연 다니면서 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아요. 지방은 둘째치더라도 서울지역 내지는 경기도일대만 하더라도 이런 환경이 없잖아요. 힙합이라는 문화가 홍대에서 생겨나던 시기에 기존의 홍대문화를 구축하고 있던 세력으로부터 알력행사 같은 건 없었나요? “힙합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홍대가 지저분해 졌다.”라는 말도 있습니다.메: 그 말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해요. 사실상 저희가 처음 시작하던 90년대 중 후반 때, 저 개인으로는 96~97년, 당시에 홍대의 어떤 필드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가 있던 동호회에서 간혹 한 달에 한 두 번이라도 자체적인 행사나 음악 감상회가 있었잖아요. 음감회 같은 것을 할 때 대관을 해서 공연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약간 약간씩 움직였어요. 그맘때만 해도 홍대에선 힙합이라는 단어조차도 없었어요. 그냥 저희 같은 동호인들을 통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정도였죠, 일회성이고 단발적인. 그런데 그때 홍대 신촌은 그냥 ‘록’이었죠.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의 음악사적으로 봤을 때 90년대 초반까지였나요? 그러니까 90년 초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와서 가요계를 평정하기 직전까지였어요. 제 기억으로는요, 우리나라는 록과 발라드가 완전히 장악을 했었어요. 언더그라운드는 록 음악이었고. 그맘때쯤에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얼터너티브 록을 포함한 모든 록 씬이 급성장을 한 때였어요. 당연히 저희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었죠. 그런데 97년 말에 공식적으로 MP가 시작을 하면서, 매주 힙합공연이 열리고,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위치도 아주 묘했어요. 아시죠? (웃음) 롤링홀 바로 옆에 홍대 신촌 사이란 말이에요. 그러면서 홍대 쪽에서도 그 영향을 받고, 슬러거와 같은 힙합을 하는 클럽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주변 인식들이, ‘아 이제 힙합도 생겼다.’ 그리고 그맘때 쯤 언더그라운드 쪽에서는 트랜스나 테크노 뮤지션들도 막 생기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 당시 록을 하시던 분들은 많이 받아 들였었어요. 단적인 예로 당시 꽤 한국에서 명망 있던 팀들과도 아주 문제없이 올 라이브를 많이 했었어요. 노이즈가든, 힙포켓이랑도 라이브 무대에 같이 올라갔었어요. 어떤 음반이나 음악적 결과물을 낸 건 아니지만, 무대에서 계속 같이 했어요. 락 씬에서도 긍정적으로 본거죠. 래퍼들이 대중가요에서 힙합이 매우 가볍고 왜곡되어 비추어 지는 것을 싫어하듯이, 락커들도 락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을 싫어했어요. 그건 누가봐도 구리잖아요. 그런데 제대로 된 래퍼들이 나오니까, 락커들도 음악적으로 열려있었던 거죠. MP자체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었죠. 어떠한 형태로든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었는데, 바람과는 다르게 2002년에 문을 닫아버렸다 말이에요. ‘홍대가 힙합 때문에 지저분 해 졌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엠피가 계속 존재했다던가, 아니면 그 이후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MP가 공연장으로서의 공간을 없애버리고, 기획사가 되어버린 다음부터 저희가 설 곳이 없어졌어요. 가리온도 MP랑 헤어지고요. 그 이후로 자체적으로 저희끼리 활동을 했었는데, 한계가 있었죠. 2002년에 압구정에서 크레이지라는 클럽에서 공연장을 5개월 운영하다가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결국 문을 닫았어요. ///힙합이라는 것에 대한 스타트를 시켜놓고, 사람들이 힙합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즈음이죠./// 막판에 MP가 문 닫을 때 장난이 아니었잖아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메: 무지무지하게 많이 왔었죠. 금요일 공연도 100명이 넘게 왔나? 그런 식으로 매주 하던 것이 없어지니까,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그 때 비집고 들어온 게 파티문화였어요. 그 전부터 존재는 했지만, 거의 2002년인가, 2003년에 아프로킹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아프로킹이 부비부비와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야기 했다고 하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해요. 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 거죠. 그런데 문제는 그걸 보고 다른 장사꾼들이 얍삽한 계산을 하기 시작한 거죠. (나찰 : 그쵸. 그게 포인트죠.) 중요한건 MP가 문을 닫으면서 MC들이 설자리를 잃었다는 거군요.메: 저희 입장에서의 단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가리온은 더 이상 공연무대에 설 곳이 없어진 거예요. 저희는 ‘라이브‘에서 태어난 팀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그나마 아프로킹같은 파티기획팀들이, 적어도 파티지만, 공연프로그램을 넣었단 말이에요. 당시 아소토유니온과 같은 팀과 같이 올라가거나 저희 팀만 따로 올라가거나, 이런 식으로 댄스 위주의 파티에서 한 무대씩 줬단 말이에요. 그게 저희에게는 주눅 드는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무대에서 매주 저희는 트레이닝을 하는 기분처럼, “다음 주에는 이런 걸 해보자”, ”다음 주에는 신곡 발표를 할 거야”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흐름이었는데 그것이 단절된 상태에서, 드문드문 한 달에 한두 번, 많게는 네 번, 파티무대에 올라가서, 저희를 보러오거나 저희 음악을 들으러 온 게 아닌 춤추러 왔다가 그냥 서비스로 보는 정도의 무대가 되어 버리는 거니까, 저희가 주눅 들게 되더라고요.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더 비참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조차 없어 졌다는 거죠. 그때 당시 DJ들은 어땠나요?메: 클럽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생각을 하기에는 힙합이 제대로 된 베이스를 깔지 못한 상태에서 MP가 문을 닫거나, 공연문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 부작용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는, 힙합의 제대로 된 맛들이 가지치기 당해버리니까, 사장님들이 생각하기에는, 힙합이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거죠. 그 맘 때 같이 물려서 하우스라든가 트랜스 음악이 유행하자 힙합은 인기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리고 힙합DJ들이 가지치기 당하죠. DJ들은 “어? 나는 힙합 DJ고 힙합의 수혜자들인데...” 힙합을 듣고, 인생이 바뀌어서, 턴테이블을 잡고 믹싱을 하고 스크래칭을 하고, 투 잡을 했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에요. “아 저 힙합 DJ 인데요?” ”그래? 그럼 나가. 난 딴 DJ 구하면 되니까“ 이렇게 된 거에요. 만약에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문화적인 베이스가 이쪽 바닥에 있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거기에 대한 기댈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한 번 더 제고하거나 거기에 대한 힘을 얻어서 바꾼다거나 할 텐데, 그런 것이 아예 없으니까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어지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아 그래요. 그러면 알겠습니다. 사장님” 하고는 빌보드 탑 텐부터 해서, 가리지 않고 틀게 되는 거죠. 그건 어차피 DJ들의 이야기고,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으니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한 일면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느끼기에는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그 당시 몇몇 케이블과 같은 미디어에서 당시 클럽과 파티에 대해서 엄청나게 다뤘어요. 음악적인 것이 아니라, 파티나, 파티에서의 DJ들과 그런 DJ들의 음악들에 열광하는 뭔가 스타일리시한 것들, 부비부비라던가 그런 것 들이 아주 좋은 아이템으로 보였던거죠. 거기에 집중조명을 때려버리니까 저희는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느낌.’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더래도 ’힙합이 뭔가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구나’ 그래서 이야기가 좀 길었지만, 아까 ‘힙합이 들어와서 홍대를 지저분하게 했다’는 말에 공감한다는게 이런 측면입니다. 솔직히 힙합 들어와서 어떻게 됐냐는 거죠. 지금 홍대가 ’힙합-씬“이 있어요? 아니면 힙합이 문화가 되었느냐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뭐...(나찰 이어받으며)나찰 : 저희들도 이야기해요. 음악 하는 친구들 이랑도 이야기하는데, 지금 홍대바닥에 힙합은 없어요. 사실입니다. 수많은 클럽들도 힙합클럽이 아니고 어떤 Bar에서 흑인음악만 전문적으로 튼다고 해도 이슈가 될 정도에요. 그렇게 되어버려서 저희들도 굉장히 가슴이 아픕니다.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님과도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리드머는 홍대 힙합 씬과 제대로 된 마인드를 가진 뮤지션들을 지원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인데, ‘과연 우리가 도와줄 힙합 씬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고 하시더군요.메타 : 예, 맞아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죠. 작년 10월에 2집이 나오고 저희도 처음으로 디지털 음원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런 음원들이 어디서 어떻게 판매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관심 있게 한번 봤단 말이에요. 놀랐던 게, 저는 그렇게 많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이름도 음악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저는 진짜 약간 충격 받았어요. 거기에 보니까,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현재 가장 판매가 잘 이루어지는 차트별로, 순서대로 쫘악 있는데, 50위까지인가? 저희가 없더라고요. (일동웃음) 그래서 ‘아 우리 되게 인기 없는 팀이구나. 우리보다 위에 있는 인기 만발의 팀들은 어떤 팀들인가?’ 봤는데, 정말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모든 대중들이 아는 인기 있는 많이 알려진 팀들은 사실상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그 수보다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의 정말 못 들어 본... 예를 들어서 ‘MC 녹차라떼’ (편집자 주 : 까페에서 MC메타가 주문한 음료가 녹차라떼였다.) 뭐 이런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근데 보니까 그분들은 아예, 무대라던가... 물론 그분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냥 온라인상에서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들 만들고.. 물론 시각적인 이미지가 2번째겠죠. 음악을 먼저 만들겠죠. 그리고 디지털 싱글로 공개를 하고요. 왜곡 시켜서 말하자면, 온라인상의 블로그나 싸이월드나 이런 곳에 걸기 좋은 스타일의 음악들을 만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엄청난 다운로드 히트수를 기록을 하면서 순위권에 올라가고, 그게 당연히 보는 대중들에게는 ‘이게 이 시대의 흐름이다.’ 인식을 하게 되는 거고, 그런 만큼 다른 색깔을 가지거나 측면에 대한 느낌을 만들려고 하는 뮤지션들에게는 더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힙합 씬이 거리에 존재하지 않고, 인터넷에 존재하기 시작했어요. MC들이 관중 앞에서 랩을 하는 게 아니라, 집에 홈레코딩 시스템 차려서, 집에 있는 마이크에 대고 랩을 하기 시작한거죠. 앨범 같은 경우에도 언더그라운드나 인디뮤지션들이 대부분 공연으로서 이루어진 다음에, 그곳에서 괜찮은 반응을 본 후 앨범을 내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샌가 힙합 씬을 보면, 난데없이 앨범을 내고 나서, 공연을 하다가, 앨범을 또 내고, 다시 공연을 하는데, 이것이 과연 힙합이냐 이거죠.메: 모양새만 볼 때는 메이저에서 하는 시스템이랑 똑같아요. 메리트가 없어요. 저랑 나찰은 처음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지금으로 치면 ‘덕후’였죠. 저희는 랩만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힙합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서 더 많이 느끼고 싶고 알고 싶었어요. 우리가 그런 문화에 대해 탐닉을 하다가, 저희 스스로 하게 된 이유도 하나였단 말이에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을 수 있는데, 문화까지는 모르겠지만, ‘왜 랩음악이 안 나오지?’ 의문이 많다가 스스로 하게 된 경우에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을 해서, 저희가 바라고 있던 건 아주 단순한 하나였어요. 그런 문화가 분명 ‘오버그라운드’라고 표현하는 대중성을 고려한 상업적인 시스템과는 잘 안 맞는 장르이자 문화라는 것을 느꼈어요. 당시 우리가 듣던 음악에서도 래퍼들이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물론 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그래서 확실하게 저희가 느꼈던 게, 맨 처음 저희가 썼던 가사, 가리온 1집이 그런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거였어요. 분명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왜냐면 저희는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쪽 시스템이랑은 무관하게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의 것을 보면, 그때 당시에는 그래도 저희는 느꼈던 것이, 수적으로 굉장히 적고 공간적으로도 협소하고 적었지만, 분명 ‘이름’있는 공간이 있었거든요, ‘언더그라운드‘라는. 그런데 지금의 언더그라운드는 ’이름‘이 없어요. 도대체 지금 메이져에서 하는 것과 뭐가 차이가 있느냐 하는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앨범내고 한 달 동안 빡세게 프로모션 하고, 두어 달 하면 롱런하는 거고, 한 세달 뒤에 잠수타고 작업하고 다음 것 내고, 다음 것 내고, 다음 것 내고, 그냥 공장이 되었어요. 앨범 찍어내는. 그냥 공돌이 공순이가 된 거에요. “오버에 가지 못해 언더에 있는 거다“라는 건가요?메타 :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너희 여기 왜 있어?” 라고 노골적으로 물어봤을 때,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언더에서의 래퍼들이 말하는 콘셉트, 주제, 아니면 취하고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힙합을 콘셉트로 해서 데뷔하기 위해 준비하는 연습생들이랑 뭐가 다르냐 하는 거죠. 아무 차이가 없어요. 지금도 확실하게 느끼지만, 저희는 언더그라운드가 하나의 attitude로서의 명확한 의미가 있는 거지, 어떤 자격증처럼 “언더그라운드 MC 1급입니다.” (일동 웃음) 이런 게 아니잖아요. 한때는 그런 비슷한 자부심같은 것도 있어서, “나 언더야” 하는 팀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차라리 그런 이야기 하는 게 보기엔 꼴사나워도 오히려 나았어요. 되게 있어 보이는 척 내지는 ‘뭔가 있나봐?’ 이런 느낌이라도 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하나 나서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이다." "언더그라운드 Represent 한다." 이런 사람들 없어요. 그래도 좋아요.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본인이 어디서부터 수혜를 받고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인식을 못 한다는 건 문제가 있어요.나찰 : 여긴 악순환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희도 뭐라고 하죠. 베드룸 BEDROOM MC들 한테 뭐라고 하죠. 밖에 나가서 보여줘야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실제로 잘하는 신인, 잘하는 꼬맹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 MC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도끼 이후로는 안 나오더라고요. 도끼정도만 해도 마지막 끝물을 탔어요, (일동 웃음) 공연에 설 수 있는. 9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이 끝까지 버텨보려고 공연을 만들고 공연 브랜드를 만들어서 해보다가 안 되니까는 하나씩 빠지고 지금 사실상 설 수 있는 신인들, 아니면 내가 가서 뭔가 뽐내고 싶은 친구들이 설 곳이 아예 없어져 버렸어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저희들도 안타깝고 답답해요. 왜 그래야 되는가에 대해 고민을 처음부터 또 다시 하게 되니까. MP같은 경우에는 운영상의 문제로 클럽을 닫은게 아니잖아요. 이 말은 클럽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건데, 지금 홍대에는 힙합공연을 보고 싶어도 갈 곳이 왜 없을까요? MP와 같은 클럽을 다시 만들 순 없었을까요?메타 : 홍대 자체의 클럽문화 자체가 MP이후의 슬러거, LIVE에서 끝날게 아니었어요. 락같은건 경우엔는 신촌, 홍대에 라이브클럽에서 록밴드들이 계속 공연을 하고 그런 공간들이 있으니까 자리를 잡게 되는데, 힙합은 그렇지 않았단 말이에요. MP와 같은 클럽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되게 커요. 뮤지션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책임이 있긴 하겠지만, 저희는 그래도 많이 꿈틀거렸어요, 공연 문 닫고 나서 저희 자체적으로 저희 돈 모아서 저희가 파티를 기획했죠. 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2002년 1월부터였나, 2001년 12월부터 MP 문 닫자마자 5개월 동안 압구정에서 투자자 한명이랑 같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식 랩배틀 대회를 진행 했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을 계속하면서 저희도 어떻게든 계속하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홈런을 칠 수 있는 몇몇 팀들이 단합이 되어서 어떤 걸 해보자 하는 상황이 못됐어요. 막말로 ‘문 닫았으니까 돈 모아서 우리가 클럽하나 오픈하자, 힙합하는 애들 다 모여봐!’ 이럴만한 상황이 못됐어요. 왜냐면 팀들도 자체적으로 자기들만의 생각이 있었던거죠. 저희는 또 거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야 들어와. 같이 한 우물 파자‘고 할 입장이 못됐어요. 기본적으로 저희가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그렇게 많은 ’잉여상태‘도 아니었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거죠. 어떤 측면에서는 뮤지션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하고, 홍대를 부비부비 문화나 그런 것들로만 비춰지게 만드는 미디어의 책임도 있죠. 그리고 힙합을 문화적으로 인식을 하고, 문화적인 어떤 것들로 만들려는 노력들을 안했어요. ’구심점‘이 있어야 하죠. 모든 힙합의 4대, 5대 요소로 불리는 포지션에 계시는 분들끼리, 단합이 될 수 있는 ‘구심점’을. 저는 단순한 논리로 본거에요. 그래피티하시는 분들이나 DJ나, MC들 프로듀서들 비트박서들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기본적으로 제가 전제를 했던 것은, ‘힙합퍼’니까, 힙합에 대해 애정이 있고 그와 관련된 어떤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스스럼없이 오픈하리라고 당연히 생각해요. 지금도 물론 그런 생각인데,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가 정말 명확한 그림을 그려야 해요. 물론 그 그림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겠죠. 그럼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실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그것을 어떤 식으로 추진을 할지에 대한 본인의 상황과 사회의 시스템을 고려해서 그림을 그려나가게 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선은 그런 총대란 표현이 그렇지만, 누구도 쉽게 나서지를 못하더라고요.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자기희생도 필요한 거고, 당연히 그 이상의 것들과 부딪혀야 될 것들도 있더라고요. 이미 너무 많은 이해관계들이 있어요, 그게 단순히 ‘힙합러버’라고 그 이해관계가 다 음악이란 게 아니더라고요. 누군가는, 지금 같은 인터뷰에서도, ‘우리나라 힙합문화가 제대로 모양새도 못 띄고 이상하게 되어있고, 씬은 어디 있고 필드는 어디 있고, 음악은 언제부터 상품이 되어버렸고 뭐, 어디로 가는 거야?‘ 라고 이야기를 해도, 실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해요. 그건 그 개인의 상황이고 개인의 이해관계기 때문에 그런 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게 당연한 거라고 봐요. 나찰이랑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어차피 너랑 나랑 생각의 변화를 할 수 없는 인간’일뿐더러, 그럴 이유도 전혀 없고, 지금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차차 해 두고, 그냥 새롭게, 주변에서 시작하는 친구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우리 2집이 나온 다음에 이끌어 보자,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나잇살 더 많은 형이라고, 나이 조금 어린사람에게 ‘이렇게 하자‘ 이런 식으로는 안 해요. 일부러 와서 “이거 해“ ”저거 해“ 이런 이야기 원래 하지도 않을 뿐 더러, 그럴 필요성도 그다지 안 느낀다는 거예요. 오히려 지금 다시 리셋하는 기분이에요. 2005년 여러 레이블들이 생겼어요. 클럽에서도 힙합공연을 하던 클럽이 어딘가는 한군데 있었고. 이제 한국에도 힙합이 어느 정도 자리 잡게 되겠구나, 했는데 1-2년 만에 사라졌어요. 월드컵이나 촛불시위 이후 2003-2007년 사이에, 거리에서 공연을 하거나 행사를 하면 힙합 팀들이 한 팀, 두 팀은 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찾아 볼 수가 없어요.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 맛 봐서 그렇다?’메타 : 돈 맛봐서 그런 게 맞는 말씀이기도 하고, 틀린 말씀이기도 해요. 두 가지 다 있는 것 같아요. 돈맛을 봐서 그런 경우도 있기도 하고요, 돈맛을 못 봐서 그런 경우도 있어요. 저희는 후자 같은데... (일동 웃음) 농담이고요. 저 개인으로는 참 한때 곤혹스러웠던 기억 같은 게 있어요. JU를 만나기 전에 저희가 2인조로 있었던 때에요. 저희가 원래 페이 없이 그냥 하는 거였거든요, 맞은편에 있던 ‘옛집’ 가서 밥 먹는 게 다였죠. 근데 처음으로 몇만원을 쥐어주더라고요. 그런데 그 정도 돈을 받고 되게 웃겼어요. 신기하고, 그냥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기분이지, “우리가 뭔데 3만원이 뭐야!” 이러진 않았단 말이에요. 우리가 좋아하는 걸 했던 거였고 그게 우리에게 보상일 뿐이었어요. 곤혹스러운 것은,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저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게 되더라고요. 상당히 지나서의 이야기긴 한데, 이런 거였어요. 가리온이 공연할 때, 페이를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하나, 내지는 공연 사이즈에 비례해서 페이에 대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이러는데 저는 그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나찰도 똑같았을 거예요. 당연히 앞에서는 ’아 그래? 그럼 남들은 어느 정도 받는데?‘라고 이야기 하죠. 기본적인 시장의 원리대로, “시장에서의 비슷한 사이즈나 비슷한 가격의 제품들과 비교해서 가격표를 붙이쇼!“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그게 되게 서글픈 거예요. 차라리 그런 것들을 떠나서, 표현을 바꾼다던가요. 차라리 ’저희가 이런 공연을 하고, 해드릴 수 있는 건 이정도고, 해주실 수 있습니까?‘ 차라리 이런 거는 저희는 아무 문제없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그러니까 ’아, 공연이니까. 페이는 이정도 이상은 받아야 되지 않겠냐.‘ 이런 것들. 처음엔 솔직히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했었던 말이에요. 그게 너무 기분이 이상해서, 10만원을 주던 6만원을 주던 육백을 주던 오십을 주던, 저희는 ’무대에 설 수 있으면 좋다’ ‘우리가 기본은 그런 마인드다.’ 그랬다가 어느 순간은 우리가 너무 막 하니까, 동생들이 보기엔 가리온이 형인데, 형들이 뭐 10만원 받고 어디 가버리면 저희가 어떻게 되요. “형들이 100만원짜리로 되어버리면, 저희는 100만원 이하 밖에 안돼요.” 이렇게 된 거에요. 저희는 되게 곤혹스러웠어요. 이해는 하죠. 머리로서는 이해는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너무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들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곤혹스러워요. “그러면 우리는 이쪽 시장에서 얼마짜리 상품인가.“ 서로의 이익에 대한 이야기지,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더라고요. 맞잖아요? 그 사람이 기획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내가 너에게 이 정도까지 줄 수 있는 이익의 시스템 안에 있어’ 이윤창출의 논리로 이야기 하는 거죠. 차라리 그것이 서글프고 노골적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편한 이야기에요. 이것을 이상하게 꼬아서 이야기 해 버리면, 자칫하면 저희 가리온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처럼 이야기 하게 되었을까봐, 그게 참 거시기한 거죠.나찰 : 상품성 그 가치를 따지는 것 자체가 힙합팀 같은 경우에는 기준이 없어요, 실제로 메이저급의 유명한 힙합팀에 대한 가격대를 봐도 진짜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큰 무대에 설 때, 단순하게 무대에서의 어떤 퍼포먼스에 대한 기준인지, 유명하냐의 기준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거죠. 어떤 경우도 있었냐면, 아까의 이야기와도 연결이 되는 건데, 처음 하는 친구들이 공연 무대를 설 수가 없단 말이에요. 공연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무대에서 어떤 에너지를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싼 가격에 검증되지 않은 친구들을 많이 쓰면서 그들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구리죠. “아 힙합팀들은 안되겠는데?” 이렇게 되고, 실제로 큰 무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를 한데요. ‘같은 가격대의 웬만한 댄스, 보이밴드, 걸그룹들 나오는 게 훨씬 더 재미있지. 힙합하는 애들은 나와 가지고 간지 부린다고 이러고 있지.‘ 이런 이야기들을 공연 기획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너무 많이 들었어요. 굳이 치부를 들어내면, 자기 스스로 노력을 안 한 것도 꽤나 있기는 있어요. 스스로가 공연 무대에서 자기를 개발 할 생각도 안하고, ’힙합은 이거 아냐’하면서 폼 잡고 그것뿐이 없는 것도 꽤나 많아요. 어느 순간부터 “힙합 팀들은 안 되겠어” 라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었어요. 특히 힙합에서는 attitude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벽에다가 그래피티를 하는 것과 집에서 포토샵으로 그래피티를 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에요. 이런 것이 선행되어있지 않다면 “힙합은 다른 음악에 비해 만들기 쉬운 음악이다”라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을테니까요.메타 : 맞아요. 아까 이야기와도 연결되지만, 오히려 힙합퍼들이 힙합을 스스로 망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저희 팀은 음악을 하는 팀이고 mc로서 무대에서 분명한 방향성이 있어요. 거기에서 중요한 모토는 하나뿐이에요. 좋은 음악을 하고,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 남의 생각이 아닌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많은 경험을 쌓아 나가가야 하죠. 이런 것들이 기본적이 되어야 하는데, 그 외적인 이미지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등한시 되거나 2차나 3차로 밀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결국에는 음악에 대한 것이 무너지게 되죠. 그러니까 요즘 다 swag 한다고 그러고. 솔직히 지금 소위 잘나가는 래퍼들의 가사를 놓고 봤을 때, 어떻냐 하는 것을 이야기 할 때, 대중적인 가사가 가지는 테마가 뻔한 것은 저도 알아요. 그런데 그것 말고 다른 것들에 대한 것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특색이 많은 곳이 랩쪽이라는 거죠. 아까 말씀드린 온라인 상위 탑 랭커들의 음악들의 주제의 대다수는 사랑이에요. 특히 이별. (일동 웃음) 지긋지긋해요. ‘사랑에 실패한 멍청한 래퍼들‘. 그러니까 거기서도 자괴감을 느끼죠. 이런 것 말고는 없는 건가. 그게 싫어서 그 공간에 있던 래퍼들이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변했어요. 저희 ’그날이후‘ 나올 때, 그런 이야기 있었어요. ’가리온 최초의 사랑노래‘. 그런데 사실상 그것이 액면 상으로는 연인과의 어떤 그림을 그린 걸로 보이지만 저희는 떠난 뮤지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거예요. 약속의 장소도 그런데서 연결되는 거죠. 2집에서도 약간은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만 살짝 왜곡시킨 것뿐이죠. 방향성 자체가 빛을 발하거나 뿌리를 내리기 전에 잘려버리고 스스로 놓아버리고 하니까, 지금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현재 아무런 다양성, 주제의식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정치적, 사회적인 캠페인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도 분명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거죠. 그런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뭐가 이렇게 되었을 때 건강한 형태의 것이 되어서, 아옹다옹 내지는 돕고 도우며 메이져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시스템과 시장논리와는 다른 것들이 될 가능성이 커질 텐데, 빛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가 무시 되어버리니까, 아무런 기회도 없고 힘도 못 발휘하죠. 이럴 때수록 가리온이 무엇을 해줘야 한다는 기대가 있습니다.메타 : 예전에는 저희가 술마시고 치기어린 마음으로라도, 홍대돌아다니면서 태깅하고 “힙합똑바로해라” 이런 멘트 치고, 무대에서도 “힙합 똑바로 하세요” 이런 말들을 입버릇처럼 많이 했어요. 그게 반은 농담, 반은 정말 진지하게 하는 거였거든요. 약간은 캐치프레이즈처럼, ‘할려면 똑바로 하쇼‘, ’똑바로 하라는 그 의미를 모르는건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어긋나니까 이런이야기를 자꾸 하는거야‘ 술자리나 이런 곳에서는 더 하죠.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되게, 중심을 잡아 주었던 사람이 JU였어요. JU는 항상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술자리에서 장난 아니에요. 처음 온 래퍼들 붙잡고, (나찰 바라보며) 장난아니잖아? 나찰은 그래도 무섭긴 해도 타이르는 정도라면 저는 유순한 편이에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없어진 상황이다 보니까...나찰 : 참 안타까운 게 저희는 ‘똑바로 해라’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체를 못 받아들이거나 이해를 못하면 거기서 그냥 끝이더라고요.메타 : 다들 책임이 있는 거예요. 전체 힙합씬을 관통하는 뭔가도 없고, 저는 1세대라는 표현 싫어하지만, 말 그대로 ‘1세대’가 있으면 2,3,4 한 꼬치에 꾈 수 있다고 하면 ‘꼬치’가 있어야 하잖아요. 꾈 수 있는 꼬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상태에서 세대만 구분 지으면 뭐해요. ‘아이팟 다음 세대 사야지. 1세대 아이팟 누가 써?’ 밖에 안되는거죠.나찰 : 싸울 일이 있으면 싸워요. 싸운 다음 결론을 내고, 합의를 봐요. ‘그래서 힙합은 이거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조차 아니에요. 서로 야려보고 “병신“ 그러고, 뒤에서 욕하고. 서로간의 교류 자체가 없어지고.메타 : 랩가사에 나오듯 ’SUCKER'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다 SUCKER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막 그런 이야기조차 안해요. 아까 ‘RESET‘이라는 단어들을 쓴 것도 그런 측면이에요. 너무 없어요. 너무 희귀동물이 되어버렸어요. 다른 방향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 MC들이나 프로듀서들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그런 힘을 만들 수 있는 측면에서의 ’RESET'의 이야기였던 거예요. 결과적으로 보면 10년전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네요. 그 원인엔 뭐가 있을까요?메타 : 하나에요. 딱 하나. 문화가 없어서 그래요. 문화적으로 바탕이 있었다면 잡초 같은 생명력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를 못하고, 힘을 얻기도 전에 오염이 되어버렸죠. 제가 얼마 전에 오트밀을 샀어요, 아침 식사용 오트밀을 샀는데, 한 이틀을 먹고는 설사를 했어요. 그런 것을 안 먹어 버릇 하다가 먹으니까. 그러고는 풀맛이 나더라고요. 초반의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음악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런 ‘맛’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설사도 나고, 맛도 ‘개풀 맛이야’ 이럴 수도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 지나고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아침식사로 자리 잡듯이, 그 당시 ‘될 꺼다!’라고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칼로리는 졸라 높은데, 맛은 너무 달달한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리니까, 당연히 오트밀 안 먹죠. 이런 것들에 민감하고, 쉽게 그런 대에 주머니를 열어버리면, 10대들에게는 더 치명적이죠. 10대들이 찾아서 뭐 건강식 챙겨먹습니까? 안 그러잖아요. 맛있고 자극적인 것만 찾아다니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그 세대들의 특징이에요. 힙합뿐 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록이건 힙합이건 전 세계 전반적으로 봤을 때 가장 큰 소비자이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것 자체가 애당초 처음에 고삐를 놓거나, 다른 방향으로 오염이 되어버려서, 많이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상황들을 이겨 낼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해야 될 필요가 있어요. 미국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90년대 중후반 때에 RAWKUS를 중심으로 컸던 것들도, ‘완전 레알 익스페리멘탈 힙합‘ 이런 게 아니었고. ’조금, 더‘ ’조금, 덜‘ 이런 식으로다양성을 갖추고, 생산자 입장에서 잘 만들어 냈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단계가 많으니까, RAWKUS까지 갈 수 있는 단계를 밟을 수가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단계 자체가 너무 없어요. 너무 없으니까, “야, 너 졸라 맛있는 초코케이크 먹을래, 오트밀 물에 말아서 먹을래?” “미쳤어? 오트밀을 물에 말아먹게?” 이렇게 되어버린 거예요. 10대들은 당연하단 말이에요. 죽기 직전의 어른들이 “어우, 미쳤어? 초코케익 안 먹지.” 이런 것도 이렇게 된 거에요. 자연스럽게 그 단계가 생략되어있는 씬이기 때문이죠. 그런 단계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 단계가 저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문화 자체가 그 단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이고 바탕이예요.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 봉사에요. 눈을 안 떠요. 이 봉사라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하는 저희 입장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제작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에요. 그분들에게도 이것이 케익과 오트밀의 문제일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하시는 분들이, 케익에서 오트밀까지 끌고 감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시장의 그림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 텐데, 100이면 99가 초코케익을 만드는 시장으로 가려고 하니까, 100이면 99프로는 실패를 하죠. 말씀 드리고 싶은 한마디 한다는 게 길어졌지만, 문화적인 베이스를 만들 수 있는 노력들로서 저희는 방향을 잡고가요. 2집이 작년에 나오고, 그것과 별개로 다양한 향후 몇 년간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 그림의 시작점은 거기에 있어요. 나찰과 제가 처음 시작할 때, 이미 주변에 같이 하던 사람들, 새롭게 시작하는 친구들, 같이 갈 수 있는 사람들과 새로운 스파크를 일으켜 보자. 이런 느낌으로 저희는 계획을 잡고 있어요. 20대 후반 정도로 가면, 힙합팬이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나찰 : 힙합을 끊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잡아야 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믹스테잎이나 컴플레이션 앨범과 같은 것을 통해, 다른 MC들을 이끌어 주고, 올드팬들을 같이 이끌어 오는 방향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나찰 : 저희도 계획이 다 있어요. 말씀을 하시니까 말을 하자면, 컴필레이션이라는 측면이 가지고 있는 컴필레이션만의 맛이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것이 대한민국 1999, 2000 시리즈. 대한민국 시리즈는 처음부터 솔직히 저는 구렸어요. (메타를 바라보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잖아요. 컴필레이션이라는 콘셉트로 나왔던앨범이 상당히 많이 나오다가, 그 이후로는 거의 없어졌죠. 어떤 크루나 단체적인 것들의 힘이 없어지고, 개인화 되어버린 거예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필요한 것이 ‘절충’인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절충 세 번째’와 ‘절충 네 번째’ 이러면서 콘셉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세 번째 것은 저희 앨범 나오기 1년, 1년 반 전부터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졌어요. 개인적으로는 올해로 보고 있고, 컴필레이션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장점이나 느낌들, 맛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을 생각 하고 있어요. DJ SKIP, 저랑, 나찰이랑, SEAN 2 SLOW를 주축으로 움직일 것 같은데. 구체적인 것은 곧 진행이 될 것 같고. 뭐랄까요. 캠페인을 하는 구시대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사실 나왔어요. 홍대로 돌아가 볼게요. 홍대의 원래 문화 형성했던 씬 자체가, 사람이 몰리고 나서는 변했어요.메타 : 지역적으로라도, 분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는 한데, 여기가 문화관광특구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정부측면에서의 혜택도 상당히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 얼마 전 나찰의 지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깜짝 놀랐던 게, 권리금이라는 게 장난 아니더라고요.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죠. 돈에 대한 뭔가를 이야기 할 수 없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측면, 그런 것을 이야기 할 수가 없게 되죠.나찰 : 홍대가 어느 순간부터, 술집과 클럽이 많아지고 상업적으로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는 공간이 되면서, 오히려 문화적으로는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아요. 실제로 놀이터 같은 곳에서 공연도 예전에는 쉽게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굉장히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주차장도 공연을 많이 했는데... (메타 : 그 이유가 장사 방해라서.) 이제는 대부분 유명한 가수들, 싸이도 했었고, 소녀시대가 한다든지... 이런 것들만 있고 더 이상은 없더라고요. 이게 참... 그것만이라도 해결 되면, 어두운 부분만이 아니라, 밝은 부분을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에는 그것마저 그렇게 되어버리니까, 결국에는 클럽, 외국인 강사들 이야기가 이슈가 되어버리면서, 홍대는 진짜 사실상.... 제가 보기에는, 클럽 문화라는 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놀려면 홍대로 가야 돼. 그쪽으로 가면 누구든지 다 놀 수 있을 거야” 라고 하지만, 오히려 막아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것만이라도 해결이 되면 많은 부분에서 발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방법을 해결하기 위해, 꼭 홍대가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것은요?메타 : “왜 꼭 홍대여야만 하냐. 다른 곳이라고 ”안 돼“라는 법도 없지 않냐” 그런데, 홍대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편의성이, 제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 보다 훨씬 밑도는 점이 있더라고요. 크레이지 클럽 같은 경우, 겔러리아 에서도 서너 번 공연을 하고, 그런 시도들을 했어요. 그렇지만 정말 안 돼요. 해를 거듭할수록, 100이면 100 다 망가졌어요. 강남역하면 모이는 지오다노 그쪽에, 공연을 하는 클럽이 생겼었는데... 그런 식으로 MP가 문을 닫은 이후에 지역적으로 여러 군데에서 많이 했었어요. ‘신“천”’에도 있었고요. 그런데 다 안 되었잖아요. 홍대가 그때 이미 딱 박혀버린 이미지가 너무 세서, ‘공연‘ 이러면 힙합공연 아니더라도, 신촌도 이야기 안하고 ’홍대‘를 이야기 하지... 해가 지날수록 가속화되어서 당연시 되어버리는 이런 면도 있어요.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긴다고 해도, 문화적으로 선행되어야 씬이 형성된다고 봐요.메타 : 그렇죠. 그것이 어찌 보면, 무대 뒤의 큰 이야기들일 수 있잖아요. 저희는 무대 앞에 있는 사람들이라 무대의 이야기밖에 못하잖아요. 사실은,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이 무대를 조종할 수 있는 거니까. 저도 한 두 다리 건너서 얼핏얼핏 이야기 듣다보면, 저희처럼 그냥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아닌, 무대 뒤켠에 있는 이야기가 어마어마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느낌상. 홍대에서 매년 열리는 공연이나 페스티발만 하더라도, 그 수가 어마어마해요.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것 까지 합치면, 수십 개가 넘어요. 그 정도로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부나 시의 혜택이 있다고 하더라도, 철저히 이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와 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그것을 좌우하는 실질적인 숨겨진 사람들일지도 몰라요. 음모론도 아니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야기에요. 저희들로서 힘을 실어준 분들이, 비보이파크를 저희는 많이 서포트를 했었어요. 그것도 업체를 끼고 들어와서 가능한 이야기 것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허가 자체도 안 나고... 그런 이해관계가 있더라고요. 그 친구가 그런 것들에 대한 더러움? 괴로움 같은 것을 이야기 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결국에는 어떤 곳에서 앞장서서 떠들어 대도, 실제적으로는 뒤에서... 클럽데이의 경우도 그런 베이스가 있는 것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특구화 되는 것과... 액면으로야 같이 먹고 살자 이런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동참하고 동참하지 않고 그래서, 사운드데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결국... 이번 클럽데이가 마지막이라면서요? 그런 것들에 대한 담합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클럽데이 있기 전부터, NB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NB 건너편에 할렘 생기고 이랬을 때 다들 말이 많았어요. 다들 욕했어요. 저희는 직접적인 관련자는 아니었지만, 저희도 보기 안 좋았거든요. 막말로 NB 공간자체가 협소하니까, 오바이트되는 애들 받으려고, 또 하나 더 해서, 그쪽만 교류하고... 다른 곳은 파리 날리고 있는데... 진짜 시쳇말로 빡치는 거죠. 이게 뭐야 이러면서 다들 욕하고 그랬지만, 결국에는 YG 랜드를 만들어 버렸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희도 앞에서 놀고 있는 그런 애들로 밖에 안 비칠 수도 있어요. 진짜 주판 튕기고, 돈을 세고, 그것에 대해 철저한 이익의 논리를 가지고 조종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웃으면서 보고 있을 수도 있고요. 힐 : 마지막으로, 저희는 더 힐입니다. (이하, 소개 및 모토를 이야기 한다.)메타 : 어느 순간 문화지가 한때 많이 나오고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지하철 무가지로 넘어가서, 이런 것들이 저희에게는 친근하고, 어떤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런 것보다는 이런 것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아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보통의 웹진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 다 하려고 해요. 인터뷰, 리뷰, 뭐 장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웹진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어떠한 매체건 다 하려고 하는 것이 강한데, 그러한 측면에서 인터뷰가 主가되는 웹진 이라는 것은 되게 특색 있다고 봐요. 말씀하신 것처럼 소통과 대화라는 것이 모토라고 하시는 측면에서도, 딱 맞는 것 같고요. 앞으로 더 힐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대화를 들으면서 이름 그대로 서로 치유를 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홍대에 대한 이야기지만, 음악이건 예술이건 정말 대화가 필요하잖아요. 현대인들은 대화를 너무 안 해요!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고 듣는 역할들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