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 김승희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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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저녁에 해 떨어지는 시간에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 여기는, 지상이라고”

죽음과 신성을 무한히 왕복하며 완성하는 불멸의 시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기지가 번뜩이는 언어와 탁월한 시적 직관력으로 부조리한 현실과 황폐한 현대문명을 강렬히 비판하며 소월시문학상, 오늘의 예술상 등을 수상한 김승희 시인의 신작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2018년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작 ?도미는 도마 위에서?(난다 2017)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열한번째 시집이다. 코로나로 외부를 향한 문이 닫혀 사람이라는 것에 생각의 초점을 맞췄다는 시인은 절망과 죽음이 편재한 비극적 세계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며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진실을 통찰하는 시 세계를 펼친다. “세상 더 아픈 데만 찾아 못질하듯”(김민정 추천사)한 시편들이 생명력 넘치는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태양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 태양의 본령을 실천한다는 불가능”(정과리 해설)이 빛나는 불멸의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정보>

 

김승희

김승희(金勝熙) 시인은 195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가 있으며,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과 산문집 『33세의 팡세』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등을 썼다. 소월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책 속으로>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만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 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내내 모가지가 꺾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 지 오래되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진심이 바래 섬망의 하얀 전류가 냉장고 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부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꿈틀거리다」 부분

 

밭 귀퉁이에 뿌리를 둔 토마토 줄기가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줄기줄기 땅을 기어가고 있었고

토실토실한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땀을 흘리며 빨갛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아깝게도 땅에 닿은 토마토의 뺨은 욕창이 나서 썩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가족을 부르고 싶었으나

그가 오려면 앰뷸런스가 와야 하기 때문에

혼자 토마토의 넘실거리는 화려한 생애를 보고 있었다

토마토는 물결, 무리 지어 흔들리는 하나의 붉은 물결

퇴원을 해서 이리 와야지, 토마토밭으로 입원해야지

토마토 어금니를 꽉 물고서

우리 함께……

-「토마토 씨앗을 심고서」 부분

 

어떻게 보면 진주와 산호를 키우는 세상

모래밭에 일그러진 진주도 섞여 있는

세상, 세계

내가 그런 것들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다 알 수도 없지만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 이 세계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수고하고

뺨도 때리고 뺨도 맞고

저녁에 해 떨어지는 시간에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 여기는, 지상이라고

-「지상의 짧은 시」 부분

 

난 정말 시간이 없어,

글씨 쓰는 인간

허공에서 강하고 급한 바람이 휙 몰아칠 때

외출하기 직전 옷소매에 한쪽 팔을 집어넣다가

포스트잇에 글씨를 쓰네

격한 호흡

달려오는 이인칭

작고 사소한 우리의 약속, 다급한 처방전,

숨찬 짝사랑의 흘려 쓴 기록

 

(...)

 

포스트잇 한장이 냉장고 문에서 굴러떨어질 때

우리의 약속이 굴러떨어지네

난 정말 시간이 없고

바람도 없는데 낙엽처럼 가벼이 날리네

쓸 때면 늘 둘이 되는 포스트잇에

급하게 쓴 짝사랑의 격한 숨결

흘려 쓴 글씨들의 희망이 굴러떨어지네

텅 빈 우주 속으로 쪽지 하나가 굴러떨어지네

-「절벽의 포스트잇」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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