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tical Eyez XL 인터뷰모자를 벗지 않는 준비된 랩퍼 *2011년 6월 웹진 더힐을 통해 공개했던 인터뷰입니다. 2010년 1월 28일. 불의의 사고로부터 1년 후, Optical Eyez XL은 Wreckage - TTFT(Through The Fire Tape)라는 부틀렉 앨범을 들고 나타났다. 이 인터뷰는 불길을 지나온 그가 준비된 랩퍼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Record)이다. 인터뷰어로서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불길 속에서 건져온 잔해'에서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려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존중과 존경을 갖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희는 인터뷰 전문 웹진 더 힐이고요. 편하게 해. 형 동생인데 저희가 인터뷰 하려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리드머에서 예전에 앙케이트를 했는데 남성훈 필자님이 ‘실력에 비해 덜 알려진, 그래서 안타까운 래퍼’로 추천을 해주셨어요. 생각을 해 보면 성훈형이 나를 도와주려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닌가요? (웃음) 이제 곧 유부남 래퍼가 되잖아요.올해 들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바스코형, 재지아이비, 자주 뵌 적은 없지만, 그 전에 개코형님도 가셨고. 힙합플레이야에서도 6월, 이달의 루키라고 나오고요. 중고 신인. 근데 맞잖아? 뭐 한 게 있어야지 활동한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활동을 한지... 아니, 음악을 한답시고 랩을 한지는 그게 (10년이) 넘지. 중학교 때부터 해왔으니까. 이번 부틀렉 'Wreckage'는 어떻게 보면 정규앨범이잖아요. 나의 마음으로는....... 정규앨범이지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음악이 있다면? 당시에... 그 때가 중학교 때인데, 무슨 방송인지 모르겠지만 외국방송 중에 흑백으로 나오는 방송이 있었어. 우리 집만 흑백으로 나왔나? 아무튼 This DJ를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희한한 노래가 있고만?“ 이러면서 놀랐지. 유명한 노래만 들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가요만 듣다가, 엠씨 해머(MC Hammer), 크리스 크로스(Kris Kross)의 Jump 같은 것들을 들으면서, 꽥꽥거리고 (그랬지) * Warren G - This D.J., 1994 * MC Hammer - 1987년 데뷔, U Can't Touch This는 21주간 빌보드 차트 1위.* Kris Kross - 1991년 그룹을 결성, 멤버 크리스 켈리(Chris Kelly),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 이루어져 있음. 가요는 뭘 들으셨어요? 예전에는 김수철씨. 유치원 가기 전에 아버지가 사주신 장난감 기타를 들고 ‘나도야 간다’를 불렀던 사진이 집에 있을 거야 아마. 닉네임 X.L A.K.A Optical Eyez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최초에는 엑셀. 줄임말이었지. 크로스 오브 더 로드(Xcross of the Lord), 신의 십자가라는 뜻인데 크로스가 이 크로스 (X를 그리며). 그렇게 엑셀을 쓰다가 옵티컬 아이즈(Optical Eyez)를 쓰게 된 건 최초에는 5.2를 생각했었어. 내 친구들, 도발이라는 친구도 있고, 0441이라는 그런 잉여집단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랑 (지금은 사라진) 베지터블 허슬러즈 (Vegetable Hustlers)를 할 때 오이숙부라고 얼굴이 길어서 오이라는 이름을 먼저 생각했지. 근데 내가 안경잡이잖아. 눈이 안 좋아서 초등학교 전부터 안경을 썼단 말이야. 안경을 보면 옵티컬이라고 쓰여 있잖아. 그래서 옵티컬 쓰면 되겠네? 싶어서 사용하게 되었지. 세상을 꿰뚫어 보는 시력을 지니고 있다는 가사를 쓰기도 하셨는데 그건 그냥 빗대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형님들, 사람들이 그것을 했듯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는 세상이 아니잖아. (시스템에) 적응을 해야 하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어. 다른걸 보고 싶었어, 변하지 않는 것. 그래서 내 안경을 통해 투영해서 본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지 조금 전에 말씀 하셨던 도발 형님이나 0441. 이분들은 밀림에서 활동하셨잖아요. XL 형님도 예전에 활동하셨고요. 그 당시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그랬지. 1999년 아니면 2000년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 내가 거점을 둔 게 천리안의 B-LIFE 라는 동호회가 있었어. 그 당시에는 이름 없고 생소한, 어떻게 보면 뜨내기 동호회였는데, 소소한 사람들이 모여 시작을 했는데 거기에 캐나다 유학중이었던 연태형이라고 자기 이름을 줄여서 Y.T라는 닉네임을 쓰는 형이 있었어. 그 형이랑 팀을 시작하게 됐어. 형은 캐나다에 있고, 나는 한국에 있고. 그 형이 캐나다에서 우탱 (Wu-Tang Clan) 앨범을 사서 보내준 거야, 에어 메일로. 되게 고마웠지. 그렇게 밀림에서 더 수퍼 플레이어즈(The SupaPlayerZ)라는 팀을 했었지. * B-LIFE : Black life의 줄인 이름. 2000년 3월 31일 개설된 천리안 동호회. * Wu-Tang Clan : 무당파에서 이름 딴 미국 동부 힙합 그룹 그분은 지금? 집에서 음악을 만들고는 있는데 취미라고 해야 하나? 그 형도 열정은 가지고 있지, 지금은 요리를 하고 있지. 서래마을에서 요리를 하고 있어. 더 슈퍼 플레이어즈, 밀림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국힙합에서 밀림을 빼놓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어떻게 보면 약간 그런 것도 있었지. 어쨌든 밀림이 가진 색깔이 따지고 보면 접근이 쉬웠잖아. 그렇게 때문에, 아마추어.... 물론 나도 아마추어였고... 뭐 어쨌든 좀 아쉽긴 해. 사실 음악을 하고 그런 게 거창한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거든? 누구나 주둥이가 있으면 말을 할 수 있잖아. 그런 면에서 쉬운 접근의 장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쉬워. 2000년에 밀림을 통해서 ‘더 슈퍼 플레이어즈’로 데뷔를 한 건데, 그 당시에 크루도 있었잖아요.더 슈퍼 플레이어즈를 하다가, 아는 사람들이 몇몇 더 모였어. 4LetterCrew 라는 곳이 원래 있었거든. 그 팀이 있었어. 형들이 세 명인가 그랬는데, 이름이 크루이다 보니까 따지고 보면 거기에 흡수된 셈이지 처음으로 했던 크루였던 건가요? 뭐 그렇지. 더 슈퍼플레이어즈로 나왔던 ‘어린 시절 Pt.ii 2002.07.05’. 서비스는 안 되지만 검색이 되는 음원사이트도 있던데 어떻게 발매하셨던 거예요? 그때 뭐 발매라는 개념이 있었나? 우리끼리 그냥 녹음해서 비트 만들고 그렇게 올린거지. 그때 당시에는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아. 지금처럼 음원사이트, 멜론이나 벅스나 큰 업체가 유통을 맡아서 하거나 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고 단순히 그 사이트에서만 올리고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서비스라는 생각은 못 해본 것 같아. 곡 제목이 어린 시절인데 어린 시절에는 어떤 아이였어요? 어린 시절은 쭈구리지. 어떤 쭈구리요? (웃음) 난 항상 앞쪽에 앉아. 교탁 앞이 라든지, 키도 작고 앞줄에 앉는데 공부를 열심히는 해. 책을 많이 봐. 그런데 공부는 못해. 그렇다고 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지금은 뭔가 활동적이고 뭐랄까 외향적인데, 그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 내 기억에는 조용하고 그랬던 것 같아. 그러면 성격은 언제부터 변한 건가요? 고등학교 올라가면서부터?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그 계기가 있었을 까요? 운동 같은 거 좋아해서, 그래가지고 체력장 한번 보고 난 다음에 뭔가 달라졌던 것 같아. 그러면 내가 힙합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은 언제부터 하시게 된 거예요? 중학교 때부터, 랩을 하려고 한 게 3학년 때인가 그랬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 멋있으니까, 그냥 멋있으면 다 따라하고 싶잖아. 어렸을 때는 아버지 옷 입어보고 약간 그런 심리 아니겠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게 없었어. 뭐라고 할까, 확실한 나의 거취를 결정하기까지 되게 오래 걸렸어. 심지어 이번 앨범을 발매를 결정하게 된 걸 거점으로 해야 될 것 같고. (내가)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영향들은 어디서 받을 것인 걸까요? 주변 사람들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은데 꼭 집어서 이야기하기 힘들어. 어쨌든 내가 랩을 하면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으니까. 그 사이 섞이고. 다 내 친구, 동생, 형들이 되고 그러니까. 나도 이야기 많이 해 주고. 누구 하나 뽑을 수 없을 것 같아. 누군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냐?’ 물어본다면. ‘한국힙합.’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여러분. (임재범 톤으로) 어떻게 보면 한국힙합1세대 때부터 힙합을 계속 했는데 어우 그건 아니지. 어떻게 형들 앞에서 내가. 그러면 어떻게 보는 게 좋을까요? 나는 루키야. 프레쉬해. 사실 몇 세대라고 부르는 것도 나는 잘 모르겠어. 지금 세대가 있을까? 잘 모르겠는데. 흔히 세대라고 하는 것이 사실 10년 터울이야. 세대를 구분 할 수 있을까 싶다. 어차피 내가 동생이지만, 가리온 형들 같은 경우 ‘뮤지션으로서 계속 같이 가는 사람이다.’라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잘 모르겠어, 세대 구분이라는 것은. * 가리온 : MC 메타, 나찰로 이루어진 한국힙합의 역사이자 최전선. 엑셀(X.L)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은? 엑셀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은 되게 종교적인 느낌이야. 어렸을 때부터 모태 신앙이었지. 어머니의 영향이 컸지,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고등부 회장직을 했었고, 종교적인 의미가 커. 그래서 나는 어두운 면. 십자가라는 의미가 가진 게 되게 고통스럽고 그런 거잖아. 다른 의미도 있겠지, 신 자체를 상징하거나 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거기에 십자가라는 것이 의미를 고통과 우울하거나 그런 다크한 쪽으로 생각을 했거든, 그쪽을 표현하려고 많이 애를 썼던 것 같아. 가사에서 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었어요. 싱글 I.M.Ground에서의 ‘담배 불을 붙여’라든지, 이번 앨범에서는 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지겠지만 사고 이전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 까요?그전까지 불은 불이지 뭐, 뜨겁고. 그리고 ‘담배 불을 붙인다.’는 의미는 뭔가 도화선이 된다는 의미를 하고 싶었던 거지. 따지고 보면 그것이 가진 의미는 없어. 빗대서 쓴 거지. 뭔가의 시작. 알잖아? 도화선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사고 이후의 의미는...? 역시 뜨겁고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라면 끓여먹을 때도 필요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지. 그걸 이야기 하고자 하면 그건 되게 많이 길어야 할 거야. 그러면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앨범 이야기 할 때 하도록 하고요. 아까 이야기했었던 밀림 이야기에 이어서 인터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박삿갓 1집 삿갓닷컴, 4번 트랙 ‘서벌’에 피쳐링을 했는데 그것이 최초의 피쳐링인 건지? CD로 나오는 형태로는 아마 그럴 거야. * 삿갓닷컴 : 사회풍자적인 앨범으로 2003년 6월 발매. 그전에 밀림에서 나왔던 앨범에도 수록 된 곡이 있었지 않았나요? 밀림에서 컴필 나올 때 슈퍼 플레이어즈로 하나 들어간 것이 있었어. 제목이 뭐더라? Hello Mr.Hiphop이었나? 그게 들어갔나 뭐가 들어갔나 기억이 안 난다. 박삿갓 1집 참여 곡은 어느 음원사이트를 가도 가사를 찾을 수가 없는데 의도적인 것인지?그냥 누락된 것 같은데? 노래를 들어봐도 EQ가 심하게 걸려있어서 가사전달이 잘 안되는데 의도했던 건가요?아우 ~ 그때는 다 조악했잖아. 노래방 마이크 훔쳐 와서 사운드카드로 녹음하고. 아마추어인데. 하하하. 박삿갓 1집 참여, 이후의 활동은 어떻게? 1집 이후에 아마 공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영등포구청에서) 그때 너하고 만났고, 이경민형이랑 같이. 그 다음엔 뭐 특별하게... 생각은 항상 했지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하지만 나태하고 되게 게을렀으니까. 뭐가 안 되고 있었지 그러다가 어드형. 어드스피치(Addsp2ch)형 첫 LP에 내가 지금은 언터쳐블(Untouchable)의 디 액션(The Action)이랑 같이 피쳐링을 했지. 컨쿼러(Conqueror). * Addsp2ch, Elements Combined LP - 7번 트랙 Conqueror (feat.THEAction, XL), 2005년 발매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작업이라는 것이 어차피 사람이 하는 거니까 일단 많이 친하고, 자연스럽게 그냥 이야기가 나왔어 "같이하자" "그래 하자" 그래서 그렇게 했던 것 같아. 컨쿼러(Conqueror) 참여 이후로 피쳐링 많이도 많이 하셨고 그 이후로는 싱글이 나왔을 거야 2006년 10월에 2006년 10월에 나도 잘 기억 못하는데 잘 아는구나? 싱글 발매 이전에 NMNP가 있었잖아요. 히든트랙에서 1분정도 되는 랩을 하셨고요. 자신을 소개하는 듯한 곡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이후 발매 된 싱글 발매 당시 Introduction을 보면 ‘꺼져가는 자신의 열정을 가다듬고, 용기 충만한 자신의 등장을 예고한다고 말하는데 그 당시 자신의 열정을 꺼져가게끔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고 다시 용기를 갖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당시에는 내가 엘큐(Elcue)랑 같이 살았었어. 저기 어디냐, 위쪽에 그 동네 있어. 뭐더라 저쪽 어딘데. 지하철역이 없는 홍제동 쪽 그쪽 가는 길인데. 아무튼 같이 살았어. 원룸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때 엘큐가 나를 저기를 많이 케어 해줬지. 싱글도 엘큐가 프로듀싱했고, 뭔가를 빨리 해야 한다고 닦달을 많이 해줬지 같은 해 10월에 발매된 싱글을 보면 엘큐님이 전곡을 프로듀싱을 했는데 그 당시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었는지 같이 살았으니까, 만날 술 쳐먹고 이상한 짓 만날 하고, 백워드 랩 개발하고, 힙플라디오 할 때 나왔었는데 거꾸로 돌리면 나는 소리를 존나 흉내 내고. 그런 식처럼 ‘으로어ㅏ아아아우오’ 이런 거 있잖아 그런 거 만들어내고. (그걸 거꾸로 들으면 랩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그 소리만을 흉내를 내는 거에 의의를 뒀지 싱글 I.M.Ground의 스킷에서 ‘형 뭐해요?’ 물어보는 사람은 누구였어요? 칠린스테고(7人 ST-Ego) 같이 했던 비숍(B-Shop). 금마 이름이 지금 블랙 스트라이크(Black Strike)일거야. 그 스킷이 “형 뭐해요?” “나 가사 쓰고 있어.” 이러면 "작업 안하고 만날 게임하고..." 이런 내용이었는데 녹음을 하면서 진짜로 나를 욕을 하고 있는 거야. 진심으로. 뭐라고 갑자기 그러는데, 진심인지 아닌지 아무튼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 죽어야지” 그런 트랙이 있어. (웃음) * 싱글 I.M.Ground의 히든 트랙 I.M.Ground 가사 중에 ‘알 필요가 있지 내 등장의 의미’라는 구절이 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가 생각하는 등장의 의미를 풀어서 이야기 해준다면 등장의 의미? 어쨌든 뭔가를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고, 뭐랄까 지극히 개인적이지. 나는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뭐 나름 음... 나름 힘들다면 힘들었었고 그래서 절실한 그런 것이 있고 I.M.Ground 뮤직비디오, 아마추어 분이 만들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뮤비를 찍었는데 때깔이 맘에 안 들었어. 그래서 공개를 안했어. Time 2 Shine이었나? 그건 엘큐가 찍었었어. It Ain't $Hit, 곡은 굉장히 밝은데 가사만 보게 되면 굉장히 슬퍼요. 1절은 바라는 모습들이 유쾌하게 나오는데 특히 2절의 경우는 현실적인 면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초라하지. 어쨌든 내가 가사를 썼을 때는, 그냥 뭐. 덩어리를 만들어 놓고 쓰는 분들도 있겠고... 다른 분들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하나를 써서 이어나가는 그런 식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간 게 아닐까? 이야기를 할 때도 내가 뭔가 멋지고 획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거지. 자본주의를 비웃듯이 이야기 하는 것이지. 나는 그게 좋아. 비웃듯이 이야기 하는 것이. It Ain't $Hit 가사 Verse 1) 당당히 걷기. 내 몸에 새롭게 걸친 옷 비춰보며 한손엔 시가, 한손엔 커피 주둥이로 뻘짓 하는 놈에게 펀치 날리곤 상쾌한 맘으로 코스 요리로 점심 동정 섞인 맘으로 신문의 경제란 펴기 친구 만날 때 기뻐함으로 집밖에 나서기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체적 자태가 멋진 아가씨의 침대위에서 듣기 "Babe i Love it" 5000원 넣고 만원 안 뽑기. "난 역시" 라는 자신감으로만 전진 친구들과 회사 설립. 랩만 하기 제일 간절히 남 생각 안하고 거친 욕설 난무하는 소설 펴기 좆같은 정치인들에게 암바 걸기. 부러뜨리기 가차 없이 시대를 만든 치매 걸린 꼰대들에게 감사 - Fuck it 항상 억지스런 푸념 뒤져봐 내 속주머니 의심의 여지없이 하루 버티기도 글렀지 Chours) It Ain't $hit without the money 맛난 밥? 좋은 옷? 연애? 낭만? 음악? 하고 싶은 거? Verse2) 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 때 이른 선택, 때는 돈이 만들어준 그 다음 이해하는 것 보단 매번 짜증나는 건 표현해댄 단어와 내 감성은 곧 묻히고 마는 것 겁 많은 꼬마는 전쟁터에 서있어 종이 조각에 베인 손 그 상처는 커 진리는 저 너머. 걸으며 걸음을 젊었던. 언덕은 없어 (더 높은 언덕만..) 땀 닦으면 걸어 저 푸른 초원위에 시퍼런 돈 위에 눕고 싶어 현실은 날 발가벗긴 채 떠미네 며칠 밤새 고민해봤자 답은 "계속일해" 쌓여가는 건 피씨방의 재떨이네 대지출~ 다가오는 월세날 로또 쥐고 감히 원하는 돼지꿈 "나 지금 화가 몹시 나있어.." 귀찮은 내 Rhyme공책도 백지뿐 온라인 발매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Time To Shine'이 없는데 온라인에서 'Time To Shine'이 없었나? 기억이 잘 안나. 저작권 때문이 아니었을까? Time 2 Shine 솔로버젼도 없어요. 뮤직비디오는 찍어놓으시고는 그 당시 내가 그렇게 들었던 것 같아. 공개곡이어서 저작권 등재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고.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랬을 거야. Time 2 Shine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타임 투 샤인’을 이야기 했던 게 엘큐 아이디어였을 거야. 엘큐도 꽤 알았던 동생이었고, 금마가 나를 푸시해주면서, 뭔가 나에게 ‘프론팅하는 것을 써야하지 않겠냐.’ 그러면서 하게 된 거지 파트 2도 있는데 다음 파트는 엘큐 앨범에 있지. 그것도 같이 하셨잖아요? 그렇지. 거기서는 잘 안 들렸을지 모르겠는데, 마디가 다 라임이야. 1면 첫 라임이랑 둘째마디랑 다 라임이고. 4마디인가 했었는데, 다 라임이야 마디가. Time 2 Shine 2 가사 이 앞날에 빛이 비치내 눈 아픈 이 상황에 깊이 심취해 숨 가쁜 이 바닥에 심히 미친 내 꿈 안고 비상하네 It`s the TTS part 2 요즘은 그런 가사적인 것들을 연구를 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이제는 그런 연구들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한국힙합의 사료로 봤을 때, 역사로 봤을 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운율적인 면이라든지그건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들은 크게 보면 필요하다고 생각해. 시도가 있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이고 그건 뮤지션이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것, 작가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싱글의 믹싱과 마스터링은 도발이라는 분이 해주셨는데 도발? 친한 친구니까. 그리고 잘해. 잘하는 친구야. 내가 임마를 처음 만난 게 지금의 마이노스(Minos), 알-이에스티(R-est), 엘큐도 마찬가지고. 현존하는 지금의 사람들이 예전에 퍼런화면 띄워놓고 (PC통신을) 했었잖니. 그중에 에듀넷이라고 무료로 되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 힙합정신이라는 곳에서 만나게 되었지. 0441 친구들이랑 같이. 되게 잘하는 친구야. 도발이라는 친구가 되게 잘하는 친구고. 잠깐 이야기하는 건데 알-이에스티가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도발이라는 친구가 좋은 비트를 많이 줬고 노래 욕심도 있어서 훅 메이킹도 하는 그런 친구야. 그분이랑 이제 칠린스테고(7人 ST-Ego), 베지터블 허슬러스도 같이 하셨잖아요. 베지터블 허슬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베지터블은 한마디로 잉여집단이었던 것 같아, 따지고 보면. 그래도 사람들이랑 많이 얽혀서 재미있었어. 일단 친하니까 만날 쪽방 모여가지고 0441 자취방에 가서 노래 틀고 게임하고 그러고 놀다가 한번 만들어볼까? 이러다가 "이름이 뭐가 좋을까"라는 고민 끝에 ‘과일사냥꾼’ 형들에게 영감을 얻었지. 힙합씬에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던 칠린스테고. 얼마 전 더 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신동훈씨도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자세한 소개 부탁드릴게요.네가 운을 띄워죠. 내가 대답할게. 칠린스테고(7人 ST-Ego)잖아요. 이름부터 라임인데. 아닌가? (웃음)힙합 더 해야겠구만. (웃음) 에스티는 아마 스트릿을 줄인 말일거야. Ego. 자아의. 그렇지 그 당시 같이 하신 분들이 다 씬에서 쟁쟁한 분들이었는데 작업의 분위기는 어떠셨어요? 되게 화기애애했어. 일적으로 만난 것이 아니었고 (내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 프로젝트는 도발과 라마가 프로듀싱 했다고 보면 돼. 라마(RAMA)형이 "아 임마 잘 한다" 이러면서 같이하고... (그래도) 일단 친해야 하니까. 사람을 알아야 뭔가를 나누지. 그것도 자연스럽게 한 거야. 프로젝트였으니까. 애초에 생각하기에는 이름은 그대로이고 멤버가 계속 바뀌어서 앨범이 나오는 콘셉트였는데. 7명이 했으니까 새로운 멤버가 모인다는 것, 지금으로 보면 애프터 스쿨이었던 것 같아. 그런 간지. 그런데 앨범의 큰 세일즈적인 면이 없으니까. 다음 걸 생각안하고. 어차피 도발이 돈 가지고 한 거야. 그래서 도발이 손해를 많이 봤지. 어떤 곡들을 참여하셨는지 트랙들에 대해서 다시 집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많이 했어. 트랙들을 봐야해. (핸드폰을 본다.) 자동완성기능이 있잖아? (검색하며) ‘수첩’이란 노래, ‘그게 힙합이니까’, ‘뱀뱀’, 그린 드림(Green Dream), 패러럴 월드(Parellel World)..... (중략) 이정도네. ‘꽃같은 여름‘ 똑같은 경우 곡이 굉장히 발랄한데 도발의 색이 많이 있었지. 훵키하고 즐거운 게 좋은 거니까. 지인들 끼리 만든. 기술부장 a.k.a 이능금 형님도 친하지 않은가요. 홍대 화장실 가면 ‘이능금 안녕’이라고 있던데 여기서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약간은 미친 천재였어. 내 생각엔 미친 천재야. 예를 들어 수능 봤을 때 수학 하나 빼고 다 만점이야. “왜 그것만 빼고 만점이야?” 물으면 "난 수학이 싫어" 이런. * 기술부장 A.K.A 이능금 Of "0441 Standard Makers" 칠린스테고는 형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으셨어요? 좋은 사람들이 모여 뭔가 만들었으니까 그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나의 역사니까 소중하게 생각하고. 돈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실패를 했지만 마음속에는 남아있지. 나의 잉여로움이 남아있지. 2009년 5월 킹더형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는데 킹더형은 공식 발표 없이 2010년 중순쯤에 해체되었어요. (해체된 것에 대한 건)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킹더형에 들어갔을 때는...... 킹더형 첫 컴필 나왔을 때 아이엔씨(INC), 지금 TS Entertainment에 있는 용국이 (그 당시엔 젭블랙맨), 매슬로의 팀 블랙아웃 (Blackout)이 했던 곡의 비트를 썼어. 그때는 내가 킹더형이 아니었지. 그 이후에 스킵형(DJ Skip)이 88kids의 Front 아버님 장례식때였나? 뭔가 선물을 주겠다고 하는 거야. 물어보면 "내일쯤 갈 거야" 라고. 근데 다음날 하루 종일 집에서 기다리는데 택배가 안 오는 거야. 난 그게 발모제라도 되는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영입 뉴스였더라고. 그렇게 킹더형에 들어갔었고.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뭐 그렇게 되었어. 어쨌든 스킵형 좋은 형이고 킹더형 식구들도 애착이 있어. 어찌보면 나의 첫 회사. (가슴을 치며) 킹더형 출신들을 비롯해서 요즘 나오는 힙합앨범들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알-이에스티님이 많이 하시던데 곡 많이 했어. 대학원 다니잖아. 과가 그런 전공이야. 잘해. 많이 늘었어. (알-이에스티도) 그걸로 이제 돈도 좀 벌어야지. 홈 레코딩이 대중화 되면서 집에서 믹싱, 마스터링까지 하는 사람이 많아요. 잘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악한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한계는 있겠지. 하드웨어가 가진 소리의 질감이라든지 그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들으면 알게 되어있어. 나는 스튜디오에서 하기는 했지만, 그런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 힙합플레야에서 ‘아이삭의 더 매콤한 라디오’에서 XL a.k.a optical eyez & 생식기 MC & 재천대성 & 삼대거지 & 랩신으로 불려왔는데 그때 아이삭(Issac Squab). 처음에 이삭이랑 라디오를 하게 되었던 건 프리(B-Free)랑 엘큐 때문에 이삭이를 알게 되었을 거야. 이삭이가 트레스패스(Trespass)라는 자체가 오래된 그룹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외향적인 것들을 내가 꺼리는 것이 있었어. 그런데 이야기 해보니 괜찮은 놈이야. 금마가 나를 사랑해서 나를 많이 챙겨줬지. (웃음) 그래서 막랩이란 코너를 만들게 된 거군요. 어. 그런 시기들을 거쳐서 이삭이가 랩으로써의 재기를 하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그런 면에서 나도 수혜를 받는 그런 입장. 막랩만 모아놓은 분들도 있고 많이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요.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 내 이름이 거론된 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일이고. 그 당시 정말 많이 했지. 방송전이나 그럴 때 많이 가사를 썼으니까. 커피마시면서. 막랩이니까 뭐 그 자체가 즐겁지. 그때 많이 늘었었고. 방송 전에 가사를 쓰고 만나서 밥 먹기 전에 가사를 쓰고 뭐 ‘우아어ㅗ아오’ 이렇게 랩 하고 (웃음) 사랑의 배터리, 장난이 아니었는데 비트가 (웃음) 이삭이의 아이디어였지. 그 목소리 따다가 어쨌든 연습하고 있었으니까 차세대 어 밀리(A Milli)를 만든 거지. 그때 어 말리가 나왔었나? * Lil Wayne - A Milli 힙합 프로젝트나 크루들이 단발성으로 남게 되는 이유, 또는 한계는 어디에 있을 까요? 거기에 대해서 내가 특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 내가 사람들을 다 알지는 않잖아. 크루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역사들에서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아이엔씨지(INCZ)라는 크루가 있었어. 거기 속해있던 사람들이 예전에 휘성 With Me 방송 나와서 랩하던 더리 맥(Dirty Mack)형, 현재 빅 트레이(Big Tray), 라임어택(RHYME-A-), 프라이머리(Primary)... 프라이머리는 아니었나? 그냥 놀러왔었나?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음악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같이 의기투합해서 하고 그랬지. 내 생각에는 그것이 진짜 크루였어. 크루(Crew). 모임이잖아. 나는 나중에도 크루를 두고 싶지 않거든. 뭔가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한다는 것은 크루가 아닌 것 같아. 상업적으로 대두되는 무언가? 그건 크루가 아닌 것 같아. 레이블이나 프로덕션이 되어야지 맞는 거 아닌가? 나는 크루에 뭔가 상업적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크루가 아닌 것 같아. 인간 대 인간으로... 아, 딥 플로우(Deepflow)도 크루였다. 이제는 명분상으로는 없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존재하지. 있지. 그렇지만 대놓고 들어낼 그런 게 아니니까. 나에겐 아이엔씨지가 유일한 크루지. 팔로(Paloalto)도 있었고...? 흠. 그리고 뭐 좀 그래. 크게 본다면, 역사로 본다면 뭔가 생겼다가 와해된다는 것 자체는 큰일이지만. 자연스럽지 않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게 되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굳이 뭐 궁금증을 해소시킨다는 점에서는 알고 싶겠지만, 뭐 굳이 할 이야기도 없고. 자연스러우니까 그건 뭐. 한국힙합 래퍼들은 MC로서의 재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일단 'MC' 단어자체로 보았을 때.참 어려운 질문인데. 내가 오랫동안 흘러오긴 했지만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는 내가 엠씨라는 칭호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 거니까. 그건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남이) 만들어 주는 거잖아. 감독이 포지션을 정해주잖아. 뮤지션이나 엠씨, 아티스트 이런 칭호는 트로피 같다고 생각해. 내 스스로가 칭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를 보는 사람들이 해주는 거고. 나는 그런 칭호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씬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는 엠씨가 아니고 엠씨가 되고 싶은 사람이야. 랩을 하고 있고. 래퍼라고는 할 수 있지. 곡을 만드는 음악 프로듀서일수는 있지만. 엠씨까지는 뭐, 그건 왕관 같은 거니까. 리릭시스트(Lyricist)라는 말과 부합한다고 생각해. 한국 음악, 한국의 힙합에서 스스로 바라고 가지려 하는 포지션이 있다면요? 나는 좀 유쾌하고 싶어. 웃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런 일들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 그러다가 좋은 이야기들이 한두 개씩 계속 나오면 ‘그나마 세상은 살만하다.’라는 이야기들을 하고. 되게 슬픈 것 같지 않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냐? 당연히 웃고. 사람들끼리. 나는 그러고 싶어. 사람들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유쾌한 삶을 보여주고 싶어. ‘It Ain't $Hit’처럼? ‘It Ain't $Hit’ 그런 느낌이 크다고 할 수 있지. 사회시스템적인 면에서 음악을 하기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을 텐데 음, 나는 포기하지 않아. 이거는 되게 개인사적인 것을 끌고 들어 가야하는데. 어쨌든 사람이니까. 음악을 하는 본인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알아야 하잖아. 배경을 알아야하고. 내 식구들도 장애인이잖아. 나도 이번 사고로 장애판정을 받고, 아버지 이전에 사고로 장애판정을 받았고, 내 동생도 장애판정을 받았어. 네 가족 중 세 명이 장애인이야. 아버지는 사회적으로는 뭐랄까 큰 성공은 하지 못하셨지. 그래서 내가 처음에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을 할 때 많이 울었던 것 같아. (내가 음악을 하게 되면) 우리 가족을 더 나은 단계로 가기에는 역부족이고 아버지도 불편하시고 하니까. 일을 하시긴 하시지만 장남인 내가 가족으로서 내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적인 면에서 내가 많이 좀 갈등을 했던 것 같아.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하지만 나는 이걸로 할 거야. 이걸로 맥여 살려야지 (음악으로?) 응. 전업음악인으로서 주변의 비음악적인 지인들이 보았을 때 비추어지는 형의 사회적 입지나 모습들도 있을 것 같아요.갈등에 대한 내용에서는 두 번째 인터루드(Wreckage 10번트랙, Interlude#2)에 표현이 되어있어. 어렸을 때부터 만났던 친구들을 보자면 그들은 자기네 인생을 잘 꾸려나가고 있어, 사회생활 열심히 하고 있고. 그런 친구들 만나면 내가 위축되는 면이 있지. 그 친구들이 나를 보면 멋있다고 생각하려는지도 몰라. 하지만 돈을 버는 것에 있어서는 한창 떨어지고, 자괴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좆까’라고 이야기 해주면 되지. 잘하면 되지.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가정의 가장이 된다. 유부남 예정 전업 래퍼로서 힙합씬의 불안함과 강박감. 음악적인 변화들도 생길 것 같아요. 글쎄. 음악적 변화라. 일단은 내가 지금까지 특출 나고 확고하게 내 것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에. 변화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어떤 형태의 음악을 하던지 간에 '나인데'. 어차피 사람은 변해. 내 음악은 나일뿐이고. 변화라... (도리도리) 나는 나일뿐이야. 나는 그 자체로 순수할거야. 래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뒷배경을 모르는 리스너들은 공감대 형성하기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거기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해를 시키기 위해 해 나아가면 되고. 사실 속내를 꺼내기가 쉽지가 않잖아. 그래서 더 기회를 가져야지.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지. 트위터를 보면 사회적이거나 시사적인 트윗이 많아졌어요. 유부남이 되면서 직접 체감하는 것들도 많을 것 같아요. 내 (삶의) 목적 중에 음악으로서 이루어낼 것 중 하나는, 특급이지. 제일 우선적인 것은 사회에 기여를 하는 거야. 그래서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나도 지금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알아야 하고.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는 사람인데 내 새끼들에 과연 무얼 보여주겠나? 딸 낳으면 왠지 좆될 것 같고, 왠지 못살 것 같고 사회가 그러니까? 응. 내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 내 꿈은 내 뒤 세대에 있어서 내가 먼저 가는 사람으로서 길을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해. 태어날 생명이나, 동생들을 위해서. 다음세대를 위해 사회적인 유산을 만들어야해. 미흡하겠지만 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잘 될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목을 메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너희들이 하는 웹진 더 힐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회적인 시사적인 이야기들은 바라보는 관점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관심이 가는 사회현황이 있다면. 4대강, 친수법. 정치 어쩌고저쩌고는 사실 잘 몰라. (하지만) 그냥 아닌 건 아닌 거기 때문에. 왜 왈가왈부가 되냐는 거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지. 왜 잘하는데 이야기가 나와? 아니잖아. 뭔가 하자가 있으니까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그런 면에서 어르신들이 뭔가 재고를 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고. 무엇인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사회 부조리로서 나타난다고 보고 그것들을 고쳐야한다는 거지. 저울 같은 거지. 누구 하나가 가벼우면 한쪽이 무거워지고. 액션과 리액션. 내가 이 생각을 가만히 해 보면, 내가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나? 궁극적으로 보면 다 같이 잘살자는 거잖아. 공산주의가 그런 거라며. 하지만 우리는 인도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부분들인 건가 이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뭐랄까, 이념이라는 단어자체가 사람들이 크게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색깔을 빨강과 파랑으로 나누어버리고 응, 블러드 앤드 크립스(Blood & Crip) 그러나 대부분 회색이잖아요. 그들 눈에 보이는 대중은 회색주의자이지만 사회구성원의 대부분은 그 회색인데 감히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나. 다른 배에서 나오고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욕심만 안 부리면 된다고 생각해.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겠네요.) 응. 특별히 내가 음악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 김재천으로서 그러는 것이고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 서로 잘 되면 좋지 않을까? 인간이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동물이고 인간의 모든 일들은 정치적으로 해석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에도 정치적 개인 입장을 가지지 않고 없는 자체를 무기로 삼거나 선택의 기회를 가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말이 좋은 거네, 따지고 보면. 말이 좋은 것 같은데? 글쎄 모르겠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변명 아닐까? 나도 색깔이 없다고 했잖아.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은 색깔(입장)이 없음이 변명하기 위한 말이잖아? 그건 안일한 자세야. 다시 힙합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성공한 래퍼들이 많아졌지만 그러나 대안적인 모습, 언더적인 모습이 가려지고 퇴색된다.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연예인 같은 모습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쇼를 하는 사람이고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 줘야하는 엔터테이너이니까. 그리고 음악 자체는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좋다고 생각해. 퇴색되었다고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어떤 변화에 있어서든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많아. ‘뭐, 별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면도 있고. (하지만) 그 ‘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프레쉬하고 팝적인 그런 느낌, 흔히 말하는 쌈마이 같은 느낌들. 그런 게 잘 되는 이유가 있을 거야. 사람들이 좋아하고. 좋은 거야. ‘절대 결코 다만 오직 단지’의 문화가 아닌 기획사로 가는 길이 된 부분들이 있는데 언더 랩퍼들도 그런 영향 때문인지 기획사로 들어가는 것을 꿈꾸기도 하잖아요.그들만의 길이 있다고 생각해. 뭐라고 할 수 없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의 느낌 같은 애석함은 느낄 수 있겠지만. 사는 것은 본인의 문제이고 어떤 형태를 취하느냐는 개인적인 문제이고. 그 문제를 형에게 비춰본다면, 예를 들어 그런 제의가 들어온다면?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제의가 나에게 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라면 나는 분명 할 수 있어. 하지만 결코 뭔가 놓칠 수 없는 것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가사’는 절대 포기 못해. 가사만큼은 철저하게 그냥 내꺼야. 고스트라이터도 많이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어떤 식으로든 나의 감상이 표출되는 것이고. 이름이 다른 사람인데? 시발 그러면 안 되지. 작사는 당연히 붙어야지. 내가 지키려는 것은 ‘내가 나’인 것이야. 절대 내 이름은 들어가야 해. 가사 이런 것도 일로 치면 그중에 한 부분일 뿐이니까. 힙합 리스너들이 스킬적인 면만 찾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데 그런 점에서 자신이 찾아가는 방향을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스스로의 랩에 대해서는 정의를 내려놓지 않았어. 그래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라임과 플로우는 물론 중요하지, 게임이니까 룰이 있는 거고. (그래야) 재미도 있고. 그런 면에서 라임과 스킬, 플로우에 집중을 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기 때문이 아닐까? 엔터테인먼트, 즐기는 것, 즐거움. 그러니까 찾고. 더 집중하고. 자연스럽게 찾고. 인간적이지 않아? 많은 래퍼들이 교육자의 길로 많이 들어서고 있고 거리에서 그전의 퓨어한 면이 많이 사라졌는데 거리에서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많지. 오래됐지. 물론 나를 포함해서. (더 힐의) 가리온 인터뷰를 보면 ‘거리에 힙합이 존재하지 않고 인터넷에서만 존재한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여유가 없어. 언더힙합 하는 친구들도 바쁠 수밖에 없고. 교육자로서 나도 물론 준비하고 있지만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돈을 벌 수 없어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는 것이고. 누군가는 힙합을 가르친다. 그런 것들을 안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힙합을 듣다가 따라하고 그러다가 인터넷을 통해 피드백을 얻고 그러는 것들과 똑같은 것 아닐까?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고 그러는 것들. 그 대신 대가가 있는 거지. 선배들의 지식을 얻고 피드백을 얻고, 그 대신에 그 사람의 이야기에 대가가 있는 것은 괜찮은 것 같아. 다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생각이 있어야겠지. 나쁜 걸 가르치면 안 되지. 살롱 01(Salon 01)의 크림팀 프로덕션 1위를 하면 앨범제작을 것들을 보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면에서 괜찮은 것 같아요.기회를 주고 부가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니까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 나도 주된 수입원이 없기 때문에. 단지 돈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야. 일단 나도 일을 해야 하고. 후배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후배라는 단어는 뭔가 거만한 느낌인데. 솔직히 나와서 내 안에 있는 터울. 세대를 거치며 사람 만날 기회가 많이 적어졌어. 예전에는 프레쉬한 인재들을 계속 만났거든. 그런데 지금은 기회도 많이 줄어들고. 그런 면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 그리고 누군가를 가르치면 자신도 공부가 되기 때문에 그런 면을 기대하고 있어. 분명 그 친구들보다 내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야. 기대하고 있어. 보니(Boni)와의 인터뷰에서 보니씨가 자기 제자에게 ‘한국 예전 음악들을 듣고 음악을 하고 싶어서 여기 왔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자신이 하는 음악이 한국음악인데도 그것에 대해서 너무 몰랐던 것이 아닌가라는 면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없어요. 우리나라 대학 과정에는 (한국음악에 대한) 책도 부족하고좋은 시도라고 생각해. (평론가 김봉현의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를 예로 들며) 최근 노래패연합 인터뷰에서도 연합을 생기는 고민들도 ‘이전에 했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자료가 있으면 더 튼튼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텐데‘라는 말을 했다. 한국 힙합도 생각을 해 보면 그런 것이 없지 않나. 가리온은 인터뷰에서 한국힙합은 10년이 되었는데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셨고요. 글쎄. 일단은 인프라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해. 하지만 연합이라는 개념을 조금 더 생각해야 할 거야. 서로가 유기적으로 뭉치는 그런 느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각자의 삶에 있어 너무 바쁘고 음악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일단은 잘되는 면을 이야기 할 거 아니야. 어쨌든 사람들이 사람들끼리는 친하지만 공동체로서의 뚜렷한 뭔가가 없고 남는 것이 없으니까. 잘하면 되지 않을까? 더 친해야 하고, 더 좋은 생각 많이 하고, 그리고 돈도 잘 벌어야 하고. 공동체적인 ‘힙합 4대 요소’라고 말하긴 웃기지만. 한국 힙합은 왜 따로 노는 걸 까요?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바빠. 삶이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 4대 요소도 그런 사람들이 종사자들이 모일 기회가 없을 뿐더러. 너무 여유가 없어. 나도 통감하고, 나조차도 못 그러고 있으니까. 메타 와 렉스 I Wanna Rock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힙합 문화들을 다 같이 비추어 가는데 그런 것들이 한국에서는 적은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그런 거지 수익적인 면에서 이익이 안 남으니까. 돈이 안 되니까 그러는 동기(도 적어지고) 예전에는 어느 정도 파워가 있으면 푸시를 해주는 (것이 있었는데) 파워가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재지 아이비(Jazzy Ivy,JAZ)가 존경스러워, 비보이랑 같이 하고 그랬잖아. 금마가 전파하는 움직임들이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수익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점에서는 내가 되게 존경하는 친구이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나이 서른의 래퍼로서 래퍼를 꿈꾸는 10, 20대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조언을 해준다면나는 헛소리는 안했으면 좋겠어. 헛소리 안했으면 좋겠고 망상을 하지 말라. 자신은 현재로서의 자신에 충실 할 뿐이지. 그냥 헛소리는 안했으면 좋겠어. 쓸 때 없는 이야기. 술 마실 때 친구들이랑 하면 되는데 굳이 몇 분 안 되는 음악에다가. 한두 개는 괜찮은데. 요새 내가 느끼는 느낌이 그런 거야. 남는 게 없어. 남는 것이 없는 것들이 꽤 있거든. 뭐 취향이겠지. 좋은 이야기, 좋은 생각 많이 했으면 좋겠어. 가족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뭐 지인들을 많이 생각하고. 작곡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하신 거예요? 칠린스테고. 아, 같이 만들기 시작한건 엘큐랑 같이 살 때. 내가 처음 찍은 비트가 하이햇(Hihat)이 없었어. 얼마나 무지했으면 드럼다이를 만드는데 하이햇이 없어. 모르니까. 엘큐랑 같이 살 때는 랩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고 그러니까. 엘큐가 나보고 비트 만들지 말라고 했거든. 근데 결국에 아이엔씨로 킹더형 컴필 들어갈때 금마가 내 비트를 썼지. 내 노래에 대한 애착이 크니까 계속 써봤어. 100% 내 노래. 요새 믹싱도 많이 공부하고 있는 현재이고. 래퍼로도 내 것을 가지고 싶어. 어떻게 보면 작가주의이지. 욕심. 그런 작가주의적인 면을 가지기 위해 한 노력들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많이 듣고, 친구들에게 많이 불어보고, 좋아하는 노래 많이 듣고. 그것들을 구현하기 위해서. 비트를 하루에 4개까지 만들어 본 적이 있어. 작업할 때 사용하는 장비는 뭘 사용하고 계세요? 처음에는 컴퓨터 하나였지. 지금은 코르그에서 나온 M3는 키비(Kebee)한테 샀고 샘플러는 Akai S3000i Sampler. 그거는 소리헤다한테 6만원에 샀어. 그리고 마스터키보드 엠오디오에서 나온 거. 불타기전에도 그걸 썼었거든. 프라이머리가 이야기해줬는데 좋았어. 그래서 불타고 나서 장비 다시 사는데 그걸 또 샀어. 모니터는 인프라소닉 BLOW5. 저렴한 거야 뭐 그냥... Korg M3 Akai S300 룸 어쿠스틱(Room Acoustic)도 많이 중요할 것 같은데 집에 녹음시스템까지 갖추어있지는 않아 아직. (그건) 엔지니어적인 문제이고 취향문제이니까. 잘 만들려면 일단 건조한 게 좋지 않을까? 밴드 같은 경우 어쿠스틱이 중요하잖아. (하지만) 힙합은 그런 것보다 건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무래도 건조한 소리로 작업하는 것이 수월하니까. 음악작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소하세요? 음악이지 뭐. 스트레스 푸는 것은 듣는 것으로 밖에 해소가 안 되는 것 같아. 스트레스 받는 거는 만들어야해. ‘해야 해!’ 이런 것들. 내가 내 것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남의 음악은 프레쉬하잖아. 사람이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어. 하면 되지. 가사 소재는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일상이나 사는 데에서.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이나 전부. 내 삶, 거리, 이런 빨대나 (컵에 꽂힌 빨대를 가르치며) 너의 좋아진 피부나 (김경현 인터뷰어를 가르치며) 피부, 빨대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가사를 풀어쓰거나 가사를 쓰기위해 자신의 생각들을 가사로 풀어내는 랩퍼가 있을 텐데 형은 어떤 방식으로 쓰세요?나는 둘 다 인 것 같아. 정립이 되어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내 가치관이 정립이 된 거잖아. 내 가치관이 있는 것이고. 무엇이든 생각이 있다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나오지 않을까? 음악으로써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뭐예요? 아름다운 삶? 행복한 미래? 코스요리로 점심? (It Ain't $Hit 가사를 예로 들며) 그렇지 뭐 약간 그런 것들, 깔끔한 배변감이라던가. 그런 좋은 것들. 이제 앨범이 나오는데, 그동안 생활은 어떻게 해오신 건가요? 알바를 하고 그랬지. (강남 교보문고 등에서 전등 같은 거 설치하는 알바를 하셨다고) 많은 뮤지션들도 그거 같이 하고 그랬어, 지인 통해서 (일을) 물었는데, 그게 DP하는, 인테리어 같은 거였어. 크리스마스에 등 같은 거 달고 그러잖아. 그런 것도 하고. 뭐 알바 많이 했지. 컴퓨터로 데이터 입력하고 그런 것들. 지적공사 땅값매기는 그런 곳에서도 알바 하고. 근데 다 부질없다고 생각해. 하나만 파야지. 그런 것들 때문에 발전이 더디었던 면도 있었다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많은 중압감이 되었지. 그런 스트레스가 나의 음악에 색을 만들거나 그런 기여가 있다고 생각해. 웃고는 있는데 눈물이 나는 웃음. 그런 느낌이거든. 내 것을 들어보면. 애증. 가사를 보면 마블, 캡콤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게임, 만화. 나 어렸을 때 꿈 원래 만화가였거든. 즐거운 거 좋아하니까.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가. 흐지부지 자연스럽게. (웃음) 뭐 하나가 되고 싶다. 우아아악!!! 이런 거는 없던 것 같아. 살면서 좀 많이 생겼지. 치열하니까. 멋있잖아. 히어로. 내가 나를 이입을 시키는 거지. 대리만족. 멋있잖아. 히어로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스폰(Spawn) 같은 것 있잖아. 어둡고 안 좋고. 악한 느낌도 있지만, 간지 나잖아. 선악을 구분 지을 수 없는 그것이 사람이니까. 사람이 다 그렇잖아. 불완전한. 나는 내 모습을 많이 찾아. 불완전한 내 모습. 그렇기 때문에 완전해 지려는 노력이 되게 멋있거든. 하지만 절대 완전해 질수는 없지, 사람인지라. 힙합이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정리를 하고 넘어 갈 텐데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으로 문화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느냐 대한 강조를 하고 싶어. 뭉쳐야 살지. 여유로워졌으면 좋겠고, 남을 좀 더 배려했으면 좋겠고, 뭐 어쨌든 다 좋은 삶을 만들어가야 하겠지. 자식들에게 좋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나중에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 이제 이번 부틀렉 'Wreckage'와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Through The Fire, 불길을 지나서 사고 당시 힙합플레이야에서는 어떤 분이 사망했다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어요. 전신 3도 화상. 꼭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 스스로에게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되게 나태하고 게으른 의지박약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 (뭔가)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대인기피증 같은 것.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신이 없었어. 그렇다고 게임에 목 메이지는 않았어. 작업으로서 그런 것들. 하지만 자신이 없고 환경 자체가 어떻게 보면 핑계일수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왔던 것 같아. 사람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있는 것 같아. 자존심이 너무 강했으니까. 전환점이 된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2009년도에 내가 3번 트랙을 녹음했다고 했잖아. 지금의 3번 트랙. 그 다음 곡 녹음하는 날이었어. 이번 탭 더 시티(Tap The City)를 녹음하는 날이었을 거야. 그런데 컨디션 때문에 다음번으로 미루어 졌어. 태우형(소울맨)이랑 상욱이(알-이에스티)랑 술을 한잔 했어. 그리고 집에 가서 여자 친구랑 전화하다가 싸우고 잠에 들었어. 그 다음날... 사고가 난거지. 화재사고가 난 이유는 최종적으로 국과수에서 나와서 조사를 했을 때도 불명이었어. 원인불명이면 보상이? 없지. 다른 분들은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나가고 혼자 자고 있었다고. 간발의 차이었던 것 같아. 순식간의 시간차이에. 불은 참 무서운 거더라. 건물이 전소되었어. 당시를 이야기하자면, 집이 있으면 내가 세 걸음. 방에서 세 걸음이면 집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때가) 마지막으로 내 방이 탈 차례였어. 그런 상태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문을 열고 숨을 한번 들이마신 후에 나왔는데 그 세 걸음 사이에 그렇게 탔더라고. (병문안 갔을 때 들었지만) 밖으로 나와서 든 생각이 ‘아 시바 내 비트들’이었다. 그리고 화상 입은 환자한테 옆집 할아버지는 불 끄라고 그랬다고 불 끄라고. 나 다 녹아서 (팔을) 이러고 있는데. 불 끄라고. (그렇게) 현관문을 차고 나왔지. 잠겨있었다면 죽는 거였는데 다행히 문을 차고 나왔지. 거기에 대한 의미를 두고 싶지. (‘문을 박차고’라는 곡에) 너무나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은, 벗어나야하는, 그런 것에 의미를 뒀다고 생각해. 나약한 나의 모습에서도 많이 벗어났고. 사고 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면 변한 건 없어, 입원기간 한 달 반 두 달가량 되었는데 병원에서 생활하는 게 조금 그랬지. 특이한 경험이긴 했어, 어릴 적에 뭐 하나 부러지거나 다쳐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많이 응원해주었기 때문에. 수술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던 거죠?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었잖아. 중환자실 들어갔을 때. 입술도 없었고. 그러다가 중환자실에서 나오려면 지불을 먼저 해야 한데.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모아서 도와주었고. 일반병동으로 옮기게 되었고. 친척누나가 조영남 선생님 라디오(지금은 라디오 시대)에 사연을 올렸더라고. 그래서 모금이 많이 되었지. 고맙게 생각해. 내 기억으로는 천만 원 이상 되었다고 생각해. 내 병원비가 육천인가 되었던 것 같아.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이나 이런 것들로 잘 처리가 되었어. 변제하고. 엄청난 돈이잖아, 우리 부모님도 전세에 사는데 그러니까. 수술은 두 번 했고. 큰 수술이지. 겉에 피나오고 누르면 진피라는 곳이 있고, 지방층이 있는데 지방층까지 탄 거야. 손이 움직이거나 관절이 움직이려면 그 지방층이 있어야 한데. 그게 있어야 부드럽게 윤활이 되니까. 그런데 그게 없으니까 허벅지 살 벗기고 그런 식으로 2차 수술을 했지. 퇴원 이후에 통원치료는 통원치료는 이제 끝났고. 일정 기간 지나고 나서 병원을 가야하는데 앨범 작업하느라 가지 못 했어. 사실 면회 갔을 때 많이 놀랐어요. 사고도 사고였지만 억지로 웃은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저보다도 훨씬 밝아보였는데 애써 그런 것이었는지 그래? 나는 그래야 되는 사람이야. (웃음)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 인터뷰 중 가사에도 언급이 되었는데, 나는 나를 되게 움츠려 들게 하잖아. 어쨌든 나는 강해야한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웃었어야만 했어. 그 환경에 대해 냉담하게 했어야 했었고 왜냐면 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야 하니까 한 거야. (하지만) 그것은 절대 가식이나 그런 것이 아니었어. 2005년부터 꾸준히 타인의 앨범이 나오는 것을 지켜봐왔고 혹은 참여해왔는데 이번에 싱글이 아닌 마음에서는 정규인 앨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마음속으론 정규라고 하지만, 형태로서는 부틀렉이라고 했잖아. 왜냐면 완전하지 않으니까. 내가 사고 났을 당시 비트가 한 300개정도 있었어. 아무튼 소스랑 데이터가 모두 날아갔어. 소스도 마찬가지고 그걸 어떻게 다시 다 구해. 어떻게 할 수가 없지. 그래서 수소문을 했지. 그 사이에 만들어놓은 데모나 모니터링으로 들려준 곡들. 그것들을 다시 샘플링 하거나 그대로 사용하거나 신곡으로 또 작업해서 만든 거지. 원래 음악이 소스, 킥, 하이햇 이런 식으로 (트랙별로) 하나씩 믹싱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음질이 좀 떨어지는 면이 있어. 그렇게 불완전하기 때문에 상품으로서 사람들에게 던져주었을 때는 불완전한 면이 있다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들려줬을 때는 정규앨범이 되면 안 되었어. 그렇게 때문에 부틀렉이지. 한국힙합에서는 아마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최초의 부틀렉인 것 같은데 그렇게 이야기 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어떻게 작업했는지 트랙 별로 짚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트랙리스트를 보며 이야기한다) 01. Intro ‘인트로’ 같은 경우는 내가 정규앨범을 준비했을 때의 정규앨범을 위한 인트로야. 들어보면 알겠지만 분위기가 붕 떠. 정규를 위한 인트로이기 때문에. 이 비트 같은 경우 남아있는 데모 트랙 소스를 가지고 작업을 했고. 소울 다이브 (SOUL DIVE) 회사 J2엔터에서 녹음했어. 잘 진행되었어. 02. 문을 박차고 ‘문을 박차고’의 경우 그 소스 자체로 진행을 했지. 가사도 새로 쓰고. (사실) 2번 트랙 ‘문을 박차고’ 가 진짜 인트로야. 1번 트랙과 2번 트랙이 이어지는 것을 봤을 때 콘셉트적인 면이 있는 것 같은데 트랙들이 이어지는 콘셉트 앨범 같은 것인지. 구성상에서 되게 유기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아. 일부러 그렇게 배치를 한 이유가 어떻게 보면 흘러간다는 느낌이 아니고, 좀 약간 불안함을 심고 싶었어. 앨범 자체에. 기승전결이 있는 것이 아니고, 부틀렉이기 때문에 조금 더. 앨범이 만들어진 상황 때문에 더 불안함을 주고 싶었고. 03. AVALANCHE (feat. DJ JUICE) AVALANCHE 같은 경우 2009년에 녹음을 한 거야. 데모 그대로에다가 예전 2009년 녹음했던 그대로. 04. 찢어버리지 (feat. B-FREE, RHYME-A-) (REMASTERED VER.) 4번 ‘찢어버리지‘ 같은 경우 예전 소스를 그대로 샘플링을 다시해서 비프리와 라임어택과 다시 녹음했고 05. Gossip5번 ‘가쉽’은 드럼 루프였는데 그것에 추가를 조금 더해서 악기를 추가를 하고 그렇게 만들었지. 분노를 표출하는 곡이야. 06. Interlude #1 참는 법‘인터루드’의 경우 정규앨범이었으면 이것이 정규앨범에 들어갔을 거야. 무서우면서 진정한 느낌으로 만들어진 거라서. 참는 느낌이라 그런 이름을 지었고 07. 우기 (feat. MINOS) ‘우기’의 경우 한자로 비가 오는 시즌인데, 다른 한자도 많이 찾아봤는데 ‘친구한테 빈다.’는 뜻도 있더라고. (그리고) 인디언처럼 훅에서 하는 것이 모호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좋은 벌스 같이 해주고, 술 먹을 때 하는 이야기들 많이 실었어. 신세한탄을 하거나 속을 풀 때는 친구밖에 없어. 친구한테 하는 이야기야 08. 준비된 랩퍼라면 모자를 벗지마 (feat. 가리온) 알다시피 가리온2집 ‘소리를 더 크게’에서 메타형(MC Meta) 벌스. ‘준비된 랩퍼라면 모자를 벗지마’ (힐 -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내가 메타형보다 랩을 못하지. 라임어택이랑 마이노스랑 프로젝트를 준비했었다고 했잖아 그게 원래 이 TTFT였어. 그런데 마이노스가 제의를 했지. 너의 개인 앨범으로 바꾸어라. 그게 의미가 더 클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다가 그 구절이 존나 꽂히잖아. 퇴원하고 나서 만든 비트에 ‘준비된 랩퍼라면 모자를 벗지마’라는 메타형 부분을 잘라서 차핑(Chopping)을 해봤지. 잘 어울리는 거야. 메타형에게 말씀드리고 나찰형에게도 말씀드렸어. 그리고 형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셨어. 나는 내가 신인이라고 했잖아, 그런 의미에서 (형들이) 나에게 힘을 실어준 트랙이지. 내가 쓴 모자의 의미를 정의하기에는 가리온 형들이 필요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지 감사하게도. 녹음은 이번 달에 했어. 메타형은 녹음하러 오시기 전에 가사를 써왔어. 정말 준비되어 있었지. 그렇게 나온 곡이야. 그리고 많은 구성, 곡을 편곡하는 데에 있어서. 그냥 페이드아웃 된 노래들 많지만. 이 곡이 가지는 페이드아웃의 의미는 준비된 래퍼가 그 다음 곡을 이어줬으면 해서 페이드아웃을 한 거야. 준비된 래퍼가 있을 거라고 믿어. 09. Bekind, rewind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경우 술 먹는 이야기지. 다 개인경험담에서 나온 이야기고. 이것은 예전 비트에 녹음을 진행한 것이고. 핵심적인 이야기는 영화제목이잖니. 흔히 필름 끊겼다고 하잖아 술 먹을 때. 영화 빌리면 반납해야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적어도 네가 무엇인지는 잊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실제로 술 먹고 다음 날 깨어보니까 담 사이에 끼어서 자고 있고. 정말 요만한 공간이었어, 깨고 보니까. 스파이더맨처럼 매달려서 나왔고 (웃음) 라임주머니에 대한 가사가 있는데, 라임주머니는 이걸 뜻하지 (배를 쓰다듬으며) 핵심적인 이야기는 "네가 무엇인지는 잊지 말아라" (이바라키 노리코의 시,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라‘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10. Interlude #2 Unofficial rec. 가녹음 상태로 하다가 새로 녹음을 했어 약간 텁텁하게. 역할에 대한 갈등, 그것에 대한 이야기야.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현실에 대해 냉담해야하고, 점마들처럼 해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싫어서 갈등하는 이야기를 썼지. 데모곡에 녹음만 새로 했고. 되게 자조적인 내용이지. 가장 우울하지. 따지고 보면. 11. Interlude #3 Let me.. 원래 소스 비트로만 이루어진 곡이고, 인터루드 상태로만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밸런스가 잡힌 것은 아니지만... 샘플 컷팅 된 목소리에 ‘렛미(Let me)’가 나오거든. 내가 제발 무언가를 하게 해 달라. 처음에 전 트랙에서 자조적인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이런 이야기 (내가 무언가 하게 해 달라)가 맞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슬프지, 남에게 내가 무언가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 12. 웃긴놈 (prod. by JA)2009 년인가 JA에게 곡을 받아서 가녹음을 했었어, 그런데 그걸 안 쓰고 도발네 집에서 새로 녹음을 했지. 마냥 웃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되게 쪼다같애. 내가 그렇게 썼지만. 내가 왜 웃긴 놈이 되느냐가 사실 내가 표출하고 싶고, 할 수 있었지만 안했잖아. 그냥 내 스스로가 웃기잖아. 그런 사람들도 분명 많이 있을 거고. 그래서 벌스 마지막에 마지막을 보면 "살쪄서 못 입는 드레스“라고 쓴 거야. 나니까 입을 수 있어. 찌질하지만 나는 곤조가 있다고 변명하듯이 말하는 치졸한 이야기야. 마지막 샷 아웃에 ‘걱정하지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단순하게 걸어.’ 나도 웃긴 놈이 되는 것이고 너도 웃긴 놈이 되는 거고. 같이 웃으면 땡이지. 펑키하고 신나는 비트를 줘서 했어. 13. Tap the city (REMASTERED VER.) 예전에 내가 민호(마이노스)가 대구에 빅코(BICCO)라고 힙합트레인하는 동생이 있는데, 금마가 서울에 잠시 있으면서 같이 팀을 할 뻔 했었어, 비트를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작업을 하려다가 무산이 되서... 신나는 노래에. 되게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더블 바운스로 가잖아. 그 이유도 기교 있고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들으면서 특별시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의도적인 건가요? 아니, 원래 팀 이름이 ‘탭 시티’였어. 딱 주는 그런 느낌도 두들기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고. 되게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야. 원래 있던 데모소스 그대로 진행하였고. 14. 20100128 TTFT (feat. Soulman) (prod. by VIDA LOCA) 이 앨범의 성격을 정리하는 곡이지. 그런 느낌이고. 사고 날짜야. 나의 전환점이 된 날이고. TTFT는 앨범 제목이고. 내 작업들에 대한 애도이자 송가. 사고 당일 새벽에 술을 먹었던 사람들, 알이에스티가 믹싱하고 노래도 소울맨형이 해줬고. 같이 있진 않았지만 곡은 부탁해서 비다로카(VIDA LOCA). 태우형 노래가 안 들어갔으면 앨범에 안 실었을 거야. 막바지에 녹음을 했어. 태우형(소울맨)이 훅 가사도 써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담하게 잘 이야기 해줬고. 가사에 ‘쓰여진 문신, 가슴엔 불씨’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요? 쓰여진 문신은 내 상처. 문신이니까, 내가 이걸 보며 잊지 않을 거니까. 몸에 새겨지면 문신이지. 그리고 행복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삶은 행복하다는 것을 이야기를 6월 28일이 앨범 발매일인데, 그 의미에 부여를 한 것인지 특별한 의미는 없었어. 상하반기를 나누면 상반기에는 빨리 작업을 해야 했고 하다보니까 날이 그렇게 되었는데 여자 친구와의 900일이기도 하고 의미가 크지 선물로 줄 수 있고. 이제 와이프인데. 와이프 될 친구인데. 15. Outro (Soul word) 마지막으로 ‘아웃트로’는 인스(Instrumental)야. 원래는 가사가 붙어있는 노랜데, 내가 벌스1만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이렇게 되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해서 (가사를 붙이지 않았어) 원래는 제목이 ‘소울 워드(Soul word)’였고 부재가 ‘루프(Loop)’였어. 도는 것. 삶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는데, 짧게나마. (기억 속의 가사를 더듬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계속 돌고 나에게는 ‘대’가 있고,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나는 분명 세상을 놀라게 해주겠다.‘ 담담한 말로. (기회가 되면 내가 가사를 보내줄게 같이 실어줬으면 좋겠어.) 삶은 돌고 돌고. 흘러간다. 마지막은 그렇게 정리를 하고 싶었어. Optical Eyez XL - Soul word (Loop) 삶은 마치 룹 다람쥐의 쳇바퀴 커피 값으로 대신하는 가사의 제작비 내 나이 끝에 매달리는 이 시간의 사치는 내 깊은 단어를 잉태하는 배란기 변하는 강산 내게 남은 두 번의 잔상 곧 세 번째를 마주하고 있지 단순한 도입식 같아 보이는 세상을 얘기하면 말할 때 침만 튀기는 독일인 가끔 멈춤도 필요하거든? 근데 너무 오랜 안되 그들이 미쳤다 하거든 깃털보다 가벼운 증오로 가둬둔 내안에 잊혀진 순수란 이름의 마녀들 생각 행동 또 습관으로 영원함 앞에 지난 시간은 순간으로 그저 불사르고 남는 재일지라도 무덤가의 귀신처럼 어린애를 놀래키지 필시. 윤회적인? 뭐 그런 건 없고. 난 다시 태어났을 때 그냥 돌. 그러긴 싫거든. 6월 15일 디지털로 발매 된 ‘FINDING PIECES‘라는 앨범의 제목에 담긴 의미는 싱글 자켓을 대팔형(Daephal)이 해줬는데, 같이 이야기 나누다가 잔해로서의 조각이잖아. 조각을 줍는 느낌이니까 피시스(PIECES)였다가 조각을 찾는 과정이니까 민호가 파인딩(FINDING)을 붙이자고 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 싱글에 담겨있는 ‘찢어버리지’와 ‘Tap the city’. 부틀렉에 담긴 곡이 다른 버전인 건가요? 티끌만큼 달라. 털 하나만큼 전략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건가요? 사운드를 새로 만졌다는 것 자체가 다른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부틀렉으로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상품을 파는 것이지. 우리나라 음원사이트들은 음질은 신경 안 쓰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리마스터링반과 마스터링반의 차이를 두지 않고 팔잖아요. 몇몇 리스너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댓글들로 예전에 정기형(Junggigo)이 이야기 했었는데 "가격 비싸다 싸다. 트랙 몇 개 밖에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비싸요?" 이러는 거야. 근데 그건 되게 저질이야. 그 생각이 저질인거야. 그건 그 작품에 대해 리스펙이 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 과일을 떨이로 파는 그런 개념이 아니잖아. 온리 원 하나밖에 없는 거고. 사람들이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어. 싱글앨범 같은 경우에도 돈 주고 살 가치가 있는 것들이고. 그리고 음원이 너무 싸. 왜 뮤지션들에게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지 모르겠어. 한 곡당 천원도 안하잖아. 사람들이 돈을 아깝다고 생각하잖아요. 커피는 4천원 6천원 주고 마시면서.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리스펙이 없다고 밖에 이해를 못 하겠어. 정말 아닌 것 같아. 그냥 지나가다 나에게 돈 오백 원을 줘. 그게 남는 거야. (리스펙이 없기) 때문에, 돈이 안 벌리는 거야. 뭐 어쨌든 나는 내 음악을 들려주는데 의의가 있지만 수익구조가 지금 이러니까, 지나가다가 뮤지션에게 오백 원 주라고. 그런 점에서 우린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요? 어떻게 내가 무얼 이야기 할 수 없지. 그들이 이미 링을 만들어 놓은 것에 붙어서 가는 건데. 그리고 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움직여줘야 하는데, 바꾸지 않겠지. 그게 돈이 되는 것이니까. (그들이) 이야기해서 바뀔까? 이미 기득권인데? 일단은 리스너들이 그런 자세만 바꿨으면 좋겠어. 존중해줬으면 좋겠어. 예전에 형이 리스펙(Respect)은 존중과 존경 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셨던 게 생각이 나요. 말로는 존경한다고는 하지만, 존중은 전혀 없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존중은 접근하기 쉬워. 존경까지는 많이 알아야하니까 어렵지만, 존중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하나니까 갖추었으면 좋겠고. 그게 맞다 생각해. 나도 그들에게, 누군가가 나를 대우해주면 나도 그 사람을 대우 해 줄 수 있으니까. 작업물을 모두 날리고 정규작업을 다시 시작한 건데 그 시기와 과정들을 이야기 해주세요. 퇴원 이후에도, 병원에 있을 때에도 생각을 했지. 어떻게든지 해야 하니까. 그리고 여기에 대한 기록을 되게 하고 싶었고. (작업) 시작의 계기는 민호가 많이 힘이 되어줬어. 전체 트랙을 알-이에스티, 민호, 본킴형(Born Kim)이 많이 도와주고 디렉팅을 해줬어. 형래(라임어택)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스스로 나약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측근으로서, 마이노스가 아닌 친구 최민호로서도. 많이 알고 있었고 되게 자연스러웠어. 물 흐르듯이 간 것 같아. 내 스스로를 다잡는 스스로의 다짐, 각오, 그런 것이 절실했었고 그런 것들을 정립했어. 병원에 있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하루하루, 매일 사람들이 찾아왔어. 태우형(소울맨) 같은 경우 정말 매일 왔고, 일 끝나고 새벽에라도 먹을 거 사가지고 왔고. 손 재활하는데 좋다고 ‘스펀지 공’ 이런 것도 사오고. 샤카 칸(Chaka Khan)의 ‘Through The Fire‘ 노래도 불러주고 그랬었어. ‘20100128TTFT’ 그 곡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매일같이 사람들이 오는데 다 다른 사람이었어. 옆의 환자분들이 되게 부러워했어. 힘이 많이 되어줬어. 그래서 열심히 해야지 이 말밖에 할 수 없구나. 그게 음악인으로서의 전업을 다짐하게 된 계기였어.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작년 6월, 딱 1년 전인 것 같아. 준비를 시작했다고 하기에는 모호한 게 몇 년 전부터 만든 비트도 있었고, 재가공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아. 준비는 항상 되어있었던 것 같아. 스스로 ‘준비된 래퍼라면 모자를 벗지마’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아. TTFT Werckage도 중요한 의미를 같지만, 이 이후에 나올 앨범도 큰 의미를 가질 것 같은데 어떤 주제에 대한 스케치를 해보고 있고 구성해보고 있는데, 가사적인 면에서 좋은 이야기 하고 싶고 사람들 속에 나의 잔해를 남기고 싶으니까. 거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 큰 콘셉트는 많이 하고 있는데, 세세한 것은 하나씩 생각해두고 있어. TTFT 티져영상을 보면 팔을 비추는데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의미라. 그게 그냥 나이기 때문에. 나는 나로서 그 사람들에게 비추어지어야 학기 때문에. 나의 앨범 자체도 나의 증거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나와야 됐다고 생각해. 그게 맞아. 그게 당당한 것이니까. 따로 뮤직비디오도 생각하고 있는데, 누가 촬영을 할지는 아직 안정해졌고. 타이틀 같은 경우 누가 찍어 줄지는 아직 안정했어. 앨범이나 작업들에 대해 덧붙일 말이 있다면 어쨌든 이것은 앨범에 관련된 내용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맞다 생각해. 어차피 내가 음악을 하는 것도, 자판을 치는 것도 (녹취록을 작성하는 인터뷰어를 바라보며) 어차피 사람이기 때문에 다 할 수 있는 것이고, 나의 시간의 흐름과 역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만들어 나갈 것이고 나의 일부라는 거지. 잔해, 남아있는 것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에 대한 증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어, 다들. ‘좋아해주세요’ 라는 말은 안 할 거야. 안하겠는데.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으면 좋겠어. 마지막 질문을 드릴 거예요. 먼저 지금껏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미 땡스 투에 존나 많이 들어갔어. 일부러 A.K.A랑 본명이랑 다 썼고, 말 못한 사람들도 있어. 거기에 대해서는 죄송하고. 일단은 가족들. 음악 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힘든 이야기인걸 알지만 믿어줬고. 또 내 와이프 될 사람.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 찌질하지만 밥 먹여 주고 술 사줬던 친구들. 한 친구는 내가 정말 돈이 없는데 안경 부러졌을 때 사주고 그랬거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잘 할게. 내가 잘 할게, 앞으로 더 잘할게.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어. 그들도 형 인생의 역사니까 당연하지. 나도 그들 역사 중에 한 부분일 것이고. 뭐 되게 감사해. 좋은사람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끝까지 읽어준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더 힐 독자 여러분들께 더 힐 관계자, 동생들 모두 전부다 고맙고, 샷 아웃을 존나 해주고 싶어. 네가 맨 처음 더 힐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취지가 되게 좋았거든, 저명인사건 어쨌든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 나눌 것이 있잖아. 어떻게 보면 인터뷰 중 인디인데, 취지를 가지고 나간다는 것에 대해 리스펙하고, 사람은 사람으로서 완성된다는 것에 동의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아름답고, 그 점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싶고. 어떻게 보면 지면상으로는 웃기겠지만, 나 같은 사람의 글을 읽느라 시간을 할애 해준 사람들에게 고맙고, 다들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고, 어려움이 있으면 이겨내고, 그렇게 컸으면 좋겠어. 물론 내가 크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사람은 사람이니까 좋은 생각을 해야 해. 사람에게 서로 기대고 그랬으면 좋겠어. 추가내용 1. 3번트랙은 디제이 쥬스. 2009년에 준비했다가, 최근에 소스를 받아서 했고 쥬스도 되게 바쁘거든, 드렁큰 타이거 공연에도 세션하고. 소울 다이브 앨범도 많이 하고. 곡도 잘 쓰니까 쥬스가. 소울 다이브 신곡중에 ‘주먹이 운다.’라고 있잖아 임재범씨 피쳐링한. 그걸 쥬스가 했거든 잘하는 친구고. 흔쾌히 맥주를 사줘야겠어. 추가내용 2. 비프리 같은 경우에도 내가 좋아하고, 퓨어하게. 비프리도 나를 밝게 (대해주고) 좋아해줘. 민호도 사랑하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감상을 공유하는 창작자로서 너무 내가 좋아하는 친구이고 잘 되었으면 좋겠고, 태우형 내가 형 너무 사랑하고 뭔가 내가 어려움을 같이 이겨왔고, 말은 안 해도 내가 형의 사랑을 느끼고 있고. 가리온 형들 내가 닮아 가야하는 형들, 랩 스타일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멋있다고 느끼는 형들. 그 형들은 절대 허튼 이야기 한 적 없거든 단 한마디도. 그 형들 따라가고 싶어. 도와드리고 따라가고 싶고. 알-이에티도 앨범 준비하는데 금마도 나 많이 도와주고 금마 앨범에도 내 곡이 몇 곡 들어가. 그리고 내 결혼식의 축가는 가리온과 소울맨이지. (일동 오오...) 가리온 형들에게 바라는 것은 ‘생명수’, 소울맨형 형은 ‘그대만의 것’ 불러줬으면 좋겠고. 결혼식은 구리 도농역 근처할거야. 그날은 힙합 잔치겠네요 (웃음) 힙합 잔치가 되겠지 또. 너무 감사하지. 다들 바쁠 텐데도 다들 이야기 하면 와주겠다고 하니 너무 고맙고. 인터뷰 : 김경현, 김지철 사진 : 이승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