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호수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to. 육호수 시인 안녕, 이쪽에서도 안부를 전해요. 침묵이 동봉된 편지를, 감사히 받았습니다. 침묵은, 실은 제가 온종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해요. 방금 전에도 맑은 침묵을 듣고 나온 참입니다. 아기가 드디어 잠이 들었거든요. 하루 종일 웃고 소리 내고 쿵쿵거리던 아이는 잠이 들어가는 순간에 가장 조용해져요. 곁에 누운 아이의 몸이 따끈따끈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처음엔 그것이 너무 불안해서, 잠을 자다 깨서도 아기 코 밑에 손가락을 들이밀어 보고는 했었지요. 아기는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았어요. 그 말은, 코로나19가 없는 세상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지요. 가을바람 냄새를 맡고 있는 아이의 유모차 덮개를 서둘러 닫을 때, 쓰지 않겠다고 버티는 초소형 마스크를 아이의 작은 두 귀에 거듭 걸어줄 때, 놀이터에서 놀다가 자연스레 입으로 향하는 손가락을 서둘러 붙들 때, 마음은 다리 하나가 사라진 의자처럼 넘어집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세계를 둘러싼 무거운 공기 때문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깰 수 있는 꿈일 거라고 간신히 믿어보는 수밖에요. 뭔가를 기르는 일은 왜 이리 막막한지요. 가족을 늘리는 일은 왜 걱정을 늘리는 일이 되는 걸까요. 물고기 삼백 마리와 함께 사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걱정주머니일 텐데, 여섯 개나 되는 어항은 어떻게 그 무게를 다 이고 있나 하고요. 저도 구피를 기른 적이 있어요. 마음을 어느 거리에 내던져버리고 온 것 같던 날에도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흔들면서 평온을 춤추고 있었지요. 그러면 언뜻, 세상이 무사해 보이기도 했어요. 가족이 점점 불어나 삼대(三代)나 사대(四代) 쯤을 두 어항에 분리해 기르게 됐을 때, 아파트 세대 전체가 쓰는 물탱크를 소독한다는 방송을 들었고, 그날 이후로 어항 물을 한 번 갈아줄 때마다 다섯 마리 여덟 마리씩, 죽어 나갔어요. 마지막 물고기가 하얗게 떠오르던 날, 오래 숨을 할딱였던 시간을 기억해요. 그 한 마리는 바위틈에 몸을 끼워 넣고 괴로워하고 있었어요. 죽은 물고기를 건지는 게 지겹고 슬퍼서, 다시는 물고기를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그래서 까마득하다는 시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때 물고기들 사이에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병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까요. 왜 신은 우리를 치료하지 않나 원망도 했을까요. 손을 써보지도 못했던 저는, 해외 정보들을 번역해가며 약품을 구했다는 시인의 이야기에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숨만 쉬면 불어나는 물고기들을 위해서, 그 숨을 붙들려고 애쓴 누군가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요. 오늘은 무척 오랜만에 한 사진작가의 전시를 볼 수가 있었어요. 올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예매를 해두었는데, 불안한 날들과,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던 날들과, 겨를이 없던 날들을 지나, 드디어 가을의 한중간에 가볼 수 있었네요. 오랜만에 주어진 며칠간의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었는데, 실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전시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사진들을 구경하는데, 여름날의 바닷가를 찍은 사진 앞에서 우뚝 못박혀버렸어요. 스페인의 온다리비아 해변(Playa Hondarribia)에서, 수백 명은 돼 보이는 휴양객들이 띄엄띄엄, 다양한 빛깔의 파라솔 밑에 앉아서 몸을 말리고 있는 사진이었지요. 저는 그것이 무엇에서 비롯된 감정인지도 모른 채로, 전시실을 떠나기 전까지 울음을 머금고 있었어요. 날이 저물고 편지를 쓰는 지금에서야 지난 마음을 들여다보네요. 내가 지금 저런 곳에 있어야 했는데,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분명 아니었어요. 전시실을 나서면서는, 울지도 않았는데 한바탕 울고 난 것처럼 마음이 정화된 것 같았으니까요. 정작 바닷물은 프레임 바깥에 있는, 보이는 건 모래사장뿐인 여름날의 바닷가. 색색의 파라솔로 뒤덮인, 그리고 저마다의 들뜸으로 떠들썩한 그곳. 어쩌면 지금과 다른 어떤 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였을까요. 어느 날의 여행이 떠올라요. 속초였고, 여름이었고, 저와 남편이 묵었던 곳은 시외버스 터미널 바로 뒤편에 있는 서점 겸 스테이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거대한 수박 그림이 그려진 튜브를 우리의 숨만으로 채워서 갖고 논 뒤, 바람을 빼지도 않고 툭툭 털어서 허리에 끼고 저녁을 먹으러 갔었습니다. 고작 일박을 하고 체크아웃을 하면서, 일층에 있는 서점에서 시집 한 권을 사서는, 그 자리에 앉아서 읽다 쉬다, 읽다 쉬다 했었지요. 바닷가에 있다는 이유로 손이 갔던 그 시집의 제목이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그 여름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완벽한 날들>이었습니다. 2021년 가을. from. 아무도 장유림차를 마시고, 새를 키웁니다.2020년 6월, 한 아기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 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 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장유림 정다혜 안성은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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