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다양한 ‘당신들’의 삶의 무늬를 수놓다!
2016년 《너무 한낮의 연애》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이듬해 《체스의 모든 것》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김금희의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저자 특유의 다정하고 사려 깊은 목소리로 우리가 오랫동안 읽고 싶었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느 시대와 세대와 시절을 거친 우리의 수치, 죄책감, 미안함, 그리움, 외로움 등 미세한 감정의 결을 어루만지며, 그때를 관통하는 그 누군가를 호명하는 19편의 짧은 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저마다 특별하고 생동감 있고 따뜻한 애정이 깃들어있는 저자의 작품과 함께 특유의 색감과 이야기가 있는 그림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곽명주의 그림을 배치해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 책은 문학을 읽는 새로운 방법으로 종이책 출간과 동시에 오디오북으로도 공개되어 전문 성우의 낭독으로 생동감 있는 소설 읽기를 선보인다.
<작가정보>
김금희
엄마에게서 더 이상 양말을 구입하지 말라고 경고받은, 우울할 때마다 양말 사기를 즐기는 소설가. 화장품 뚜껑 닫는 걸 늘 잊어버리고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도 등장인물의 이름을 다 까먹어버리지만 하루를 살면서 무언가 흥미로운 풍경이나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주었던 아주 먼지 같은 사소한 기미들도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소설 쓰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언제나 한계를 시험당하는 기분이라 괴로워하면서도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사탕처럼 마음속에 굴려가며 이것이 있는 한 나는 언제나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괜찮은지는 알 수 없지만 무턱대고 괜찮으리라고.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2014), 『너무 한낮의 연애』(2016),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2018) 세 권의 책을 내고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책 속으로>
그러므로 당신들이 괜찮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는 계속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주 만났다가 헤어지며 그리워도 하겠지만 끝내 서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거듭되는 재회와 헤어짐 속에서도 당신들이 처음 내 마음속에 들어와 헤이, 라고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그 눈부신 순간에 대한 감각은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떠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차마 가져가지 못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다정함을 주었던 사람이라면 마땅히 차지해야 할 오롯한 빛이니까.
-「작가의 말」에서
다행히 셋은 그런 일이 있더라도 어느 밤 불쑥 만나 한강을 향해 걷는다거나, 대학 시절부터 다녔던 식당을 간다거나, 이제는 찍는 사람도 별로 없는 스티커 사진 부스에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허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 특별하고 희소한 우정을 유지하려 해도 솔직히 늙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마음도 그렇게 시간에 의해 변형된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실감이 났다.
_「규카쓰를 먹을래」에서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괜찮고 제대로인 듯했지만 어떤 날에는 반만 그렇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흔한 아침인 걸까. (…)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 그들의 아침이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의 사진들처럼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은 아닐지 생각하면서.
_「그의 에그머핀 2분의 1」에서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_「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에서
실패한 농담이 상대에게 주었을 모욕에 대해 밤길을 걸으며 사과하고 싶어 하던 사람, 다른 어떤 말보다 사람을 보고 온다, 라는 말을 수면 위의 파문처럼 마음을 울려 받아들일 줄 알았던 사람.
_「류, 내가 아는 사람」에서
남수는 언제나 배고파 했고 언제나 먹고 싶어 했다. 은지가 그러면 너 정말 돼지 된다고, 사람이 돼지가 되면 도무지 사람 취급을 받을 수가 없다고, 사람이 안 되는 건 괜찮지만 취급을 못 받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기다려지는 서른 살, 안정이 찾아왔어요 서른 살, 아홉수를 넘었어요 서른 살, 뭐라도 되어 있을 것 같았어요 서른 살. 서른 살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취급에 주의해야 했다.
_「17/24」에서
“나는 사랑에는 그런 무한정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영건이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연애에 동의했고 나는 귀가 솔깃했다.
“야, 근데 생각하면 한심하지. 내가 뭐라고 걔 인생을 그렇게 걱정해. 쓸모없고 안 돌아오지.”
“안 돌아오니까 좋지. 주는 족족 돌아오면 정 없잖아.”
_「영건이가 온다」에서
“잘은 모르지만 나빠지지는 않으려고.”
“그래, 나빠지면 안 되지. 그거면 되지.”
_「아이리시 고양이」에서
삼촌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순간조차 블루지한 템포에 영혼을 맡긴 채 불행에 대한 체념도 외면도 아닌, 비비 킹의 대표곡처럼 인생의 ‘스릴’을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통과할 줄 알았던 소년이었다고.
_「나의 블루지한 셔츠」에서
그것이 이것보다 어려운가, 이것은 그것보다 쉬운가 하는 삶의 온도차를 재보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_「온난한 하루」에서
당신이 돌아와 대문을 닫으면 더 이상 그것을 밀고 들어올 누구도 없었다는 것, 열릴 리가 없다는 것. 그건 젊은 내가 자취방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단절감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_「춤을 추며 말없이」에서
행복했을까, 며칠에 한 번씩 웃었을까, 혹은 울었을까, 누구를 그리워했을까, 혹시 나를.
_「춤을 추며 말없이」에서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것이 성탄 전야에 알맞은 좀 볼품은 없지만 적당하고 따뜻하며 그래서 홀리한 어떤 것이 아닐까 싶어서. 은리가 말하지 않았으니 현우가 알 수 없고 이제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적어도 이 밤에는 상관없었다.
_「성탄 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