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인터넷 인기 서평가 로쟈와 함께 하는 지젝의 텍스트 읽기!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하이브리드 총서」제 7권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이 책은 ‘인문학 전도사’인 로쟈와 함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읽는 강독서로, 슬라보예 지젝의 전문가이며 인터넷 인기 서평꾼으로서 로쟈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문학자 이현우의 본격 인문 텍스트 읽기의 시도이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9.11테러와 이후 달라진 세계질서에 대한 통찰과 비전을 담은 5편의 논문집으로, 지젝의 책들은 특유의 아이러니와 찌르는 함축을 담고 있어 초심자가 접근하기에 쉽지 않다. 직접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번역한 이현우는 이 책을 통해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정보>
이현우
저자 이현우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림대학교 연구교수이며,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한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하고, ‘로쟈’라는 필명으로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꾸리면서 ‘인터넷 서평꾼’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레닌 재장전』(공역), 『폭력이란 무엇인가』(공역)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 『책을 읽을 자유』, 『애도와 우울증』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각기 다른 반응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태도는 ‘지젝과 거리 두기’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내지는 너무 빠지지 말 것. 혹은 너문 진지하게 대하지 말 것. 왜? ‘현재 서양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라서? 거기까지 간다면 이미 어느 정도 지젝에 대한 독해와 이해를 갖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앎이 없더라도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는 이 ‘사물’ 혹은 ‘괴물’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의 좌표, 현실의 좌표를 뒤흔든다는 걸 안다. 무의식적인 앎?! 그런 앎이 부족할 경우엔 또 ‘무지에의 의지’라는 것이 작동해서, ‘돈도 되지 않는데 복잡한 것’으로 자동분류하고 폐기처분한다. ‘지젝 읽기’는 때문에 ‘저항’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타성과 기득권과 편의주의와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에 대한 저항이고, ‘우리 집안만 빼고 다 망해라!’ 하는 유구한 심보에 대한 저항이다.
자신이 가진 게 많다고 믿는 ‘대한민국 1%’는 지젝을 읽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세상을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도인’들도 읽을 필요가 없다. ‘이대로!’가 생활신념이자 정치적 신념인 위인들도 지젝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읽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절박함에 더하여 ‘제대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까지 시달리며 뭔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분들은 한번쯤 지젝을 읽으셔도 좋겠다. ‘현재의 나’에 별다른 집착을 갖고 있지 않아서 언제든지 자신을 내던질 용의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없는 자격이다. 지젝은 그런 분들을 위한 일침이고 ‘빨간 약’이다. 행복을 얻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의 생각과 존재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본문 8-9쪽
‘9월 11일’이란 날짜는 물론 ‘자본주의 제국’ 미국의 심장부를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공격을 받은 2001년 9월 11일을 가리킨다. TV를 통해 반복적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지젝의 인상도 다르지 않다. “뉴욕 시민들은 ‘실재의 사막’으로 인도되었다. 할리우드에 익숙해진 우리는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과 그 풍경을 보면서 대규모 재난영화에서 본 숨 막히는 장면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실재의 사막』, 29쪽) 그것은 실제 현실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이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다들 이렇게 자문해보지 않았던가. 도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라고.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바로 그 스펙터클한 사건에 대한 분석이고 성찰이다. /본문 20쪽
지젝은 체스터턴의 말이 우리의 ‘포스트모던’ 시대에, 스스로를 해체하고 의심하고 거리를 두려는 시대에 더없이 잘 들어맞는 게 아닌가, 라고 말한다. 가령 “생각하지 말고 복종하가”는 낡은 모토(이건 전형적인 군대식 모토인데)는 요즘 같으면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물론 아직도 이런 것이 통용되는, 강요되는 나라가 없지는 않다. 대낮에도 군대처럼 조인트 까고 까이는 나라 말이다). 이럴 때 사회적 예속 상태를 안전하게 지속시킬 수 있는 방책은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다(다시 말하지만, 이런 건 언론의 자유가 뒷걸음질치고 있는 한국보다는 미국 사회에 더 적합한 지적이다). 물론 그런 예속에서의 탈피, 곧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의심하기 어려운 ‘도그마’를 참조해야 한다는 것이 체스터턴의 또 다른 역설적 주장이다. 정리하면, 체스터턴의 역설은 상호 연계적이며 양면적이다. (1) 자유사상은 진정한 자유의 장애물이다. (2) 진정한 자유는 도그마를 필요로 한다. /본문 38쪽
만약 실재가 가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고 악몽으로만 경험된다면, 거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허구를 현실로 오인하지 말라”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장을 정확하게 뒤집어서, “현실을 허구로 오인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현실의 어떤 부분이 환상을 통해 ‘기능 변화’되는지, 그래서 그것이 현실의 일부임에도 허구적인 방식으로 지각되는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뜻이다. ‘실재 현실’ 속에서 허구의 부분을 알아내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허구의 가면임을 폭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지젝은 덧붙인다. 라캉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동물들은 자까를 진짜로 속일 수 있지만, 유일하게도 인간은 진짜를 가짜로 속일 수 있다고.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 진짜 속에서 가짜를 가려내는 것이다. 실재적 현실 속에서 허구를 식별해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본문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