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김민지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조바심의 여왕 님의 답장 - 김민지 시인에게 보내는 답장 안녕하세요늦은 답장을 보냅니다. 어제 저녁에 갑작스레 내린 비로 붉게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길에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길 가장자리에 쌓인 낙엽들 또한 가을이 주는 장관이지만 어쩐지 이 계절이 주는 쓸쓸함은 피할 길이 없네요. 김민지 시인의 편지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말로 답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역시나 저답게, 마감일이 되어서야 이렇게 글을 씁니다. 편지에 담긴 바람들은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일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거대한 일이라는 생각에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출력해서도 읽어보고, 잠자기 전에도 읽어보고, 인왕산 범바위 에 올라서도 편지가 마음 한 켠에 남아 소중한 친구에게 소리 내어 편지를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글을 읽으면서 계속 가슴에 남는 문장이 있어 옮겨봅니다. -당장에 살아갈 운이 따라줘서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조금 더 기다리면서 우리 주변에 놓인 수많은 변수들, 그 변수를 감당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이 팬데믹이라는 상황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난사가 있을까요. 굵직굵직한 이야기들만 뉴스의 면면을 장식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수를 감당해 내고 있을까요. 아니, 고통의 경중은 누가 재단할 수 있을까요. 인과성만을 강조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연관성들이 무시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할 곳도 없이, 속으로 삭이며 버티고 있을까요. 이 한 줄의 문장만으로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21개월 동안에 제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제 삶을 지탱해온 것은 여행이었어요. 일종의 도피처럼, 삶에서 지쳤을 때 잠시라도 일상을 내려놓고 떠나 자유를 되찾으면 다시 살아갈 힘이 조금 생겼거든요. 그런데 여행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일상에서의 작은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로 살아가는 게 많이 버거웠습니다.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손을 씻고,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향해 미간을 찌푸렸어요. 한때는 사람을 바이러스 취급한 적도 있었고, 극도로 사람을 혐오하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도 있었어요. 그것은 그 자체로 혐오가 되고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작년 하반기는 일을 쉬었는데, 쉬는 일조차도 긴장의 연속이라 회복은커녕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마음이 지쳐가니 몸이 망가지는 것도 한순간이더군요. 항상 긴장이 가득한 채로 살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인과성인지 연관성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백신 1차 접종을 한 뒤로 가슴이 두근거려 세 달 동안 매일 병원을 다니고 있어요. 처음 느끼는 증상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스트레스가 되어 몸을 또 괴롭히는 악순환이 이렇게나 길어지고 있습니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건 역사적으로 이미 너무나 많이 있어 온 일입니다. 폭력일지언정 대의를 위해 이것 말고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 돌아오죠. 희생한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될까요. 소서사가 모이면 대하소설이 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던 이 사실을 한 줄의 문장에서 맞닥뜨리고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저 역시도 소수의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간과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거든요.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런 세상의 작은 면까지 살필 줄 알아야 시인이 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무의미할 정도로, 언제까지 견디면 된다는 희망도 무용할 정도로, 지금 순간에 맞이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사라지고 오직 현재만 남아서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느라 급급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엔 저도,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불평을 최소화하고 나를 지켜가면서, 눈앞의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며,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의 해결에 최선을 다하며.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면서 말입니다. 주말엔, 일 년 반 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익숙했던 골목길이 낯설어지는 동안에도, 익숙했던 나의 일상과 친구의 일상이 아주 많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익숙한 모습으로 여전했습니다.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요. 그간의 공백이 한순간에 삼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식당 출입이 조심스러워 긴장하는 삶이지만, 일상은 이렇게 사람만으로도 회복이 되더라고요. 언젠간 온전히 일상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여전한, 반가운 형태로요. 팬데믹으로 괴로워하던 시간들을 내 삶에서 빼고 싶다고, 지내오고 견뎌온 시간들을 부 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시간들도 제 삶의 일부이니까요. 그러니 일상이 회복되더라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시간들을 잘라 이어 붙이는 식은 아닐 겁니다. 대신, 그 시간들이 제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깊어지는데 자양분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많이 괴로웠던 만큼 곱게 썩어서 많은 양분을 만들어 주기를요. 그러려면 지금 최선을 다해야겠네요. 역시나 최선으로 최선을. 생각이 돌고 돌아 시인의 통찰력에 다시 한 번 감복합니다. 편지를 먼저 받아보게 되어, 답장을 쓸 수 있게 되어, 덕분에 제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괴로울 수 있는 이 시간이, 모두에게 괴롭기만 한 시간은 아니길 간절히 바랍니다. 2021.11.01. 늦가을에, 조바심의 여왕으로부터. 조바심의 여왕 오랜만에 짓는 필명입니다.어쩐지 쑥스러워 저를 감추게 되네요.이것이 오늘의 최선입니다.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강대호 강지영 강해인 김미리 김수현 김은환 박민아 안성은유선호 윤영옥 이빈나 이연희 이주연 장유림 전욱희 정다혜조바심의여왕 HS J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