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시낭송예술협회 회장을 맡고 계신 이명숙 선생님의 낭송을 시작으로 다시서점 낭독의 밤 문을 열었습니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유튜브에서 선생님의 낭송을 찾아 들어보았는데 낭송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뒷굽 / 허형만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행사 시작 전부터 허형만 시인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며 보내주시는 화환이 많았습니다. 공간 곳곳에 꽃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저희 다시서점에서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작은 꽃다발을 준비했습니다. 진행 및 대담은 수필가 김동기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강서구에 문학행사가 너무 부족한 걸 안타까워하시면서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번 허형만 선생님 강독회도 문학에 관한 깊은 애정으로 진행해주셨습니다. 202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에서 순천 출신 배우 윤시윤과 배우 겸 가수 정채연아 낭독한 허형만 선생님의 시 '겨울 들판을 거닐며'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겨울 들판을 거닐며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만치 맞으면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겨울 들판을 거닐며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시 '겨울 들판을 거닐며'는 2017년 광화문글판 겨울 편에 선정되어 광화문을 오가는 시민에게 따뜻함을 안겨주기도 했고 2022년에는 고1 국어 모의고사에 출제되기도 했습니다. 소리꾼 장사익의 '아버지'는 허형만 선생님의 시 '문 열어라'에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노래가 발매된 후 전국 각지에서, 해외에서 많은 연락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 시는 허형만 시인께서 아버지 장례를 마친 날 밤 쓰셨다고 합니다. 노래로 듣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시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문 열어라 / 허형만산 설고 물설고낯도 선 땅에아버지 모셔드리고떠나온 날 밤문 열어라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잠긴 문 열어 제치니찬바람 온몸을 때려꼬박 뜬눈으로 날을 샌 후문 열어라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세상을 향한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그러나 나도 모르게그 문 다시 닫혀졌는지어젯밤에도문 열어라 수필가 김동기 선생님의 진행으로 함께 시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와 함께 아름다운 세상 살기'라는 주제로 허형만 시인과 '겨울 들판을 거닐며', '이제 가노니', '녹을 닦으며', '영혼의 눈', '석양', '아버지', '파도'를 읽고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머러스하셔서 1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시낭송가 최경애 선생님이 낭독을 해주셔서 자리가 더 빛났습니다. 다원시낭송예술협회 이명숙 회장님의 꽃다발 증정. 한국가톨릭문인회에서 보내주신 화환은 수필가 김동기 선생님께서 대신 잘 전달해주셨습니다.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신 허형만 선생님을 모시고 낭독의 밤을 할 수 있어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낭독회에 왔던 아이들이 보내준 낭독 영상을 보면서 이런 행사가 자주 열려서 아이들에게도 시민에게도 '시'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는 싸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서문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계신 신재미 시인께서도 방문해주셨습니다. 낭독을 해주셨던 시낭송가 최경애 선생님 작가를 꿈꾸는 고1 학생도 방문해주었습니다. (쓰담쓰담하는 모습입니다. ^^) 테바아트 이정윤 대표님도 낭독회에 와주셨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로, 대학 교수로, 교육자로 지내셨기 때문에 오늘 행사에서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우셨다고. 50년 동안, 아마도 그 전부터 문학의 길을 걸어와주신 덕분에 오늘날 한국 현대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이번 주에는 허형만 시인께 싸인 받은 시집 [황홀]을 읽으며 보내야겠습니다.\ 시의 첫 언어를 찾아가듯늘 걷는 길 처음인 양 새롭고어제 본 저 반짝이는 솔빛도깊은 기다림처럼 새롭다새롭다는 건 심장을 뛰게 하는 거아, 늘 보아도 지치지 않는한 줄의 시처럼―「솔빛」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