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영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박은영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이연희 님의 답장 - 시민의 답장 '말로는 어린왕자라고 칭하지만 나를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그 이에게' 이연희 지구에 처음 왔을 땐 마냥 조용한 행성인 줄로만 알았어. 고요하고, 때론 싸늘하면서, 적막이 감도는 공간.어느새 그 적막에 익숙해질 때쯤 뱀이 나한테 그러더라. 외롭대. 사람들이 많아도 외롭대. 이 넓고 넓은 사막에서, 단 한 사람의 사람은커녕, 선인장도 찾기 힘든 사막에서 뱀은 어떤 사람들을 만난 것일까.혹시 내가 소행성에서 키운 '그 장미'처럼 뱀에게도 '그 장미'의 존재와 유사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일까 싶었지만 나는 뱀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어. 만약 뱀에게 외로움에 관해 묻는다면 뱀의 대답 대신 꾹꾹 참아왔던 내 눈물샘이 그만 터져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뱀을 지나 '그 장미'같은 장미들이 잔뜩 심겨 있는 정원을 마주쳤지.어떤 이가 설렘의 미소를 잔뜩 안고 장미 모종을 땅에 심고 있었어. 마치 손에 들고 있던 그 자그마한 장미 모종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땅에 묻은 뒤 거기 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더라. 그 모습을 본 순간 내 안에 스치는 게 있었어.' '그 장미'도 처음엔 저 이가 심고 있던 작은 모종이었을 텐데. 작은 모종 때부터 누군가가 '행복'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지도 않았고, 내가 살던 소행성에선 그 누구도 관심도 주지 않았던 거야. 결국 소행성에 두고 온 (실은 내가 떠나온) '그 장미'는 내 지속적인 관심을 얻기 위해 내게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게 아닐까. 내가 '그 장미'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장미'가 내게 흠뻑 빠져 나를 붙잡아두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소행성에 있는 '그 장미'에 대한 생각을 아직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나는 그 이의 손에 이끌려 사회라는 하나의 큰 공동체에 어느새 속하게 되었어. 아무도 없는 사막에 있었을 땐 지구라는 행성도 내가 살고 있는 소행성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착각이었지. 전체 지구 중 생각보다 작은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었는데 그 안엔 정말 내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온갖 것들이 다 있었어. 법, 규칙, 도덕부터 시기심, 경외심, 그리고 장미 정원에서 그 이가 작은 장미 모종을 심으며 애타게 부르던 '행복'까지.처음엔 그 온갖 것들이 내게 익숙하지 않아 너무 아찔했어. 아찔해서 그만 눈물을 터트렸고, 어 떨 땐 소리까지 질렀지. 그러나 그 이는 어쩐 일인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어. 하나하나 내게 사회 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었지. 이를테면 양보하는 법,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 음식이 있다 면 남들에게도 나누어줘야 하는 것 따위들 말이야. 긴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남들이 말하는 '사람답게 산다'라는 행위를 하면서 살 때쯤 새삼 지구에 생각보다 오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맞아. 사회화가 되었지. 처음 온갖 것들이라고 표현한 그 온갖 것들을 습득하게 되었고, 때론 원래 지구에 살고 있던 사람들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표현 할 수 있게 되었어. 그즈음 나는 (이제는 가물가물한) 소행성에 두고 온 '그 장미'가 떠오를 만큼 볼에 홍조가 가득한 한 여인을 만났고, 다행스럽게도 '그 장미'와는 성격이 확연히 달라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 사람들이 우리를 가족이라고 불렀어. 그렇게 내가 가족이 생기자 나를 처음 장미 정원에서 만나 지금까지 곁에서 쭉 지켜봐 준 그 이 의 눈에서 처음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어. 그 이가 심었던 '행복'이라는 장미가 죽었을 때 흘리던 눈물과 농도는 같겠지만 눈물 뒤에 감춰진 표정과 감정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지. 그러면서 그 이는 내게 말했어. 나보고 다 컸대. 내가 소행성에서 여러 별을 거쳐 지구로 온 뒤, 그 이를 만나 사회화가 되고, 가족이 생기며 사람답게 살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 다 컸다는 말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아. 가족이 생기고, 숱한 불합격 통보들 뒤 받은 한 줄의 합격 통보를 받은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게 왜 다 컸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렇다고 그 이에게 묻진 않았어. 내가 다 크지 않았다고 하면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그래서 그냥 웃었어. 웃는 건 좋은 거잖아. 난 아직도 과거에 파일럿이 보여준 그림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여전히 나는 소행성에 있는 '그 장미'가 종종 그리운데. 과거에 수많은 양을 내게 그리려고 애쓰다 결국 양이 들어 있는 상자 그림을 내 게 내어준 파일럿이 보고 싶은데. 근데 그 이에겐 이 모든 이야기를 하진 않을 거야. 언젠가 다시 사막에서 만난 외롭다는 뱀을 만나면 그 뱀에게 털어놓아도 될지 아직 그것도 모르 겠어. 그 뱀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나를 소행성으로 다시 데려다줄 수 있을까. 그럼 그 이와 내 가족들은 내가 소행성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를 그리워하게 될까. 아니면 그 이도, 나의 아 내도 사실 나처럼 다른 소행성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궁금한 것이 많은 걸 보니 여전히 나는 다 크지 않은 게 분명해. 이연희2014년도부터 시작한 '도란도란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 에디터입니다.'도란도란 프로젝트'는 네 명의 사람들이 매주 다른 주제로 글을 쓰는 프로젝트입니다.(https://brunch.co.kr/@doranproject)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안성은 이빈나 이연희 장유림 정다혜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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