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 한유주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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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마음껏 언어를 낭비하고 탕진한 한유주의 소설집!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한유주 소설의 발걸음을 기록한 연대기이자 짧은 지면에서 다 말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 이후 우리가 연대(連帶)한 기록을 담은 한유주의 네 번째 소설집 『연대기』. 구체적인 개인, 존재했다가 사라진 누군가/무언가의 이름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자문자답하며 끊임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이야기, 수록된 서로 다른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힌트처럼 읽히는 여덟 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같은 작업실을 공유하는 네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 《그해 여름 우리는》, 이름이 비슷한 사람의 집에 대신 살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이야기 《식물의 이름》, 죽음을 앞둔 한순간을 늘려놓은 소설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 등의 작품을 통해 저자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작가정보>

 

한유주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달로』『얼음의 책』『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책 속으로>

 

우리는 늙어가는 대신 썩어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시장에서 토마토와 살구를 사다 냉장고에 두었다. 한두 개 남아 있던 토마토에 곰팡이가 피었다. 우리는 그것이 썩은 토마토인지 썩지 않은 토마토인지 의견을 교환했다. 손톱만큼이라도 썩었다면 썩은 것인가.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먹을 수 있다면 썩지 않은 것인가. 이미 썩어 도려내진 부분이 눈에 보이는데, 그것을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우리가 썩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썩은 것인가. 어째서 우리는 토마토가 아닌가. 어째서 우리의 썩은 부분은 도려낼 수 없는가.

「그해 여름 우리는」(p. 19)

 

실은 나도 딱히 불행하지는 않다. 다만 행복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전에도 안 적은 없었다. 다만 짐작했거나, 착각했을 뿐이었다. 실은 불행이 무엇인지도 알지는 못한다. 다만 불행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고,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느낀다.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p. 53)

 

지금 이 순간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멈출 수 없는 시간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은 왜 이토록 긴가. 왜 이토록 기나긴 것인가.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p. 119)

 

너는 어려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모니터에 바짝 붙어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흑백 모니터였다고 했다.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글자들이 점 단위로 분해되어 보였다고 했다. 그건 도트였다. 도트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했다. 도트가 작을수록, 그리고 도트가 많을수록 해상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는, 해상도가 높은 글을 쓰라고 했다. 수강생 하나가 정물화나 인물화, 풍경화를 그리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너는 반구상화나 추상화에도 해상도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네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너는 해상도를 초과한다. 나는 너를 가까이서 보아야만 한다. 나는 너를 가까이서 보려고 네게 다가간다.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뜨면, 나는 너를 통과한다. 나는 너를 계속해서 통과하고 있다. 너는 몇 개의 도트로 이루어져 있는가.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pp. 143~44)

 

나는 많은 죽음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쓸 수는 없었다.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개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개는 추상적으로 죽었다. 그리고 쉽게 쓴 문장들로 남았다.

「한탄」(p. 179)

 

개는 하얗고 몸집이 컸다. 품종을 물었더니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일한 종. 개가 유일한 종이어서 나는 기뻤다. [……] 우리는 개를 사랑했다. 나도 개를 사랑했다. 가끔 나는 개의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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