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진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2

프로젝트 안부安否 21명의 문학 작가에게 보내는 시민의 답장 - 한여진 시인께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 김미리 님의 답장 - 미래는 공원의 가로등이 겨우 스며드는 방 창문을 옆에 두고 누워 ‘내일은 뭐 입지’를 골똘히 생각해 본다. 오래된 습관 중 하나로 남들이 양을 세는 것과 같은 목적이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도 오고 다음날도 오곤 한다나.. 생전 처음 본 구조에 이사를 오더니 제자리라는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십 년 이상 묵은 짐들이 낯설어 보인다. 그녀가 지금 찬장에서 리모컨을 꺼내고, 책상 아래서 그릇을 찾는다. 옅은 웃음이 어울렸다고 생각했지만 폭소가 나오는 걸 보니 저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나조차도 헷갈린다. ‘그런 사람이었나? 이렇게 지냈던 거야?’ 햇살이 좋아 보여 동네 마실을 나가자며 잡아끌던 미래는 몇 걸음도 채 안 되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롭고 비음 섞인 여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춘다. “실장님!!” 고개를 들지도 내리지도 않은 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왜냐고 물어야 할 것 같았다. 두 걸음 앞서 걸어버린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자” 하며 그녀가 세 걸음 다가왔다. 갑자기 방귀가 나와서라며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웃는다. 집 앞 5분 거리의 천원샵에 들러 작은 접시 하나를 집었다 놓았다를 45분은 한 것 같다. 잠깐 나오자며 뭘 사고 싶은 거야. “아, 그런 게 있어.” 미래답지 않은 목소리로 핀잔을 주더니 다시 두 손에 접시 하나씩을 집어 들고 입을 쭉 내민다. 저 정도로 고민할 거면 다른 그릇가게를 가지 그러나 싶었지만 기다려봤다. 강력한 후보의 경쟁 끝에 살아남은 하얗고 테두리에 파란 라인이 선명한 접시를 신문지에 싸지도 않고 주머니에 쏙 넣고 웃는다. 노을이 들어오는 집을 무척 좋아하는 그녀는 서향의 집을 찾아다니지만 매번 동향에 들어와 산다. 이유는 물어본 적 없다. 그러면서 투덜거리지도 않는다. 아침해가 짧게 드니 새벽같이 빨래를 하고 널어두며 뿌듯해하고, 그러지 못한 날엔 이상하리만치 투덜거린다. “왜 어제 박카스를 마셔가지고 아휴” 미래 다운 말투다. 그 음성을 들으니 나조차 안심이 되었고, 문득 그녀의 습관들이 궁금해져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읽었던 책을 여러 번 꺼내놓다 꽂기를 반복한다.쓰지도 않는 노트와 펜을 모으며 책상 위에 꺼내어 놓았다가 몇 글자 써보고 넣는다.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부치지 않은 손 편지를 쓴다.투명하고 차가운 물건을 좋아한다.갖고싶은 향수는 무조건 데려온다.스쳐간 사람들까지 온갖 생일을 챙기며 안부를 꼬박꼬박 전한다. ‘굳이’ 보이지만 이유를 묻지 않던 습관들이 그 음성을 통해 듣고 싶어졌고 그 모든 답은 하나같이—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마지막 질문에만 답을 해준 건가? 다시 물으려 입술을 벌리는데 큰 웃음 사이로 새어 나오는 톰 포드 패뷸러스 향수 내음에 잠시 정신을 뺏겼다. "천원샵 한 번만 다시 가자”또 끌려갔다. 초저녁 바람이 쌀쌀해지는 10월이라 양말을 하나 신고 가고 싶었는데, 이 집은 양말이 이제 어디에서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테라스 어디 구석에서 새 양말 하나를 까준다. 그녀 다운 모습에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며 천원샵에 왜 또 가려는지 물었다. “아까 그 접시가 자꾸 마음이 쓰여서” 설마 그 접시를 사러 가자는 건가 싶었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핀잔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썹이 올라가며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가 크게 웃는다. 나도 더 걷지 않겠다 다짐한 채로 카운터에서 서서 촐랑거리며 뛰어가는 미래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까 그 접시를 냉큼 집어 들더니 크고 작은 접시들 사이에 소리 없이 놓는다. “아니 내가 아까 너무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다른 곳에 두고 온 것 같아서”라며 또 크게 웃는다. ‘굳이’ 공원 쪽으로 걸어서 들어가자고 한다. 글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항상 살아왔고 나도 이렇게 살아왔기에 그렇게 오늘을 사는 게 우리답다고. 황금 잉어빵을 하나씩 입에 물고 꼬리부터 먹냐 머리부터 먹냐 몸통부터 먹냐를 아웅다웅거리다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부메랑 기능을 써서 업로드하며 깔깔 웃는다. 미래는 3년 전 실연으로 힘들어했던 내게 돌아갈 수 있는 날들은 많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때는 뭔가 있어 보이는 그 말이 괜스레 위로가 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그 진짜 뜻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낯섦이 가득한 수수께끼 같은 집에서 본 미래는 돌아가고 싶은 날들과 살고 있었다. 같이 갔던 보성 회천읍 회령리에서 주워온 돌멩이와 시인 친구에게 부탁해 받은 오류고아라해변의 돌멩이를 접시에 올리고 처음 본 듯한 쓸쓸한 옆모습에 코가 시큰거렸다. 지금도 돌아가고 싶은 날들과 마주하며 안부를 묻는 그녀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 다가갔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기다려봤다. 접시가 너무 딱 맞지 않냐면서 웃는다. 난 입술을 한껏 오므리며 크게 웃었다. 2021년 10월의 마지막 밤에김미리 드림. 잠깐 멈춰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김미리 프로젝트 안부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ART MUST GO ON> 선정작 주관 다시서점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기획 김경현성우 강민경디자인 디오브젝트녹음 109사운드 참여작가김민식 김민지 김소연 김연숙 김태형 나희덕 박은영박철 서이제 송경동 신종원 우다영 육호수 이기리이현호 정여울 정훈교 차도하 차유오 한여진 황종권 참여시민강대호 강지영 김미리 김수현 안성은 이빈나 이연희 이주연 장유림 정다혜 S * 이 원고의 판권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원고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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