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제 소설가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서이제 소설가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김다정 님의 답장 - 무더운 여름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에 바투 뱉은 호흡은 이제 더 이상 눅진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시작을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마치 구름을 연상케 하고, 옷깃을 스치는 소리는 바스러지는 낙엽인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비로소 여름의 끝을 실감합니다. 벌써 몇 번의 계절을 마주했는지 생각할 새도 없이, 무뎌진 감각을 끌어안고 늘 그러했듯 바삐 몸을 움직였습니다. 다만, 평소처럼 일어나려는 제 품속에 이불은 폭신하게 안겼고, 무심하던 세숫물은 따스하게 제 볼을 어루만졌지요. 저는 옷방에 들어가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했습니다. 흑색의 청바지를 입자니 위에 빨간 카디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원피스를 입자니 카라가 큰 외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엔 어제 입었던 바지를 주섬주섬, 까만 맨투맨을 대충 입고는 마가린에 구운 식빵을 욱여넣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민의 연속을 지나오다 보니 오늘은 일찍 출근하자던 다짐과 달리 어제와 혹은 엊그제와 비슷한 시간대를 거닐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출근길에 듣는 노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엔 아날로그 방식이 끌려서 줄로 된 이어폰을 챙겨 나왔습니다. 제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지 따사로운 햇볕과 어우러지는 멜로디는 출근길을 드라마 속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주었지요. 뭐든 해낼 수 있을 듯했습니다. 물론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잠시 노래 속에 갇혀 꿈꿨던 행복은 이어폰을 빼는 순간 현실로 돌아와 멀어졌습니다. 뚝 끊긴 노랫소리의 단면처럼 아주 잠시간 제 자신이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여운을 느끼기도 전에 다른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며 금방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요. 그다음, 저는 제가 봐주는 아이들의 문제집을 확인하고 부러진 연필을 새로 깎고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오길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론 일찍 오지 말아라, 하고 바랐습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지만 공부할 때만큼은 아주아주 미운 짓을 많이 했거든요. 한마디로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실 출근하고부터는 기억이 흐릿합니다. 시간을 확인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하고, 정신없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나면 어느덧 지쳐 쉬고 있는 제 모습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일을 마무리하며 오늘 뭐 했더라, 하고 되뇌고는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아주 오래전의 일인 것처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거든요. 매일이 비슷한 나날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지 반복되는 일상에 무뎌진 감각으로부터 똑같은 하루로만 느껴졌습니다. 분명 오늘인데 어제와 같은 착각이 일기도 하고 내일이라 생각했던 날이 오늘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수한 밤을 지나온 저는 어느덧 다시 눅눅하고 질펀한 밤의 위에 앉았습니다. 하루의 정리를 위해 책상 앞에서 노트북을 켜고 메모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뜨고 말았습니다. 되돌아본 시간은 왜 볼온전한 걸까요. 왜 이리 허망하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구름처럼 떠다니는 기억의 조각은 불온전해서 아름다웠고 잡을 수 있을 듯 잡을 수 없어 허망했습니다. 원래부터 이러한 삶을 살아왔느냐고 하면 글쎄요, 원래부터 그랬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건 아마 제가 둘러댈 수 있는 가장 좋은 핑계이자 변명일 것입니다. 그 자체만으로 이유가 되는 말은 흔치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어느덧 제 삶에 특별함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나태와 지루함만이 남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하루는 저녁 공기가 좋아 산책을 나섰습니다. 오래간만에 부는 선선한 저녁 바람은 하루를 정리하는데 참 좋은 듯했습니다.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하면 머리통에 잔뜩 올랐던 열이 빠져나갔습니다. 시선을 올려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과 붉게 묽든 색의 조화가 가히 예쁘더군요. 잠시 나와 산책길에 줄지어 늘어진 나무들은 숲의 녹음과 같은 향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산란된 햇빛의 잔향과 어우러진 풀잎 내음은 씁쓸하고도 따듯하게 지친 제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가을의 묘미를 만끽하며 거닐다 보면, 슬금슬금 어스름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정말 나태하고 지루할 뿐인, 별 볼 일 없었던 하루였느냐고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마침내 떠오른 대답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길을 밝혀주던 붉디붉은 빛깔은 언제 달아난 것인지 가로수의 부끄러움만이 남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 내내 아이스크림이 담긴 봉지만 부스럭거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하루를 누구보다 바삐 움직이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평범하지만 조금은 특별하고 아주 설레는 기억의 형상을 마주하고 있었고요. 그 형상은 하루는 푸른 들판의 핀 꽃 한 송이 같기도 했고, 또 다른 하루는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 같기도 했습니다. 숨을 들이켜면 그날의 것이 풀잎 향기로, 쌉싸름한 내음으로 기억됐습니다. 평소처럼 눈을 감고 하루를 정리하며, 저는 시간의 왜곡에 기억의 모순을 곁들여 그 풍미를 감히 음미해 봤습니다. 지난날의 허망을 곱씹어 삼켰습니다.저의 하루들은 골목길 어귀에 드리운 땅거미처럼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스며들었습니다. 괜스레 울적하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잊고 싶은 날도 불쾌한 날도 아니었지요. 다만, 공원의 그늘막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의 하품 같기도, 세잎클로버 사이에 숨은 네잎클로버 같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분명 있고, 되돌아보면 어느덧 원래 그런 날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저의 하루도 그리 마모돼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정해진 해야 할 일을 하며, 반복되는 일상에서 보는 푸른 하늘과 하이얀 구름과 녹색 초록임과 검투명한 그늘막은 언뜻 보면 다 비슷하게 느껴졌겠지요. 느지막한 오후가 되면 지루함에 시나브로 넌더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지겨운 감정은 스스로를 비난하고 곧 무력감이 되어 마음을 물들였던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시간은 반복되지만, 오늘의 시간이 내일의 시간이 아니듯 보내온 어제의 시간 또한 고유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 똑같게만 보이던 것들은 제각기 다름을, 계절을 품으며 띄우겠지요. 어느덧 싹을 틔우고 봉우리를 터뜨릴 겁니다. 달리 보이지 않던 일상은 만발한 봄이 되었다가 빗발치는 여름이 되고 저무는 가을에서 설화의 겨울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제 마음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저는 아주 가끔 수신자 없는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어딘가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사소하고 솔직한 단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오롯이 제 감정에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나쁘고, 슬프고, 속상하고, 저리고, 아리더라고 온전한 저의 감정을 품었지요. 똑같아 보이는 삶에서 유일하게 다른 건 그 속에서 제가 느끼는 감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해 보일지라도 추운 겨울날 두 손 가득 쥔 핫팩의 온기와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을 때의 온기가 다른 것처럼 그 정도의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우리는 이제 특별함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압니다. 구멍 난 양말처럼 시선만 옮기면 보이는 것을요. 작가님의 편지 덕분에 저는 특별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무어라 답장을 해야 할지 매일 밤 고민하며 잠들었거든요. 작가님이 정성스레 써 내려간 문장은 유효하게 잘 도착했고 편지에 담긴 마음 또한 외면할 수 없어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한참을 생각하다 제가 가장 담고 싶었던 마음을 담아 타자를 두드립니다. 아마 편지를 주고받았던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할 듯합니다. 그러니 기억의 끝에서 작가님의 말처럼 우연히 모여 우리의 만남을 돕길 바랍니다. 제 편지가 잘 닿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부디 안전히 도착하기를 바라며. 김다정 드림. 김다정이미 혼자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강대호 강선영 강지영 강해인 고 은 김다정 김미리김수현 김은환 마예인 박민아 박현주 안성은 유선호유연지 윤영옥 윤영원 이빈나 이수정 이연희 이주연이해린 장유림 전욱희 정다혜 조바심의여왕 HS J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DASIBOOKSHOP

logo
LOG IN 로그인
  • SHOP
    • BOOK
    • USED
    • COLLECTED
    • PROGRAM
    • menmeiz
  • PROJECT
    • PUBLISH
      • WORKS
        • Teach & Lecture
        • WRITE
      • WEBZINE
        • ABOUT

          DASIBOOKSHOP

          logo
          • SHOP
            • BOOK
            • USED
            • COLLECTED
            • PROGRAM
            • menmeiz
          • PROJECT
            • PUBLISH
              • WORKS
                • Teach & Lecture
                • WRITE
              • WEBZINE
                • ABOUT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DASIBOOKSHOP

                  logo

                  DASIBOOKSHOP

                  logo
                  • SHOP
                    • BOOK
                    • USED
                    • COLLECTED
                    • PROGRAM
                    • menmeiz
                  • PROJECT
                    • PUBLISH
                      • WORKS
                        • Teach & Lecture
                        • WRITE
                      • WEBZINE
                        • ABOUT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DASIBOOKSHOP

                          logo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블로그
                          밴드
                          Terms of Use
                          Privacy Policy
                          Confirm Entrepreneur Information

                          Company Name: 다시서점 | Owner: 김경현 | Personal Info Manager: 김경현 | Phone Number: 070-4383-4869 | Email: dasibookshop@nate.com

                          Address: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대로8길 77-24, 지하1층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101-91-40768 | Business License: 2017-서울강서-1218 | Hosting by sixshop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