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p - 이상우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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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워크룸 한국 문학 ‘입장들’의 첫 책은 이상우의 『warp』이다.『warp』는 글이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모습, 우리가 글 본연의 모습이라고 익히 알고 있는 형태를 보란 듯이 왜곡하면서 시작된다. 잘 쓴 글로 통용되는 원래 모습이 사라지고 나타난 낯선 글의 기이한 매끄러움. 한국어 문법과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를 비껴난 문장들이 하나씩 만들어가는 말들이 가까스로 읽히는 순간, 우리는 거의 모든 문학적 실험이 수행되고 지나간 이후인 이 시대의 잘 쓴 글을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

 

 

 

 

<책 속으로>

 

그들은 공간처럼 나무를 보며 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과장되지는 않았다. 그들 기억에서의 나무를 바라보는 그들과 다르게 과장되지 않은 채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장소에서 그들이 지워지길 원한다고 서로에게 고백했으며 편집숍 길목의 자판기 앞을 지나 보잉 항공기와 해변이 그려진 커다란 광고 패널 앞을 걸어가며 그들이 먼저 그들의 장소를 지우기 위해 공간에 속해 있는 것들로부터 구축되고 있는 장소를 걷어내려 그들을 감싸고 있는 기호를 하나하나 지워가는 방식으로 우선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로 떠나가서 시작해보는 장면을 공과 같이 구의 형태로 떠올리는 그들은 바라보던 나무를 걸어가며 그들이 서로에게도 지워지기를 과장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9쪽)

 

녹색 천막 둘린 공사장에서 숨소리. 녹색 천막 둘린 공사장에서 지린내. 녹색 천막 둘린 공사장에서 시멘트 벽. 창이 설 자리로 흐르는 녹색 천막 공사장 복도 계단에 버려진 양말 신문지 3층의 회색 담요. 녹색 천막 둘린 공사장에서 하얀 비닐 봉투 으깨진 쥐 언 수건. 녹색 천막 소리 내며 이어지는 주름. 벽돌 더미 가려진 통로들 투명한 비닐 막. 일회용 도시락 용기 갈색 개미 타원형. 갈라진 물 자국 좁은 어둠 흰 거미줄 천장 비린내 녹색 천막 둘린 공사장에서 철골은 직선으로 쏟아지는 바깥 기다랗고 넓은 다면체 숨소리. 석면 가루 납빛 수도관 헬멧. 나무 재 불씨. 구멍 난 목장갑 깃털 복도 걸어가는 녹색 천막 찢어진 곳으로부터 비둘기 떨어져 누운 직사각형 문 흐르는 대각선 천막 녹색 소리. 전기 배선 슬레이트 쌓인 구석 유리에 비친 물결. 비둘기 걸음 유리 조각 고갯짓 녹색 천막 둘러진 공사장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매트리스 솜뭉치 기둥 사이마다 넓이 많은 평면의 날카로움 몰려 휘어지는 공기. 흔적 뜯긴 전기 배선 무늬 길게 벽 따라 두께 얇은 선의 길이로 바퀴벌레 틈 속으로 사라져 지하 휴지 조각. 페인트 통 구르다 멈춘 곳에서 회색 크기의 접촉면 넓은 타일 천장 공사장에서 문 없이 위치로 섞이듯 녹색 천막 토막 난 계단 흩어진 반복. 수직 종말점 없이 부드러운 복도 작은 돌 조각 속삭임 쥐 냄새 복도로 통과되는 벽 너머 빈 천막 복도 주변 녹색 흐름 사각형들 복도 움직임 음영 엉킴 없는 공사장에서 쓸림 팽창하고 수축되는 영역으로서 복도의 형태 소리 직각 복도로 벗겨낸 육면체들 비어 있는 방향. 세 층 천장 뜯은 높은 방 한 면 가득 물결 매끄러운 냉기 못 구멍 금 간 면만 남아 물체 없이 녹색 천막 흐르게 공기 육면체를 닮아가며 복도 기다란 방위 쏟아지는 벽면 사선의 세로로 와이어 높은 곳으로부터 물방울 따라 녹슨 소리 바람의 원근감 깊이 육면체 엘리베이터 조명 깨진 채 문 닫힌 빛

(한남대교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의 둥그런 지붕 빛깔, 53~4쪽)

 

음악은 없는데 창문 비. 침대 사이드에 걸터앉은 스킨헤드, 날개 뼈 움직임대로 얇고 빳빳한 살결 구겨진 레몬빛 홑겹 이불 밖으로 얼굴 내민 스킨헤드가 묻는다. 그랬단 말이지. 어. 그래도 울 뻔했다는 것이고. 그러게 무슨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됐는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어. 선풍기 방향 바꿔주며 누운 채 기지개 펴는 스킨헤드에게 창문은 젖고 있는 자전거, 쇠 손잡이, 차임벨, 휠, 알몸으로 스킨헤드의 두 사람 살내 섞인 침대에서, 그늘진 책장 마샬 스피커 물병에 담긴 식물의 그림자 방벽에 구부렸다 펼쳐본 손가락 사이로 바라보다 눈 감은 스킨헤드의 겨드랑이 속으로, 속삭이듯 흘러내리는 창문 조그만 전구 여럿 달린 넝쿨 스킨헤드는 스위치 껐다 켜며 울 뻔했던 생각에 관하여 저녁에 약속은 없지만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는 낮에 희미한 전구 불빛 스위치 내리고 화장실로 멀어지는 스킨헤드의 작은 엉덩이를 따라 얕은 코골이 줄줄 녹아내리다시피 자전거 가만한 자세로, 앙상한 뒤태를 지닌 너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다가 네 턱 아래에 송곳을 찔러 넣어 턱뼈를 따라 그어낸 뒤 반원형으로 구멍 난 자리에 갈고리를 집어넣고선 아랫니 위로 빼내 끌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고 스킨헤드가 하나의 샤워기 아래서 턱을 들어 꿈속에서 송곳을 찔러 넣은 지점을 가리켜주면 잠든 널 볼 때마다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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