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vol. 46
당신에게 부엌은 어떤 공간인가요?
EDITOR’S LETTER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약 20년 동안, 저희 집 부엌은 할머니가 주인이었습니다. 직장에 다니거나가게를 운영하느라 늘 바빴던 엄마를 대신해, 모든 살림을 할머니가 도맡아 하셨죠. 할머니의 부엌에선 어린 오빠와 제 입맛에 맞는 맛있는 것들이 만들어졌습니다(생각해보면 몸에 좋지는 않았을것 같지만요). 감자나 딸기를 설탕에 찍어야만 먹는 습관도 그때 생겼습니다.
언제쯤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할머니의 기력이 많이 쇠하여진 뒤로 부엌의 주인은 자연스레 할머니에서 엄마로 바뀌었습니다.그 후로 엄마의 부엌은 1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했던 때는 하루 종일 부엌에 있었을 텐데, 엄마는 퇴근해서도 오랜 시간 부엌에 머물렀습니다. 따뜻한 국과 푸짐한 반찬들로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 후에는 제철 과일을 깎아 내어주고, 다음 날낮 동안 우리가 먹을 것들을 또 준비하고…. 엄마는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저는 식탁에 앉아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시간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부엌에 서 있는 엄마의 모습만으로 집안이 환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2년 전, 부모님이 귀촌하시고 이어서 오빠가 결혼한 후에야 비로소 제가 부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주인이 될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던 저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엌을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밥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즉석밥으로 연명하고 있죠. 혼자 살아보니, 밥 짓는냄새가 얼마나 행복한 냄새인지 새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밥 짓는 냄새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부엌을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만들어보려 합니다. 할머니처럼, 엄마처럼, 그렇게 잘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저에게 있어 부엌은 잘 해내고 싶은 숙제입니다.
여러분에게 부엌은 어떤 공간인가요?
편집장 김경희
컨셉진 46호 (U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