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육호수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유연지 님의 답장 - to. 육호수 시인 안녕, 여기는 안녕해요. 꿈을 꾸지 않는 밤들을 보내고 있어요. 밤은 꿈보다 그리워하는 눈으로 채워지곤 해요. 여기의 저는 아직 학생입니다. '아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붙는 건 제 곁의 친구들 대부분은 더는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주변의 흐름에 견주어 내 시간과 시기를 가늠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눌꿈이 없어 미안해요. 대신 나의 밤을 이루는 것들을 나누어볼게요. 요즘은 많은 것들을 그리워해요. 절대 그리워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것들마저요.홀로 고요히 있기를 좋아해 두 해 전만 해도 시끌벅적한 학교를 피하기 바빴는데, 지금은 어쩐지 그 정신없던 기억을 더듬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 교정을 거닐고, 옆 테이블과 너무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서관을 가고, 카페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시간을요. 그때는 아는 얼굴을 만나 반가이 인사하던 순간들만을 눈에 담았는데 지금은 지나치는 모르는 이들이 온통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라 느꼈던 유대감을 매만져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닐 테고, 같은 학년 혹은 학번일 수도, 같은 수업을 들을 수도 있는 사람들. 한 다리 건너면 친구의 친구로 연결될 수도 있고, 같은 시기에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학교 앞 카페에서 자리싸움을 하던 '아무도 아니'였던 이들을. 화상 회의로 이루어지는 강의의 작은 네모 창속에만 존재하는 사람들과는 스치듯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볼일이 끝나면 언제나 퇴장, 퇴장. 퇴장하기 바쁘죠.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아도 이루어지던 일상의 만남을, 그저 같은 공간을 점유하기에 느끼던 느슨한 유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나의 어린 날 한 자락을 그리워하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벌써부터 그리움을 위해 밤을 이토록 많이 써버릴 줄은 몰랐네요. 그러나 밤은 항상 좋습니다. 내일이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도 까맣게 침묵이 내려앉은 밤을 기다려요. 주로 음악을 듣고, 자주 책을 읽고, 종종 글을 씁니다. 페소아의 글을 빌리자면 '의무와 세상 때문에 오염된 적 없고, 의문과 미래 때문에 더럽혀진 적 없는 기나긴 밤 속에서 내 안으로 도망가고, 내 안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나를 잊어버립니다. 낮은 조만간 학생이 아니게 될 미래의 나를 위한 의무와 의문들로 채워질 테니까요. 나는 언젠가부터 눈앞의 일들이 끝나면 찾아갈 바다를 떠올리며 지금을 견디고 오늘을 해냅니다. 당신의 시집이 제 바다인 밤도 있었어요. 한 장씩, 두 장씩 펼쳐 발가락을 적셨어요. 고마워요. 실은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편지를 받게 된 것이 기뻤어요. 편지를 받아야 답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편지가 길어졌네요. 아직 말을 고르는 법을 더 배워야 하나 봐요. 이 편지를 읽을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의 편지를 내가 받았고, 답장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아주 멀리는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Nobody였던 내가 여전히 멀리인가요? 여전히 편지는 내용 없음인가요? 이 답장을 받았다면, 다만 안온한 밤이 찾아가길 바라요. 11월의 첫날.from. Somebody p.s. 밤을 위한작은 공백을 보내요. 유연지밤과 바다를 좋아합니다.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강대호 강지영 강해인 김미리 김수현 김은환 박민아안성은 유선호 유연지 윤영옥 이빈나 이수정 이연희이주연 장유림 전욱희 정다혜 조바심의여왕 HS J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