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광화문 커피_이병학 선생님 인터뷰2013년 02월 19일 예전에 인사동, 홍대, 의정부를 거쳐 강릉에서 커피숍을 여셨다고요. 87년에 처음 인사동 민정당 사무실 옆에서 ‘산내방’을 했죠. 커피하고 녹차 두 가지를 했고요. 그 다음에는 의정부 쪽에서 ‘늪지대 사람들’을 했고요. 그거하고 강릉 ‘언덕 위의 바다’. ‘히피커피’를 했죠. 그리고 지금 ‘광화문 커피’. 지역마다 특색이 다 달랐을 것 같은데요. 그 지역에 맞춰서 하신 건가요?예, 다 특색이 있게. ‘늪지대 사람들‘을 했던 의정부는 문화공간의 불모지였는데 거기서 ‘휴서사’라는 극단을 만들었어요. ‘휴전선과 서울 사이’라고, 그때 극단 단원들 중에는 지금의 권용운처럼 배우가 된 애들도 있고요. 저는 비영리목적으로 하면서 커피숍에서 나오는 걸 갖고 먹고 살았지만 (웃음) 같이 하고 그랬었죠. * <휴서사>, 남한의 경기 최북단지역에서 1990년 4월 14인의 연극 동호인들이 모여 ‘휴전선과 서울 사이’란 의미의 ‘휴서사’란 이름으로 창단한 극단. 강원도에서 박이추 선생님과 커피축제도 하셨죠?커피 때문에 만났고 그분하고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요. 커피는 그분도 잘 하고 있지만 저하고 커피 노선이 다르고요. 저는 매스컴을 많이 안 탄 사람이에요. 지금까지도 매스컴을 안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고. 왜냐면 문화 쪽으로 있고. 커피라는 것이 (커피숍을 하는 사람들은 꼭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이 뭐냐면) ‘커피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카데미 막 나와서 일주일에 한두 번 배워서 할 문제가 아니라 커피숍은 진짜 그 지역의 문화 공간. 커피라는 것이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주인의 마인드가 있다면 다른 사람과는 무언가 달라야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특별나게 유명한 사람이라든지 배우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거죠. 따뜻한 사람이어야 되고요.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와 ‘초심’으로 광화문 커피를 오픈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초심이라는 것이 어떤 말씀이신지늘 저는 변두리에요. 인터넷에 ‘언덕 위의 바다’만 검색해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오잖아요. ‘언덕 위의 바다’에서는 테이블 네 개에서 20년 동안 집이 막 뜯어고쳐져요. 처음에는 낡은 집이었다가 확 뜯어지고 간판도 다르고 변화무쌍하게 수없이 변해요. 20년 동안 마음에 안 들면 또 칠하고 또 칠하고 그러는 것처럼 늘 자기 스스로의 변화와 자기 속의 즐거움이 있는데, 초심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자기의 과거를 못 잊고 지금 현재에 대해서 불만스럽고 또 거만해지고 내가 뭐 된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 초심은 옛날에 처음 가졌던 마음이라는 거잖아요. (저는) 늘 변두리. 전혀 사람들이 예측 못하는 쑥 들어가 있는 곳. 광화문 이 동네에서 처음 커피숍 할 때도 사람들은 미쳤다고 그랬어요. 이 동네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여기는 커피 망하는 곳인데 저기 큰 길로 가지 왜 여냐‘고. 바닷가에 쑥 들어가 있을 때도 그랬죠. 지금은 거기가 4차선인데 옛날 7번 국도는 꼬불꼬불한 2차선이었죠. (그래도) 그때 거기서 커피를 했을 때, 테이블 네 개로 하루에 백만 원씩 팔았어요. 줄을 설 정도로 드립 커피에 목말라 있던 곳이라. 백만 원이나요?하루에 백만 원씩.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주말에는 백만 원, 평일에는 육십만 원 정도. 그때 커피 값이 삼천 원이었어요. 그 당시 삼천 원인데20년 전에 삼천 원이면 굉장히 비쌌는데도 어마어마하게 왔죠. 그 동네, 강원도에서는 ‘언덕 위의 바다’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처음으로 핸드드립이 나왔죠. 제가 커피 축제를 강원도에서 같이 주관할 때 (그네들은 저를 ‘커피의 창시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웃긴 코미디로 보이고) 커피를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다 보니까 내가 밀접한 관계잖아요. 커피는 배부르게 먹는 것이 아니라 카페인적이에요. 카페인이 있기 때문에 즐거움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잘 배우고 잘 해서 손님들한테 커피를 줘야 되는데 다들 기계화 되잖아요. 요새는 다 빨리빨리 체인화 되고 대량화 되는데 저는 지금까지 “이건 아니다!” 부르짖는 거죠. 유럽에 가면, 영국이나 독일이나 가면 (제가 독일에서 커피를 배웠는데) 걔네들이 늘 꿋꿋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는 감동 되었고요. 왜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제가 가게이름을 하나로 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느냐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계속 상업적으로 변하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름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면 놓지를 못하잖아요. 하나의 상품이 되니까.예, 저는 그게 싫은 거죠. 그것도 제 속에 빠져버릴 수 있는 거니까. 사람들은 왜 그걸 안하냐고 하는데 ‘언덕 위의 바다’는 ‘언덕 위의 바다’로 끝나는 거고 ‘히피커피’했을 때 히피처럼 머리 길렀던 것은 그 모습으로서 끝나고. ‘광화문 커피’에서는 또 나의 새로운 모습과 내 안의 다른 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죠. 인생은 짧은데. 안 그래요? 사람들이 저를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손님들이 모르고,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또 찾아와요. 30년 가까이 내가 어디 가서 숨어있든지 내 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는 이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 주인이 변하지 않잖아요. 옷 하나 벗겨진다고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디 변합니까? 그런 거죠. 제 사고가 그런 거. 왜 이런 거 계속 갔으면 좋은데 왜 안 하냐? 저는 다른 사람들 사고와는 조금 다릅니다. 허허허허 (웃음) 이름은 왜 ‘광화문 커피’라고 지으셨어요?사실은 광화문 앞에다가 커피숍을 하고 싶어서. 광화문 좋잖아요. (외부로 통하는 경복궁의 세 개의 문 가운데서도 어떤 상징적인. 이름도 너무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또 이성계 쪽 씨고 그쪽 파여서. (광화문도) 이성계가 만들었잖아요. 무학 대사가 만들었지만 사실은 이성계가 도장을 찍어준 거지 ‘하라’고. (웃음) 어쨌거나 문이라는 것은 제가 세종로에, 서울에 다시 오면서 갖는 어떤 새로운 마음이죠. 어떤 분은 “광화문이 안 보이는데 왜 합니까?” 그러는데 “원주식당은 왜 원주에서 안 하고 왜 서울에서 원주식당 합니까?”라고 물어보는 거잖아요. (웃음) 저도 광화문 앞에서 하고 싶어요. 그런데 미국대사관을 쫓아낼 겁니까? 아니면 거기 정부청사를 쫓아낼 겁니까? 스타벅스도 3층까지 크게 있잖아요. 그러면 안 되니까 이름이라도 빌려보자. 제자들은 독립문 커피랑 또남산 커피, 성북동 커피. 그리고 전라도 광주에 무등산 커피. 강릉 경포대에는 히피커피 그 이름까지 준 친구가 하나 있어요. 제자들도 다다 손으로 합니다. 손으로 다 볶는 거예요. 여기서 저는 바리스타보다 어쩌면 로스터라는 것이 가장 큰일이고요. 모든 커피는 일단 커피가 맛있어야 되요. 잘 볶아야 되고 잘 볶는 건 일단 생두를 잘 골라야 되고 잘 볶는 데이터가 있어야 되고. 손으로 볶는 수제식 커피는 전 세계에 다 있고요. 이게 뭐 우리나라에서 저만 볶으니까 사람들이 “저 사람 엉뚱하게 한다.”거나 “저걸 가지고는 데이터를 못 잡는다.”라고 하는데 그건 그네들 이야기에요. 잘못 배운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원래 로스터라면 100g을 볶을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꼭 이 이야기를 해줘야 되요. 커피를 하는 사람들은 커피 로스팅과 바리스타 하트 모양을 내는 걸로 커피숍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커피를 잘 볶는 사람들한테 배워야 되고 100g을 볶을 줄 아는, 샘플 콩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샘플 로스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한테 배워야 되고요. 저도 손으로 하는 것이 있고 기계로 하는 것이 있어요. 꼭 손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샘플 콩이 다양해요. 단, 100g씩 넣을 수 있는. 100g을 매일 볶아서 먹어보는 거예요. 커핑을 하고 분석하고 잡아내고 일단 잘못된 커피가 뭔지를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지금 다른 데 가보면 콜럼비아나 예가체프나 향이 다 똑같다고요. 다 달라야 된다는 거죠. 정확한 데이터가 있어야 되요. 100g이 있는데 얼마나 볶아야 되고 콩마다 아주 미세한 부분이 있는데 대량에다 기계에 넣고서 볶아서 ‘탄지니아니까 10분했다.’ 이건 아니라는 거죠. 9분일수도 있고 8분 일수도 있고 다양한 데이터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거죠. 이건 어마어마한 건데 하나의 답을 내려서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강릉에서 커피 축제를 했을 때 박이추 아저씨하고 했던 이유가 그거에요. 그리고 그 아저씨도 옛날에는 저처럼 일 년 동안 손으로 볶았던 사람이고요. 저는 구멍이 있는 직화고 보헤미안 아저씨는 반열풍. 그래서 저는 손으로 하는 수제식 커피가 기계커피보다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100g을 볶을 줄 알고 매일 볶고 연습해서 커피숍을 오픈을 해야 되는데 일주일에 두 번 기계로 볶아서 두 달 만에 오픈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틀린 것’을 알아야 된다.알아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체인점을 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만 해서 손님이 오면 따뜻하게 대하고 내 커피가 맛있으면 더 줄 수 있고. 물을 섞어주면 안 되고. 물이라는 것이 뭡니까. 커피는 절대 물 섞으면 안 돼요. 힘들게 내린 커피에다 물을 섞는 행위를 누가 우리식 커피라고 이야기들 하는데 그건 그네 본인들의 카페나 커피숍의 방식이지 말도 안 되는 거죠. 아메리카노가 미국식이잖아요. 미국만 있어요. 이태리나 유럽은 없어요. 그건 미국커피협회에서 미국 애들이 모여서 만든 에스프레소에다가 물 섞는 거고, 우리는 드립에다 넣고 물 섞는 걸 우리식이라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죠. 굉장히 무서운 발상이고 외국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커피가 발전이 될 수가 없다는 거죠. 맛있는 커피는 30g을 넣어도 맛있고 40g을 넣어도 맛있어요. 맛있게 잘 볶은 커피는 한 잔에 40g을 넣어도 절대 안 써요. 제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기본인데 기본도 안 되고 커피들을 볶고 있다는 거죠.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돈을 벌고 싶고 진짜 커피로 유명해지더라도 자기 양심을 속이지 말라는 거죠. 커피까지는 양심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체인점들이 사라지게 해야 되요. 대기업들이 건들이지 못하게 해야 되요. 그건 나쁜 게 아니고 자본주의에서 필요하지만 이런 숍들이 많이 생겨야 되요. 큰 대기업들이 하는 커피숍 하나마다 열 개가 형성이 될 수 있도록. 일단 맛이 중요한 거네요.커피를 하는 사람은 우리 집에 못 와요. 왜 그러냐면 자기들이 뽀록 날까봐. 나가서 이야기를 해요. 어떤 책에서는 손으로 볶는 통돌이는 정확한 데이터로 맛을 일정하게 못 낸다고 그러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5천만 원 정도하는 5kg 기계 가져다 놓고 1kg를 일주일에 두 번 볶으면서 향은 다 날아가게 하고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우리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확한 커피의 맛을 알려면 다양하게 다 드셔보셔야 되요. 매스컴에 나오는 그 유명세를 타는 사람을 맛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직접 혀로 느껴라’ 나만 특별난 혀를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혀는 다 똑같다는 거죠. 맛있는 건 맛있는 거예요. 유명세나 선입견을 갖지 말고 버리고 가다보면 정확히 혀에서 느낀다. 매스컴을 탄다고 해서 그걸 진솔하게 믿으면 안 되고요. 진짜 그걸 맛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혀로 느껴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희 집도 사람들이 와서 맛있다고 그러면 “아직도 그냥 열심히 합니다. 기본이에요.“ 그냥 그래요. (그런데) 놀랐데요. ”커피가 이렇게 안 쓰다”고. 저는 기본이 아닌 사람들에게 화가 납니다. 원래 커피를 너무 오래 볶으면 향이 다 날아가요. 콩이라는 것 속에는 뭐가 있겠습니까. 수분이 있잖아요. 수분은 날리고 향은 잡아야 되는데 그걸 오랫동안 불로 하다보면 타지는 않지만 향까지 날아가잖아요. 우리가 콩, 깨를 오랫동안 볶으면 향도 다 나가고 버석버석 하잖아요. 이것도 콩이기 때문에 그것처럼 똑같이 된다는 거죠. 열매기 때문에 그걸 알아야하는데 그냥 색깔만 맞추는 거예요. 색깔만 맞춰서는 안 된다고요. 로스팅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예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커피도 생선회와 같이 신선식품. 막 볶아 커피를 내리는 게 좋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잖아요.반열풍 같은 경우에는 하루 정도 지나야 되는데 저는 직화고요. 3일이 가스도 나가고 가장 맛있죠. 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바로 먹을 수 있고 대량으로 2kg씩 볶는 것이 아니라 300g정도 나오니까. ‘오래된 두 달 된 건 먹어도 되고 바로 내린 갓 볶은 커피는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또 있어요. 그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요. 커피 내릴 때 타이밍이 있어요. 우리는 자꾸 일본식으로 따라가고 있는데 드립도 천천히 가늘게 너무 오랫동안 잡고 있으면 커피 안의 쓴 성분까지 다 빠지거든요. 기계로 로스팅한 것과 수동식 로스팅의 차이는 있을까요?일단은 떼돈을 벌지 않고, 그냥 묵묵히 매일 볶는 것. 그러니까 일주일에 두 번이면 한 달에 8번을 볶는 거 아니에요. 1년이면 12개월이니까 80번인데 100번이라고 치고 10년에 100번씩이면 1000번이고. (그런데) 매일 볶으면 365번 아닙니까. 그럼 10년이 얼마입니까. 이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거죠. 이걸 18년간 했다는 이야기죠. 저 옆에 있는 샘플로스팅기가 다 찌그러졌잖아요.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다 찌그러졌어요. 저는 이걸 보는 관점이, 기계는 알아서 모터가 다 돌아가지만 손은 손이 모터고 걔랑 계속 같이 떠보고 볶을 때까지 호흡해야 되고 떠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기계는 볶아놓고 시계 보면서 툭 떠보고 있잖아요. 옛날에 밥솥도 밥 잘 나와요.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건 가마솥이잖아요. 엄마가 밥 열어보고 불 때고 그거 아닙니까. 불 많으면 뜸 들일 때 타니까 불이 안 세도록 숯불로 뜸 들이게 하는 그런 부분인거죠. 저는 수제식 커피가 맛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정성과 마음으로. 손으로 심장과 가까이 해서 내리는 이런 마인드가 저는 중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조금이지만 손님들한테 내가 그 독일에서 힘들게 배웠던 그 맛을 내려고 한 건데. 저도 처음에 반열풍을 했었어요. 그런데 반열풍은 탁해서 바로 못 먹더라고요. 제자들한테 반열풍도 가르쳐요. 반열풍과 직화에 대해서 어떤 것이 맛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거죠. 커피를 대하는 건 어떠세요?공부를 더 많이 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죠. 그래서 일본도 최소 1년에 3, 4번은 가고요. 미국은 시애틀커피축제가 있듯이 영국에는 이번 4월에 런던커피축제가 있어요. 런던에는 저처럼 조그만 숍을 하는 사람들이 주최가 된 축제를 하고 있고요. 열 평짜리 아닌 것도 있고 다섯 평짜리 젊은 친구들이 하는 곳도 있고 줄을 서서 먹는 데가 있고. 시애틀커피축제는 너무 상업화되었는데 런던은 아직 그런 것이 있고. 일본도 두 군데 커피 축제를 합니다. 우리나라도 강릉커피축제가 있고요. 올해 3회가 들어가는 서울의 국제서울커피쇼도 있어요. 저보고 동참하라고 하는데 저는 일단 거긴 대기업들이 있어서 축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인왕산 밑에서 커피에 대해서 순수하게 마음을 갖는 친구나 거만하지 않고 커피가지고 까부는 친구가 아닌 진짜 커피를 평생 갈 사람들만 가르쳐줍니다. 바로 가르치지 않아요. 저는 사람을 보고 가르쳐요. 돈을 들고 와도 저는 보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얘가 평생 벗 삼을 것인지를 보고. 또 지역의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인드를 먼저 보여줘요. 토론을 자꾸만 하고. 저 제자도 두 달 가까이 매일 와서 저랑 토론하고 그 다음에 가르쳐 준거예요. 아카데미 하는 친구들이 너무 잘못 가르치는 부분들이 많아서 화가 나요. 그래서 그걸 버리지 않고 오면 나는 안 가르쳐주겠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20g 넘으면 쓰다는 관념을 가르친다거나 물을 섞는 건 잘못 된 거고. 나는 40g이든 50g이든 잘된 커피는 맛있다. 더 바디감이 있다. 15g 넣어놓고 바디감을 느낀다는 것은 거짓말쟁이에요. 물 넣고 무슨 바디감을 느껴요. 거짓말이고요. 30g이상 넘어가야지 혀에서 바디감이 느껴져요. 그게 바디감이고 무게감. 인터넷 보면 핸드드립에 바디감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거 말고 당신이 느낀 적 있냐고요. 다 물어보면 없어요. 안 느낀 것이 당연한 거예요. 30g이 넘어야 되요. 커피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일단 커피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의 커피 집에 가서 ‘후르릅’ 거리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가서 편하게 먹고 그 집의 주인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가 아니라 그냥 그 집의 공간과 그 집의 음악이나 문화 같은 것을. 무슨 커피 투어하면 막 분석하러 다니는 것이 많다는 거죠. 각자 각 색깔이 있는 주인의 마인드. 약배전 하는 사람도 있고 중배전 하는 사람도 있고 다 다양하게 형태가 다르듯이 맛도 달라요. 그래도 커피라는 것이 태우면 안 되고 안 익히면 안 되는데 약배전이 아니라 안 익혀서 커피를 먹으면 역겨워서 오바이트가 나오는 곳도 있고 먹자마자 써서 못 먹는 집이 있어요. 그렇게 쓴 건 강배전이 아니라 태운 거거든요. 그런 부분들만 정확히 알고 다니면 되고. 커피를 더 즐겁게 먹는 법은 편하게 먹고 진짜 이렇게 책도 보고 사색도 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네요. (웃음) 아까 누님이 계신 독일에서 커피를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배우게 되신 거예요제가 커피를 배울 때 미군부대 용산부대 아니면 숭례문 지하상가에서 사다가 했어요. 처음에는 뜯자마자 맛있는데 이게 한 삼 일되니까 산패가 빨리 되더라고요. 두 달, 석 달을 배로 왔으니까. 이런 걸 볶으려니까 누나가 ‘너 너무 받아서 쓰지 말고 한 번 와라’ 그래서 가서 카갈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커피를 볶는 사람한테 가서 배웠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두 시간 가까이 가면 독일과 경계선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에요. 지금은 누님이 시애틀로 갔는데 시애틀로도 오라고 해서. 시애틀에도 손으로 볶는 이태리 사람이 있고 거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로스팅을 하는 숍이 많아요. 짹 아저씨라는 사람도 책을 썼지만 다섯 평짜리에서 커피숍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 꿈은 5년 후에 거기 시애틀에 광화문 커피를 내걸고 세 평이든 두 평이든 테이블 하나든 제 손으로 볶은 커피를 가지고 그네들과 같이 커피에 대해서 한번 선의 경쟁을 맛을 내고 싶은 것 그게 꿈입니다. 이 수제 커피라는 것에 대해서 기계로 하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할 겁니다. 왜냐하면 기계로 볶는 것만 알고 있기 때문에. 둘 다 알면 더 좋겠네요.제가 (노후에) 손으로 어떻게 돌리겠습니까. 기계로 하겠죠. 그리고 제가 한 쪽 다리가 불편해서 손으로 하는 이 행위가 나의 하나의 분신 같은 거예요. 지금 제 나이가 58년생이고 56살인데 제가 이렇게 즐겁게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자부 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하지만 커피가 있고 커피를 하기 때문에. 내가 돌릴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저는 손으로 커피를 볶을 거예요. 허허허 (웃음) 일전에 ‘카페에서는 커피만 팔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네, 그건 커피만 팔수도 있지만 이런 것이 있잖아요. 여기는 현재 광화문 커피 옆에 30년 넘게 영업한 효자베이커리라는 빵집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다가 샌드위치를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는 그 빵집을 위해서 존재를 해야죠. 그래서 인정을 해줘야죠. 옆에 빵집이 있는데 옆에서 빵까지 하면 안 되고요. 서로 공유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건너편의 떡 방앗간에서 떡을 사다가 커피와 같이 먹을 수도 있고요. 그러면 저 사람도 좋고. 또 빵집에서 빵을 사다가 커피를 먹게 되면 저 집에서 빵을 먹다가 커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이리로 보내고 서로 공유해야 된다는 거죠. 저는 이걸 우리나라 커피를 하는 사람들이 빨리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기 와인도 팔고 술도 팔고 이러지 말고. Only 커피만 하길 바라요. 드립 커피도 전문점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드립 커피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을 까요.음, 드립 커피를 즐긴다는 건 곧 주인이 로스팅을 잘해야 되겠죠. 라떼 이런 것도 다 밑에 커피가 깔려 있잖아요. 신선한 좋은 우유에 로스팅 잘 한 걸 에스프레소를 해서 먹고. 드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진하게 먹는 사람은 진하게 주고 물 섞지 않겠다고 하면 물 안 섞어 주고 뭐 그 정도. 맛있게 먹는 법은 일단 주인이 로스팅 잘 하고 (웃음) 마음으로 내려주는 커피가 저는 맛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너무 핸드드립의 고수니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데요. 고수는 없고요. 늘 제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로스팅 잘하면 수전증 걸린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마음으로 내린 커피도 맛있다. 그 정도에요. 제가 드립 커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끝. 정확히 명쾌하죠? 허허허허 (웃음) 커피 프랜차이즈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자본주의니까 필요하겠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커피 공화국이 되었고요. 한 집 걸러 있고 커피숍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너무 안타깝고 대기업들이야 뭐 그네들이 돈이 많으니까 하는 걸 제가 뭐라 할 수는 없고 이것도 좀 정리가 될 필요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지겠죠. (웃음) 커피 하는 공간과 문화 공간의 결합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커피를 먹으면서 시를 논할 수 있고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또 출판사 하는 사람하고 친구가 돼서 책을 낼 수도 있는 기회. 저는 커피숍이 그 다리 역할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힘든 친구들이 오면 위로해주고 또 힘을 넣어줘서 같이 작업도 할 수 있고 사진전시회도 커피숍에서 할 수 있는 그런 문화공간이 생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커피숍은 만남의 장소죠. 옹달샘 같은 역할. 커피를 배우려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열정을 갖고 하라. 막연하게 로망을 가지고 하지 말고 평생 내가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커피는 갑자기 돈을 벌게 해주지 않아요. 아프리카 오모르 족인가요? 이디오피아 서부에 오모르족의 사회에서는 커피콩이 여자의 성기를 닮았다고 그래서 굉장히 의식적이에요.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잖아요. 커피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커피에 대한 이미지 형태가 어쩌면 여자의 성기거든요. 인간의 샤머니즘이고 굉장히 신격화 된, 사람이 죽으면 입에다 굶지 말라고 쌀을 넣듯이, 그네들은 이 커피가 신격화되어있었어요. 커피라는 것이 이렇기 때문에 저는 이걸로 돈을 번다는 것은 이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다. 진짜 사랑하고 진짜 커피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본인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가까이 있다. ‘극단 먼지’도 여기서 하고 계시잖아요.그분들은 거리에서 만났고요. 거리에서 행위하고 거리에서 헤어집니다. 그래서 누구나 문화라는 행위나, 행위예술이라는 말에서 예술은 빼고요. 우리는 행위라고 이야기 하고요.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의 책에 거기서 우리가 스스로의 어떤 행위를 하는데 단원들은 다 그걸 읽어보고 토론하고 또 그걸 가지고 오브제를 쓰고 소품을 쓰고 의상을 갖고. 존재는 우리 인간에게 동물과는 다른 것이 옷을 입잖아요. ‘나는 옷을 입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처럼 옷이라는 것은 나의 표현이고 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명품이고 이런 것을 떠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옷에 가지고 있는 표현을 그 모습으로 거리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누구나 단원이 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뽑고요. 비전공인 사람들을 저는 원하고요. 여기는 다 전공이 서울대 공대 출신도 있고 연극과 출신도 있고 선생도 있고 미술감독 영화감독도 있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다 연극과는 연결이 없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건 사실은 누구나 자기 삶속에 예술이 누구나 존재할 수 있다는 거죠. 어쩌면 포장마차 하는 사람도 그 삶에서 그게 예술일 수도 있고 아트일 수 있는. 우리는 분리되어 있잖아요. 요새는 예술이라는 것이 너무 상업화 되어버렸어요. 커피도 마찬가지고 그건 한 마디로 비영리목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누구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단원으로 환영하고요. 어린 아이든 노인이든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요. 자기들이 기쁘다면. 저는 누구나 평등해요. 와서 행위를 하면서 즐거워야 돼. 본인들이 다들 즐거워해요. ‘자기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런 모습인가.’ 누구나 있어요. 그 이야기도 여쭤보고 싶어요. 원래 효자동 사셨다고 하셨잖아요. ‘세종마을’세종이 태어나셨던 곳이 통인동이거든요. 효자동 그쪽은 예전에 궁궐이었고요. 여기는 유명한 문인들이나 귀족들이 살던 곳이었고 조선시대 후기까지 인왕산 아래서부터 시인 이상 집터까지 올라가는 길이 다 병풍 같은 계곡이었어요. 인왕산에서 내려온 물이 광화문까지 흘렀고 삼청동길도 다 계곡이었고. 광화문 앞에 빨래터가 있었고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많이 바뀌게 되었죠. 선생님 어렸을 때랑 지금을 비교하셨을 때는요?많이 변했네요. 일단 여기는 알다시피 박통시대 때 개발을 못하게 했잖아요. 건물에 (고도제한을 걸어서) 5층 이상을 못 짓고. 과거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있고 종로통에서 유일하게 시골 같으며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곳이죠. 특별히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광화문 주변의 장소가 있나요?(특별히 좋아하는 장소는) 없는데 저는 늘 자전거로 광화문을 지나다녀요. 광화문 커피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경복궁 광화문 돌담길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바람을 느끼고. 저는 차가 있지만 차를 안타고 다리 때문에 운동 삼아 생활자전거 타고 삼청동, 종로, 시청 앞까지 다니는 걸 제일 좋아하죠. 쫄바지 입고 헬멧 쓰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생활자전거 타고 천천히 가면서 주변 사람들이나 관광객들 보면 서로 인사하고 그러고 지내는 것이 하나의 낙이에요. 하루 일과가 커피 보온병에 실고 가방에다 들고 어디가다 힘들면 앉아서 커피 먹고. 매일 눈 오나 비 오나 늘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셨는데 못했던 말씀이 있다면요.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라든지.음, 아까 제가 했던 그 이야기처럼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하는 사람들이 외국 가서 공부를 하고 와야 뭔가 된다고 생각을 갖거나 다녀와서 책을 쓴다고 해서 커피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걸 가지고 커피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까처럼 ‘커피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혀로 느끼는 것’이고 글이라는 것은 혼돈 될 수 있고 남의 것을 짜깁기 할 수 있는 거니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매스컴 타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정확히 어딘가 묵묵히 커피숍을 하는 사람들, 열심히 매일 볶는 집들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네요. 독자들이나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질문 하나를 해주신다면. ‘행복은 어디서 오느냐고 물어보세요.’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