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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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활자만으로 빚어낸 특별한 여행기!

 

여행과 여행 사진, 여행의 단상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단 한 장의 여행 사진 없이 스페인의 여러 도시와 포르투갈, 리스본, 필리핀 보홀의 가장 선명한 이미지를 문장으로만 빚어낸 여행 책이 출간되었다. 여행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활자만으로 빚어낸『스페인 야간비행』의 저자 정혜윤은 이미지를 철저히 배제한 여행기를 통해 시공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일종의 무중력을 경험하게 한다.

 

이 책은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여행지의 정경과 분위기를 환기한다. 구절들을 단순 발췌-인용하여 단순히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간문 형식의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그리고 그것들은 독자로 하여금 ‘왜 그때 그곳에 그 책을?’이라는 의문을 해결할 수 있게 한다.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또 다른 감각의 차원에서 작가는 자신이 본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활자만으로 이루어진 여행기. 반신반의하며 책을 읽는 사이, 저자의 활자는 단박에 읽는 이를 자신이 걸었던 여정으로 데리고 간다. 처음 이미지가 없는 여행기에 신선함을 느껴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됐다면 책을 덮는 순간엔 당신이 닿지 못했던 그곳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정혜윤

 

저자 정혜윤은 CBS 라디오 프로듀서. 우리 시대의 탁월한 북 칼럼니스트이자 감각 있는 에세이스트.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침대와 책』과 『삶을 바꾸는 책 읽기』, 두번째 세계를 꿈꾸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고전 에세이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시공간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여행 에세이 『런던을 속삭여줄게』, 자신의 손과 발과 눈과 머리를, 몸을 움직여 끝없이 자신을 비워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비추는 여행자를 만난 『여행, 혹은 여행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에세이 『마술 라디오』, 인간의 문제에 천착한 르포르타주 에세이 『그의 슬픔과 기쁨』 등을 썼다. 《김어준의 저공비행》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등 ‘사람’의 ‘이야기’를 채집하는 방송을 오늘도 만들고 있다.

 

 

 

 

<책 속으로>

 

미스 양서류야, 아침은 그렇게 요동치면서 오더구나. 존 버거는 ‘사람은 여러 순간들 사이에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어떤 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했어. 그 시간이란 “되어 있음 이전에 존재하는 ‘되어감’의 시간”이라고. 그렇다면 그날 아침 나는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되어감’의 시간을 본 거야. 어느 순간 갑자기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어. 마치 빛이 한줄기 검이 되어서 가슴을 황금색으로 푹 찌르는 것 같았어. 내가 아침마다 당연시하던 일출마저도 움직임이고 변화라는 사실이, 그럼에도 나는 되어감이 아니라 ‘되어 있음’에 더 관심이 있었던 적이 많았다는 사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보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에, 제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에 더 관심 있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는 사실이, 안전한 해안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든 사물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순간에 다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졌어.

- ‘2’ 중에서

 

리스본은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졌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곳이 아주 많았어. 수많은 층위들이 있었어. 이 때문에 예상치 못한 풍경이 나와. 그런 도시에서는 수많은 관점을 포용하기가 우리보다는 더 수월할 거야. 리스본을 걸으면서 나는 올해의 유행 상품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어느 기업이 가장 크고 돈이 많은 곳인지 알아내기가 어려웠어. 뭔가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지배적이다, 압도적이다, 라는 느낌을 덜 받았어. 이런 곳에서라면 다른 무엇과 내 것을 굳이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 ‘2’ 중에서

 

하늘 한번 보다가 나무 한번 보다가를 반복하면서 한참 동안 누워 있었어. 크리스마스이브의 밤바람은 조금도 차갑지 않았어. 나무도 달도 나를 위로하려고 내 옆에 있는 것은 아니었어. 오히려 나는 나의 고독이 아니라 나무와 달과 밤의 고독을 느꼈어. 그들은 더이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친구 같았어. 그런데도 무상한 것은 없었어. 쓸쓸함도 없었어. 무의미한 것도 없었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물을 필요조차 없는 고요함이 있었을 뿐이야. 불과 몇 분 전까지 빨갛고 노랬던 나무들이 달빛의 손길을 받아 하얀 고요처럼 빛났어. 토니 모리슨이 좋아할 만한 풍경이었어. 그녀는 나무들처럼 여러 가지 감정의 색을 입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버리라고 말했어. 작고 성급한 감정들을 믿지 말라고. 큰 감정을 따르라고. 보다 큰 감정, 보다 차원 높은 감정을 따르라고. 사실 너도 나도 잘 알고 있지? “나는 외로워” “나는 혼자야” “나는 하찮아” “나는 못해” “나만 불행해” “너는 행복하잖아” 같은 작은 감정들로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 ‘3’ 중에서

 

사라마구는 우리가 세상에 환상을 품길 원했지 사라마구에 대해서 환상을 갖기를 원하지 않았어. 그는 자신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자신도 겪는다고 생각했어. 그는 매 순간을 충실히 살려고 했고 규칙적으로 일했고 절제했어. 박물관에 가면 그가 손으로 기록한 꼼꼼한 일정표를 볼 수 있을 거야(사실 글에 집중하기엔 일정이 좀 많다는 느낌도 들었어). 그는 누구도 타인의 삶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랐어. 인류 전체를 생각할 때 그는 비관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한 개인을 생각할 때 개인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믿었어.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생의 시기는 성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 ‘5’ 중에서

 

인생의 어떤 시기는 확실히 다른 시기보다 중요할 수 있어. 사라마구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때를 그 출발로 생각했어. 내가 기억하는 한 사라마구는 소설에서 성공이란 단어를 현실의 잣대로 쓴 일이 없어. 굳이 성공이라는 말을 써야만 한다면 자기 운명을 스스로 만들고 완성시키는 것이야말로 성공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미스 양서류야, 오늘 밤 나는, 자기 존재의 ‘아니요’에 몸을 의지해 위험천만하게, 그러나 용감하게 존재 바깥으로 나간 모든 사람들에게 깊게 고개 숙여서 경의를 표해. 너도 어서 고개 숙여!

- ‘5’ 중에서

 

미스 양서류야, 경험의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하락한 것 같지?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밤마다 ‘아,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어’라고 되뇌다가 새로운 경험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카메라가 우리를 대신해서 경험을 해. 개인이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해지는 것은 환경의 차이이기도 하고 경험의 차이이기도 할 텐데 여행자의 경험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세계에 자신을 투영해보고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여행은 자기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로 이동해보는 것이고 원래는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렇게 변해가면서 현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모든 탁월한 여행자들은 ‘보이기’가 아니라 ‘보는 것’에, ‘보이기’가 아니라 ‘존재하기’에 마음을 빼앗기곤 하지 않았던가?

- ‘7’ 중에서

 

미스 양서류야, 나는 고흐가 알고 있던 것을 나도 알고 싶구나. 내 생각에 고흐가 알고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지 않다는 것이었어. 정말 놀라운 것은 우리의 손이 다르듯 우리의 삶도 다 다르다는 거야. 고흐는 각자 고유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을 그리고 싶어했어. 고흐는 화가가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았어. 개성은 농부는 농부답다는 것, 농부의 아내는 농부의 아내답다는 것이었어. 그렇지만 사람들을 똑같이 만들어버리려는 시도는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어. 주로 힘없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다름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소수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다름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나는 강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농민들의 작은 세계가 파괴되지 않기를 바랐어. 차이를 가진 그대로 아니, 차이 때문에 존중받고 인정받기를 바랐어.

- ‘9’ 중에서

 

페소아는 느껴야 한다고 말했어. ‘과장되게 느껴야 한다!’고 했어. 그래. 그는 내가 그저 알기만 했던 것을 느꼈어. 그는 실재와 비실재 사이의 피상적 구분을 넘어서게 했어. 잘 생각해보면 미스 양서류야, 우리에게도 실재와 비실재가 서로 교차되다가 관통하는 순간이 있지 않니? 그렇게 교차되다가 비로소 내가 실재 같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니? 나는 내가 아주 드물긴 해도 정말 훌륭한 생각을 했을 때 내가 한 생각이 아닌 것 같아. 내가 비실재 같아. 내가 그렇게 훌륭한 생각을 할 리가 없을 텐데,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 내가 스스로 한 생각이 아니라 뭔가를 엿듣거나 모방했나 싶기도 해. (너도 내가 가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 본 적 있지? 그때가 바로 그럴 때야.) 그렇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는 그때는 비로소 내가 거의 처음으로 실재가 된 것만 같고 묘한, 하지만 뜨겁고 강력한 힘을 느껴.

- ‘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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