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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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예술 세계! 그가 예술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12점의 그림 이야기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 『교수대 위의 까치』. 미학자, 지식인, 문화평론가, 논객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진중권이 자신만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미학 오디세이 1, 2, 3>, <놀이와 예술 상상력>, <서양미술사 1> 등에서 예술적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그는 이번 책에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 12점의 전시회를 열어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진중권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처음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 선정한 12점의 작품 역시 그가 밝힌 대로 ‘내가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의 가상(假想) 컬렉션’ 이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 울림을 준 이 그림들을 통해 초현실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해석이 사라진 현대예술 등 미술사의 주요 테마를 이야기한다. 또한 그 작품이 숨 쉬었던 시대의 우울과 개별 예술가의 삶, 그리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7장 ‘사라진 주체’ 에는 그가 한 달 전 중앙대에서 열었던 마지막 강의내용을 담았다. ‘화가의 자화상과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강의에서 그는 다양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통해 위대한 작가들의 삶의 애환과 철학을 들려주었다. 그가 계속 강단에 섰다면 이 책의 다른 장들에 관한 수업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강단에서 미처 하지 못한 수업의 강의록이기도 하다.

 

 

 

 

<작가정보>

 

진중권

1986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논문 〈유리 로트만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공부한 후 1999년 귀국했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KAIST CT 대학원 겸직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서 변화된 시대상을 몸과 마음으로 겪고 있는 지식인. 사회문화적 논쟁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첨예한 갈등의 중심에서 특유의 화법으로 풀어내는 그의 글쓰기와 사유는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미학자, 문화평론가, 지식인, 진보논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 말하곤 한다. 대표작으로 ‘미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친구 같은 책 《미학 오디세이 1, 2, 3》을 비롯하여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서양미술사 1》《춤추는 죽음》《진중권의 현대 미학강의》 외 다수가 있다. 옮기고 엮은 책으로 《컴퓨터 예술의 탄생》《미디어 아트-예술의 최전선》 등이 있다.

작품을 스스로 읽는다는 것은, 작품을 보며 스스로 물음을 제기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은 제작된 순간에 완성되는 죽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물음과 답변의 놀이를 통해 영원히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생물’이다. 이 물음과 답변의 연쇄가 끊어질 때, 작품은 더 이상 살아 있기를 멈춘다. 작품의 독해는 그저 남이 이미 읽은 궤적으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늘 새로운 물음, 새로운 해석으로 작품을 살아 있게 만들어야 한다. ― 〈프롤로그 푼크툼으로서 그림〉에서

 

 

 

 

 

<출판사 서평>

 

기발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사고,

독창적인 예술적 존재감으로

시대의 우울을 개별적이면서 유쾌하게 우회하는

미학자 진중권!

그의 영혼을 울린 12점의 그림을 만난다.

 

가장 ‘개별’적이면서 가장 ‘독창’적인 진중권의 그림 읽기

 

나는 저 하늘 위 구름 어딘가에서

운명을 맞으리라는 것을 알지.

나와 싸우는 자들을 나는 증오하지 않고

내가 지키는 자들을 나는 사랑하지 않네…….

내 죽음이 그들에게 상실을 주지도

그들을 전보다 더 행복하게 하지도 않으리.

어떠한 법률이나 의무가,

혹은 고관대작이나 환호하는 군중이

내게 싸우라고 시킨 것이 아니라오.

어떤 외로운 환희의 충동이

구름 속의 이 소란으로 몰아넣었다네.

이 삶, 이 죽음과 견주어보니

다가올 세월은 호흡의 낭비,

흘러간 세월 또한 호흡의 낭비처럼 보였다오.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서 변화된 시대상을 몸과 마음으로 겪고 있는 지식인 진중권. 격한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첨예한 사회문화적 갈등의 중심에서 특유의 화법으로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발언하는 그의 생각과 글은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그의 글쓰기와 사유는 사회의 질병을 알리고, 사회문화적 제도에 끊임없이 투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문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문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미학자, 지식인, 문화평론가, 논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하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예술적 상상력의 세계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미학적 상상력의 세계를 사회화해왔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기발하고 독창적인 사유로 안내한다. 그가 자신만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의 세계를 담은 《교수대 위의 까치-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를 출간하며 미학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번잡함을 유쾌하고 고독하게 우회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의 세계로 침잠했다. 우리 시대 오래된 친구 ‘미오’로 불리는 《미학 오디세이 1, 2, 3》을 비롯하여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서양미술사 1》 등으로 예술적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진중권! 그가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그림 컬렉션이자,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책이라는 시공간에 전시한 12점의 그림은 미술사 속에서 ‘타자’로 인식되어온 예술가와 작품들이다. 초현실주의, 르네상스, 광우, 자기성찰, 해석의 문제 등을 담아낸 그만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그림 읽기’이다. 그의 영혼에 울림을 준 12점의 그림. 그것은 작품이 숨 쉬었던 시대의 우울과 개별 예술가의 삶, 그리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한 달 전 중앙대 마지막 강의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화가의 자화상과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강의는 7장 〈사라진 주체〉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것은 작품이 숨 쉬었던 시대의 우울과 개별 예술가의 삶, 그리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한 달 전 중앙대 마지막 강의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화가의 자화상과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강의는 7장 〈사라진 주체〉에 오롯이 담겨 있다.

 

아주 가끔 영혼의 울림을 주는 작품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런 그림은 마치 원래 한 몸이었으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과 같은 느낌을 준다. 내게는 파울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와 피터르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가 그렇다. 사실 이 책에 수록된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서술은 정작 굼프의 자화상과 기스브레히츠의 정물화를 다룬 장(章)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작품들 중에서 영적 울림에 가까운 푼크툼의 효과를 주는 것은 피터르 브뤼헐의 이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그것을 책의 제목으로 뽑았다.

네덜란드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스페인의 군대가 반동의 물결로 덮어버렸던 시절. 풍자와 해학을 즐기던 명랑한 정신의 소유자는 교수대 위에 까치가 앉은 그 그림만 남기고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고 말한다. 보르헤스의 느낌대로 역사는 원형의 멜로디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는 변주곡일까? 지금 겪는 이 반복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먼 훗날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 여기에 그 기분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신변을 둘러싼 온갖 번잡함 속에서 이 책을 쓰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그 기분은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다. ― 〈지은이의 말〉에서

 

 

진중권! 12점의 그림으로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다

― 이 책의 특징 1

 

《미학 오디세이 1, 2, 3》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서양미술사 1》 《춤추는 죽음》 《진중권의 현대 미학강의》 《미디어 아트-예술의 최전선》 등은 어렵고 난해한 세계로 인식되었던 예술과 미학의 세계, 예술 관념의 변화상 등을 우리 시대의 문법에 맞게 잘 풀어내어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는 앞에서 언급한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진중권 자신의 내면 세계를 ‘처음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개별적인차원에서, 그리고 가장 독창적인 관점에서 미학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그림, 그 그림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당대의 지적 풍토와 화가의 고뇌, 그리고 그림과 마주한 자신의 내면을 담아냈다.

몸을 잃고 홀로 허공을 떠도는 머리. 기괴한 형상 앞에서 책을 삼키는 사내. 빛을 발하며 허공에 나타난 손이 왕궁의 벽에 새긴 글씨. 광인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수술. 불가능한 형태로 뒤틀린 교수대. 르네상스 시대 개구쟁이의 낙서. 들여다보는 자의 시선을 외면하는 거울. 뒷면인 동시에 전면인 캔버스. 세 얼굴을 가진 인간과 세 머리를 가진 짐승. 아주 평범해 보이나 해석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그림.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사라지는 고대 신전의 열주(列柱). 그리고 텅 빈 공간 속에 달랑 머리 하나로 남은 개. 그는 자신의 영혼에 울림을 준 12점의 그림을 끄집어내면서 초현실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해석이 사라진 현대예술 등 미술사의 주요 테마를 섭렵하고 있다.

《교수대 위의 까치-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에서 그는 ‘창조적 독해’라는 낱말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예술 작품을 읽어주는 것보다 작품을 스스로 읽도록 자극한다. 작품을 스스로 읽는다는 것은 작품을 보며 스스로 물음을 제기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작품은 제작된 순간에 완성되는 죽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물음과 답변의 놀이를 통해 영원히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생물’이다. 이 물음과 답변의 연쇄가 끊어질 때, 작품은 더 이상 살아 있기를 멈춘다. 작품의 독해는 그저 남이 이미 읽은 궤적으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늘 새로운 물음, 새로운 해석으로 작품을 살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작품은 작가와 독자의 공동 창작의 산물이다. 창조적이어야 할 것은 작가만이 아니다. 독자 역시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시 교수대로 돌아가 보자. 그 위에 앉은 까치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그의 재잘거림이 얼마나 많은 네덜란드의 시민을 교수대로 보냈던가?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고 이단으로 몰려서 처형당하는 상황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하지만 농민들은 그 무시무시한 교수대 아래서 즐겁게 춤을 추고 거기에 대변을 보며 그 부조리의 일부가 된다. 입을 잘못 놀려 교수대에 달리는 것도 그들이요, 그런 동료를 몰래 고발하는 것도 그들이 아닌가. 풍자하는 브뤼헐도 그 부조리에서 예외는 아니다. 저 교수대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뒤집힌 세상, 그것의 부조리와 불합리의 무시무시한 상징이다.

마지막으로 저 교수대의 모습에 주목해 보자.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브뤼헐은 투시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교수대를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형태로 그려놓았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이 이른바 ‘불가능한 형태(impossible figure)’가 미술사에 등장한 최초의 예다. 에셔보다 수백 년이 앞서는 셈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무리 뒤져봐도 이 시각적 일탈에 대한 해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소떼의 귀환〉의 배경에도 조그맣게 같은 모양의 교수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게 의도된 묘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마 이 북구의 거장이 투시법의 실수를 저질렀겠는가?

이게 실수가 아니라면, 해석의 가능성은 단 하나만 남는다. 교수대는 3차원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 자체가 부조리한 형상인 셈이다. 하지만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세상 역시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 부조리한 교수대야말로 브뤼헐이 바라본 세계 자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브뤼헐은 마니에리스모의 세계 감정을 마니에리스모 특유의 표현 방식에 담으려 했던 게 아닐까?

― 본문 114~116쪽, 〈5.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다르게 생각하면서 개별적으로 살았던 미술사 속의 ‘타자’를 끌어내다

― 이 책의 특징 2

 

진중권의 작품들은 수많은 미학과 예술 정보들을 말끔하고 정갈하고 흥미롭게 정리하는 표준적인 책, 지도를 그려주는 미술사, 그리고 예술사의 특정 영역을 개관하고 그쪽의 문제 영역을 친숙하게 해주었다. 《교수대 위의 까치-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는 앞서 강조했듯이 지은이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예술 읽기의 세계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는 미술사 속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아냈다. 즉 중심에서 벗어나고 말았던 것들, 미술사 속의 ‘타자(예술가, 작품)’에게서 지적 영감을 받았고, 그에게 울림을 준 예술가와 작품들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그림과 그림 사이에 표준적인 해석을 끼워 넣지 않았다, 표준적인 해석을 치우고 개별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고자 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경우 대부분 도덕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데 그의 직관으로는 새로운 광기의 한 형태였고, 브뤼헐의 경우 해학과 풍자라는 일반적인 해석을 넘어, 작가와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시대적 갈등 속에서 양심과 허무 그리고 뒤집어진 세상의 부조리를 읽어내고 있다.

이 책에는 12개의 대표적인 그림과 다른 그림들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 12개의 그림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배치 전략은 무엇일까? 그는 이 책에서 시의 창작 기법인 외형률과 내재율을 도입했다. 외형률은 이 책의 전체 스토리 라인을 드러내는 것이고, 내재율에서는 이 책의 큰 흐름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을 창안하였다.

이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적인 그림들이다. 신체의 일부분을 강조한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끊어진 손, 손가락이 떠도는 장면, 책을 먹는 장면에 나타난 천사의 몽타주 등이 초현실주의 현상을 묘사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읽기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히에로니무스 보쉬와피히테 브뤼헐의 그림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이때 모더니티가 등장하는데 이는 푸코적인 주제, 아리에스의 주제들 같은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생각들을 드러내며,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그리고 자화상이나 풍속화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다. 네덜란드의 자화상과 풍속화가 등장하는데, 네덜란드의 경우는 이탈리아 프랑스와는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고전주의 전통이 강한 반면 네덜란드는 굉장히 자유로웠다. 풍속화의 경우 고전주의적 관념에서는 저속한 장르였지만 네덜란드에서는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작품의 수도 많았다. 자화상 역시 고전적인 의미의 자화상이 아니라 장난이 가득한 자화상이 많았다. 그는 이러한 네덜란드 분위기를 새롭게 읽고 싶었다. 미술사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굼프, 기스브레히츠는 미술사에서 도외되던 ‘타자’들이었다.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들이다. 지은이는 이 그림을 통해 해석이 무너지는 양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파노프스키에 의해 구성된 도상해석학(iconology)이라는 피해갈 수 없는 표준적인 해석에 대한 불만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고야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이다. 이러한 흐름이 내재율 속에 스며들어 있다. 진중권은 무엇보다도 미술사에서 정통적인 것들보다는 그것에서 벗어나 있는 타자들에 주목하였다.

 

이쯤에서 굼프의 〈자화상〉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오스트리아의 화가 역시 카라치처럼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 앞에 서 있다. 그의 오른손은 붓을 쥐고 있고, 왼손은 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손에는 팔레트가 들려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그림을 그리는 공인으로 묘사함으로써 굼프는 예술적 정체성과 직업적 자부심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려진 17세기 중반에는 공인으로서 화가의 자화상이 더 이상 참신한 발상이 아니었다. 이 작품이 자화상의 역사에 도입한 혁신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새로운 점은, 여기서 자화상이라는 장르가 ‘화가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회화’의 자의식’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굼프는 관객에게 등을 돌려 얼굴을 감추어버리고는 화폭 위에 거울에 비친 ‘영상’과 캔버스에 그려진 ‘모상’만 남겨둔다. 그 결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는(혹은 거울에 비추는) ‘행위’만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런 식으로 굼프는 자화상을 이용해 ‘주체의 본성’이 아니라 ‘재현의 본성’을 주제화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굼프는 ‘화가의 정체성’을 묻고 있지 않다. 그가 묻는 것은 ‘회화의 정체성’이다.

― 본문 143~144쪽 〈7 사라진 주체〉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의 푼크툼으로서 회화

― 이 책의 특징 3

 

지은이에 따르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크게 네 가지 수준이 있다. 관객은 작품으로부터 정서적(emotional) 감동을 받거나, 감각적(perceptual) 쾌감을 얻거나, 지성적(intellectual) 자극을 받거나,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영성적(spiritual) 울림을 얻는다. 사람마다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는 다르다. 어떤 이는 작품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어떤 이는 작품의 텍스추어의 지각적 섬세함에 매료되고, 어떤 이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침전된 지적 코드를 해독하는 정신적 유희를 즐기고, 어떤 이는 작품에서 거의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깊은 영성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지은이는 작품의 지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인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들이다. 그 자극은 작품 전체 또는 작품의 주요 모티프에서 흘러나올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림 속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디테일’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지은이는 ‘푼크툼(punctum)’으로서 회화를 제안한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의미에 두 개의 층위가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는 ‘스투디움(studium)’으로,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읽어내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과 관계없이, 때로는 그것을 전복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효과이다. 오직 보는 이 혼자만이 느끼는 이 절대적으로 ‘개별적’인 효과를 바르트는 ‘푼크툼’이라 부른다.

‘푼크툼’과 ‘스투디움’은 사진에 적용되는 개념적 도구이지만, 지은이는 이를 회화에 적용한다. 고전 회화에는 ‘제재(sujet)’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이해한다. 첫눈에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도상해석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르트가 말한 사진의 ‘스투디움’이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그런 일반적 해석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작품의 세세한 디테일, 미묘한 텍스추어에 사로잡힌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이 느낌이 회화의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스투디움’ 위주의 해석에서 ‘푼크툼’의 계기를 결합시킬 필요성을 지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과 관객의 관계가 고독하고 개별적이어야 한다. 물론 스투디움도 작품의 이해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작품과 관객 사이에 스투디움만 끼워 넣을 경우, 이 표준적 해석의 필터가 외려 작품에 대한 생산적 독해를 가로막을 수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작품에 대해 자신만의 고독하고 개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때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작품에 대한 표준적 해석을 넘어서는 직관을 제공해줄 때, 관객은 남이 찾아놓은 의미를 재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된다.

― 〈프롤로그 푼크툼으로서 그림〉에서

 

마지막 수업, 새로운 ‘미학’을 향한 첫걸음이 되다

― 출간의 의미

 

2009년 9월 11일, 6년간 몸을 담았던 중앙대를 떠나게 되면서 학생들이 마지막 강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중앙대 겸임교수직 재임용 탈락을 아쉬워하는 재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학생들이 주최하는 ‘마지막 수업’ 형식으로 특별 강연을 하였다. 오후 5시 중앙대 서라벌홀 2306호 강의실에서 ‘마지막 수업:화가의 자화상’이란 주제로 열렸다. 그는 다양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통해 위대한 작가들의 삶의 애환과 철학을 들려주었다.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이 강의의 내용은 〈사라진 주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이 책의 한 장(章)으로 수록되었다. 중앙대에서 계속 강단에 섰다면, 비평론이나 해석론과 관련하여 이 책의 다른 장들에 관한 수업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첫 강의가 곧 고별 강연이었기에 강의는 단 1회로 그쳐야 했고, 그래서 결국 이 책은 강단에서 미처 하지 못한 수업의 강의록이 되었다. 중앙대의 마지막 수업 이후 그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강의와 강연이 시작되었다. 그에게서 예술과 문화 그리고 미학 연구와 강의는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첫걸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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