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정여울 작가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채풀잎 님의 답장 - 매일 글 쓰는 사람, 정여울 작가님께 작가님이 황광수 선생님을 생각하시듯 저도 그리워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키가 크고 피부가 흰, 짓궂은 장난에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문학 선생님이셨어요. 저는 작가님처럼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계속 주저하고 망설이는 사람입니다. 용기를 내어 하루를 채워가지만 금방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예전에는 이런 성격이 기댈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요. 요즘은 제가 기댈 줄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조금 더 기대고 의지해도 될 텐데 말입니다. 사회가 격변하듯이 사람도 변하는데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 변할수록 제 마음은 요동치곤 했습니다. 그들에게 가졌던 믿음은 선생님이 제게 주셨던, 그리고 가르쳐주셨던 믿음과는 다른 모습이었어요. 고3 시절, 저는 공부는 내팽개치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영화와 드라마에 빠진 학생이었어요. 그래도 그 당시에 읽었던 책들을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똑같이 자랄 수는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많은 어른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책을 읽거나 다른 수업 시간에 시집과 소설을 읽던 저에게 ‘그러면 안 된다.’라며 혼을 내셨죠. 나이가 조금 더 들고 보니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해가 갔지만, 그 가르침의 방식은 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노골적인 폭력의 시대였으니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요. 문학 선생님은 그들과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하고, 작가나 문학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셨어요. EBS에서 문화사 시리즈로 ‘명동백작’이라는 드라마를 할 시기였는데요. 주말에 드라마를 보고 오면 선생님과 드라마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김수영’, ‘박인환’, ‘전혜린’, ‘오상순’, ‘김관식’…… 과 같은 당시 문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참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제 모습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시기를 잘 보냈다면 더 즐겁게 문학을 마주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저의 선생님은 그런 저를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몰래몰래 쓰곤 했던 습작 시를 봐주시면서 ‘계속 꾸준히 써봐요’라고 말씀해주시곤 했어요. ‘잘 쓴다’라는 말은 안 하셨지만 ‘계속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문득문득 깨닫곤 합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매일 글을 쓰고 다듬는 정여울 작가님이 저의 문학 선생님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셨듯이 제가 먼저 사람들을 이해하고, 돌보고, 보살피겠습니다. 그들이 저를 꼰대라 놀려댈지라도, 그들이 저를 재미없다고 면박줄지라도, 제가 먼저 사랑하고, 제가 먼저 다가가고, 제가 먼저 보듬어 안을게요.’라는 문장은 여러 번 되내어 읽었습니다. 문학 선생님의 장례식에 트로피를 들고 갔습니다. 입선이었지만 선생님이 주신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었거든요.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었어요. 제가 ‘꾸준히 쓰는 법’을 배운 건 선생님에게서였으니까요. 수줍고 슬퍼서 고개만 떨구고 있었지만, 함께 간 친구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슬퍼하시던 중국어 선생님, 장례식 일손을 돕던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들. 모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선생님, 그날부터 오늘까지. 포기하지 않고 쓰는 것은 저의 자랑입니다.’ 저도 학생들을 만나면 선생님이 보여주신 모습을 따라 해보려고 애쓰곤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저도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처럼 항상 웃는 얼굴로 기억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던 선생님께 제가 받은 가르침 또한 정여울 작가님이 황광수 선생님께 받은 사랑과 같은 부류의 마음이라 여깁니다. 저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다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몫을 마치면 그곳에 가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선생님들의 평안을 빕니다. 채풀잎 드림 -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강대호 강선영 강지영 강해인 고 은 김다정 김미리김수현 김은환 마예인 박민아 박현주 안성은 유선호유연지 윤영옥 윤영원 이빈나 이수정 이아름 이연희이주연 이해린 장유림 전욱희 정다혜 조바심의여왕 채풀잎 HS J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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