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유오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차유오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HS 님의 답장 - 사랑을 담아, 잘(못)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합니다 차유오 시인께.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유오 님.완연한 가을 아침입니다.너무 급작스레 추워졌다가, 갑자기 더워졌다가를 반복하는 날씨 덕에 가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던 나날들이었네요.어제 비가 내렸기 때문인지 산책길에 쌓인 붉고 노란 낙엽들을 보며아, 가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구나, 실감하는 11월의 첫째 날입니다. 유오 님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기까지 내내 기분 좋은 부채감을 안고 있었습니다.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 고르느라, 써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결국 마지막 날 쓰게 되네요.유오 님의 편지에서 미숙과 성숙을 지나고 있는 과도기의 어떤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제가 그런 시기여서 편지가 그렇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겠어요.그래서 유오 님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저와 동갑이시더라고요. 나이에 얽매이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얽매이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 유오 님께 더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세계 반대편에 있는 또래 펜팔 친구인 것처럼 답장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잘 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진솔하게 써보려고요. 잘 지내고 있는지, 물음을 주셨죠.저는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잘 지내다가, 어떤 날은 또 못 지내다가, 이런 나날들을 반복하고 있어요.유오 님이 전해 주신 것처럼, 생활에 ‘잘’이라는 말이 붙는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항상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잘 지내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것 같고, 실제와 상관없이 잘 지낸다고 대답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들 때문이겠지요.저는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그래서 매일같이 ‘못’ 지내는 나는 정말 별로다, 라는 생각을 이제는 멈추고,꼭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잘 지내든 못 지내든 그저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고 다짐도 해 보고요.물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지낸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만,저에게 있어 ‘잘 지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이기에,제 삶을 제가 아닌 다른 것들에 맡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몫만큼만,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유오 님은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제 삶을 제가 아닌 다른 요소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꺼냈으니,괜찮으시다면 제 이야기를 잠시만 해보겠습니다.저는 내내 제 자신을 사회에 틀에 끼워 맞추는 삶을 살아왔습니다.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저의 존재가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자꾸만 타인에게서 제 가치를 증명받으려 발버둥을 쳤습니다.누군가 저에게 ‘대단하다’고 해 주면 그 말이 참 좋다가도,누군가가 제 성과에 대해 대단하다고 해주지 않으면 저는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공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또, 누군가 저에게 손가락질을 하면 견딜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제 가치는 타인이 결정하는 것이었고,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믿으며 살아왔으니까요.그렇게 아등바등 일하고, 몸이 망가져도 일하는 와중에 공부하고, 성과를 내고, 칭찬받고, 다시 성과를 내고 칭찬받으며 살았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과 상관없는 성취를 위해 죽을 듯이 노력했습니다.그리고 24년째 되던 해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습니다.일 년을 침대에 누워 살았습니다. 눈을 뜨면 회사로 출근했다가,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퇴근길에는 제가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집에 오면 내내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회사로 출근했습니다.눈물도 나지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습니다. 여행을 가든 회사에 있든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고, 살면서 기분이 좋았던 때가,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그렇게 일 년을 꼬박 누워 살았더니, 상담을 받으러 나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상담이 도움이 되었던 덕에 이제는 세상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고, 나를 보호하려 노력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저는 제가 만족스럽지 않지만, 저의 일부라도 사랑하려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꽉 닫히진 않았더라도, 어쩌다 보니 해피엔딩이네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잘 지내기도 하고 못 지내기도 하고, 무너져 버릴 수도 있고 행복에 겨워 살기도 한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 편지를 읽으실지도 모르는 분들이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그저 그런 시기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꾸만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자꾸만 스스로를 판단하려 하지 말고, 못났다고 자책하지도 말고, 그냥 그런 시기이구나, 내가 힘들구나, 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요. 스스로에게 더 잘해줄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요즘은 아침을 명상으로 열곤 합니다. 오늘 아침 명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중한 내 인생을 고통과 슬픔으로 채우지 말자고요. 또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고 했습니다.이제는 상처를 받는 상황에 나를 방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타인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내내 괴로워하고,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는지 자책하면서 스스로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을 이제는 멈추기로 했습니다. 나를 귀하게 대접하고, 꽃길만 깔아줘도 모자를 아까운 인생이잖아요. 굳이 내가 나서서 나를 상처입히지 말아요. 유오 님, 유오 님이 좋아하시는 위로의 방식은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라 하셨죠. 저는 제가 괜찮아질 때까지 저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습니다. 속이 빈 공감이나, 실천하지도 못할 해결책보다는, 저를 믿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곁에서 마음으로 응원하며 기다려주고 싶어요. 저에게 있어 저는 대체 불가능한,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유오 님의 편지에 어른스럽고 사려 깊은 답장을 보내고 싶었는데, 요즘 저의 관심사가 온통 저이다 보니 내내 제 이야기만 해버렸네요. 언젠가 제가 이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하고 나면 그때는 유오 님처럼 타인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요. 그때까지 유오 님도, 저도, 잘 지내길 바랍니다.날씨가 자꾸만 변덕을 부리는- 겨울에 가까운 가을입니다. 백신 접종은 하셨는지, 요즘 몸은 어떠신지, 더 긴 안부를 묻고 싶지만, 100세 시대잖아요. 유오 님과 마주할 일이 또 있겠지요. 좀 아쉽게 끝나야 늘 더 아름다운 마무리이기도 하고요.늘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잘 지내시든, 못 지내시든, 나름대로 다 괜찮은 하루 되세요. HS서울에 사는 20대 중반 직장인,치유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강대호 강지영 강해인 김미리 김수현 김은환 박민아안성은 유선호 유연지 윤영옥 이빈나 이수정 이연희이주연 장유림 전욱희 정다혜 조바심의여왕 HS J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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