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된다는 것 / 니콜 크라우스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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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의 첫번째 단편집

 

대표작인 『사랑의 역사』(2005),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위대한 집』(2010), 그리고 최근작 『어두운 숲』(2017)에 이르기까지 예리한 지성과 섬세한 감성을 모두 갖춘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미국의 소설가 니콜 크라우스의 첫번째 단편집 『남자가 된다는 것』(2020)이 출간되었다. 총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소설집은 근 20년간 작가가 여러 지면에 발표했거나 새로 집필한 소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어린 소녀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여러 국면에 놓인 다채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 폭력과 권력, 사랑과 정체성 등 인간의 가장 복잡하면서도 본질적인 속성들을 독창적인 화법과 시각으로 탐구한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뒤얽힌 복잡하고 다층적인 서술 방식을 추구했던 장편소설에 비해 이 책에 실린 단편의 서사 구조는 보다 간결하고 담백하지만, 암시와 함의가 밀도 있게 담긴 정갈하고 시적인 문장들은 반복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며 독자의 적극적인 읽기를 유도한다. 또한 기존 장편이 대체로 등장인물의 특수하고 사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 소설집에는 좀더 역사적, 시대적 산물로서의 개인들, 현실의 문제의식이 투영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 시절 저명한 조경사의 조수로 일했던 경험을 회고하는 「정원에서」나, 명시되지 않은 재난으로 인해 난민 수용소에서 배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음울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아무르」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어느 날 갑자기 정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위험을 경고하며 모든 시민에게 가스마스크를 배급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미래의 응급 사태」는 약 20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최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점 중 하나는 모든 단편이 저마다 뛰어난 완성도와 깊이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각 단편의 집필 시기에 시간차가 있음에도 마치 하나의 연작소설처럼 읽힐 만큼 긴밀한 구성력과 조직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가가 소설가로서 거쳐온 사유의 흐름과 변화를 개괄하는 동시에 작품세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남자가 된다는 것』은 니콜 크라우스의 작품을 사랑해온 기존 독자들뿐 아니라 작가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하는 새로운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정보>

 

니콜 크라우스

1974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마셜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 서머빌 칼리지와 코톨드 예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첫 장편소설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05년에 발표한 『사랑의 역사』는 오렌지상(2006)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고 윌리엄 사로얀 국제 집필상(2008)을 수상했다. 니콜 크라우스는 2007년 문학잡지 〈그란타〉가 10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중 한 명으로 뽑혔고, 2010년에는 〈뉴요커〉 선정 주목할 만한 ‘40세 이하의 작가 20인’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위대한 집』(2010)은 작가의 세번째 장편소설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와 오렌지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애니스필드-울프 도서상을 수상했다. 2017년 네번째 장편소설 『어두운 숲』을, 2020년 여성성과 남성성, 폭력과 권력, 사랑과 정체성 등 인간의 가장 복잡하면서도 본질적인 속성들을 깊고 대담하게 탐구한 첫번째 소설집 『남자가 된다는 것』을 출간했다.

 

 

 

 

<책 속으로>

 

나는 소라야가 슬픈 미소를 띠고 내 머리카락을 만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내가 본 건 어떤 품위였다고 믿었다. 자신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며 어둠 혹은 두려움과 맞붙어 이긴 사람의 품위. 본문 29쪽

 

이게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하다. 곧 겨울이 올 테고, 바다가 컴컴해질 테고, 비가 내리면 부서진 아스팔트에 웅덩이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안다. 이 상태가 아주 오래 계속되리라는 것을, 부엌으로 가는 길에 낯선 이의 몸을 넘어 다니는 일에 익숙해지리라는 것을. 사람은 그런 것들을 예사롭게 넘어 다니며 살기 마련이니까. 그게 우리에게 더는 짐이 되지 않을 때까지, 그래서 완전히 잊을 수 있을 때까지. 본문 77~78쪽

 

하지만 어린 노아는 왜 뒤에 남아 어머니에게 매달리지 않았을까? 독립성이 자기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자랑거리가 되기 훨씬 전부터 독립성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긍지는 약함을 강함으로 위장하다보니 결국 정말로 강함이 된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필요 때문에 생긴 모든 강함이 그렇듯이 그 기반은 단단하지 않았다. 구덩이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본문 102쪽

 

사랑.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비록 그때까지 경험한 그 어떤 사랑과도 다른 감정이었지만. 내가 아는 사랑은 늘 욕망에서 생겨났다. 통제할 수 없는 힘 때문에 내가 바뀌거나 진로에서 이탈하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에르샤디를 사랑할 때, 그 거대한 감정을 벗어난 나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걸 연민이라고 부른다면 신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이 감정은 그와 달리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오히려 이것은 동물적인 사랑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다가 어느 날 동류를 만나, 자신이 여태 잘못된 대상을 이해하려 애써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동물의 사랑. 본문 129~130쪽

 

우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그녀는 썼다. 모든 것이 경이로운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징후의 형태로, 남자들의 사랑으로, 신의 이름으로 주어진 선물이라 믿으며 그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사실 그건 우리가 저마다의 깊은 내면에 자리한 허무로부터 힘겹게 끌어올린 힘이었는데 말이야. 본문 142쪽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있다. 그리고 묵종한 이들이 있다. 그런데 묵종하는 이에게 묵종하는 것은 어떤가, 나는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본문 199쪽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쏟아내는 모든 말을 단 하나의 애처로운 진실로 축약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은 결국 누구나 혼자이고 그 점을 빨리 받아들인다면, 심지어 즐긴다면 그만큼 빨리 괴로움과 불안의 긴 그림자를 벗어나 살 수 있다는 것. 본문 230쪽

 

타마는 다시 창문으로 돌아서서 파란 파도가 멀리서 우르르 몰려오는 광경을 바라본다. 스스로 확장하지 않는다면 확장성이 무슨 소용인가? 그 많은 가능성이란 또 무슨 소용인가? 그것을 해질녘에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라든가, 아이들이 전남편 집에 가 있는 동안 방안에 가만히 서 있다가 문득 목덜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순수한 정적을 자각하는 느낌 정도로만 인식한다면. 본문 241쪽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말하고 아버지는 듣는다. 인생은, 나는 말한다, 아니 말하려 한다. 늘 아주 다양한 층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네요. 본문 250쪽

 

“난 뭘 원하는 걸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뭘까?” 그러자 심리치료사가 대답했다. “항상 원해왔던 그거죠. 자유.” 본문 262쪽

 

사랑은 상호적이고 나눌 수도 있지만, 고통은 철저히 혼자인 곳에서 생겨난다. 본문 271쪽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그녀는 다나의 말에 반박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될 뿐이야. 과거에 대한 기억을 계속 조정해야만 자기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본문 273~274쪽

 

하지만 주고받기의 동등함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자유를 원한다는 말 역시 멈추지 않았다. 동등함은 타협과 제한이 따르는 관계의 체계 안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우받고 가치를 인정받는지를 의미하고, 자유는 그 체계를 파괴하거나 초월하는 일이며 체계 너머의 황무지에서 완전히 무방비로 서 있는 일, 어떤 약속도 하거나 받지 않은 채로 지평선 끝까지 한없이 펼쳐진 환하고 명료한 풍경을 마주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본문 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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