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황종권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J 님의 답장 - 안녕하세요, 시인님. 시인님의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뭔가 수신자가 제가 아닌 편지를 읽어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찬찬히 여러 번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보았답니다. 여러 번 읽어도 묘하게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았는데, 그건 아마도 시인님께서 따님을 사랑하는 마음 같은 마음을, 제가 저희 아버지에게서는 느껴본 적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주는 이가 주고 싶은 방식과 받는 이가 받고 싶은 방식이 너무도 달랐고, 그 다름의 타협점을 여태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초면인데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뭔가 죄송스럽기도 하고 스스로도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의 답장의 시작은 이 얘기여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튼, 여러 번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시선과 마음이 머무는몇 개의 문장이 있었어요. [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일 거야. ]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세상을 알아버렸을 때 울음이 터지셨다는 말에 너무도 공감이 되었어요. 사실 저는 제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세상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 편이었고, 울음보다는 차라리 바뀔 수 없는 세상을 떠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의 저에게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세상'이라 함은,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한다는 사고가 당연해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였고, 틈만 나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떠나려는 생각을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저에게는 유토피아 같은 나라로 떠났고, 운이 좋게도 2년 정도를 그 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년 씩 2번을 나갔다 왔는데 처음 1년을 다녀왔을 땐, 다시 돌아온 한국이 이전보다 더 숨이 막혔고, 두 번째 나갔다 왔을 땐 한국이 조금은 바뀌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아마도 저 스스로도 바뀌었기 때문일 거예요. 시인님의 편지에서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세상'은 제가 방금 말씀드린 세상과는 다른, 정말로 개인이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지금 현재의 상황이라는 걸 알고, 저희가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의 날들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지는 않을까요?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요즘 그런 확신이 조금은 생긴 것 같아요. 제가 바뀐 만큼 제 주변의 사람들도 바뀌었고, 그들로부터 그들의 주변도 바뀌었을테고 그렇게 조금씩 바뀌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것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확신이요.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장 제가 그 바뀐 세상을 못 보더라도, 윤슬이가, 윤슬이의 친구들이 바뀐 세상을 만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곤 해요. [ 나무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쪽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새를 들어앉히고, 바람을 불러준다는 것을 ] 또 다른 한 문장은 '믿어주는' 사람에 관한 문장입니다. 윤슬이가 이팝나무 같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고 하셨는데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로 큰 행운인데 시인님께서는 정말로 윤슬이를 믿어주는 아빠이자 어른이실 것 같아서요. 저는 이상하게 누가 저를 혹은 저에 관한 어떤 것을 믿는다고 하면 그 말을 단번에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 말을 믿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긴 여정 중에 한 번이라도 그 믿음에 어긋나는 사건이 생기면 '거봐, 그럴 줄 알았지'하고 생각해버리는 고약한 심보를 가졌답니다. 이런 요상한 방법으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부던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근데 나무가 믿어주는 사람 쪽으로 그늘을 드리우는 것처럼 사람들도 자신의 믿음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또 다른 믿음을 가지게 되잖아요? 지금까지의 요상한 방법으로 누군가가 내게 주는 믿음에 철벽을 쳐 왔던 저는 그렇게 해서 상처를 덜 받은 것도 맞지만 그만큼 저에게 힘이 되어줄 믿음 또한 많이 놓쳤던 것 같아요. 시인님께서 편지를 쓰셨을 땐, 어떤 답장을 받게 될 거라 생각하셨는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아마 저의 답장은 예상 밖의 답장이겠죠? 저도 답장을 적으면서도 이게 무슨 답장인가 생각했어요. 저는 아마도 16년에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곳에서가을을 맞이한 후 부터 가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가을을 좋아하게 된 것 같은데 가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7년 가을부터 참 호되게 가을을 앓았던 것 같아요. 매번 다른 이유로 가을이 아프고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가을의 볕이, 색이, 바람이, 가을의 모든 것이 너무 예뻐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2021년 올해 가을은 6년 만에 아프지 않고, 예쁘기만 한 가을인 것 같아요. 사실 아프지 않은 건 거짓말이고 이번 가을도 역시나 이겨내야 할 것이 있는 가을인데 그래도 이번 가을은 '도망치고 싶지 않았던 가을'이라고 얼마 전에 어딘가에 적었어요.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여전히 기다려야하는 가을이지만,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제 자리에 꿋꿋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가을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을에 시인님의 편지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도 편지가 또 다시 오갈 일은 없겠지만 그래서 조금 아쉬우면서도 더 솔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윤슬이와 함께 예쁜 가을을 많이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J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계속 좋아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강대호 강지영 강해인 김미리 김수현 김은환 마예인박민아 안성은 유선호 유연지 윤영옥 이빈나 이수정이연희 이주연 장유림 전욱희 정다혜 조바심의여왕HS J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